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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23화 (23/1,270)

프랜차이즈 갓 023화

5장 순순히 버섯을 내놓으면 입금을 드리겠습니다(3)

"아, 그런가요? 전 사실 고용주가 누군지도 몰라서요. 직원분만 봤습니다."

"쯧쯧, 아무리 하릴없는 일이라지만 한 달 내내 온종일 부려먹고 겨우 80만 원이라니. 내, 그 서울 할 매 인심 박한 건 진즉 알아봤지만,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여기 산주인이 돈이 많으신가 봐요."

"많지. 아들인가 사위인가 서울서 큰 회사 하나 경영한다고 들었는다. 연 매출이 조가 넘는대, 조가!"

"와, 굉장하네요. 근데 그게 그 할머니 돈은 아니잖아요."

"그 회사를 아들인지 사위인지가 혼자 일궜겠어? 다 그 할매가 물려준 거 경영하는 거지. 그 할매도 봐봐. 이런 쓸모없는 산 하나 사가지고 이런 으리으리한 대궐까지 지었잖아."

"그렇군요. 뭐, 저야 약속한 돈만 받으면 그만이니까요. 신경 안 써요."

"그랴, 자네가 안 억울하다면야 뭐. 근데 저택 문은 꼭꼭 잠가두나?"

"네, 그래야지요."

"여기 인심은 그렇지 않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노인은 헛기침을 한 뒤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이웃사촌이 뭐여? 사촌보다 더 끈끈한 게 바로 이웃이다라는 옛 성현들 정신이 담긴 말이여. 우리 마을은 울타리 문 같은 거 안 걸어 잠근다네. 서로 제집처럼 자유롭게 드나들지."

"그렇군요. 근데 이 집은 제 집이 아니라서 어쩔 수가 없네요."

"에이, 젊은 사람이 융통성 없기는."

"어차피 여기 아무도 안 살아서 문 열어둬도 수다 떨 사람도 없어요."

하수영이 어깨를 으쓱하자 노인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어르신, 제 입장도 봐주세요. 입에 풀칠하자고 80만 원짜리 박봉 받아가며 한 달 30일 넘게 일하는데, 제멋대로 이렇게 저렇게 할 순 없잖아요."

"그래도 사람 인심이라는 게 있지."

"제가 조만간 눈치 봐서 마당에서 잔치 한번 열겠습니다. 저도 일한 지 얼마 안 돼서 일단은 사려야 하지 않겠어요?"

그제야 노인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젊은 친구가 아주 싹수가 없진 않구먼."

"혹시 어르신 함자는 어떻게 되시나요?"

"박충원이여. 내가 바로 이 마을 이장이라네."

"앗, 이장님이셨군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그려, 그래도 인사성은 있구먼."

박충원은 흐뭇해져서 뒷짐을 진 채 돌아갔고, 하수영은 생기 가득한 미소를 띤 채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야, 그놈의 시골 인심이란 말, 참 간만에 들어보네."

시골 인심이니 이웃의 정이니 하면서 정문을 열어두라는 말 자체가 터무니없다.

"대체 여기 빈집에 뭐 볼일이 있다고 그러는 거지? 정원 그늘에서 돗자리 깔고 바둑이라도 두려고 그러나?"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다른 의미로 소름이 돋을 것 같다.

하수영은 산을 꼼꼼히 살폈다.

며칠 동안 산을 살핀 결과, 자신이 정말 좋은 매물을 골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산은 개발이 전혀 안 되어 있었다. 흔한 등산로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산을 타기에 경사나 지형이 험한 것도 아니었다.

몰래 세운 무덤도 아직까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버섯 키우기에는 딱이 네."

하수영은 마을이나 도로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버섯을 키우기에 적당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외부 지역에서 인부 10여 명을 고용해서 산으로 데려와 땅을 개간하는 작업을 했다.

"젊은 사장님, 이런 으슥한 산에서 대체 뭘 심으려고 몰래 이러는 거요? 양귀비라도 재배하시게?"

"양귀비 재배할 거면 뭐하러 사람을 써요. 몰래 일구지. 표고버섯 농장이나 만들어보려고 그럽니다."

"아, 그러시군."

하수영은 인부들과 순식간에 친해져서 별의별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으며 하루 만에 작업을 마쳤다.

양귀비 농담을 던졌던 책임자가 일당을 챙길 때 말했다.

"사장님은 생긴 건 얍실하니 안 그런데, 성격은 천상 몸 쓰는 쪽인 거 같소. 이 친구들이 꽤나 거친 편인데 잘 어울리는 거 보면."

"무슨 말씀을. 전 나중에 월세 받아가면서 몰디브 같은 곳에 요트 띄워놓고 유유자적하게 여생을 보낼 겁니다."

"어이구, 그러려면 월세를 못해도 10억 이상은 받아야 쓰겠는디요."

"그거 갖고 어림없죠. 제 꿈은 원대합니다."

"표고버섯 내다 팔아서 언제 그런 월세 받는 빌딩을 올릴 수 있으려나."

하루 만에 정이 든 인부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하수영은 구석에 숨겨 둔 커다란 궤짝으로 향했다.

그는 철판으로 된 임시 작업대 위에 궤짝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을 어놓았다.

병에 담긴 엘릭서, 그리고 몇 개의 황금비단우산버섯이었다.

버섯을 엘릭서에 완전히 담갔다가 꺼낸 그는 아주 잘게 찢은 조각으로 만들었다.

모든 버섯을 조각낸 그는 방금 개간한, 가로세로 200미터 면적의 밭에 뿌렸다.

"어서어서 무럭무럭 자라거라."

그날 하수영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산기슭에 있는 대저택에서 잠을 잤다.

전자동 외부 블라인더를 내리자, 안에서 환하게 불을 켜도 밖에서는 암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생활이 지켜진다는 점에서 흡족했다.

"보안은 참 잘되어 있네. 역시 돈이 좋다니까."

그날 하수영은 몰디브에서 크루즈를 띄워놓고 유람하는 꿈을 꿨다.

꿈에서 스마트폰은 미친 듯이 월세가 입금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이 울려댔고, 얼마가 들어왔는지 확인할 틈도 없었다.

다음 날.

하수영은 늦잠을 자던 중 전성렬의 전화 때문에 눈을 떴다.

-이런, 자고 있었나?

"아뇨, 어차피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하 사장이 저번에 황금비단우산버섯 재배한다고 했잖아. 그게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잘 풀린 거 같습니다. 바로 유통망 알아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아니, 벌써?

"사실은 이미 준비 다 해놓고 말씀드린 거죠."

-이런, 난 아직 제대로 생각해 둔 것도 없는데. 큰일이네.

"일단 버섯밭을 만들었는데, 한번 보러 오시겠어요? 이미 씨도 다 뿌렸어요. 아직 자라지는 않았지만."

-알았네, 지금 바로 가지.

주소 보내 드릴게요. 내비게이션찍고 오세요."

주소를 보낸 후 하수영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침식사는 인스턴트로 간단히 때운 후, 어제 쓰고 남은 엘릭서가 잘있는지 확인했다.

오늘도 청담동 매물 및 시세를 체크하며, 전성렬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아니, 이 빌딩은?"

청담동 매물을 확인하던 하수영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자신이 예전에 발품을 팔던 중 유독 마음에 들었던 그 빌딩이 등록돼있었던 것이다.

"유, 육백 억이라고?"

하수영은 문득 자신의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지금 한 72억 정도 있나?

여기에 산 잔금 7.1억을 치르고 나면 64.9억 남으려나?

"계약금은 겨우 걸 수 있겠네."

하수영은 못 먹는 감 찔러 본다는 심정으로,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걸어보았다. 정말 계약을 할 것은 아니고, 관심 있는 매물이니 이것저것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아, 그 매물요? 그거 이미 나갔어요.

"네? 아니, 근데 넥스트넷 부동산코너에 왜 버젓이 올라와 있어요?"

-매물 삭제 요청을 했는데 홈페이지 관리자가 아직 안 내린 모양이에요. 그나저나 그 매물하고 비슷한 다른 매물이 있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청담동이에요?"

-청담동은 아니고 용산구에 있는…….

"됐어요. 안 봐요."

하수영은 전화를 끊고 투덜거렸다.

"인터넷 부동산 허위매물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다고 하더니, 내가 여기에 낚였네. 바쁜 사람 왜 설레게 허위매물 올려놓고 낚시질이야, 진짜."

그때 전성렬로부터 연락이 왔다.

도착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수영은 얼른 저택을 나가서 전성렬을 맞이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그들은 산을 올랐다. 절반도 못 가서 전성렬은 숨을 몰아쉬었다.

"아, 아직 멀었나? 언제까지 올라 가려고?"

"이제 절반 왔습니다."

"왜 이렇게 깊은 곳에 버섯 농장을 만들었어?"

"도둑 방지용이죠. 산 아래 울타리를 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어요."

힘든 등산 끝에 둘은 버섯농장에 도착했고, 전성렬은 눈앞에 펼쳐진 절경에 입을 떡 벌리며 놀라워했다.

"세상에, 맙소사."

하수영도 그 못지않게 놀랐다.

"우와,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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