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96화 (196/201)

철인 송석현 선생

탕!

탕!

울브스와의 원정 경기.

원정이지만 잠실을 홈을 쓰는 고트와 울브스와의 대결.

다른 점이라면 누가 먼저 그라운드를 쓰느냐, 정도.

울브스 선수들이 먼저 훈련한 뒤 자리를 비켜 주자 고트 선수들이 훈련을 시작했다.

홈팀에 비해 원정 팀 훈련 시간이 더 빠듯할 수밖에 없다.

코치들도 선수들도 이를 잘 알기에 원정 팀 훈련은 컨디션 조절, 부상 점검, 워밍업 수준에 그친다.

선수들이 설렁설렁하거나 평소보다 부진한 실력을 보여도 그러려니 하는 게 원정 팀 훈련 시간이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이상하지?”

“나만 이상하게 본 거 아니네.”

“평소랑 다른데.”

“공이 너무 안 뻗어. 날카로운 맛이 없어.”

송석현이 친 공은 내야를 겨우 벗어나기 일쑤였다.

그나마 멀리 뻗어 나가는 공도 빗맞아서 나오는 플라이 볼.

송석현의 연습 배팅을 보던 코치들의 표정이 굳었다.

가장 심각한 건 배터리코치 김태우였다.

“석현아, 잠깐만. 잠깐 나와 봐.”

“네?”

“어우, 뭐야.”

김태우 코치는 송석현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더니 깜짝 놀랐다.

“야, 너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얗냐?”

“네? 아,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애가 축 늘어졌네, 축 늘어졌어. 괜찮냐? 어디 아파? 어디 문제 있어?”

김태우 코치가 목소리를 키우자 다른 코치들도 하나둘 다가왔다.

“왜? 왜? 석현이 어디 안 좋아? 야! 윤 코치야! 석현이 몸 좀 봐줘라.”

“혹시 배탈 난 거 아니지? 어디 보자. 열나나?”

“야야. 뭐 하고 있어. 일단 석현이 그늘로 옮겨. 애 얼굴이 갔네, 갔어. 눈 밑은 왜 이래? 이게 다크서클이냐, 아이 패치냐?”

송석현은 코치들에게 끌려나오다시피 그라운드를 벗어났다.

이를 보는 건 고트 선수단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울브스 코치와 선수들도 송석현을 둘러싼 코치들을 보고 서로 한마디씩 내뱉었다.

“송석현 쟤 오늘 컨디션 메롱인가 본데?”

“니가 봐도 그렇지? 쟤 별로 안 좋지?”

“체력이 떨어진 건가.”

“갑자기 저렇게 맛탱이가 가는 건 부상일 확률이 높지. 내가 보기엔 부상이야, 부상.”

“송석현 오늘 빠지는 건가?”

“어쩌면 이번 3연전 내내 빠질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울브스 선수단이 행복한 상상의 나래에 빠지고 있을 무렵, 송석현은 컨디셔닝코치와 나란히 앉았다.

윤정일 컨디셔닝코치는 송석현의 한쪽 팔을 들곤 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팔은 어때? 괜찮아?”

“네, 괜찮아요.”

“어깨가 아픈 거야?”

“어깨 괜찮아요.”

“포수들은 고관절이 안 좋을 수도 있는데……. 고관절 쪽인가?”

“아니에요. 고관절도 괜찮아요.”

“그러면? 정말 배탈이야? 열은 없는데.”

송석현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괜찮아요, 저. 그냥 힘이 좀 없어서 그래요. 쉬는 날에, 쿨럭쿨럭, 다이어트를 좀 했더니. 크흠.”

“다이어트? 시즌 말에? 너 미쳤어? 살을 불려도 모자를 마당에 무슨 다이어트야? 네가 군살이 얼마나 있다고. 어이구, 이놈아. 운동을 얼마나 했길래 그래?”

송석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 한…… 3~4시간?”

“3~4시간? 무슨 운동했는데? 러닝? 사이클?”

“예, 예. 뭐 비슷한 유산소, 아니 그, 그, 그 맨몸 운동, 아니다. 아니다. 그게 컨디셔닝 훈련을 했습니다.”

“얘가 왜 이래? 안 그런 놈이 말을 더듬네. 무슨 컨디셔닝 훈련을 3~4시간씩 하냐. 길어도 20분 내외로 컷하라는 거 잊었어?”

“죄송합니다…….”

“그래서 무슨 컨디셔닝 훈련을 했는데?”

“……복합적으로다가 여러 가지를 해서 뭐라고 딱 꼬집어서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참 나, 너도 대단하다. 시즌 말에 다들 힘들어서 죽을라 카는데 그 와중에 훈련을. 역시 4번 타자는 달라. 우리 석현이는 다르네, 달라.”

“아뇨, 아뇨. 그런 게 아니라요. 그런 건……. 아무튼 죄송합니다.”

“에휴, 어쩌겠냐. 열심히 하려다 이렇게 된 건데. 그럼 너 온몸에 알이 배긴 거야?”

“그런 거 같습니다. 몸살감기처럼 으슬으슬해요.”

“작작 좀 하지, 작작 좀. 으이구. 아무리 좋아도 과유불급이야, 인마.”

송석현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죄송합니다…….”

“큰일이네,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이더라니. 아무래도 너 오늘 경기 뛰기 어려울 거 같은데. 넌 어때? 오늘 뛸 수 있겠어?”

“뛰어 보겠습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네가 평소 컨디션이 100이면 오늘은 얼마 정도 돼? 최소한 60은 돼야 교체라도 뛸 수 있어. 60은 넘어?”

“……반올림하면 60이 될 거 같은데요오.”

컨디셔닝코치가 푸웁 웃었다.

“반올림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됐다, 됐어.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것이지 왜 멀쩡한 척을 하냐.”

“면목이 없습니다, 코치님.”

“아이고, 일단 좀 쉬어라. 감독님께 말씀 드리고 올게.”

“네에.”

송석현이 벤치에 기대어 천천히 숨을 돌렸다.

손과 발이 아직도 조금씩 떨린다.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눈을 끔벅끔벅하는데 김인환이 다가와 옆에 앉았다.

“괜찮냐? 안 그래도 안 좋아 보이더만.”

“괜찮아요, 저는.”

“얼굴은 투데이, 투머로우 하는데?”

“하, 하하.”

“……비웃는 거야?”

“웃은 거예요.”

김인환이 뒷목을 주물렀다.

“오늘 못 뛰겠네. 그치?”

“아무래도 좀 힘들 거 같아요.”

“큰일이다, 큰일이야. 나도 오늘 컨디션이 별론데.”

“형은 왜요?”

“나는…… 음…… 아무튼. 썩 좋진 못해.”

“음?”

송석현이 무슨 말이냐며 무언의 눈빛으로 추궁했다.

김인환은 송석현의 눈을 스윽 피했다.

“아이고, 오늘 중요한 경긴데 또 이렇게 되네. 오늘 나라도 힘을 내야겠다.”

“미안해요, 형.”

“미안하긴. 후우우, 힘내자, 힘!”

김인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리가 풀려 풀썩 무릎을 꿇었다.

“…….”

“…….”

김인환은 송석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신발을 만졌다.

“신발 끈이 풀렸네.”

“꽉 묶여 있는데요.”

“반대쪽이 풀렸네, 반대쪽이.”

“거기도 꽉-.”

“오케이. 잘 묶었네.”

김인환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석현이 파이팅! 힘내라 송석현! 아자, 아자!”

김인환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선수들은 하나둘 벤치로 돌아와 송석현 주변에 섰다.

“너 훈련하다가 탈진했다며? 대단하다. 역시 성공하는 놈은 달라도 뭐가 다르네.”

“안 그래도 야구 잘하는 놈이 남들 쉴 때 훈련하니까 더 잘하는 거 아냐. 훈련을 오늘만 했겠어? 쉬는 날에도 탈진할 정도로 했으면 평소엔 더했다는 얘기 아냐. 대단하다. 와, 송석현. 이게 정상에 선 사람의 노력인가?”

“이러면 우리가 석현이를 부러워도 못하지. 쉬는 날에도 피똥 싸게 훈련하는데 우리가 이걸 하겠냐고.”

“어려서 그런가 대단하네. 난 체력이 안 돼서 못하겠던데.”

“스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니까.”

송석현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선수들은 송석현을 둘러싸고 칭찬을 쏟아 냈다.

훈련했다가 탈진했다는 얘기로 시작한 칭찬은 나중엔 매일 새벽 4시까지 훈련하다더라, 평소에도 뜨거운 콩 주머니를 쥐고 있는 건 손가락 단련을 하기 위함이다 등등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하루도 쉬지 않고 온몸을 단련하는 철인(鐵人) 송석현으로 귀결됐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봐 봐. 겸손한 거 봐. 이 정도는 돼야 스타 소리를 듣는 거야. 얼마나 겸손해. 우린 얘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 알지도 못했잖아.”

“우리 팀에도 이런 타입의 천재가 나오는구나. 와, 야구를 잘하는데 존나 열심히 하는 타입은 말로만 들었지 처음 보네.”

“야구를 잘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되나 봐.”

“아니라니까요오오.”

송석현의 작은 메아리는 돌아오지 못했다.

소문은 나는 새보다 빠르다.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철인(鐵人) 송석현에 대한 소문이 기자의 귀에 들어갔다.

기자들은 기삿거리를 발견했다는 기쁨 이전에 진심으로 칭찬을 쏟아 냈다.

“와, 역시. 괜히 천재가 아니네.”

“그럼 여태 매일 그렇게 잠도 안 자고 훈련했다는 거야?”

“그 뭐야, 컨디셔닝 훈련이라는 게 뭐길래 하루에 20분만 해도 죽어난다는 건데?”

“그거 있어. 유격 훈련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걸 반나절을 했대. 그러니 골병이 들지.”

“반나절? 유격 훈련을? 무슨 특수부대야, 뭐야?”

“그렇게 훈련을 하니 스무 살에 스타가 되지. 괜히 스타가 되겠어?”

“그렇게 힘든 훈련을 매일 할 수가 있나?”

“그걸 하니까 스타가 되는 거지. 스무 살에 원톱이 되려면 남들이랑 달라야 할 거 아냐. 타고난 체력이나 능력도 대단하지만 성실성은 진짜 내가 본 애들 중에 최고다, 최고.”

“노력하는 천재, 철인 송석현. 타이틀 좋다. 오늘은 이걸로 가야겠네.”

기자들의 귀에도 소문이 들어올 정도니 울브스에선 이미 소문이 한 바퀴 돌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울브스 선수들은 칭찬이나 감탄은 하지 않았지만 혀를 내두르거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장 충격 받은 사람은 장대희였다.

울 것처럼 서 있던 장대희는 조용히 화장실로 향했다.

“어쨌든 오늘 송석현은 빠지겠네, 그치?”

“네, 그럴 거 같습니다. 오버 트레이닝을 했으니 내일 올라오더라도 영향이 좀 있을 거 같습니다.”

“참 아깝네. 우리 팀에 왔으면 바로 리그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인데. 후우.”

울브스의 장태섭 감독은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보이지 않는 송석현을 눈으로 찾아 헤맸다.

“송석현도 저렇게 죽어라 열심히 하는데 요새 애들은 왜 이렇게 나약한지 몰라. 어휴. 스타는 아무나 되나. 다들 스타병이나 걸려 가지곤. 쯧쯧.”

“…….”

“좋아. 송석현이 없는 오늘이 찬스야. 이번 3연전에서 고트 발목 잡고 우리가 2위까지 노려 보자고. 애들 잘 단도리 해.”

“네, 감독님.”

송석현의 결장은 고트 선수단에겐 악재였고 울브스 선수단에겐 호재였다.

이 중 가장 크게 실망한 건 고트 선수들이 아니었다.

송석현을 보기 위해 찾아온 고트 팬들이었다.

어느덧 잠실의 슈퍼스타가 된 송석현의 홈런 쇼를 보기 위해 찾아온 팬들은 송석현의 결장 소식에 아쉬워하고 분노했다.

라이벌 울브스와의 잠실 3연전.

단독 1위로 가느냐 2위까지 떨어지느냐, 절체절명의 순간에 팀의 4번 타자가 빠진다는 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팬들의 실망은 헤아릴 수 없었으나 이내 뜬 기사 하나가 팬들을 위로했다.

[24시간 오로지 야구만을 위해 사는 남자 철인(鐵人) 송석현]

현장에서 20분도 안 돼 작성된 기사가 바로 인터넷에 떠올랐다.

경기가 끝나면 자정부터 새벽까지 지옥과도 같은 훈련을 매일 해 온 남자.

타고난 재능도 1등이지만 노력도 1등인 남자.

자신의 노력을 뽐내지 않고 여태 숨겨 온 겸손한 남자.

팀을 위해 가장 힘든 포지션인 포수를 맡으면서도 군말 없이 매일 강훈련까지 병행하다 탈진해 버린 팀의 4번 타자.

기사 어디에도 팩트 체크가 된 부분이 하나도 없었지만 중요한 건 팩트 따위가 아니었다.

아빠를 따라온 어린이 팬부터 흰머리가 빼곡한 장년 팬, 혈기왕성한 남자 팬과 여성 팬까지.

고트의 유니폼을 입고, 고트의 응원석에 앉은 팬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송석현! 송석현! 송석현! 송석현!”

“송! 석! 현! 송! 석! 현!”

선수들에게 시달려 아예 영혼까지 빠져나간 얼굴로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송석현은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을 보며 큰 눈을 깜박거렸다.

우렁차다 못해 비장미까지 넘치는 응원 소리.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이었지만 고트 팬들은 이미 고양을 넘어 격양돼 있었다.

당사자인 송석현만 영문을 모른 채 고개를 갸웃했다.

“나 나오라고 뭐라고 하는 건가……?”

죄스러운 마음만 어깨가 움츠러드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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