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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2화 (2/1,270)

프랜차이즈 갓 002화

1장 내가 상속자라고? (2)

사흘이 지났다.

당연하게도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라진 아버지 짐이 창고 구석에 숨겨져 있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하수영은 집 안 전체를 뒤졌지만, 아버지의 개인 짐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하룻밤 사이에 짐을 그렇게 모두 챙기는 것도 사실 불가능할 것이다.

심지어는 어린 시절 하수영이 몰래 숨겨 놓은 라이터마저 사라졌다.

몇 년 전에 라이터를 묻어놓은 지점을 파보았지만, 라이터 대신 종이 한 장만 나왔다.

[인석아, 여기에 숨겨 놓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았니? 이것도 가져간다.]

뚫어져라 쪽지를 들여다보던 하수영은 맥 빠진 한숨을 뱉었다.

"아버지가 진짜 신이 맞나?"

하룻밤 만에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를 자라게 만든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외부에서 성목을 옮겨 심은 것도 아니고.

"근데 이게 유산이라고?"

아름드리나무 앞에 선 하수영은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보니 새삼 크다. 겉모습만 보면 적어도 몇백 년은 묵은 듯이 보인다.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네."

일단 흔한 나무 계열은 아닌 것 같다.

식물학자는 아니지만, 왠지 우리나라 기후에 어울리지 않는 나무라는 느낌이 강하다.

"아버지가 진짜 신이라면, 이 나무도 지구상에 없는 종일 수도 있겠네."

괜히 나무종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게 문제만 더 키우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수영은 나무를 향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하라는 거지?"

아버지는 분명히 말했다.

이거 하나면 평생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을 거라고, 자기가 떠나면 잘 활용해서 살아보라고.

"이 나무를 잘 활용하면 청담동 건물주가 된다는 이번 생애 내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거야? 근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갑자기 나뭇가지가 거세게 흔들렸다. 하수영은 놀라서 뒤로 살짝 물러났다.

"뭐야?"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분명 나뭇가지가 세게 흔들렸다.

무언가 미심쩍은 느낌에 하수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아들아,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

"으, 으아아악! 아, 아버지!"

느닷없이 들린 아버지의 생생한 목소리에 하수영은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어, 어디에요? 어디에서 말하는 거예요, 아버지?"

-나는 여기 있단다. 바로 네 눈앞이지.

"서, 설마 이 나무가 아버지?"

-아니다. 이 나무는 내가 너에게 남긴 유산이란다. 지금 너와 대화하는 나는 이 나무에 심은 메신저 일뿐이다.

"메신저요?"

-일종의 내가 남긴 잔류사념 같은 거지. 진짜 내가 아니기에 너와 대화 가능한 내용은 매우 한정적이다. 유산 사용법을 네가 모를까 봐 걱정돼서 추가로 남겨놓은 음성 메시지. 즉, 사용 설명서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 5G 시대잖니? 요즘 머신 러닝 AI가 대세라고 해서 나도 이렇게 한번 꾸며봤단다.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는 생생하고 깨끗했다.

하수영은 볼이 잔뜩 상기된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버지는 역시 진짜 신이었군요!"

-그럼. 그것도 보통 신이 아니라 신 중의 신, 프랜차이즈 갓이란다.

"프랜차이즈 갓?"

무슨 별다방 벤치마킹 같은 네이밍에 하수영은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여기 지구 신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더러 있더구나. 예전에는 고대주신이라고 불렀지.

"근데 왜 갑자기 프랜차이즈 갓이 된 거죠?"

-고대 주신은 너무 근엄하고, 비감각적이며,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지 않느냐. 그래서 좀 더 세련된 표현으로 바꿔본 거란다. 마음에 들지 않니?

-거듭 말하지만 지금 너와 말하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닌, 이 유산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조해 주기 위해 남겨놓은 메신저이자 음성지원 AI 사용 설명서라는 걸 명심하거라.

"그렇게 자꾸 강조 안 하셔도 되는데. 그럼 전 뭐라고 불러요? 그냥 반말해도 되나?"

-인석아, 그래도 아버지 목소리인데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지!

"AI 설명서치고는 감정이 다소 풍부하군요?"

-이 우주의 유일한 프랜차이즈 갓이 남긴 잔류 사념이니 당연한 것이란다.

"……그냥 고대 주신이라고 하면 안 돼요? 그게 훨씬 더 있어 보이는 표현 같은데. 그나저나."

하수영은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버지 목소리와 대화하니 마음이 안정되었나 보다.

그는 나무를 조용히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 유산을 잘 활용하면 제가 청담동 건물주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럴까 봐 내가 음성 메신저를 남겨 놓은 거다. 이 '은하 신목'은 그런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너를 다음 세대 프랜차이즈 갓으로 성장시켜줄 수 있는 위대한 매개체지.

"네? 뭐라고요?"

-나는 네게 가능성을 봤다. 너는 내 뒤를 이어 프랜차이즈 갓이 될 가능성이 무려 10조 분의 1이나 된다.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지녔지.

"아니, 아버지. 10조 분의 1이면 그냥 0이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이 무한한 우주에서 10조 분의 1이라는 확률이 작은 것으로 생각되느냐?

-0이 아닌 것만 해도 엄청난 것이다. 난 지난 1,000억 년에 걸친 여행 끝에 겨우 너를 만났다.

"그럼 계속 옆에 머무르면서 육성해 주시지, 왜 굳이 떠나신 거예요?

-육성이야 유산을 남겨서 하면 되고,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떠나야 하지 않겠니? 프랜차이즈 갓의 가능성은 오직 내 본신으로만 알아볼 수 있으니 어쩔 수 없구나.

"그럼 아버지…… 아니, 아버지의 본신은 지금 다른 후계자를 찾아서 여행 중이라는 건가요?"

-그렇지. 이해가 빠르구나. 역시 10조 분의 1의 가능성을 지닌 후계 자답다.

나무가 거칠게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기쁨을 표현하는 몸짓처럼 보였다.

-자, 아들아. 이것을 받거라. 어서 손을 내밀어라.

하수영은 엉겁결에 두 손을 모아서 내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나뭇가지 하나가 마치 눈이 달린 것처럼 스르르 움직여 그의 손까지 내려왔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내는 나무, 동물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나무.

'진짜 보통 나무가 아니구나. 내가 환청을 듣는 게 아니었어.'

나뭇가지 끝이 황금색 광채를 머금기 시작하더니, 금색 액체 같은 것이 맺히기 시작했다.

서서히 진해지기 시작한 그것은 마침내 하수영의 손바닥 위로 똑 하고 떨어져 내렸다.

"이, 이게 뭐죠?"

-엘릭서다. 현재 네 수준에서 은하신목이 제공할 수 있는 육성 보조수단이지.

"현재 수준이요?"

-은하 신목은 너를 프랜차이즈 갓으로 육성하기 위해 무궁무진한 훈련 코스와 많은 힘을 품고 있지만, 대부분의 선물은 지금 네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란다.

지금은 이 한 방울의 액체 정도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수준이란 뜻인가?

-엘릭서는 신체 및 영혼의 생장촉진 효능, 완전 치유, 그리고 부활능력을 품고 있는 고대 주신, 아니, 프랜차이즈 갓의 전유물이란다. 어휴, 나도 참. 아직 호칭 바꾼 지 1억 년밖에 안 돼서 그런지 가끔 예전 버릇이 나오는군.

"아무리 생각해도 고대 주신이 더 낫다니까요."

-하루 한 방울, 엘릭서를 꾸준히 섭취해서 하루빨리 인간을 탈라. 그 이상은 육체와 영혼에 큰 탈이 날 수 있으니 권하지 않는단다.

"그럼 앞으로 하루 한 방울씩만 주신다는 건가요?"

-그렇단다. 남용하면 진짜로 크게 탈이 나니, 모아서 한꺼번에 마시지 말고 매일 꾸준히 한 방울씩만 마셔야 한다. 절대 명심해야 한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아버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수영은 몇 번이고 더 불러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설마 음성 메신저가 하루 사용 시간 제약까지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하수영은 문득 손바닥 안에 고인 따뜻한 감촉에 주목했다.

반투명한 수은 방울처럼 고여 있는 황금색 액체가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바탕 꿈을 꾼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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