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15화
3장 필요한 인맥일까? (8)
'이 친구, 설마 이제부터 송이를 자기가 직접 유통하려고?'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양식이 불가능한 송이를 제철이 아닌 시즌에도 비냉동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니까.
틀림없이 철과 상관없이 송이가 자라는 소나무 산을 따로 갖고 있을 것이다.
전성렬로서는 당연히 품을 수밖에 없는 의심이었다.
만약 송이 공급이 끊기면 그것을 믿고 추진한 특급호텔 납품 계약이 모두 무산되고 마니까.
수출 경매를 맡기는 건 좋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자신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일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거나 손해가 발생할 경우, 그것을 빌미삼아 거래를 끊으려는 것은 아닌가?
"음… 하 사장, 내가 사실 국내농산물 유통은 빠삭하다고 자부하지만, 수출은 나하고는 거리가 멀어. 아니, 인연이 없네. 내가 제대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야."
"그래도 하셔야지요. 언제까지 이 좋은 걸 내수 시장에만 풀 순 없잖습니까. 일본에 내다 팔면 몇 배는 더 이익을 남길 수 있을 텐데요."
"정말 순수하게 이익 때문에 그러는 건가?"
"이익 때문이지요, 그럼 다른 뭔가 있겠어요?"
하수영은 똑바로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와서 사장님이 가져가는 마진이 탐이 나서 이러는 거 아닌가, 혹시 그런 오해를 하시나요?"
"그,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수출 초반에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경험치 쌓는다 생각할게요. 사장님이 '버섯유통 전문가'가 되셔야 저도 마음 편하게 다른 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다른 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전성렬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송이 채취업을 접고 다른 일을 하려고? 아니, 그럼 그 마법 같은 송이 산은 어떻게 하려고?
"아, 제가 요즘 다른 일을 좀 구상중이거든요. 그래서 차후에는 송이 유통은 사장님께 전적으로 맡기게 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미리미리 일본 수출 경험 좀 쌓아두라고 하는 겁니다."
"전적으로 맡긴다고?"
자신이 품었던 염려와는 전혀 다른 대답에 전성렬은 더욱 헷갈렸다. 이 친구,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송이만 천년만년 팔아서 청담동건물주가 되기는 글렀어요."
"그게 무슨 말인가? 청담동 건물주라니?"
"이번 생에서 이루기로 결심한 제 꿈입니다. 근데 계산을 해보니 이대로는 다 늙어서 죽기 전이나 이루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거 같아요."
"다른 방법?"
전성렬은 갈팡질팡했다. 오늘따라 하수영이 영 다른 사람 같았다.
"아무튼 송이 유통은 최종적으로는 사장님이 맡아서 해주셔야 할 겁니다. 사장님 쪽 인맥을 미리미리 키워놔야지 제가 나중에 편하게 돈 받을 수 있잖아요."
전성렬은 헷갈렸다. 이거 좋은 이야기 맞지?
"그런 의미에서 일본 수출 경매 진지하게 추진해 주세요. 잘 부탁합니다."
하수영이 웃음을 띠고 말했고, 전 성렬은 자신이 정말 그에게 필요한 인맥인가 싶어 혼란스러웠다.
"아까 다른 일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 거 같은데."
"네, 맞습니다. 아직은 그냥 구상수준이지만요."
"아예 전혀 다른 업종인가?"
"일단은 아닙니다. 뭐, 언젠가는 전혀 다른 업종 일도 여럿 해야겠지요. 살아보니까 역시 덩치 키우기에는 문어발 확장만큼 좋은 게 없더라고요. 물론 아직은 종잣돈이 없어서 그냥 구상 정도만 하고 있어요."
전성렬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살아보기는 뭘 살아봐? 이제 겨우 스무살이라고 했으면서.
"그럼 당장 구상하고 있는 일은 뭔가?"
"다른 버섯도 한번 키워 보려고요."
"송이보다 더 이익이 남을 거 같은가?"
"버섯 개당 이익은 송이가 더 많이 남겠죠. 하지만 송이는 규모의 경제가 힘들어요. 워낙 고급 식자재라서 돈 많은 사람들이나 소비하죠."
"그거야 그렇지."
"돈 많이 벌려면 결국 땀 묻은 돈긁어모아야 합니다. 백날 상류층만 상대해서는 안 돼요. 상류층도 상대하고 서민들도 상대하고 그래야 진짜 제대로 돈 벌죠."
하수영의 말에 전성렬은 저도 모르게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버섯을 키울 생각인데?"
"황금비단우산버섯이요."
"황금비단우산버섯……?"
전성렬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지만, 국내에서 그다지 인기 있는 품종은 아니다.
송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뿌리가 더 길고 갓이 날렵하게 긴 버섯이다.
말렸다가 물에 불려 쓰면 식감이 훨씬 쫄깃해지는(송이버섯 이상으로) 장점이 있지만, 그래서 국물 요리에 주로 쓰이지만, 문제는 가격이 애매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새송이버섯, 표고버섯, 양송이버섯, 느타리버섯 등 대중적인 버섯들은 가격이 저렴해서 부담 없이 쓸 수 있다.
송이버섯은 아주 값비싼 품종이지만 대신 돈 많은 부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날개 돋친 듯이 팔린다.
"그거 키워서 남는 게 있겠나? 생산 단가가 안 맞을 텐데, 괜찮겠어?"
반면 황금비단우산버섯은 버섯 자체에 대한 선호도와 단가가 무척 애매하다.
예를 들어 양송이버섯 1kg은 평균소비자가격이 2만 원이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은 버섯 자체에 대한 선호도는 양송이버섯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 소비자 가격이 1kg에 10만 원이 가볍게 넘는다.
그렇다고 송이버섯처럼 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진미 재료취급을 받는 것도 아니다.
어정쩡하게 높은 선호도에, 일반인들이 지갑을 선뜻 열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
"뭐, 그 버섯이 생산 단가가 문제이긴 합니다. 재배하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까, 선호도에 비해서 잘 안 팔리죠."
"차라리 재배가 아예 불가능했다면 오히려 가격이 비싸도 잘 팔렸을 거야."
"아니면 저렴하게 재배하는 방법을 찾던가요."
"그렇…… 응? 자네, 설마?"
"아아, 말씀드렸잖아요. 아직은 구상 중입니다, 구상 중."
전성렬은 빠르게 계산을 해보았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은 분명히 잠재력이 넘치는 품종이다.
특히 송이버섯과는 달리 가정집 식탁이나 식당, 일반 식품 식자재 등 싹쓸이할 곳이 무궁무진하다.
딱 하나, 재배 단가를 낮출 수만 있다면.
만약 황금비단우산버섯을 합리적인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을 수만 있다면, 국내 일반 버섯 시장의 점유율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황금비단우산버섯은 고급 식당에서도 즐겨 쓰이는 재료다. 송이버섯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 덕분에 오히려 부담 없이 쓰인다.
황금비단우산버섯 유통을 통해 벌어들일 수익을 생각하니, 전성렬은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이 친구, 진짜로?'
제철이 아닌 자연산 송이버섯도 한 달에 500kg씩 혼자 공급하는 청년이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의 재배 단가를 낮추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구상 중이에요, 구상."
'은하신목, 아니, 아버지를 어떻게 구슬리지? 청담동 건물주 아들이 갖고 싶지 않느냐고 해볼까? 고대 주신이니까 역시 이런 건 안 먹힐 테고, 흠…'
* * *
백두호텔 한식 레스토랑.
편안한 세미 캐주얼 차림을 한 중년 남자가 혼자 들어서자 홀 매니저가 웃는 얼굴로 나섰다.
"어서 오십시오. 혹시 예약하셨나요?"
"정성진이란 이름으로 예약했어요."
"아, 정성진 님이시군요. 예약 확인 되셨습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정성진은 마케미야의 한국 이름이었다.
마케미야는 가볍게 끄덕이고는 홀매니저를 따라갔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종업원들이 웃는 얼굴로 눈인사를 보낸다.
자신이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부동산 재벌이며, 서해호텔 최고 VIP라는 것을 알아보는 이는 없는 것 같았다.
그로서도 이쪽이 편했다.
메뉴판을 잠시 들여다보던 마케미야는 홀 매니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여기 레스토랑에 특등품 송이버섯이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 물론입니다."
"혹시 모든 요리에 송이가 들어간 주방장 추천 코스 같은 건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