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10화
3장 필요한 인맥일까? (3)
"미치겠으면 미쳐야지."
통화를 끊은 후, 옆에서 듣고 있던 하수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서해호텔 자재구매팀이 아주 안달이 난 모양이야. 우리 송이를 콕 집어서 찾는 손님들이 많은가 봐."
"지금은 제철이 아니잖습니까. 냉동품은 아무리 잘 관리해도 비냉동품에는 안 되죠."
"이렇게 난리가 난 걸 보면 돈 많은 단골 고객들이 단단히 난리가 난 거 같은데. 어떡하지?"
"어떡하긴요. 납품라인 크게 뚫어줄 때까지는 뻐기셔야죠. 그동안 많이 미치라고 그래요."
전성렬은 묘한 눈으로 응시했다.
하수영의 덤덤한 태도에서 이런 일을 많이 겪어본 듯한 느낌이 묻어났다.
"그리고 서해호텔만 특급호텔은 아니잖아요. 다른 호텔라인도 한번 뚫어보시죠."
"그러다가 호텔 두 개를 덥석 물어버리면 어떡하나?"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양손에 꽃인데."
"납품 물량이 안 되잖아. 서해호텔하나만 꽂은 상태면 물량이 적어도 익스큐즈가 되지만, 두 군데 터놓으면 양쪽에서 욕먹는단 말일세."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전성렬도 서해호텔이 아니면 다른 곳을 뚫어 볼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가 이렇게 엄살을 부리는 이유는 바로…….
"아, 물량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한 달에 50kg 정도가 한계라고 하지 않았나?"
"원래 한계는 넘어서라고 그어놓은 목표선 같은 겁니다."
잘 아시는 분이 왜 이래요, 라는 듯한 표정에 전성렬은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생긴 건 싹싹한 느낌의 앳된 청년인데, 가끔 속에 웬 늙은 구렁이 한 마리가 들어 있는 듯 것처럼 말한다.
'뭐, 송이 장사만 할 건 아니니까.'
전성렬은 하수영으로부터 ㎏당 45만 원에 매입해서 80만 원 정도의 가격에 판다. 서해호텔에서는 최종소비자한테 ㎏당 120만 원 내지 150만 원 정도는 받을 것이다.
한 달에 50kg, 매입가 2,250만 원, 일 년이면 2억 7천만 원.
납품 마진까지 넉넉하게 고려하면 연 매출 4억 8천만 원 정도.
물론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전 성렬은 이미 연간 90억 원 정도의 매출을 내고 있는 농산물 유통업자다.
송이버섯이 중요한 아이템은 될 수 있지만, 다른 걸 모두 제쳐 두고 올인할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다.
하수영의 송이버섯 납품을 미끼로 특급호텔 납품권을 따내고, 그걸 무기 삼아 강남과 종로 등 고급식당들을 차례차례 뚫어서 전체적인 매출을 늘리는 것.
그것이 전성렬이 그리는 밑그림이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아니, 그렇잖아. 지금 제철이 아닌데 어디서 한 달에 50kg씩 따박따박 송이를 가져오냐고, 심지어 냉동도 아니더만."
"이 친구도 참. 우리 회사에서 그거 이상하게 생각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농산물이라면 다들 빠삭한데, 지금 송이 비시즌인 거 누가 몰라?"
"근데 왜 다들 말을 안 하지?"
동료 직원의 말에 구레나룻이 무성한 남자 직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친구야. 알 잘 낳는 거위 배를 굳이 가를 일 있어?"
"사장님부터도 뭔가 이상하다는 거 알아. 근데 뭐? 송이에 독을 탄 것도 아니고 중금속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냥 지금 제철이 아닐 뿐이잖아. 송이만 문제없으면 된 거지, 뭐하러 거래처 영업 비밀을 꼬치꼬치 캐려고 해?"
"자네는 안 궁금해?"
"궁금하지. 그런데 궁금한 거 해결하는 것보단 회사 장사 잘되는 게 백번 낫지."
"……."
"그 친구가 어디 송이가 시즌 상관없이 잘 자라는 산이라도 하나 갖고 있나 본데, 과한 호기심은 넣어 둬.
별로 좋지 않아."
의문을 제기한 직원, 박기수는 여전히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구레나룻 남직원, 주성철은 그 점이 걱정이었다.
'기수 이 친구, 이거 언제 사고 한번 치겠는데.'
-제철도 아닌데 송이를 어디서 가져오는 거지?
(주)성렬유통 직원치고 그런 의문을 품지 않은 이는 없다.
하지만 다들 선을 넘지 않는다.
무슨 훔쳐온 송이도 아니고, 중금속이나 방사능 같은 해로운 물질이 섞인 것도 아닌데.
송이 덕분에 매출도 6%나 늘었다.
'고급식당에서도 우리한테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성렬유통은 아직 고급식당 쪽 납품라인이 시원하지 않은 편이다. 매출은 높은 편이지만 취급하는 것은 주로 일반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평범한 농산물들.
전성렬은 예전부터 상류층 인사들을 상대하는 고급식당 납품라인을 장악하고 싶어 했다.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해. 그래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고급식당, 특급호텔에도 식자재를 납품하고 있는 유통업체.
그런 이미지를 구축하면 대다수의 일반 식당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고, 매출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다.
전성렬이 하수영의 송이버섯을 애지중지하는 게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특급 송이버섯을 상시 공급할 수 있다는 이점으로 특급호텔을 뚫을 수 있을 테니까.
* * *
-아들아, 준비가 됐느냐.
아버지의 아바타, 은하신목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렸다.
경건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은하수영은 천천히 끄덕였다.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예, 아버지. 저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좋다. 그럼 이제부터 네가 왜 프랜차이즈 갓이 되어야 하는지, 네 눈높이에 맞춘 지식을 전달해 주마.
"예, 아버지."
하수영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은 채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옛날옛날 아주 먼 태고의 옛날, 우주가 쌀알보다 더 작았던 시절 그 끝 모를 암흑 속에 하나의 자아가 싹트기 시작했으니, 자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였고, 자기 외의 다른 존재에 대한 탐구욕과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으니…… 이 녀석아! 졸지 말고 똑바로 들어!
"아, 안 졸았어요!"
-입에 침이나 닦고 변명하거라!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거늘, 어디서 거짓말이냐!
"아버지한테 지금 눈이 어딨어요? 나무에 눈알이 달렸으면 어디 그게 괴물이지 신목인가요?"
-의지의 눈이라는 게 있단다. 나는 비록 여기 뒤뜰에 뿌리를 내렸지만, 앉은 자리에서 천 광년을 내다볼 수 있단 말이다.
"에이, 말도 안 돼요."
-아무튼 다시 집중해서 들어라. 이번엔 졸지 말고,
은하신목은 다시금 우주의 태고 시절 이야기를 꺼냈고, 하수영의 의식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여행을 떠난 뒤였다.
한 귀로 듣고 두 귀로 쏟아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상이다. 어휴, 옛날 자료뒤적이느라고 이 애비가 고생 좀 했다. 감사히 여기거라.
"잘 들었어요. 정말 태고 시절에는 놀라운 일들이 가득했군요. 그런 역경을 딛고 이겨내야만 고대 주신이 될 수 있다니, 놀라워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고대 주신이라니, 프랜차이즈 갓이라고 해라! 대체 언젯적 칭호를 자꾸 들먹이는 거냐. 이제 새 시대가 열렸으니 새 칭호에 익숙해져야지.
은하신목의 나뭇가지 끝이 헛기침을 하듯 일제히 떨렸다.
-그리고 앞으로 엘릭서는 하루에 열 방울씩 주기로 결정했다.
"네? 아버지, 왜 갑자기 그런 땡큐베리머… 아니아니, 지금 저를 죽이시려고 작정하신 건가요? 하루에 한 방울만 먹어도 그렇게 고통스러운데, 열 방울씩 먹으라고요?"
-먹는 건 한 방울씩만 먹거라. 대신 나머지 9방울은 따로 꾸준히 모아뒀다가 나중에 몸이 적응하면 그때 좀 더 섭취해.
"미리 주시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네가 엘릭서를 일정량 이상 복용하게 되면 잠겨 있던 다음 단계 교육 과정이 해방되거든. 내가 하루에 열 방울씩 주면, 네가 전부 먹지 않아도 그만큼 먹은 것으로 간주된단다.
"아! 아버지 본신이 은하신목에 걸어둔 제약을 그런 편법으로 빨리 해제하려고 하는 거군요? 맞죠!"
-쓸데없이 눈치는 빨라 가지고…… 아무튼 내가, 아니, 진짜 내 본신이 건 제약을 조금이라도 빨리 푸는 게 나을 거 같다고 판단을 했다. 아무튼 일주일에 7방울을 넘기면 안 된다. 나머지는 그냥 모아둬.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하수영은 신이 나서 돌아갔고, 은하신목은 잠잠히 있다가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저놈 저거, 청담동에 건물 하나 빨리 올리면 그때부턴 좀 더 진지하게 입신 공부하려나…….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 게 참 뜻대로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