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03화
1장 내가 상속자라고? (3)
"이걸 꾸준히 먹으면 나중에 막 인간을 초월하고 신에 가까워지고 그러는 건가?"
하수영은 팔짱을 끼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눈을 찌푸리다시피 가늘게 뜨고는, 하룻밤 사이에 생겨난 이 정체불명의 나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외부에서 옮겨 심은 흔적이 전혀 없는 것도 그렇고, 하룻밤 사이에 나타난 것도 그렇고, 지금은 자신의 머릿속에 직접 메시지까지 전달하고 있다.
"아버지가 신은 확실한 거 같은데. 그게 아니면 내가 지금 미쳤거나."
하수영은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는, 나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근데 난 지금 정신이 아주 멀쩡하단 말이야. 미친놈이 스스로를 멀쩡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하수영은 손바닥을 폈다. 안에 고인 한 방울의 액체는 증발하지도 않고 여전히 찬란한 황금색 광택을 자랑했다.
환각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엘릭서라는 신비한 액체는 진짜로 눈앞에 존재하고 있다.
"고대 주신의 전유물…… 이걸 꾸준히 섭취한다면 인간을 벗어날 수 있다고?"
아버지는 왜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밝혔을까.
왜 지구에서 자신을 주워다가 20년 가까이 길렀을까.
신에게 20년은 별거 아닌 시간이 어서, 정말로 잠시 유희를 즐긴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이런 나무를 굳이 남긴 이유는 뭘까?
"그냥 적당히 통장 잔고나 두둑하게 남겨주시면 알아서 잘 관리해서 쓸 텐데, 그게 못 미더우셔서 참…"
하수영은 조금 억울했다. 어려서부터 자신은 돈 관리만큼은 나이에 맞지 않게 자로 잰 듯이 잘 운영해 왔다.
아버지도 분명 그것을 보셨을 텐데, 현물 재산 말고 이런 기이한 나무 따위나 남겨주다니.
"인간 따위를 벗어나서 뭐해. 어차피 때가 되면 죽을 거. 그냥 남은 시간 동안 재밌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게 낫지."
이제는 아버지가 살짝 원망스러운 마음마저 든다.
"청담동 건물 말고 이런 거나 주고 가실 바엔, 그냥 계속 여기 계시지 그랬어요?"
반쯤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하수영은 손바닥 위의 액체로 시선을 돌렸다.
은은한 광택을 발하는 자태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손바닥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핥았다.
"윽!"
순간 뜨겁고 날카로운 감촉이 혀를 관통했다. 머릿속까지 짜르르 울리는 통증이 심장을 후벼 파는 듯했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열이 살을 파고들며 통각 신경을 태워 버리는 것만 같았다.
"으아악!"
하수영은 그대로 나뒹굴었다. 온몸이 찌릿찌릿 울리며 뜨거운 열기가 발가락 끝까지 휘몰아쳤다.
한참 동안 고통에 몸부림치던 하수영은 어느 순간 의식을 잃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새벽의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때였다.
멍하니 눈을 뜬 그는 아버지가 남긴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한참 후 그는 넋두리처럼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렇게 아플 거라고 왜 말씀을 안 하셨어요?"
바로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의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하루 한 방울 이상은 영혼에 큰 탈이 난다고 하지 않았느냐. 남용하면 진짜로 정말정말 크게 탈이 나니까 꼭 하루에 한 방울이다. 네 성격에 귀찮아서 모아서 한꺼번에 마실까 봐 지금도 걱정이구나.
"아까는 대답 없이 바쁘게 사라지 신 분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해 주시네요? 혹시 제가 아파하는 걸 지켜보시면서 키득거리신 건 아니죠?"
-어허, 이 아버지를 뭐로 보느냐.
"옛날에 제가 착각해서 겨자 소스햄버거에 뿌려서 한 입 먹고 굴렀을 때 배 잡고 웃었고, 탈퇴 잘못해서 게임 계정 다 날렸을 때도 그랬잖아요. 아, 얼마 전 에어팟 한 짝 잃어버렸을 때도 혼자 뒤뜰에서 크게 웃으셨죠?"
-전부 오해란다.
"오해는 무슨. 아버지 진심이 뭔지다 아는데."
하수영은 툴툴거리면서 손을 툭툭털고 등을 돌렸다. 그때 다급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들아! 이건 가져가야지! 쿨타임됐다!
"엘릭서요?"
-어서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서 탈피하거라. 하루빨리 지금 인간의 껍질을 벗어버려야 한다.
나뭇가지가 흔들거리면서 앞으로 나오자 하수영은 탐탁지 않은 눈으로 올려다보다가 두 손을 모아 앞으로 뻗었다.
나뭇가지 끝이 황금색으로 맺히더니 반투명한 금빛 액체 한 방울이 똑 하고 떨어져 내렸다.
"이걸 어쩐다…"
하수영은 턱을 괸 채 투명한 용기에 담은 엘릭서를 물끄러미 들여다.
보고 있었다.
황금색 액체는 흩어지지도 않고 용기 중앙에 고여 있었다. 언뜻 보면 액체가 아니라 유리로 된 구슬처럼 보일 정도다.
하수영은 가슴을 짚었다. 심장이 아직도 두근두근 세게 뛰고 있었다.
아까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니 정수리에서 오싹 소름이 돋았다.
"아, 이거 너무 아파서 안 되겠는데. 어쩐다…"
하수영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엘릭서는 신체 및 영혼의 생장 촉진 효능, 완전 치유, 부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것을 섭취 말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주방 한쪽에 놓인 소쿠리에서 눈동자가 멈췄다.
소쿠리에는 얼마 전에 사 온 송이 버섯 몇 개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아, 한번 그렇게 해볼까?"
하수영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시도해 볼 가치가 있겠는데?"
* * *
다음 날.
"아버지, 빨리 엘릭서 주세요."
-웬일이냐? 알았다. 가져가거라.
그리고 또 다음날.
"아직 쿨타임 안 됐나요? 어서 엘릭서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아유, 이쁜 것. 그래 많이많이 먹고 어서 인간을 탈피하거라. 어서 가져가거라.
또 다음 날.
"아버지! 엘릭서! 엘릭서!"
-여기 있단다. 근데 요즘에는 비명소리가 점점 시원찮아지는 거 같더구나.
'윽! 어제 연기가 너무 시원찮았나?'
"아, 그게…… 이제는 좀 견딜 만하더라구요. 고통도 익숙해지니 참을 만하네요."
-아주 좋구나. 역시 내 아들한테는 프랜차이즈 갓이 될 만한 자질이 충만해.
"어유, 그럼요. 무려 10조 분의 1이나 되는 제가 자질이 없다면 이 우주 어느 곳에서 자질을 찾을 수 있겠어요?"
-기특한 것.
다시 다음날.
"아버지, 생각을 해봤는데 이제는 하루에 두 방울씩 주셔도 충분할 것 같지 않아요?"
-어허, 원래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때 큰 사고가 나는 법이란다. 너 옛날에 스쿼트 60kg 너무 쉬워서 감칠맛 난다고 70㎏으로 늘렸다가 햄스트링 끊어질 뻔했던 걸 벌써 잊었느냐?
"정말 괜찮을 거 같단 말이에요."
-안 돼. 이렇게 빨리 엘릭서 복용 량을 늘린 역사는 없다. 이 애비는 반대다.
하수영이 실망하려는 찰나, 은하신 목은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이렇게 하자꾸나. 주 6일은 하루 한 방울, 그리고 일곱 번째 날에는 두 방울로,
"콜, 대디."
-그런데 요즘 집에 붙어 있는 걸 본 적이 없구나. 어딜 그렇게 자주 나가는 거냐?
"요즘 버섯 키우고 있어요. 그거 때문에 이것저것 바빠요."
-갑자기 웬 버섯을?
"아버지가 예전에 버섯 심는다고 앞뜰 구석에 일군 밭 있잖아요. 그냥 놀리는 게 아까워서 소일거리로 하고 있어요. 이거 하다 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가네요."
-흐음, 같이하자고 할 땐 그렇게나 싫다고 빈둥거리기만 하더니.
"역시 부모는 잃은 뒤에야 그 소중 함을 아나 봐요. 아버지가 곁에 없으니 괜히 쓸쓸해져서 아버지가 남긴 버섯밭이나 돌보며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게 효도는 곁에 있을 때 잘해야 한다. 부모는 절대로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아. 알겠느냐.
"죄송해요."
하수영이 돌아간 후, 한참 동안 잠잠하던 은하신목은 한숨을 쉬듯 모든 나뭇가지를 가늘게 떨어댔다.
-이놈의 자식이 뻔한 거로 제 아비를 속이려고 하네. 그래, 그런 반항과 일탈도 다 성장하는 과정이니 봐준다. 어차피 넌 프랜차이즈 갓이 될 수밖에 없어, 이놈아.
그리고 그때 하수영은…….
"전쟁 영웅 돼서 세계도 정복해 봤고, 대마법사로 살면서 행성도 구원해보고, 아무튼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명예고 권력이고 다 부질없더라고요. 그저 마음 편히 사는, 휴양지 같은 인생이 최고죠."
정원 안에 잘 다듬어진 밭은 사방이 높이 2미터의 벽돌담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역시 엘릭서, 최고의 천연 비료네."
하수영은 빼곡하게 자라난 버섯들을 보며 뿌듯해하며 중얼거렸다.
"이번 생은 편하게 월세나 받아먹으면서 푹 쉬겠다고, 태어나기 전부터 딱 정해뒀었다고요. 제가 미쳤다고 평생 골골대면서 도나 닦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