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14화
3장 필요한 인맥일까? (7)
통화를 마친 김효산은 넋이 나간 채 스마트폰을 멍하니 쥐고 있었다.
전성렬은 노련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서운한 티를 내거나 이겼다는 의기양양함도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상황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됐다. 그 점을 은근히 강조했을 뿐이다.
-백두호텔에서 좋은 기회가 와서 우리로서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했어요.
-사실 우리가 서해호텔하고 정식 납품계약을 맺은 건 아니라서 여러모로 갈팡질팡했습니다. 거듭 간청을 했는데 자재구매부에서 쉬이 라인을 바꾸지 못하더라고요. 물론 이해합니다.
-송이 납품이요? 백두호텔 넣을 물량도 지금 부족한 상황입니다, 허허.
자신이 뒤통수를 친 게 아니다.
그냥 상황 자체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을 뿐이다.
전성렬은 그 점을 분명히 어필했고, 김효산도 그에 대한 반박을 할 순 없었다.
그저 인정에 내세워서 호소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매우 중요한 예약 손님이 있습니다. 단 20kg이라도 납품해 주실 수 없습니까? 우리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정말로 중요한 오랜 단골입니다.
-장담은 못 하지만 힘은 써보겠습니다.
김효산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망할…… 자재구매팀장이 전부 다 망쳐놨어."
자책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재구매팀장을 설득해야 했을까? 아니면 총지배인에게 이 상황을 알리고 중 재를 요청해야 했을까?
송이를 공급받을 수만 있다면 그만, 홀 밖의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안일하게 여긴 것이 뼈아픈 결과로 돌아왔다.
이틀이 지났다.
전성렬로부터 아무 연락 없던 그 이틀이, 김효산에게는 실로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성렬에게 재촉 전화라도 넣고 싶었지만, 역효과가 날게 분명했기에 참고 기다렸다.
그동안 자재구매부 팀장과 멱살까지 잡으면서 대판 싸우기도 했다.
덕분에 부지배인까지 이 사태를 알게 되었다.
"당신 때문에 송이 납품 라인이 통째로 날아갔다고! 우리 VIP 고객들이 송이 요리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알아?"
"그깟 특급 송이 몇 달만 있으면 얼마든지 쉽게 구해다 줄 수 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비시즌에 그런 싱싱한 송이를 구할 수 있다는 게 엄청난 메리트라고!"
"자자, 둘 다 그만하게. 이게 뭐하는 짓들인가?"
부지배인은 어린아이처럼 멱살까지 쥐어 잡으며 싸우는 그 둘을 힘겹게 말렸다.
김효산은 마지막 인내심만큼은 사수했다.
'당신이 납품업체한테 받아먹은 돈 때문에 송이 업체가 날아간 거라고!'
부지배인 앞에서 그 말만큼은 꺼내지 않았으니까.
만약 그 말을 꺼냈다가는 말 그대로 선을 넘게 된다. 모든 게 박살난다. 윤리징계위원회라도 열어야 할 것이다.
부지배인은 나중에 김효산을 따로 불러서 물었다.
"마케미야 사장님께서 송이 요리를 즐겨 찾으시는 건 알고 있는데,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가?"
"즐겨 찾으시는 정도가 아니라 송이 사랑꾼이십니다. 제철 아닌 때에 특등품 송이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돼서 더 좋아하셨고요. 만약 백두호텔에 송이가 납품된다는 걸 아시면 단골 호텔을 바꾸실 수도 있습니다."
"음, 그건 곤란한데."
부지배인은 대단히 난처했다.
마케미야 사장은 단순히 돈 많은 VIP가 아니다.
사실 그가 한식 레스토랑에서 올려 주는 매출은 별거 아닌 수준이다.
한 달에 몇천만 원 이상 매출을 올려주고, 팁도 그만큼 뿌려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케미야 사장이 대관해서 하는 여러 가지 행사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주요 행사를 위해 호텔 그랜드볼룸을 자주 대관한다. 호텔 출장 뷔페 서비스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애용하는 편이다.
여기에 마케미야 사장 인맥으로 호텔 고객이 된 부자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들도 호텔에서 마음껏 돈을 쓰고, 행사를 열거나 출장 뷔페를 이용하기도 한다.
마케미야 사장이 백두호텔로 갈아타면 그 관련 인맥이 전부 이탈하는 것이다.
그가 서해호텔 서울 본점이 아닌 지방 지점을 이용한다고 예약할 때, 김효산이 직접 그 지점까지 출장을 나갈 정도니까.
부지배인이 한숨을 쉬고 있을 때 김효산이 스마트폰 문자를 확인하고 펄쩍 뛰며 좋아했다.
"오예! 다행입니다! 성렬유통에서 오늘 바로 송이 10kg을 갖다 준다고 합니다!"
"그래? 일단 한시름 놓았군."
"부매니저님, 하지만 이대로 마음놓으면 안 돼요. 우리도 빨리 성렬유통하고 정식 납품 계약 맺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신유통은 어쩌고? 그래도 우리하고 십 년 넘게 거래했잖아? 겨우 송이 받자고 그걸 어떻게 하루아침에 끊어?"
"겨우 송이 받자고요? 마케미야 사장님이 백두호텔에……."
"알았어, 알았어. 일단 내가 총매니저님한테 말씀은 드려 볼 테니까, 자네도 이 팀장하고 그만 싸워."
김효산은 절절한 마음으로 성렬유통 트럭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고, 트럭이 들어왔다는 말에 직접 내려가서 맞이했다.
"죄송합니다. 이거밖에 여유가 없어서요. 필요하신 20kg에 최대한 맞추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제철이 아니다 보니 구하기가 힘듭니다."
"아닙니다. 이것만 해도 정말 감사합니다."
만족스러운 양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흘 만에 물량을 갖다 줬다는 것에서 김효산은 희망을 느꼈다.
하지만 그 희망은 홀로 돌아오는 순간 박살 났다.
"선배님, 친구가 그러는데 오늘 백두호텔에 송이 100㎏이 추가로 들어왔다던데요? 1시간 전에 들어왔답니다."
"이…!"
김효산은 뒷목을 잡은 채 쓰러질뻔한 걸 겨우 막았다.
"10㎏이요? 그럼 서해호텔에서 대놓고 자기들 소홀히 한다고 여기지 않을까요?"
"그러라고 일부러 10kg만 갖다 준 거야. 원래 약속한 건 20kg이었지."
전성렬은 느긋하게 말했다.
"초장에 제대로 잡아놔야 해. 처음부터 너무 굽실굽실거리면 앞으로 피곤해져."
"이미 그전에 충분히 굽실거리신 것으로 아는데……."
"그거야 백두호텔 뚫기 전 이야기였지. 서해호텔만큼은 아니지만, 백두호텔도 상당히 괜찮아. 오히려 서해호텔 이야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어서 나한테 더 적극적이더라고."
"아무리 제철 아니라지만 송이 하나 가지고 두 특급 호텔에 신경전을 벌이다니. 뭔가 재밌네요."
"그 뭐라더라? 송이라면 아주 그냥 환장을 하는 일본인 부동산 재벌이 서해호텔 단골이래. 하긴, 일본 기업가들이 송이라면 아주 사족을 못 쓰지."
"서해호텔은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앞으로 하는 거 봐서. 거기도 뚫긴 해야겠지만 이전처럼 저자세로 나가진 않으려고, 우리 뒤에는 백두호텔이 있잖아?"
"사장님, 저도 사실 생각해 둔 게 있었습니다."
"뭔가?"
전성렬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고, 하수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송이 물량 일부를 일본에 내다 파는 건 어때요? 경매 형식으로 말입니다. 돈 좀 만질 거 같은데요."
"……일본에?"
전성렬은 잠시 멈칫했다.
국내 유통만 취급했던 그는 수출이라는 개념과는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멀었다. 일단 단어 자체가 낯설었다.
"국내 시장에만 풀기에는 너무 아깝잖아요. 물량이 적을 때야 상관없지만, 이제는 한 달에 500kg씩 생산할 수 있고, 지금 시즌에 일본에 경매 형식으로 수출하면 짭짤하게 돈좀 만질 게 분명하잖아요."
국내 유통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이익을 챙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성렬은 왠지 불안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일본 수출? 거기에 내가 낄 자리가 있을까? 이 친구, 설마 슬슬 자기 혼자 하려고…….'
"사장님 수출 경험 없으신 건 제가 아는데, 좋은 경험 쌓는다 생각하시고 한번 해보시죠. 국내에서만 소비하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