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19화
4장 수출도 갑질이 되나요? (4)
서해식품 이원재와 헤어진 박기수는 곧바로 전성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일단 이야기는 잘 됐습니다. 사장님이 만족하실진 모르겠지 만요."
-어떻게 됐어?
"자기들이 15% 갖는 대신 유통에 필요한 모든 제반 사항을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창고 문만 열어주면 반출부터 운송, 판매, 입금까지 모든 걸 알아서 처리하겠답니다."
30%에서 15%로 떨어졌다.
하지만 전성렬은 유통대행을 맡길 뿐인데 마진을 나눠 가진다는 제안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 맨땅에 헤딩을 해버려?'
욱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낭비되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사장님, 곧 송이 채취 시즌 돌아옵니다."
그렇지.
"몇 달만 대행 맡긴다고 생각하세요. 장기계약 하지 말고 물량 단위로 거래하면 되잖습니까. 지금이야 낙찰가 150만에서 200만 원까지 기대할 수 있지, 송이철 열리면 재미많이 못 봐요. 서해식품도 그거 알고 지금 배짱부리는 거구요."
-그렇지. 지금 볼 수 있는 재미를 날릴 순 없지.
"이것도 제가 배 째라 카드 내미니까 친구가 어렵게 상사 설득해서 얻어낸 거예요. 아까운 시간 흘릴 순없잖아요."
-그렇게 해야겠어. 기수야, 고생했다.
"하 사장한테는 제가 말할까요?"
-아니야, 이런 건 내가 직접 말해야지.
박기수는 조금 아쉬웠다. 하수영에게 직접 말할 수 있으면 효과가 배가 될 텐데.
전화를 끊으며, 박기수는 회심의미소를 지었다.
'판은 다 깔았다.'
전성렬 사장은 당분간 서해식품에 15%를 떼어주는 조건으로 당장 일본 수출을 진행하자고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서해식품이 하수영에게 다른 제안을 한다면?
하수영의 마음에 자그마한 불신을 심을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돈 싫다는 놈 못 봤지. 하수영 그 친구도 애초에 돈 벌려고 이 짓 하는 거잖아.'
박기수는 휘파람을 불며 승용차에 올랐다.
"서해식품이요?"
전성렬이 서해식품을 통해서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아직 협상 중이라고 했었나.
'근데 왜 나한테 연락을 했지? 설마…….'
의구심을 품은 채 하수영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야기를 나누는 게 문제 될 건 없지요."
-그럼 내일 점심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장소는…….
이원재 차장은 자세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는, 내일 보자고 하고 통화를 끊었다.
"서해식품이 왜 날 직접 찾지? 전 사장님하고 이야기가 잘 안 풀리나?"
하수영은 잠시 의아해하다가 곧바로 외출 준비를 갖췄다.
집을 나서기 전에 은하신목을 들러서 인사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버지, 불초 소자는 오늘도 인간 세상을 둘러보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잠복야행을 하러 나갑니다. 프랜차이즈 갓이 되기 위한 정신 수양을 언제나 잊지 않고 있습니다."
-빈병이나 내놓거라.
"옛, 아버지."
하수영은 빈 통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머리를 숙인 채 한껏 공손히 내밀었다.
나뭇가지 하나가 뻗어 와서 빈 통에 엘릭서를 가득 담았다.
-하루빨리 인간 신체의 한계를 벗어나야 좋은 교육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잊지 말아라, 아들아.
"예, 아버지."
하수영은 엘릭서가 든 통을 집 안거실 바닥에 숨겨진 금고에 잘 보관한 뒤, 집을 나섰다.
"그래도 가끔 한 방울씩 먹긴 먹어야겠지? 너무 오래 안 먹으면 아버지가 눈치챌 수도 있으니…… 어휴, 이번 생은 진짜 좀 편안히 늘어지게 살고 싶었는데. 저번 생은 너무 끔찍했다고."
* * *
하수영은 약속한 시내 카페에 도착했다.
산주와 중개사는 이미 먼저 도착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사장님. 어서 오세요."
중개사가 반갑게 인사를 했고, 자리에 앉으며 하수영은 산주를 힐끔 살폈다.
'꽤 고령이네.'
70대? 80대?
산주는 상당한 고령자로 보였으나 건강관리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정정한 할머니였다.
"회장님, 이분이 산을 사신다는 그 분입니다."
"반가워요."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수영은 짧은 순간 그녀가 걸친 옷들을 스캔했다.
'다 합치면 몇천은 하겠는데?'
"우리 산에서 작물을 키우고 싶으시다고요?"
"네, 그래서 산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 큰돈까지 써가면서 산에서 키울 만한 작물이 있나요? 내가 농사는 잘 모르지만 산에서 뭘 키운다는 건지 감이 잘 안 와요. 과수원을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텐데요."
"버섯을 크게 키울 겁니다."
"아."
산주는 그제야 납득했고, 중개사가 얼른 계약을 진행했다.
"고마워요. 말년에 산을 부대끼며 살려고 산까지 사들여서 귀농했다가 호되게 데여서 어찌해야 하나 고민중이었는데, 덕분에 깔끔하게 해결됐어요."
"호되게 데였다고요?"
"……? 못 들었어요? 그게……."
"회장님, 그건 제가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혹시 소유권이나 산의 토지 용도에 관해서 저한테 숨긴 비밀이 있어요?"
하수영이 냉랭하게 쳐다보자 중개사는 얼굴이 발개졌고, 산주 할머니도 당황해서 둘을 쳐다봤다.
보아하니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사장님, 매수인한테 아무 설명도안 했어요? 제가 그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을 텐데."
중개사를 보는 할머니의 눈초리도 곱지만은 않았다.
하수영은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말 안 한 법적인 하자가 있나요?"
"그건 아니에요. 매수인한테 제가 귀농을 결심한 이유를 꼭 말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뭐죠?"
"거기 사는 이웃들이 좀 많이 막무가내예요."
"혹시 근처에 강력범 전과자라도 살고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요즘 귀농 주민을 상대로 토착민들이 텃세를 많이 부린다는 거 들었어요? 난 설마 내가 그걸 당할 줄 몰랐죠."
"아, 겨우 그런 거예요?"
그제야 하수영의 표정에서 냉랭하게 싹 지워졌다.
하긴, 이미 등기부부터 토지대장이며 기타 법률관계를 꼼꼼히 체크했는데 이제 와서 하자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내가 너무 예민했나?'
"겨우라니요. 그렇게 말할 게 아니에요. 혹시 내키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그런 거야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근데 산주분이 신신당부한 걸 마지막까지 숨긴 건 좀 괘씸하네요. 그 대신 중개수수료를 깎아야겠어요."
"그, 그건……."
"박 사장님."
산주 할머니가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중개사는 쩔쩔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깎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 안 드려서 죄송합니다."
잠시 잡음이 있었으나, 거래는 무탈하게 끝났다.
"별장은 비우고말고 할 것도 없이 깨끗해요. 오늘부터 바로 입주해도 됩니다."
"어지간히 시달리셨나 보네요."
"정말 괜찮겠어요?"
산주 할머니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자,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텃세 같은 것은 지겹게 겪어봐서요. 오히려 옛날 생각도 나고 좋네요. 기대도 되고요."
"……?"
산주 할머니는 잠시 의아해했으나 곧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일어났다.
"젊은 사장님이 밝고 듬직해서 좋네. 손주 사위 삼고 싶을 정도야. 혹시 나중에 인연이 돼서 만나게 되면 서로 반갑게 인사나 해요."
"꼭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잔금일 날 또 보실 거잖아요."
"마지막 맞아요. 그때는 대리인 보낼 거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저도 마지막 인사드려야겠네요."
"사업 번창하길 바랄게요."
계약을 마친 하수영은 카페를 나섰다.
"일단 황금비단우산버섯을 키울 만한 산은 생겼고, 이참에 아예 송이까지…… 아니야, 아니야. 송이는 도둑들이 노릴 수 있으니까 울타리 치기 전까지는 집에서 키워야겠다."
송이버섯으로 미식가 시장에 도전 장을 던졌다면, 이제 황금비단우산버섯으로 서민 식탁을 차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