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24화
5장 순순히 버섯을 내놓으면 입금을 드리겠습니다(4)
시험 삼아 만든 가로세로 200미터 면적의 밭에는, 황금색의 물결이 가득히 일렁거리고 있었다.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온통 황금 빛깔의 향연이다.
그 하나하나가 전부 황금비단우산버섯이었다.
마치 황금이 쫙 깔린 듯한 절경에는, 농산물이라면 이골이 난 전성렬조차 말을 잊을 정도로 마음을 빼앗겼다.
하수영도 그 못지않게 놀랐다.
'아니, 하루 만에 이렇게 다 자라기 있어? 이건 너무 효율이 좋잖아.'
송이버섯도 다 자라는 데 보통 일주일이 걸린다. 그리고 포자를 뿌린 것은 바로 어제.
때문에 지금쯤은 어린 포자 기둥이 막 땅을 비집고 올라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성렬에게 그 정도만 보여줘도 충분하기에 데리고 온 것인데, 하루만에 이렇게 다 자랐을 줄이야.
"이거, 설마 자네 혼자 재배한 건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자라서 저도 놀랐네요."
얼마나 빨리 자란 건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까발릴 필요는 없으니까.
전성렬은 마음이 다급해져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채취하세."
"네? 우리 둘이서 이 많은 것을요?"
"내가 다 할 테니 그럼 자네는 거 들기나 해! 이대로 뒀다가 산짐승 먹이 되면 어쩌려고."
전성렬은 소쿠리를 챙겨 들고 부리 나케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따기 시작했다.
4만 제곱미터나 되는 면적이지만, 그냥 손을 뻗는 대로 따기만 하면 되니 채취 작업이 어렵지는 않았다.
"근데 이걸 정말 우리 둘이서 지금 다 따시게요?"
"이까짓 거 얼마나 무겁다고."
"사장님, 이거 개당 무게 40g으로 잡고 대충 1제곱미터당 200개씩 자랐다고 치면, 여기 면적이 가로세로 각각 200미터 해서 4만 제곱미터니까, 추정 버섯 개수가 800만 개에다가 추정 무게는 320톤인데요?"
"320톤을 우리 둘이서 지금 따시려는 건 아니죠?"
그제야 전성렬은 머쓱해져서 손을 놓았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빼곡하게 자라난 버섯밭에 정신이 홀린 나머지 무턱대고 '채취,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나까지 깜빡 전염됐잖아.'
하수영은 손을 털고 일어서며 말했다.
"그냥 사람 불러요."
* * *
사람을 잔뜩 써서 모든 버섯을 다 채취하고, 또 실어 나르는 데에 꼬박 사흘이 걸렸다.
버섯을 보관할 창고가 모자라서 대형 창고를 급히 임대해야 했지만, 전성렬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부풀었다.
"300톤이야,300톤."
"오늘 밤 꿈에 버섯 소녀가 나타나서 소녀 삼백 톤이라 하옵니다, 이러는 거 아닌지 몰라요."
"자네 눈대중이 정말 기가 막히구먼. 놀랍네, 놀라워."
그저 밭을 훑어보기만 하고, 20톤의 오차에서 총출하량을 맞췄다. 오랜 연륜이나 천재적인 센스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성렬은 하수영을 새삼 달리 보게 되었다.
"킬로그램당 10만 원이니까 총 300억 원어치라고! 우리 지금 300억 원을 번 거야!"
"에이, 그건 최종소비자가고, 보관및 물류비용에다가 소매업에서 가져갈 마진도 고려하면, 우리는 한 90억 원 정도에 내다 팔 수 있겠네요. 그걸 모르시는 분도 아니면서."
"아! 나도 기분 좀 내보자고!"
하수영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저 버섯들의 최종시장가격이 300억 원어치에 달한다는 건 사실이다.
갑자기 전성렬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저거, 생산원가는 얼마인가?"
"사람 쓰고 운반하고 보관하는 데 얼마 쓰셨죠?"
"1억은 훨씬 안 되네."
"저도 1억은 안 들었습니다."
"음……."
전성렬은 고심에 잠겼다.
하수영의 말대로라면 황금비단우산버섯의 가격을 정말 파격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소비자가가 킬로당 10만 원인데, 양송이버섯 수준으로 떨어뜨려도 많이 남는군. 킬로당 2만 원.
그보다 더 낮춰도 여전히 많이 남고."
"굳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낮출필요가 있을까요? 너무 파격적으로 가격 낮추면 심리적 저항 때문에 다음에 다시 올리기 쉽지 않을 텐데요."
"가격을 다양화해서 팔아보려고 생각 중이야."
"어떻게요? 서로 다른 국가 시장이라면 몰라도, 한 나라 시장에서는 그래도 얼추 비슷하게 팔아야 뒷말이 안 나올 텐데요."
"생으로 파는 것과 가공해서 파는 것은 가격을 다르게 해도 아무 상관없지."
"뭔가 생각하신 게 있나 보네요?"
"아직은 구상 중이야, 구상."
"그 구상이 뭔지 동업자로서 한번 들어봅시다."
"그, 그렇게까지 말하면 내가 입을 열 수밖에 없잖나."
동업자.
전성렬의 방어를 사정없이 무너뜨리는 절대 조커 단어.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신 없다는 듯이 말했다.
"듣고 웃으면 안 되네. 아직 막연한 구상일 뿐이니까."
"그럼요. 얼마든지 편안하게 말씀하세요. 원래 모든 초기 구상은 바보스럽게 마련입니다."
저런 말을 듣고도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보면, 하수영의 넉살이 어지간히 보통이 아니었다.
"사실 내가 먹거리 유통업자 생활을 수십 년 했지만…… 나름대로 큰 꿈이 있네. 막연하긴 하지만."
"본인만의 식품공장회사나 프랜차이즈 갓…… 아니, 프랜차이즈 요식업을 차리는 거요?"
"헉! 어떻게 알았나? 직원들한테도 말한 적 없는데?"
"원래 부품 제조사들의 최종 꿈이 완제품 회사로 진화하는 거 아닙니까. 이 바닥 테크트리 최종형이라고 해봐야 뻔하죠."
"……귀신이네, 진짜."
"아무튼 그래서요?"
전성렬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완제품 식품회사를 만들고 싶었어. 물론 내 주제에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포기했었지만. 너무 비웃지는 말게."
"괜찮습니다. 원래 꿈은 아주 크게 가지는 거랬어요."
"송이버섯이야 중간 마진도 쏠쏠하고 또 애초에 돈 많은 미식가들을 위한 식자재라 한계가 있지만…… 황금비단우산버섯은 다르게 활용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야."
"그게 아까 말씀하신 가격 다양화인가요? 그냥 생으로 파는 것과 가공해서 파는 것을 각각 가격을 달리 한다는?"
"그렇다네."
"혹시 생각해 둔 아이템은 있나요?? 안 그래도 황금비단우산버섯 재배하기 전부터 저도 생각해 둔 게 하나 있긴 했는데."
"오, 정말인가?"
전성렬은 반색을 했다가 이내 표정이 쳐졌다.
"자네가 생각해 둔 게 있으면 내가한 발 걸치기는 뭐하구만, 버섯 재배에 내가 공헌한 게 전혀 없으니."
"하지만 저를 위해 일해주실 순 있잖아요. 우리는 동업자 아닙니까."
전성렬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동업자라는 말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전성렬도 느끼고 있었다.
하수영은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지금 당장에라도 다른 동업자를 구하면 자신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고 만다.
그래서 예전에 꾸었던 막연한 꿈을 더욱 구체화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동업자에게 자신이 아직 유능하고, 변화의 여지가 풍부하며, 열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식품회사라…… 좋네요. 제가 구상했던 것과도 일치하고요."
"그런가?"
전성렬은 반색이 돼서 반문했다.
하수영은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천천히 두드렸다.
"그래도 아직은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인데 이것저것 한꺼번에 시작할 순 없고, 초반에 시장을 크게 놀라게 만들 수 있는 킬러 아이템이 필요해요."
"그거야 그렇지."
"첫 아이템으로 생각해 두신 건 있나요? 재배 단가 낮추기에 성공한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이용해서 시장을 놀라게 만들 만한 식품 아이템으로?"
전성렬은 직감적으로 지금 하수영이 자신을 시험하고 있을 느꼈다.
언짢은 대신 긴장이 섞인 희열이 밀려왔다.
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면, 자신은 여전히 하수영과 함께할 수 있을 테니까.
"라면일세."
하수영은 희미한 미소로 대답했다.
"서로 같은 생각을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