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01화
1장 내가 상속자라고? (1)
"아들아, 사실 이 아버지는 다른 우주에서 온 신이란다."
스무 번째 생일, 부친은 진지하게 그렇게 말했다.
하수영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래요? 이 누추한 지구에는 어쩐 일로 놀러 오셨어요?"
"그냥 잠깐 산책하다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너는 뒷산에 곤충 채집하러 갔다가 개울이 보여서 잠깐 발 담그는 데 이유가 필요하니?"
"아, 볼일 보러 지나가시다가 잠깐 발 담그러 오셨군요?"
"그래, 그리고 그 개울이 바로 너란다."
"네, 네. 물에 잠깐 발이나 담근사이에 길에서 주운 아이가 이렇게 스무 살이나 먹었군요. 세월 참 빨라요, 그쵸?"
"길에서 주웠다니. 내가 비록 네 양부지만 친아들 못지않게 사랑으로 길렀거늘."
"사랑으로 길렀다는 분이 제 열 살 생일에, 사실 너는 내가 길에서 주워 길렀어, 난 네 친아버지가 아니야, 언젠가는 너와 헤어져야 해, 그런 말을 하나요? 다른 애들이었으면 아마 그때 엄청 울었을걸요?"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고, 나는 어린 너를 혹독한 세상에 내보내야 했으니까. 출생의 비밀을 일찍 알려주고 빨리 일어서게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제 출생의 비밀이 뭔데요? 그건 조금 기대되네."
"네 혈통이 그리 대단하진 않더구나. 네 친아버지는 재벌도 아니고 네 어머니도 근사한 미녀 여배우는 아니었어. 그냥저냥 평범하게 살더라."
"출생의 비밀이라는 게 그게 다예요?"
"그래도 우주를 다스리는 신이 양자로 삼아준 건 출생의 비밀이라고 할 만하지 않냐?"
"우주를 다스리는 신? 아버지가요?"
"그럼. 아, 원한다면 친부모를 만나게 해주마. 그런데 그럴 마음은 없지?"
하수영은 맞장구를 쳐주는 것도 재미가 없어졌다. 어디 아버지가 이런 적이 한두 번이어야지.
평소 성실하고 진중한 아버지이지만, 오늘처럼 가끔씩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를 하곤 했다.
'사실 나를 길에서 주웠다는 것도 거짓말 아냐? 실제로는 친아들인데 장난치려고…'
아버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사실 부친은 참 좋은 인물이었다.
전혀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이야기를 진짜인 것처럼 진지하게 말하는 습관만 빼면.
잘생겼고, 젊었으며, 박학다식하고 성실했다. 적당히 돈도 많고 농지이기는 하지만 땅도 제법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교사들이 부친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자신을 애지 중지 귀여워해 주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가끔 뭐가 씌기라도 한 것처럼 엉뚱한 말만 안 하면, 정말 부족한 게 없는 아버지였다.
"아쉽구나. 나한테는 이제 시간이 없어. 이제 그만 지구를 떠나야 한다."
"제가 늘씬하고 흰 피부를 가진 '예쁜 딸'이었으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죠?"
"그랬다 해도 한 달 정도만 더 머물렀겠지. 이건 그러니까 음…… 이 아버지의 비즈니스라고 해두마. 비즈니스, 이해하지?"
"가기 전에 유산은 듬뿍 남겨주고 가세요."
"허어, 울며불며 매달릴 줄 알았는 데, 그래서 마음 약해지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아니어서 아쉬우세요?"
"아니, 뿌듯하구나. 내가 널 이렇게 씩씩하게 키웠다는 게. 이만하면 안심하고 떠날 수 있겠어."
하수영은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따라 아버지의 헛소리가 너무 길었다. 그리고 표정도 평소와는 미세하게 달랐다.
한순간이지만, 정말로 아버지가 어딘가로 훌쩍 떠나 버릴 듯한 불안감이…….
"널 위해서 내가 뒤뜰에 유산을 심어 놓았단다. 그거 하나면 앞으로 네 인생이 눈부시게 달라질 거란다."
"드디어 저도 청담동 건물주가 될 수 있는 건가요?"
"그것보단 좀 더 좋은 거다. 이건 내 기준이고, 네 기준에서는 다를 수 있겠구나."
"청담동 300억짜리 건물과 태양의 가치가 고만고만하지 않으냐고 하시는 분이니까 그러시겠죠."
"아무튼, 뒤뜰에 잘 심어 놓았으니, 내가 떠나면 잘 활용해서 살아 보거라."
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덧붙였다.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구나."
"……진짜 가시는 거예요?"
"진짜지, 그럼 가짜로 가는 것도 있냐."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집에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모든 흔적도 사라져 있었다. 옷, 신발, 식기, 가구, 심지어 한정판 DLC 포함타이틀까지 전부.
식탁에는 A4 용지 한 장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일부러 내 짐은 다 가져간다. 그대로 두고 가면 내가 잠시 여행 간 거라고 몇 날 며칠 동안 네가 쓸데없는 희망을 품을까 봐 안 되겠구나. 어제 심은 유산은 잘 자랐더라.]
한순간 멍해졌다. 아버지가 정말로 떠난 것인가?
'헛소리는 자주 하셔도, 헛짓은 안하시는 분인데.'
장난 같아 보이는 헛소리를 많이 하지만, 장난 같은 행동을 한 적은 없는 분이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짐을 챙겨서 사라지는, 그래서 깜짝 놀라게 하는 그런 짓은 안 하는 분인데.
이상했다.
눈물이 전혀 나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마치 마음이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내가 이렇게 냉혈한이었나?
아니면 마음속에서는 언젠가 아버지의 헛소리들이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있었나?
다소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아버지가 심어놨다는 유산이 뭘까? 그거라도 확인해야겠다.
뒤뜰로 나온 하수영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맙소사."
평평한 잔디밭만 있어야 할 뒤뜰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자라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저리 자라는 나무가 있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다. 하룻밤사이에 저런 큰 나무를 옮겨 심는 건…… 가능하려나?
"아버지, 진짜 신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