프랜차이즈 갓 028화
6장 얼마야? 얼마면 돼? (3)
"대형 식품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요? 무슨 내용인데요?"
하수영은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다.
이 정도는 전성렬도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우리가 요즘 식품회사 차린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레이더에 잡힌 모양일세. 관심이 생겼겠지."
"우리나라에 식품회사가 한두 개도 아닌데, 대형 식품회사가 아직 생기지도 않은 신생 경쟁자를 왜 신경쓰죠? 자본금이 200억도 안 되는데.
아, 근데 연락 온 데가 어디에요?"
"JM식품."
국내 식품업계에서 빅3에 들어가는 대어다.
하수영은 한껏 진지해졌다.
빅1이나 빅2면 차라리 아무 기대도 안 드는데, 빅3인 JM식품이라고 하니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그만큼 1, 2등에 비해서 만만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왜요? JM 식품이 라면 사업부라도 매각한대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그럼요?"
"우리가 공장 인수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거 같아."
"공장 인수요?"
하수영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JM식품에 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것은 전성렬의 영역이었으니까. 자신은 그의 경영 판단을 믿을 뿐이다.
"아, 원래 JM식품이 라면 공장이 있는데 시설이 노후화됐고 공장부지도 시원찮은가 봐. 처음 삽 뜰 때만 해도 여유 있게 지었는데 업계 3위까지 올라선 지금은 아무래도 규모가 작다는 거지."
"그럼 확장을 하면 되잖아요. 아, 부지 확보가 더 이상은 곤란한가 보죠?"
"주변부지 매입이 어려워서. 그래서 아예 다른 곳에 새로 공장을 지었는데, 그리되니까 기존 공장이 애물단지 신세가 되었다."
"사장님 판단은요?"
"JM식품한테나 작은 공장이지, 다른 중소식품회사들 라면 공장보다는 훨씬 규모가 커. 난 공장만 따로 인수해서 우리가 직접 회사를 차렸으면 하는데."
"얼마에 판대요?"
"내부 설비까지 전부 일괄적으로 40억."
"제가 공장을 안 봐서 그게 적절한 가격인지 감이 잘 안 오는데요."
"엄청 싸게 나온 거지. 빅3한테나 작은 거지 우리 같은 신생업체한테는 상당히 큰 공장이야. JM식품도 마땅히 처분할 데가 없어서 그렇게 싸게 내놓은 거고."
"사장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지요."
하수영은 별다른 반론을 표시하지 않았고, 전성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직접 회사를 차리고 생산은 JM식품 구공장을 인수하는 것으로 진행하겠네."
"적어도 1년 동안은 공장 운영에 관한 지원을 반드시 받아내셔야 합니다."
"당연하지."
공장을 인수받아도 굴릴 사람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더군다나 전성렬은 라면 공장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노련한 공장장과 숙련된 관리자 및 직원들이 필요하다.
그런 인적 지원은 JM식품이 해줘야 한다.
"그리고 서해식품에서도 연락이 온게 있어."
"이제 꺼내는 거 보면 라면 공장이야기는 아닌가 보네요."
"응, 황비버섯을 사고 싶대. 100톤정도, 일본과 중국에 수출하려는 모양이야. 그래서 팔기로 했네."
"잘하셨어요. 당장 라면 만들 것도 아닌데 갖고 있어 봐야 냉동창고 비용만 더 나가죠."
"공장 가동할 때쯤에 황비버섯 공급에는 지장이 없겠지?"
"물론이죠. 아주 버섯에 치여서 치가 떨리도록 만들어드릴 테니까 라면 공장이나 잘 돌려보세요. 그나저나 우리 라면 개발은 어떻게 하죠?"
"그거야 차차 갖춰 나가면 되고, 일단은 기본적인 라면에 충실하면 될 거 같네. 정 안 되면 특허보호 풀린 레시피를 갖다가 써도 되는 거고."
전성렬은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를 보였다.
"어차피 우리는 황비버섯으로 승부 수를 띄울 거 아닌가?"
* * *
"여보, 이게 다 뭐예요?"
전성렬의 아내 하지희는 남편이 수십 개가 넘는 종류의 봉지라면을 거실 바닥에 내려놓자 당황해서 물었다.
"라면 끓여보려고."
"이 많은 라면을 지금 전부요?"
"응, 당신도 도와줘."
전성렬은 커다란 바구니를 열었다.
안에는 말린 황비버섯이 잘게 찢긴 채 가득 담겨 있었다.
황비버섯은 건조하면 부피가 1/5이하로 줄어든다. 물에 넣고 끓이면 다시 본래 부피를 되찾는다.
이때 생일 때만큼은 맛이 나지 않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불에 구웠을 때의 이야기다.
말린 황비버섯을 국물에 넣고 조리하면 생버섯일 때와는 또 다른 각별한 깊은 맛이 난다.
그래서 요리사에 따라서는 국물 요리에 생보다는 말린 황비버섯을 더 선호하는 이도 있다.
"이거 황금비단우산버섯 아니에요? 어이구, 이 정도면 돈 백만 원은 하겠네."
"거저 얻은 거야. 그러니까 마음껏 먹어도 돼."
"정말이에요?"
"빨리 도와주기나 해."
전성렬은 가장 먼저 태양심의 윤라면을 집어 들었다.
한국에서 부동의 매출 1위를 자랑하는 라면이다.
서해식품을 먹여 살리는 알뜰 효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물론 전성렬도 그 맛을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윤라면에 황비버섯 넣어서 먹어본 적은 없었네. 이게 처음이야."
"나도 없어요. 이 비싼 걸 어떻게 라면에 넣어서 먹어. 그냥 전골 요리를 해서 먹지."
부부는 기대 반 우려 반 속에서 물을 끓였다.
물이 끊자 전성렬은 분말 스프를 넣은 뒤, 황비버섯 조각을 몇 개 집어넣었다.
대충 생버섯 2개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소매가로는 1만 원 정도.
'라면값이 900원이니 한 그릇에 10,900원인 셈인가.'
먹거리 방송이나 예능 등에서 연예인들이 시중 라면에 황비버섯을 넣어서 먹는 건 많이 봤다.
하지만 직접 해먹어 보는 것은 처음이다.
먹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맛있다고 하던데, 정확히 어떤 맛일까?
말린 버섯이 물에 불리며 본래 크기로 부풀었다.
전성렬은 면발을 넣고 뚜껑을 닫았다. 일부러 계란이나 파 등의 다른 첨가물은 넣지 않았다.
드디어 라면이 다 익었고, 구수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주방에 퍼졌다.
"아빠, 이게 무슨 냄새야?"
냄새를 맡고 두 딸이 주방에 들어왔다.
"라면에 버섯 넣고 끓인 거야?"
"응, 황금비단우산버섯이야."
"와, 진짜? 나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나도 처음 먹어 봐, 언니."
"이 녀석들아. 누가 준다던? 지금라면 하나밖에 안 끓였어."
"한 입만 줘, 응?"
두 딸이 보채며 매달리자 전성렬은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차피 시음을 해야 하니 잘됐다.
표본은 다양하고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한 입씩만 먹어야 한다. 그리고 맛이 어떤지 냉정하고 정확하게 말해야 해."
"알았어요."
사람은 넷인데 라면은 하나다.
젓가락질 몇 번에 라면 한 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국물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와, 진짜 맛있다. 늘 먹던 그 윤라면 맛이 아니야."
"역시 국물 요리의 제왕, 황비버섯이라니까. 인스턴트 라면이 아닌 거 같애."
"아빠, 우리 하나 더 끓여 먹어도 돼요? 여기 라면이랑 버섯 많네."
"먹고 나서 설거지 제대로 해라."
전성렬은 빈 그릇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딸들의 말대로, 늘 먹던 그 라면 맛이 아니었다.
그저 말린 황비버섯을 넣은 것만으로도 향의 풍미와 국물맛이 깊이가 달라졌다.
'먹힌다! 이건 무조건 먹힐 수밖에 없어.'
한 그릇에 만 원 넘게 소모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다.
물론 라면을 자주 먹는 사람들에게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아주 가끔이라면 모를까, 종종 먹는 라면 한 그릇에 만 원 넘게 투자할 수는 없으니.
하지만 일반 라면보다 2,300원더 비싼 가격에 이런 맛을 즐길 수 있다면?
다른 라면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전성렬은 윤라면을 포함해서 총 10가지의 라면을 시험해 보았다.
결과는 전부 같았다.
황비버섯을 넣은 것만으로 라면 맛이 이전에 알던 것과 확연하게 달라졌다.
큰딸이 입가에 라면 국물을 묻힌 채 말했다.
"라면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웃긴데, 이 정도면 미슐랭 별 하나는 줘도 될 거 같아."
"그럼 난 두 개 줄래."
"딸들, 이제 솔직히 말해봐. 같은라면 기준으로 황비버섯을 넣은 것과 안 넣은 것에 각각 몇 점을 줄수 있어? 황비버섯을 넣은 게 100점이라 치고."
"비교가 안 되잖아. 버섯 넣은 게 100점이라면 안 넣은 건 10점도 아까워, 아빠."
"그 정도야?"
"응, 내 혀는 정확해. 근데 갑자기 이건 왜?"
"그러고 보니 황비버섯이 엄청 많네. 이거 다 먹어도 되는 것들이지?"
"그럼 너희 똑같은 라면인데 하나는 300원 더 주고 황비버섯 2개가 들어간 것과, 하나는 안 들어간 라면, 둘 중 어느 걸 먹을래?"
"당연히 300원 더 주고 버섯라면 먹어야지. 아빠 자꾸 비교가 안 되는 걸 비교하려고 한다."
"진짜 이런 걸 왜 묻는 거야?"
"그러게. 당신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요?"
하지희도 의아해서 물었고, 그제야 전성렬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내가 라면 회사를 차리려고 해."
"라면 회사?"
"아니, 갑자기 왜?"
"여보, 그거 돈 많이 드는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평생 모아놓은 알토란 저축 다 날려 먹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이미 회사도 차렸고, 공장도 곧 인수할 거야. 하수영 사장 알지? 그 친구와 합작하기로 했어. 황비버섯은 그 친구가 염가에 조달하기로 했고, 직접 재배하거든."
큰딸이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손뼉을 짝 쳤다.
"아빠, 그럼 300원 정도 더 받고 황비버섯을 이만큼 넣어서 팔려고 하는 거야?"
"바로 그렇지."
"우와, 대박. 그런 라면 출시되면 다른 라면들 전부 올킬 당하겠는데?"
"아빠, 솔직히 라면 사리에 고춧가루와 김치 넣고 황비버섯만 넣어서 끓여 먹어도 맛있을 거야. 스프고 뭐고 다 필요 없을 거 같은데."
"근데 이럼 팔면 팔수록 손해 아니야? 황비버섯 두 개면 만 원 정도 할 텐데. 그걸 천몇백 원에 판다고?"
"그건 아빠가 알아서 하고, 아무튼 맛은 좋다는 거지? 다른 라면에 손이 안 갈 정도로?"
"그럼, 당연하지."
전성렬은 자신감을 얻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맛을 보고, 또 아내와 두 딸의 평가를 들으니 실패할 수 없겠다는 확신이 섰다.
하수영은 '라면에 들어가는 황금비단우산버섯은 개당 100원에 제공하겠다고 했다.
개당 50g 정도이니, kg당 2,000원인 셈이다.
시중 소매가가 10만 원이니, 무려 50배 차이가 난다.
다른 라면 회사는 따라 하고 싶어도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다. 하수영이 아니고서는 맞출 수 없는 단가 차이였으니.
'이건 된다! 무조건 돼!'
전성렬은 꿈에 부풀었다.
한국 라면 시장의 절대자로 등극하고, 황비버섯라면을 통해 다른 식품들도 차근차근 진출하는 미래가.
그는 잔뜩 들떠 있었다.
아내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들만 노났네. 앞으로 국물 요리할 때 비싼 황비버섯 따로 살 필요 없이, 당신이 파는 라면 사서 버섯만 쏙 빼서 쓰면 되잖아."
"엄마 말이 맞네. 그럼 일반 가정집에서도 황비버섯 넣은 요리 매일 해먹을 수 있겠다."
"만 원 주고 황비버섯 두 개 살 바에야 삼천 원 조금 안 되게 주고 아빠가 만든 라면 사면 되잖아. 훨씬 남네. 라면은 싸뒀다가 나중에 먹으면 되고."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전성렬은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