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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26화 (26/1,270)

프랜차이즈 갓 026화

6장 얼마야? 얼마면 돼? (1)

박충원 이장은 당황해서 술이 덜 깬 하수영의 눈을 바라봤다.

불현듯 피에 젖은 것처럼 보였던 어제의 눈동자가 생각났다.

'정말 사람 죽여 봤던 거 아녀?'

순간 등줄기에 오싹함이 밀려오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수영은 술 냄새를 한껏 풍기며 말을 이었다.

"너무 죄송해서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앞으로 마을 어르신들 앞에서는 술을 진짜 절제해야겠습니다. 어휴, 저도 이런 제가 정말 싫네요."

"그, 그게 무슨 말이여? 평소에는 잘 참고 산다니? 술만 먹으면 본성이 나온다니?"

"말 그대로인데요?"

"그러니까 원래 본성이 그렇게 개차…… 아무튼 어제 술 먹었을 때 그거인디 평소에는 꾹 참고 지낸다, 이거여?"

"예, 이번 생은 둥글둥글한 캐릭터로 살아보려고 결심했거든요. 복잡한 세상사 관심 끊고 돈 많이 벌어 빌딩 올려서 편안하게 세나 받아먹으면서 살아야지, 하고요."

"캐, 캐릭터? 그건 또 뭔 말이여?"

"아무튼 어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술을 진짜 자제하겠습니다. 혹시 다치신 데는 없으신가요?"

"어, 없다네. 다친 데가 어디 있냐고."

하수영은 다시 한번 허리를 꾸벅숙인 뒤 돌아갔고, 박충원 이장은 멍한 눈빛으로 뒷모습만 바라봤다.

"방금 대관절 무슨 말을 하고 간 거여?"

어제 하수영은 말도 안 되는 폭언을 퍼붓고, 힘까지 썼다.

술이 너무 취해서 개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찾아와서 사과하는 태도나 어투도 공손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말에 담긴 내용이 심상치 않다.

'대체 어느 쪽이 맞는 거여?'

원래 본성이 그렇다니. 평소에는 꾹 참고 사는 거라니.

저렇게 깍듯한 태도로 그런 말을 하니,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무척 헷갈렸다.

"저거, 잘못 건드리면 큰일 저지를 친구 아니여?"

정말 미친놈일지도 모른다.

원래 미친놈들은 자기가 미쳤다는 티를 내지 않으니.

박충원은 한동안은 조용히 지켜봐야겠다고 결심했다.

* * *

하수영은 전성렬을 만났다.

식품회사와 라면에 관한 논의를 이 어가기 위해서였다.

"황비버섯(황금비단우산버섯의 줄임말)이 서민 식탁에 오르기에 비싼건 사실이지만, 한동안은 가격을 많이 낮출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황비버섯라면을 시장에서 제대로 밀어주려면 당연한 거지. 너도나도시중 라면에 황비버섯을 넣어서 먹을 수 있다면 황비버섯라면이 어떻게 자리를 잡겠나."

"라면 하나당 황비버섯은 1개나 2개 정도 넣으면 적당할 것 같아요."

"2개만 넣어도 버섯값만 1만 원이군."

물론 시중에서 구입했을 때의 가격을 말한다.

하수영의 경우에는 라면에 넣는 버섯 원가로 100원만 받아도 마진이 남을 정도다.

"그런데 버섯을 그렇게 넣으면 부피가 너무 커질 텐데. 말려서 넣는다 해도 어느 정도 부피가 있을 수밖에 없어."

아무리 말려서 부피를 줄인다 해도 길이와 둘레가 각각 15㎝에 달하는 버섯을 2개나 넣으면 아무래도 부피가 늘어난다.

"더 좋지 않나요? 다른 라면을 사이즈부터 압도하는 거니 말입니다. 저절로 눈길이 갈 겁니다."

"그런가?"

"하는 김에 스프에도 황비버섯을 갈아서 넣죠. 그럼 국물이 좀 더 깊은 맛이 날 겁니다."

"이야, 정말 황비버섯을 듬뿍 넣은 라면이 되겠어. 아주 잘 팔리겠는데?"

"홍보만 잘되면 문제없이 라면 시장 1위를 탈환할 수 있을 겁니다."

"입소문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수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물론 입소문도 크죠. 하지만 요즘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품질만 확실하다면 홍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인지도를 더 빨리 올릴 수 있어요."

"음, 맞는 말이야."

"1에 1을 더하면 10이 될 게 뻔한데, 굳이 1을 더하지 않고 놔둘 필요는 없죠. 입소문도 기대하고, 적극 홍보도 하고, 또 입소문도 부추기기도 하고 그래야지요."

대강 방향이 정해졌다.

황비버섯라면으로 라면 시장을 장악할 때까지 당분간은 황금비단우산버섯의 가격을 높이 유지한다.

차후 황비버섯라면이 시장을 장악한 뒤 버섯 가격을 내리더라도, 다른 라면업체들이 감히 원가 경쟁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할 수준은 유지한다.

"국물 요리 시장도 어마어마하니까요. 라면 시장 장악하고 난 다음에는 국물 요리 시장도 공략해 보죠."

"아주 좋아. 이대로 추진하기만 하면 별 탈 없이 진행될 거 같은 느낌이 들어."

"문제는 저희가 지금 식품회사에 전혀 문외한이라는 거죠. 가지고 있는 사업 기반이 전혀 없어요."

"……그건 그래."

"사장님, 끌어 올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죠? 전 65억 정도 되는데요."

"100억까지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네."

"대박. 우리 전 사장님 엄청 현금부자시구나."

자기 돈과 가족 돈, 친구 돈, 그리고 금융기관 등에서 끌어올 수 있는 돈까지 모두 합친 것을 말함이다.

"전부 내 돈은 아닐세. 말했잖아. '마련할 수 있다'고, 그중 순수한 내 돈은 절반도 되지 않아."

"50억이 넘는 외부 자금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죠."

하수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슬쩍 물었다.

"제 돈 65억, 사장님 돈 100억. 합쳐서 165억의 자본금이네요. 만약 회사를 설립할 거면 지분 관계는 어느 정도로 하시겠어요? 아, 경영은 사장님이 주도적으로 하세요. 전 버섯 재배에 신경 쓰느라 바쁠 테니까요."

또 나왔다.

소유 관계를 어떻게 하고 싶냐는 질문.

전에 같은 질문을 받고 난 이후 충분한 고심을 거쳤지만, 전성렬은 다시 한번 생각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대답을 잘해야 한다.

황비버섯라면은 황금비단우산버섯에 모든 게 달려 있고, 버섯은 오롯이 하수영한테 귀속돼 있다.

"초기 지분은 자네가 51, 내가 49로 하지."

"네, 그리고요?"

"누적 순이익 10억마다 자네 지분을 1%씩 늘리도록 하세. 20억이면 2%, 30억이면 3%. 예를 들어 내년에 순이익 100억이 한 번에 나오면 바로 10%를 늘리는 거지."

"누적 순이익 490억이 되면 사장님 지분은 0이 되는데요?"

"지분 10%는 무조건 지켜주게. 그 이상은 바라지 않네."

"그냥 번거롭지 않게 처음부터 10%로 조정하시는 건 어때요? 제 생각에 누적 순이익 490억은 금방 달성할 것 같은데요."

"나도 100억 원이나 내는 건데, 그것도 남의 돈까지 끌어서. 그 정도안전장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전성렬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하수영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그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것 같다.

'스무 살 젊은이 시험에 통과하고 좋아하다니…….'

씁쓸하면서도 기분 좋은 웃음이 가슴 속에 머금어진다.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사장님, 설마 정말 맨땅에서 시작하실 건 아니시죠?"

"내가 그럴 리가 있겠나. 생각해둔 게 있네."

"역시 우리 전 사장님. 버섯, 아니, 농산물 판매만큼은 앞으로도 제가 믿고 맡기겠습니다."

송이버섯과 황금비단우산버섯 말고 준비하는 게 또 있나?

설마 버섯이 아닌 건가?

전성렬은 그런 의구심을 품은 채 말을 이었다.

"다른 식품회사를 인수할까 생각을 해봤네."

"165억으로 인수할 만한 회사가 있을까요?"

"우리는 그 돈으로 아예 새로 회사를 차리려고 했네만?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기존 인프라가 있는 회사를 사는 게 훨씬 빨라. 시간도 절 약할 수 있고, 초반에 우왕좌왕하는 일을 피할 수도 있지."

"그러려면 100% 우리 지분으로 만들 수 있는 회사를 찾아야 할 텐데요. 또 오너가 회사를 정리할 결심을 해야 하고요."

"몇 개 회사를 봐둔 게 있네. 아니면 대형 식품회사 중에서 라면 사업부만 별도로 사올 수도 있고."

"대형 식품회사가 라면 사업부를 왜 별도로 팝니까?"

"대형 식품회사라고 다 라면이 잘팔리는 건 아니거든. 그놈의 윤라면 때문에 말이야."

태양심.

서해그룹 계열사인 서해식품의 자회사이자, 자타공인 식품회사의 국내 원탑.

본래 서해식품의 라면 사업부였는데 매출이 압도적으로 다른 부서를 넘어가면서 아예 별개 법인으로 분리를 시켜 버렸다.

분리 과정에서 라면 외에 다른 가공식품 사업부까지 얹어주는 바람에, 모회사인 서해식품보다 매출과 순이익이 더 많이 나오는 자회사가 되었다.

사실 서해식품과 양심은 법인격만 별도이지, 그냥 같은 회사라고 봐도 무방했다.

서해식품은 영업부, 태양심은 생산부라고 비유하면 될까.

"빅쓰리(BIG3)부터만 해도 라면 사업부가 그다지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까."

"빅쓰리면 JM식품인데, 아무리 사업부가 부진해도 따로 팔려고 할까요?"

"5위나 6위부터는 우리도 노릴 만해. 정 안 되면 중소식품회사를 통째로 사들여서 해도 되고."

당당함이 넘치던 전성렬은 불현듯 자신감이 떨어진 표정을 보였다.

"황비버섯라면이 윤라면을 상대로 지지는 않겠지?"

"지다니요. 압도적으로 찍어 누를 수 있을 겁니다. 윤라면에 황금비단 우산버섯 넣어서 끓여 먹는 사람 은근히 많아요."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치사한 수작만 안 부리면 우리가 무조건 이깁니다."

"하지만 치사한 수작을 쓸 것 같아서 말이야."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알면서도 왜 그리 태연하나?"

"알고 있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그래서 안 싸울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그렇지. 안 싸울 것은 아니지."

"때문에 홍보가 중요해요. 공업용 우지(소 기름)로 면을 튀겼다고 가짜 뉴스를 대서특필해도 소비자들이 비싼 버섯을 듬뿍 넣은 라면에 왜 그런 짓을 해? 라고 절대적으로 지지하도록 만들어야 하니까요."

"나라도 황금비단우산버섯을 가득 넣은 라면에 설마 그런 멍청한 짓을 할 거라고 의심할 것 같지는 않은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일 줄 안다면, 이 사회에 정치적 갈등이란 전혀 없었을 겁니다."

"자네 말이 맞아."

식품회사와 라면 이야기는 얼추 합의를 보았으니, 이제 다른 이야기로 슬슬 넘어갈 때였다.

"서해식품에서 별다른 이야기는 없습니까?"

"어, 생각 중이라고만 일단 이야기 해두었네. 하루아침에 다른 곳에 팔아치웠다고 해버리면 괜히 적으로 만들까 싶어서."

"그렇군요."

하수영은 서해식품에서 아직 자신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를 알수 있었다.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송이 버섯은 아직 생산되지도 않은 4.8톤어치가 마케미야투자에 팔렸다는 것을.

'이원재 차장 우는 얼굴 한번 보고 싶긴 하네.'

처음 하수영은 서해식품과 전성렬,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했었다.

전성렬이 마케미야에 일괄매각하면서, 본래 정당한 자기 몫까지도 양보하는 것에서 그에 대한 의심은 완전히 지웠지만,

* * *

서해식품에 송이버섯거래에 관한 내부 정보를 알렸던 박기수는 매우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었다.

-기수야, 하수영 사장이 아직도 아무 연락이 없는데? 혹시 전성렬 사장한테 사실대로 말한 건 아니겠지?

"어, 원재야. 그게…… 아직 하 사장이 우리 사장님한테 완전히 신뢰를 놓지는 않았나 봐. 그러니까 그게…"

박기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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