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22화
5장 순순히 버섯을 내놓으면 입금을 드리겠습니다(2)
-응? 무슨 소린가?
"가장 먼저 저를 생각해 주실 줄 알았다는 뜻입니다. 역시 거래에 있어서 정직과 신용, 공평함을 최고의미덕으로 여기는 분답습니다."
-그렇게 비행기를 태우니 쑥스럽구먼.
"24억은 너무 적은 거 같고, 30억챙기세요. 제 계좌에는 72억 넣어주시면 됩니다."
-신경 써줘서 고맙네. 그럼 내가 30억 챙기고 자네 계좌에 72억 넣어두지. 계약서 사본도 보내줌세.
"네,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은 하수영은 작게 중얼거렸다.
"전 사장님은 아니고, 그럼 서해식품이 양치기 소년인가?"
하지만 뭔가 미심쩍다.
서해식품이 바보도 아니고, 자신과 전성렬이 어떤 사이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이간질을 시도하지는 못할 텐데.
그들 입장에선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서해식품 수출부가 내 생각 이상으로 바보인가? 아니면 성렬유통에 빨대라도 꽂아뒀나? 이게 가장 그럴 듯하긴 한데."
하수영은 나중에 전성렬에게 귀띔을 해줘야겠다는 선에서 생각을 마무리했다.
"전 사장님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봐둘 필요도 있으니까."
나중에 사업이 커지면 더 큰일도 맡겨야 하는데, 이 정도 걸림돌쯤은 프로페셔널하게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하루아침에 72억이 생겼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만약 4.8톤이나 되는 송이를 한 번에 풀었다면, 절대로 그만한 가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 경매라는 게 물량이 많으면 가격이 그만큼 떨어지는 법이니까.
예정대로 진행했다면 자기 몫으로 한 달에 3억 정도씩 떨어졌을 것이다. 물론 평균값이다.
송이버섯에 미친 일본 부동산 재벌이 관심을 보인 덕에, 72억 원이나 되는 거액을 단숨에 쥘 수 있었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 * *
마케미야는 송이버섯이 자신의 고질병인 요도통을 낫게 해주었다고 굳게 확신했다.
근거 없는 맹신은 아니었다.
성렬유통과 송이버섯 구매 계약을 체결한 후, 그는 백두호텔에서 과학적인 검증을 시도했다.
검증이라고 해봐야 별거 아니다.
물을 제외하고, 삼시 세끼를 모두 백두호텔 송이버섯 요리만 먹은 것이다.
사흘 정도 송이버섯을 끊자 거짓말처럼 요도통이 다시 돌아왔다.
송이버섯을 먹자마자 곧바로 요도 통이 사라졌다.
몇 번을 반복한 끝에 마케미야는 송이버섯의 효능에 관해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효능 검증이 실패로 돌아가도, 구매 계약을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02억 원이라고 해봐야 그에게는 그리 큰돈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원래 송이를 무척 좋아했으니.
자신이 먹을 몫 외에는 지인들에게 선물하거나, 자신 소유의 식당이나 호텔에 공급하거나, 혹은 일본에서 비싸게 되팔면 그만이다.
"그래도 효능이 확인돼서 다행이야."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 요도통이, 송이를 먹으면 며칠 동안 괜찮다니.
"다른 송이는 안 돼. 이 송이만 먹히는 게 틀림없어."
만약 송이버섯 그 자체에 효능이 있는 것이라면, 이미 진작 나았을 것이다.
마케미야의 관심은 자연히 이 특별한 송이에 미쳤다.
"신기한 송이군. 제철이 아닌데도 자라나는 것도 특이하고."
특상품이라고 하지만, 특상품 중에서도 우열의 차이는 있다.
이 송이는 마케미야가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특상품보다 우월한 향과 생김새, 그리고 식감을 자랑했다.
특상품 중의 특상품이라고 해야 할까.
일본의 미식가들이 이 송이버섯 맛을 보게 된다면 미친 듯이 환장하고 달려들 것이다.
"만약 요도통 말고 다른 질환에도 효능이 있다면…… 에이, 그럴 리는 없겠지. 만약 그런 거라면 진작 호텔 손님들 사이에서 말이 나왔겠지."
1년치를 한꺼번에 구매한다는 계약을 맺었으니, 마케미야가 성렬유통을 만날 일은 당분간 없다.
하지만 마케미야는 불현듯 이 송이를 채취한다는 1차 생산자가 누군지 보고 싶었다.
대체 어떤 산에서 자라나는 송이버섯이기에, 이런 신비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아들아, 지금 뭐하니?
"넥스트넷 포털사이트 부동산 코너보고 있어요. 청담동에 괜찮은 매물이 나왔나 체크하려고요."
-하루도 빼먹지 않는구나. 엘릭서 복용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 그렇죠? 엘릭서 복용이든 부동산 체크는 사업이든 뭐든 부지런 해야 하는 법이잖아요, 아하하."
'아, 깜짝이야! 이렇게 깜빡이도 안켜고 휙 들어오는 게 어딨어?'
-자, 어서 오늘의 수업을 시작하자꾸나.
'으으, 이건 지루해서 싫은데.'
하지만 자신이 이미 먼저 말을 해놓은 게 있는지라, 하수영은 잠자코 아버지의 이론 수업을 따랐다.
착실히 말을 들어야 하루라도 빨리 엘릭서 다음 과정을 열어주실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제1차 우주전쟁은 상처와 박애, 증오와 사랑을 남긴 가운데 마무리되었고, 폐허가 된 전 우주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신들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주신연합 창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주신에게 건의하게 되었으며…
지루한 이론 수업을 무사히 마친 하수영은 빈 병 가득 엘릭서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설치된 금고를 열자 엘릭서가 가득 든 물병들이 줄을 지어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당분간 엘릭서가 부족해서 버섯재배량에 한계가 걸리는 일은 없겠군."
마음만 먹으면 한 달에 송이버섯을 50톤도 찍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좁은 마당에서는 애초에 불가능하지만,
"한동안 송이는 지금 정도만 생산하는 게 좋겠어. 어차피 곧 송이철도 돌아올 테고, 밭을 만들어서 대량 재배를 하려면 도난방지 시설도 확실하게 갖추고 해야 하니까."
송이는 눈이 튀어나오게 비싼 만큼 비닐하우스 같은 곳에서 대충 재배했다가는 도둑들 등쌀에 시달릴 게 뻔했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이나 빨리 키워야겠다."
* * *
하수영은 계약을 마친, 머지않아 자신 소유가 될 산을 찾았다.
산기슭 아래 있는, 전 주인이 지었다는 별장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으리으리했다.
넓은 정원을 갖춘 3층 대저택은 도심 한가운데 있는 기업가의 집을 그대로 따온 것만 같았다.
비상발전장치도 갖추고 있었고, 저택 상부에는 통신 기지국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야, 이 정도면 인터넷은 빵빵하게 터지겠네."
전자파를 좀 많이 쓰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여기서 먹고 자고 할 것도 아닌데.
하수영은 저택 내부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이 산을 정말 싼 가격에 얻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정도 집이면 건축비만 억대로 들었겠는데?"
규모도 규모거니와, 최신 고급 주택에 적용되는 첨단편의시설은 있는 대로 다 때려 박은 집이었다.
"그 할머니…… 진짜 말년을 이곳에서 마무리하려고 하셨던 거구나."
그런데 이웃 등쌀과 텃세에 밀려서 땅을 헐값에 내놓고 나가야 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집을 꼼꼼히 살핀 뒤 하수영은 정문을 나섰다.
그런데 문을 잠그자마자 누가 뒤에서 불렀다.
"자네, 혹시 그 서울 할매 손자인가?"
뒤를 돌아보자 순박한 이미지를 가진 노인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본래 흰색이었을 상의는 뿌옇게 변색된 채 낡아 헤져 있었으며, 녹색 몸빼바지 하단에는 말라붙은 흙이 묻어 있었다.
하수영은 한껏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임시로 관리를 맡게 된 사람입니다."
"아하, 관리인?"
"네, 뭐 그냥 집이랑 산이랑 하루에 한 번씩 들러서 이상 없는지 봐달라는 일을 맡았어요. 백수로 집에서 뒹굴거리느니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요."
"그랴, 젊은이가 열심히 사는구먼.
월급은 얼마나 받고?"
"그리 많이 못 받아요. 80만 원 받습니다."
"아이고, 서울 인심 참 박하기도 하지. 그 서울 할매, 돈도 많다고 들었는데 너무한 거 아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