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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2화 (12/1,270)

프랜차이즈 갓 012화

3장 필요한 인맥일까? (5)

김효산은 송이버섯 물량을 확보하자마자 곧바로 마케미야 사장한테 문자를 남겼다.

-송이 식자재가 확보되었으니 언제든 편한 때…… 다만 가장 신선할 때 즐기시는 것이 좋으므로…….

구구절절 정중하지만, 한마디로 원하는 식자재가 준비되었으니 한번 찾아달라는 의미다.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케미야로부터 답신이 왔다.

[오늘 저녁 7시로 나 혼자 예약 부탁하네.]

[예, 알겠습니다.]

역시 마케미야 사장은 송이버섯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김효산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에게 대접할 송이 요리 구상에 전념했다.

약속 시간이 되자 홀에서 마케미야가 VIP룸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김효산은 인사를 위해 룸을 찾았다가, 그의 안색을 보고 흠칫했다.

"대표님, 어디 편찮으신데라도…"

"아아, 별거 아닐세."

마케미야는 어두운 안색으로 손사래를 쳤다. 말을 하기 싫은 모양이다.

하지만 김효산은 알고 있었다.

'오늘 약주 꽤나 드시겠군.'

그리고 술이 들어가면 묻지 않아도 술술 털어놓을 것이다.

왜 오늘 저렇게 죽을상인지. 이쪽에서 묻지 않아도 본인이 먼저 알아서 소상히.

"술 좀 부탁하지. 늘 먹던 걸로."

"예, 알겠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너무 빨리 오픈하시는데?'

김효산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직 애피타이저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인데, 벌써 술을 주문하다니.

이렇게 일찍 술을 시키는 날은 드물게 몇 번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여지없이 레스토랑 직원들의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기도 했다.

마케미야 사장이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레스토랑 문을 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효산은 급히 호텔 총지배인에게 연락을 넣었다.

"매니저님, 오늘 셔터 제때 못 닫을 거 같습니다."

-뭐? 마케미야 사장님이 설마 앉자마자 오픈하셨나?

"예, 안색이 매우 어두우십니다."

-설마 아침까지 달릴 분위기인가?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이런, 숙취해소제는 있지?

"예, 상시 구비해 두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신제품으로 한 박스 들여놨습니다."

-먼저 그거부터 권하게. 나도 여기일 마무리되는 대로 바로 홀로 올라가지.

"예, 매니저님."

총지배인 보고가 끝난 후, 김효산은 레스토랑 직원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주방 인원들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주먹을 불끈 쥔 채 머리 높이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오예!"

"오늘은 새벽 퇴근이다!"

"마케미야 사장님, 만세!"

"어허, 마케미야 사장님 기분 안좋으셔서 술 오픈하신 건데 그렇게 좋아하면 어떡해. 사장님의 기분에 공감하지는 못할망정 그러면 안 되지."

김효산이 살짝 날카롭게 타이르자 환호가 잦아들었다.

서해호텔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정석우는 지금 분위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손님 한 분 때문에 새벽까지 연장 근무하게 생겼는데 왜 다들 좋아하는 거야? 아무리 VIP라지만 이건 아니잖아.'

다들 즐거운 듯이 손길이 바빠졌고, 정석우는 기회를 봐서 김효산에게 슬쩍 이유를 물어봤다.

김효산은 밝게 대답했다.

"하루 새벽 근무 좀 하면 어때. 팁두둑하게 받는데."

"팁이요?"

"레스토랑 마감 연장하면 보통 직원 한 명당 이백만 원씩 팁 주시거든."

"어차피 마감하고 손님은 마케미야 사장님 한 분뿐이고, 몇 시간 정도 홀 대기하면서 시중들다가 팁 이백받는 건데, 너라면 안 좋겠냐?"

"그, 그렇군요."

정석우는 새삼 김효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케미야 사장이 이 호텔 오너보다 돈이 더 많다고 했던가?

"자자, 실수 없게 준비하자."

레스토랑 마감은 10시.

하지만 마케미야는 시간 따위는 개의치 않고 거듭해서 술을 마셨다.

술이 약해서 그리 많이 마시지도 못했다. 와인 작은 병 두 개를 가지고 한참 동안 홀짝거리며 마셨다.

"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만취한 마케미야는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술상무 노릇을 하던 김효산이 서둘러 부축해 주었다.

그때 정석우는 정장을 입은 남자 둘이 홀에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이미 마감을 한 상황인데도 직원들어느 누구도 그 남자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블루 넥타이를 한 남자가 서류가방을 데스크에 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몇 분이죠?"

"24명입니다."

"여기 48장입니다."

정석우는 남자가 꺼낸 백만 원 수표 수십 장을 보고 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다음에 사장님께 하세요. 저야 시키는 일만 하는 건데요."

이미 사전에 이야기를 들었지만, 직접 보고 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직원들 하룻밤 팁으로 수천만 원을 뿌려 버리다니.

'와, 돈이 얼마나 썩어나길래…'

마케미야는 두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호텔을 나섰고, 차량까지 배웅을 마치고 돌아온 김효산이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자, 다들 고생했어요. 마케미야 사장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 장씩 챙기고, 퇴근들 합시다."

정석우도 백만 원권 수표 두 장을 받아들고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겨우 몇 시간 더 연장 근무를 했을 뿐인데 한 달 월급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팁으로 받다니.

'이런 식이면 매일매일 연장 근무했으면 좋겠는데.'

"선배, 근데 마케미야 사장님께서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으셨던 겁니까?"

"지병이 다시 도지셨대."

"……아."

"며칠 아무렇지 않다가 갑자기 도지는 바람에 상심이 크신가 봐. 오늘 아침에는 정말 죽겠단 고통이 뭔지 느끼셨대."

"정말 안되셨네요."

"내 말이."

김효산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참 매너 좋으시고 차분하시고 좋은 분인데, 왜 그런 지병 때문에 고생하시는지 모르겠어. 병원에서는 대체 뭐 때문에 원인 하나 제대로 못 밝혀내는지, 쯧쯧……."

* * *

마케미야는 부스스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9시다. 순간 마케미야는 저녁 9시인가 싶었으나, 환한 창밖을 보고 아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틀을 내리 잤나?"

서해호텔에서 새벽 1시까지 술을 먹었으니, 다음 날 아침 9시에 일어날 리가 없다. 보통 그 정도로 술을 먹으면 이틀 정도는 꼬박 죽은 듯이 지냈으니.

하지만 스마트폰 날짜를 보고 마케미야는 황당했다.

이틀을 내리 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서해호텔을 나온 게 어제 새벽이 아니라, 오늘 새벽이었다.

바로 8시간 전.

"내가 8시간밖에 안 잤다고? 그렇게 술을 먹었는데?"

마케미야는 어이가 없어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술을 전혀 먹지 않은 것처럼 몸이 개운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하룻밤 사이에 간이 다른 사람과 바꿔치기라도 됐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황당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요의가 밀려왔다.

'젠장.'

마케미야는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린 채 화장실에 들어섰다.

곧이어 밀려올 극통에 단단히 각오를 품고, 볼일을 봤다.

그런데…

"안 아프잖아?"

시원하게 물줄기가 쏟아지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다.

마케미야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게 대체 뭐지? 어떻게 된 거지?

내친김에 샤워까지 마친 마케미야는 거실로 나왔고, 화분을 다듬고 있던 와이프가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당신 벌써 일어났어요? 어제 술 그리 많이 마셔놓고 괜찮아요?"

"어, 괜찮아. 아무렇지 않네."

"세상에, 웬일이래요. 그렇게 마시면 이틀은 죽어지내던 사람이……."

"김 쉐프가 숙취해소제 좋은 거 하나 들어왔다고 해서 먹었는데, 그거 덕분인가 봐."

"그거 뭔지 알아봐서 쌓아둬야겠네요. 내가 나중에 김 쉐프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게요."

마케미야는 어안이 벙벙했다.

'갑자기 또 왜 안 아픈 거야?'

그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지병이 나았을 때. 다시 지병이 도졌을 때.

그리고 다시 지병이 나은 것 같은 오늘.

그 셋의 공통점은? 그리고 차이점은?

가벼운 짜릿함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혹시 송이버섯? ……에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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