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25화
5장 순순히 버섯을 내놓으면 입금을 드리겠습니다(5)
황금비단우산버섯은 여러 고급 요리에 널리 쓰인다.
송이만큼 비싼 식자재는 아니지만, 일반 서민들이 날마다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특히 전골 등 국물 요리에 있어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버섯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 요식업자, 요리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국물 요리에는 반드시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넣기를 권한다.
때문에 '모든 국물 요리'에서 일정이상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버섯을 넣는 게 보편화되어 있다.
맛이 있다고 조금이라도 소문 난 가게들은 국물 요리에 반드시 이 버섯을 넣는다.
"특히 라면에 넣어서 먹으면 맛이 일품이야."
"유명한 라면 레시피 중의 하나로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넣어 끓이는 것도 있으니까요."
흔한 인스턴트 봉지 라면에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넣어 끓이면 자취생을 위한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
다만 라면을 주식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주머니 형편이 안 좋은 이들에게, 이 버섯은 매우 비싼 편이다.
엄두를 못 낼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큰마음 먹고 사야 할 정도라고 할까.
"가공식품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려면 당연히 라면 시장을 공략해야 해. 라면만 한 위상을 가진 식품은 없으니까. 말린 버섯을 라면에 듬뿍넣어서 팔면 폭발적인 인기를 끌 거야."
라면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잔뜩 넣은 라면 요리는 예능에서도 종종 나오니까.
문제는 단가다.
버섯을 2개만 썰어서 넣으려 해도 1만 원이 든다.
몰라서 라면에 안 넣는 게 아니라, 라면에 넣기에는 비싸서 못 넣는 것이다.
"라면에 넣는 버섯은 원가에 약간의 마진만 붙이면 돼. 물론 시중에 푸는 버섯은 그보다는 더 많이 받아야지. 일단 라면 시장을 장악해서 브랜드 이미지를 단단히 굳히면 다른 가공식품도 어렵지 않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네."
"좋습니다, 좋아요. 그럼 식품회사 세워서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듬뿍 넣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의 라면으로 시장을 휘어잡는다 치고, 회사 소유관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전성렬은 이 부분에서 말문이막혔고, 하수영은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돌렸다.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오늘 이 자리에서 모든 걸 결정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바쁜가?"
"네, 오늘 강제 집들이를 해야 해서요."
"강제 집들이?"
"신고식 같은 거죠, 뭐. 버섯 농장있는 산 말이에요."
그제야 전성렬은 납득했고,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요새 시골 인심이 아주 고약하다던데. 특히 귀농인에 대한 텃세가 장난 아니라고……."
"전 주인도 참다 참다 결국 못 버티고 나갔대요. 마을 발전 기금 내라고 재촉하는 거 몇 번 내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서 안 냈더니, 한밤중에 몰래 전선을 끊고, 통신선을 끊고, 심지어는 바람 오는 방향에다가 일부러 삭인 거름을 놔둬서 집에 악취가 진동하게 만들기도 했다네
"아이구, 보통이 아니군. 괜찮겠어?"
하수영은 그저 웃기만 했다.
"원래 미친놈은 더 미친놈 앞에서 쪽을 못 써요."
이장으로부터 잔치 압박이 들어온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너 차례 압박을 받은 하수영은 드디어 이장에게 오늘 정원에서 마을 잔치를 열 것이라고 말했고, 준비도 갖췄다.
***
"오늘 서락산 새 주인이 집잔치 한 담서?"
"새 주인 아니여. 전 주인, 그 서울 할매가 고용한 문지기랴."
"그랴? 문지기여도 우리 마을에 눌러앉았으면 당연히 떡잔치 한번 돌려야지."
"근데 돈 없는 친구라서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가 몰라."
큰 기대 없이 들어선 마을 주민들은 삶은 수육과 김치, 막걸리와 소주가 가득한 광경을 보고 흡족해했다.
이장, 박충원은 하수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했다.
"어이구, 고기가 아주 그냥 산더미네. 이 정도면 돈 많이 들었겠네."
"별말씀을요. 어르신들 뵙고 인사올리는데 이 정도는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젊은 친구가 아주 마음이 선해. 앞으로 마을 생활하는 데 불편한 게 있으면 내게 말하게."
마을 주민들은 흥겨워서 먹고 마시고 떠들어댔다.
다들 금방 취기가 올랐다.
"저, 서울 할매는 너무 사람이 정나미가 없어, 정나미가."
"암은, 꼴랑 마을발전기금 몇 푼낸 거 가지고 생색이나 잔뜩 내고 말이여. 우리가 그 돈이 없어서 못사나?"
"거, 이웃끼리 좀 친하게 지내자고 놀러 와도 문 한번 안 열어주고 말이야. 아주 야박하기 그지없었지."
"이봐, 새로 온 총각. 자네는 그렇게 하믄 안 되야! 서락읍에 왔으면 서락읍의 법을 따라야지! 암은!"
하수영은 주민들이 권하는 대로 술을 받아마셨다.
그도 어느덧 적당히 취기가 올라 있었다.
박충원이 그에게 다시 한 잔을 권하며 물었다.
"젊은 친구가 80만 원 때문에 이 촌동네까지 올 정도면 우여곡절이 많았겠구먼."
잔뜩 취한 하수영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대답했다.
"사연이요? 참 많았죠. 제가 가진 사연을 책으로 쓰면 일억 권으로도 모자랄 겁니다."
"에끼!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여?"
"과장 아닌데요. 제가 이 손에 묻힌 피만 해도 어르신 모발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허허, 피라니. 누가 들으면 사람이라도 죽인 줄 알겠네. 혹시 도축업일을 했나?"
"했었죠. 인간 백정이란 말도 들어 봤습니다. 천만 명? 일억 명? 이 손으로 직접 죽인 건 그 정도 될 겁니다. 입으로 죽인 건 셀 수도 없죠."
"이 친구가 농을 아주 재밌게 하는 구먼."
박충원은 당연히 술기운에 허언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별안간 하수영이 박충원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보기와 다른 우악스러운 힘에 박충원은 화들짝 놀라서 얼굴을 찡그리며 돌아봤다.
"젊은이! 이, 이게 무슨 짓인가?"
"내 말이 장난 같아?"
술에 취한 하수영의 눈동자는 피가 고인 것처럼 잔뜩 충혈돼 있었다.
그 시선과 마주치자 박충원은 온몸이 구겨지는 듯한 공포감에 휩싸였다.
"내가 말이야, 한때는 손가락만 튕기면 모든 걸 핵폭탄으로 만들었어. 미국도 내 앞에서는 설설 기었다고. 지상의 인간종과 지하의 포식자 종의 지배자로 행성 하나를 내 발 앞에 두고 부렸어."
하수영은 그의 손목을 움켜쥔 채 킬킬거리며 일어났다.
박충원은 강제로 끌리듯이 일어나야 했고, 어느덧 주변은 고요해졌다.
어느 할머니가 엉거주춤 나섰다.
"저기, 새로 온 총각. 술이 많이 취한 것 같은……."
하수영은 고기를 자르는 가위를 들어 그대로 옆으로 던졌다.
휙 하고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 가위는 정원수에 깊이 꽂힌 채 파르르떨었고, 취한 주민들은 그걸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술에 취한 하수영은 계속 떠들어댔다.
"활주로가 딸린 대저택에 살았을 땐 80억 인구 중에 감히 내 이름을 모르는 놈들이 없었어! 근데 뭐? 총각? 내 이름이 뭔지 모르지?"
"초, 총각……."
"씨발! 내가 말이야, 죽은 애인 다시 만나자고 160년 동안이나 허수우주를 혼자 떠돌았다고! 아, 갑자기 프리덤 이 녀석이 보고 싶네."
박충원은 손목을 붙잡힌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잔뜩 취한 하수영은 어디서 나무방망이를 든 채 이리 저리 허공에 휘둘러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제대로 취한 모습이다.
"내 마누라가 전생에 내가 타고 다닌 용이라는 걸 알았을 땐 얼마나 웃겼는데. 아, 그때도 좋았는데. 반도체 만드는 거 꽤나 재밌었으니까. 뭐, 지금 삶도 나쁘진 않지."
갑자기 하수영은 킬킬거리며 크게 웃었다.
어느 순간 웃음이 뚝 멈췄다.
"저번, 저저번, 저저저번, 아무튼 최근은 아주 최악이었어. 이장, 알아?"
"내, 내가 어찌 아나……."
"밑바닥에, 시궁창에, 전쟁 영웅에, 살인자에, 사람이 사람처럼 살 수가 없어요. 겨우 딛고 서서 왕이 돼서 편하게 지내보려고 하니까 백성들이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요거 해줘 아주 그냥 징징징징…… 그렇게 한 이 천 년쯤 살아보면 사람이 정신이 피폐해진다고, 피폐! 자, 따라 해! 피폐!"
"피, 피폐!"
"목소리가 작다! 피! 폐!"
"피, 피! 폐!"
"어이구, 도시 총각! 이제 그만혀. 자네 술 못하는 거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혀!"
"이장님을 놔줘!"
"이것들이! 죄다 뒤질래! 여긴 내 집이야! 내 집에선 내가 왕이라고!"
흥겨워야 할 잔치는 한순간에 엉망이 되었다.
주민들은 어떻게든 하수영을 제압하려 했지만, 젊은 데다가 잔뜩 취한 그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잔치는 엉망이 되고, 상과 집기, 그릇은 성한 것이 없이 깨져나갔으며, 말리다가 술을 뒤집어쓰고 옷을 버린 이들도 상당히 나왔다.
술주정은 네 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탈진하다시피 한 주민들은 학을 떼며 귀가했다.
"멀쩡한 줄 알았는데, 술 들어가니 제대로 미친놈이네."
"아우, 앞으로 상종을 말아야지. 아주 그냥."
다음 날, 이장 박충원은 온몸이 욱신거리는 와중에 하수영의 방문을 받았다.
하수영은 입에서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죄송한 줄은 아는가? 내 한번은 너그러이 넘어가 줄 테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게."
"네, 명심하겠습니다. 제가 평소에는 잘 참고 사는데 술만 먹으면 본성이 나와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뭐,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