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20화
4장 수출도 갑질이 되나요? (5)
-왜 내게 등을 돌리는 것이냐?
칼이 꽂힌 배에서 선혈이 짙게 흐른다.
금방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이지만, 남자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묻기까지 했다.
그 담대한 모습에, 오히려 그를 둘러싼 기사들이 새하얗게 질려서 주춤주춤 물러나기까지 했다.
-다, 단장! 당신이 저지른 짓은 반역이오! 순순히 투항하시오!
-폐하께서도 약속하셨습니다! 단장이 항복하면 최대한의 선처를 보이겠다고요! 그러니 단장, 부디 항복하십시오!
-폐하? 왕관을 쓸 자격 없는 그자 말이냐?
단장은 키득거리며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칼끝에 맺힌 붉은 기운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보이지 않는 힘이 기사들의 숨통을 옭아매었다.
-그 몸에 직접 새겨라. 이것이 바로 배반의 대가다.
눈을 뜬 하수영은 하품을 하며 머리를 북북 긁었다.
"음… 오늘 뭐 좋은 일이 있으려나? 오랜만에 이런 꿈을 다 꾸네."
아침 식사를 마친 하수영은 전성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서해식품에 한동안 수출 대행을 맡기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송이 시즌 돌아오기 전에 재미볼 건 다 봐야 하니까. 그전까지는 일단 그 조건에 진행하는 게 나을 거 같아.
"어쩔 수 없죠. 중요한 건 시간이니까요."
-이해해 주니 고맙네.
"울컥해서 맨땅에 헤딩하느라 본전도 못 찾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로 내다 팔면 서해식품에 15% 떼어준다 치고, 자네가 최대 4억 2,500만까지는 가져갈 수 있을 거야.
"킬로당 200만 원이면 너무 기대가 큰 거 아닙니까?"
-서해식품에서 그러는데, 지금 일본 업체들이 벌써 소문 듣고 줄을 서 있대. 일본 미식가들이 특상품송이라면 원래 정신을 못 차리잖나.
"그나저나 서해라는 이름은 안 끼는 데가 없군요. 서해호텔, 서해식품."
-우리나라 재계 1위 그룹이잖아.
어쩔 수 없지.
"일등재벌이라는 놈들이 무슨 버섯수출까지 대행해 줘요? 좀 웃기네요."
-골목길 떡볶이 장사도 탐내는 판인데 송이버섯이 뭐 대수인가. 그리고 같은 서해 이름 쓰고 있어도 서해호텔하고는 거의 남남이야.
"서해식품은 주로 뭐 하는 애들인데요? 이름만 보면 라면이나 만들어서 팔 거 같이 생겼는데."
-어, 어떻게 알았나? 걔네 라면도 파는데. 라면 시장 점유율 1위가 바로 그 친구들이라고.
"그래요? 근데 왜 제가 여태 몰랐죠? 저도 라면 엄청 좋아하는데."
-윤라면 알지?
"그럼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라면 인데요. 어? 근데 그 라면 회사는 서해식품이 아닌데?"
-윤라면 만드는 '태양심'이 서해식품 자회사야.
"잠깐만요. 태양심이 파는 게……."
-먹거리라면 온갖 걸 다 팔지. 서해식품은 먹는 거에 관한 것은 모두 손을 대고 있다고 보면 되네. 생산, 가공, 판매, 유통까지 전부.
"그런 대기업이니까 초장부터 대행수수료 30%를 부른 거군요. 하여튼 대기업의 갑질이란. 아무튼 수고하셨어요. 15%로 낮춘 것만 해도 용하네요."
-어차피 길게 할 생각은 없어.
"전 사장님께서 알아서 잘하시겠지요. 잘 부탁합니다. 저는 당분간 황금비단우산버섯 재배에 집중해야 돼서요."
-정말 재배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건가?」
"그럼요."
-알았어. 그럼 황금비단우산버섯도 어떻게 유통할지 내가 미리 생각해 두고 있겠네.
전화를 마친 하수영은 엘릭서를 꺼냈다.
젓가락 끝에 한 방울을 묻힌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입에 털어 넣었다.
곧 불덩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듯한 열기가 번졌고, 온몸에서 뜨거운 통증이 퍼져 나갔다.
"으아아아악!"
그리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기절해 있었을까.
시간을 보니 벌써 3시간이 훌쩍지난 뒤였다.
하수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아우, 신룡 불꽃 숨결 맞아서 일주일 내내 불탔을 때도 이것보다는 덜 아팠던 거 같네. 무슨 온몸의 세포가 나노 단위로 분해됐다가 재결합하는 느낌이야."
뒤뜰로 나온 그는 은하신목을 찾았다.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은하신목이 나뭇가지를 세차게 흔들며 반갑게 맞이했다.
-오, 아들아. 오늘따라 비명 소리가 아주 우렁차더구나.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간만에 제대로 뒤통수 맞았네요. 오늘은 진짜 아팠어요."
-그게 다 휴먼의 리미트를 캔슬하고 갓바디를 얻기 위한 프로세스이니라. 자, 오늘의 수업을 시작하자꾸나. 그래서 고대 주신, 아니, 프랜차이즈 갓의 위용을 전 은하에 널리 떨치기 위한 제1차 우주 전쟁이 시작되었고…….
하수영은 오늘도 졸았다.
다음 날.
하수영은 서해식품 이원재 차장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늘 일정은 전성렬에게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
이원재가 전성렬이 아닌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지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반갑습니다. 서해식품 이원재 차장입니다."
"하수영입니다."
이원재는 하수영을 보고 깍듯하게 인사하며 명함을 건넸다.
마치 바이어를 맞이하러 나온 을업체 직원처럼 공손했다.
"생각보다 젊으시군요."
"일단 올해 스무 살 됐습니다."
하수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고, 이원재는 '일단'이라는 덧붙임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백두호텔에도 납품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채취만 해요. 납품은 성렬유통에서 합니다. 그래서 잘 몰라요.
아무래도 저는 1차 생산자이다 보니."
"지금 송이철도 아닌데 특상품 송이를 한 달에 몇백 kg 이상 조달하신다고요.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엄청 놀랐습니다. 송이는 양식이 불가능할 텐데요."
"봄여름에도 송이가 자라는 산을 갖고 있거든요. 저도 원리는 잘 모릅니다. 따기만 할 뿐이죠."
이원재의 눈빛이 순간 빛났고, 하수영은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에구, 하여튼 영업하는 것들은 머릿속에 의심만 가득 들어서 말이야.'
하수영은 슬슬 본론을 꺼냈다.
"송이 일본 수출에 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아, 네. 그렇습니다."
이원재는 자세를 가다듬고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성렬유통과 얼마나 각별한 인연이 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해외 수출을 하는데 굳이 유통 중간단계를 늘릴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차 생산자인 하수영 사장님께 큰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런가요."
"일본 수출 건에 한해서만, 저희와 다이렉트로 거래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성렬유통이 어떤 가격에 가져가는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다이렉트거래가 사장님께 이익이 될 겁니다."
"중간 단계가 하나 빠지면 아무래도 그렇겠죠."
"만약 저희와 직접 거래하신다면 원래 약속한 12%에서 2%를 사장님께 따로 더 배분해드리겠습니다. 저희는 10%만 먹는 거죠."
"네? 뭐라고요?"
하수영은 잠시 멈칫했고, 이원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걸려라, 걸려.'
'12%? 전 사장님은 15%라고 했는데?'
'물어라, 물어.'
"그러니까 서해식품이 원래 경매낙찰가의 12%를 먹기로 했는데 제가 다이렉트로 거래를 트면 10%만 먹겠다, 이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하수영의 표정이 살짝 굳었고, 이 원재는 보이지 않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전성렬에 대한 불신의 씨앗.
하수영의 가슴에 그것을 심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누구야? 지금 어느 쪽이 나한테 수작질을 부리는 거야?'
하수영은 무턱대고 넘어가지 않았다.
양쪽이 서로 하는 말이 다르다.
그렇다는 것은 한쪽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고, 진위는 아직 판별할 수 없다.
'전 사장? 아니면 서해식품이? 혹시 이놈이 로? 아니면 그냥 서해식품 상부 측 장난질이고 이 친구는 그냥 메신저?'
지금으로써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만 확실할 뿐.
하수영은 한 번 더 확인했다.
"저한테 2%를 추가로 얹어주고, 서해식품은 낙찰가의 10%만 먹겠다는 게 확실한 거죠? 상부에서도 결재가 난 겁니까?"
"물론입니다. 사장님만 결심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죠.
아무래도 성렬유통과는 몇 달 동안 함께 거래를 해온 만큼 각별한 정이 있어서요."
몇 달, 각별한 정.
그 상반된 단어의 조합에 이원재는 일이 뜻대로 풀린다 여기고,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 * *
하수영과 이원재 차장이 만나고 있는 줄 꿈에도 모르는 전성렬은 그 시각, 난데없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네? 저희가 일본에 팔 송이버섯을 전부 사고 싶다고요?"
-네, 저희 마케미야투자에서 전부 사겠습니다.
전성렬은 황당했다.
투자회사가 왜 송이버섯을 산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