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86화 (186/201)

성난 고래 (3)

“구단에선 이런 것도 안 막아 주는 거야?”

함성훈의 와이프는 아침부터 함성훈을 닦달했다.

TV에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스포츠 기사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런 거에 일희일비하면 속 터져서 죽을걸.”

함성훈의 대꾸에 와이프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겨우 2패잖아. 2팬데 왜 이렇게 사람을 들들 볶아? 경기 지는 게 모두 자기 탓인가? 선수들이 못하니까 지는 거지.”

“감독이 왜 감독인데. 책임지라고 해서 감독인 거지.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해. 자기니까 이런 얘기 하는 거지.”

와이프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함성훈은 옷을 갈아입곤 나갈 채비를 마쳤다.

“또 일찍 가는 거야?”

“이제 스무 경기나 남았나. 바짝 조여야지.”

“자기들이 뽑은 감독이 아니라고,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구단에서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자기들이 뽑은 감독이라고 해도 시즌 말이면 이런 기사는 쉴 새 없이 터져 나와. 그런 피해 의식을 한번 갖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괜찮아.”

“자기 멘탈은 참.”

“언제는 듬직해서 좋다며?”

“곰도 이런 곰이 없어.”

“어흥.”

“그건 호랑이지.”

“곰은 뭐라고 울지?”

와이프가 눈알을 굴리며 고민했다.

“곰곰?”

“……하, 하하하. 곰곰. 재밌네.”

“웃는 게 늦었는데.”

“내가 원래 한 박자 좀 늦잖아. 아이고, 늦었다. 나 간다.”

* * *

함성훈은 점심시간을 조금 넘어 잠실에 도착했다.

감독실로 가는 길, 프런트 직원 하나가 함성훈에게 인사를 건넸다.

“출근하셨습니까?”

“네, 안녕하세요. 식사하러 가세요?”

“네. 이제 나갑니다. 감독님은 식사하셨어요?”

“먹고 왔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함성훈이 직원을 지나칠 찰나, 직원이 말을 걸었다.

“아, 근데 피시도 벌써 출근했어요.”

“피시가요?”

“네. 연습장으로 가는 거 같던데요?”

피시는 연습장이 아니라 구장에 있었다.

혼자서 잠실 구장을 뛰고 있었다.

함성훈이 그라운드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피시가 다가왔다.

“헬로, 보스.”

“헬로, 피시.”

함성훈이 영어로 피시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시간도 이른데 왜 벌써 출근했어?”

“너무 일찍 일어났거든요.”

“잠을 못 잔 거야?”

“아주 못 자진 않았어요. 한 6시간?”

“안 피곤해? 오늘 컨디션 괜찮아?”

피시가 자기 알통을 보여 줬다.

“난 언제나 베스트 컨디션이에요. 오늘도 그렇고.”

“여기서 뭐 했어? 러닝?”

“땀을 좀 빼려고 뛰었어요.”

“오늘 선발 출전인데 힘 빼도 괜찮겠어?”

“힘이 너무 넘치는 게 문제죠. 후우.”

함성훈이 피식 웃었다.

“긴장한 티가 나는데? 부담이 많이 되지?”

“부담 같은 거 없어요. 어차피 매일 뛰는 경기잖아요.”

“에이스로서의 책임감 이런 건가? 마음 편히 가져. 혹시 뉴스 챙겨 보는 건 아니지?”

“……음, 조금?”

함성훈이 크게 웃었다.

“누가 뉴스 번역해 주는 거야? 통역사가?”

“제가 물어보니까 대답해 주죠.”

“너무 솔직하게 다 말해 줬나 보네. 한국 언론 신경 쓰지 마. 원래 좀 독해. 그렇게 해야 조회 수가 나오거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그런 거 신경 쓰면 되던 것도 안 되니까.”

“좀…… 심하더라구요. 보스 잘못이 아닌데 왜 그렇게 비난하는지 모르겠어요.”

“미국은 안 그런가, 뭐.”

“미국……. 메이저리그도 심하죠. 하지만 여긴 한국이잖아요. 다들 꽤 예의를 지키는 거 같은데 언론은 전혀 안 그런 거 같아요.”

“언론은 어디나 마찬가지야. 그냥 던지고 싶은 대로 던져. 뭐가 걱정이야? 내년에도 계약 확정이잖아. 잠실 에이스는 피시 넌데 고민할 게 뭐 있어?”

피시는 잠시 망설였다.

“실은 내 성적이나 연봉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 뭔데?”

“음. 음…… 난 내년에도 보스랑 같이 뛰고 싶거든요. 보스가 이끄는 이 팀에서. 재밌어요, 고트라는 팀. 지금은 정말 내 팀 같아요.”

함성훈이 콧잔등을 슥슥 문질렀다.

“내년은 내년일 뿐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좋은 인연이 된다면 내년에도 우리 함께 뛸 수 있을 거야.”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딴짓했다.

입을 먼저 연 건 피시였다.

“그럼 전 조금 더 뛸게요.”

“그래. 너무 많이 뛰지 말고.”

“오케이, 보스.”

함성훈도 몸을 돌려 감독실로 향했다.

“다혈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네.”

함성훈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 * *

웨일스와의 주말 3연전 마지막 경기.

양 팀은 5회를 넘기는 동안 서로 1점도 내지 못했다.

피시는 에이스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고, 좌완 파이어볼러 구인선은 더 날카로워진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로 좌타자를 윽박질렀다.

이지성, 김인환, 유선호 세 명의 좌타자는 셋이 합쳐서 5회 동안 볼넷 하나만 얻는 수모를 얻었다.

앞뒤로 좌타자가 무력해지자 웨일스는 송석현을 철저히 피해 갔다.

고트의 클린업이 잠잠해지면 득점력이 떨어지는 건 명약관화.

팽팽한 투수전에 애가 타는 건 양 팀의 타자들이었다.

“갑자기 제구가 좀 좋아진 거 맞죠?”

김인환의 물음에 유선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좀 좋아진 거 같긴 한데, 그렇다고 엄청 좋아진 것도 아인 거 같은데.”

“인선이 형 공은 전혀 안 보여서 미치겠어요.”

“내도 돌긋다. 내는 자 공을 전혀 못 친다 아이가. 좌타자들한테는 저승사자라니까, 저승사자.”

이때 타격코치 강연태가 다가왔다.

“자 자, 모여 봐.”

강연태는 선수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인선이 투구 수가 일흔한 개야. 이 페이스면 7, 8회까지 가능해. 다들 마음이 급해. 우리 겨우 두 번 졌어. 왜 그렇게 마음들이 급해?”

선수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경기 중엔 오로지 이 경기만 생각하자. 페넌트레이스는 생각하지 마. 억지로 이기려고 마음먹으면 역효과만 나. 오늘도 봐. 인선이한테 왜 공격적으로 가는 건데? 쟤 제구 안 좋은 거 몰라? 삼진을 당하더라도 기다려서 쳐야지. 알면서 왜 자꾸 방망이가 나가는 거야?”

“죄송합니다…….”

“인선이 지금 컨디션은 좋아. 안타로 치고 나갈 생각 하지 마고 장작 쌓자. 삼진 주고 볼넷 얻자. 알았지? 타석에 바짝 붙어. 인선이 쟤 성깔이 더러워서 그렇지 몸에 맞는 공주는 거 싫어해. 기본으로 가자, 기본으로. 알았어?”

“네.”

“자, 손 모아. 하나, 둘, 셋.”

“고트, 가즈아!”

6회 초.

웨일스의 타순은 1번 타자 이재훈으로 시작되었다.

“웨일스는 타순이 좋습니다. 1번 타자부터 시작이에요.”

“이재훈 선수가 출루만 하면 피시 선수를 흔들 수 있습니다. 해마다 40도루는 기본으로 해 주는 선수예요.”

“하지만 피시 선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 웨일스 타자들이 꼼짝 못 하고 있어요.”

송석현은 피시에게 몸 쪽 공을 요구했다.

피시의 공은 가운데로 몰렸지만 이재훈이 타이밍을 놓쳐 땅볼이 됐다.

공은 그대로 유격수로 흘렀다.

“유격수가 잡아서 1루로. 1루수가 놓쳤어요! 공이 높았습니다. 1루수 김인환 선수가 점프 캐치했으나 발이 떨어지면서 세입, 세입입니다.”

“방금은 침착하게 처리하면 되는데 유격수 정영수 선수가 마음이 급했습니다. 이재훈 선수의 발이 빠르다 보니 빨리 던져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 거 같아요.”

“고트는 이재훈 선수가 2루로 못 간 게 천만다행이겠지만 발 빠른 주자를 1루에 두고 승부합니다.”

정영수가 피시와 김인환을 보며 미안하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피시는 자기 가슴을 툭툭 치면서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발 빠른 주자 이재훈 선수가 1루에, 장타력과 주력을 갖춘 김재홍 선수가 타석에 있습니다. 웨일스의 득점 루트죠? 국가 대표 외야수 두 명의 콤비 플레이가 화려하죠.”

“보통은 투수들이 발 빠른 주자가 나가면 바깥쪽 빠른 공을 던지지 않습니까. 투수들이 일부러 한 번 변칙을 섞기도 하지만 결국 바깥쪽 빠른 공 위주의 투구는 변할 수가 없어요. 김재홍 선수가 공을 잘 노려야겠죠?”

피시의 초구는 외곽의 포심 패스트볼.

-볼. 아웃사이드.

조금 빠진 공이었다.

1루 주자 이재훈이 슬금슬금 발을 놀렸다.

2구는 바깥쪽 체인지업.

김재홍은 헛스윙했고, 이재훈은 2루로 뛰었다.

파앗!

송석현은 공을 잡자마자 몸을 일으켜 공을 던졌다.

2루수가 달려오며 글러브를 내뻗어 잡았다.

이재훈이 손을 쭉 뻗어 2루 베이스를 훔치려는 순간, 2루수의 글러브가 앞을 막았다.

-아웃!

“아웃! 아웃입니다. 이재훈 선수가 도루를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타이밍은 좋았습니다. 런 앤드 히트가 걸린 거 같은데 송석현 선수의 반응이 빨랐어요.”

“리그 최고의 어깨라는 호칭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거 같습니다. 이재훈 선수가 스타트가 좋았던 거 같은데 이게 확실한 아웃이 돼 버립니다.”

“피시 선수의 퀵 모션이 조금 느린 편인데 이걸 송석현 선수의 빠른 팝 타임으로 메우네요. 이러면 피시 선수의 어깨가 다시 든든해지겠죠?”

피시가 송석현에게 엄지를 내보였다.

송석현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그렸다.

피시는 김재홍에게 중견수 플라이를 내준 후 다음 타자에겐 삼진을 잡아냈다.

마운드에서 내려온 피시가 송석현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나이스 플레이, 루키.”

“땡큐.”

6회 말.

고트의 공격은 김인환으로 시작되었다.

구인선은 몸을 풀다가 김인환이 타석에 바짝 붙자 인상을 찌푸렸다.

결과는 볼넷.

“김인환 선수가 볼넷을 얻습니다. 오늘 첫 출루네요.”

“구인선 선수를 상대로 대부분의 타자가 타석에서 조금 떨어져서 서거든요? 아무래도 구인선 선수의 제구가 좋지 못할뿐더러 공도 빠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김인환 선수가 타석에 바짝 붙어 서면서 어떻게든 나가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팀이 연패에 빠질 수 있는 타이밍에 자기 몸을 희생하겠다는 투지가 돋보이네요.”

타석에 송석현이 들어서자 고트 팬들이 들썩였다.

“아, 송석현 선수도 타석에 바짝 붙네요. 몸 쪽 공을 던지려면 던지라는 사인인가요?”

“이번 3연전 내내 송석현 선수를 피해 가던 웨일스지만 이러면 좀 난감해집니다.”

구인선의 초구는 몸 쪽 공.

송석현의 엉덩이에 공이 꽂혔다.

“……하아.”

송석현은 말 대신 방망이를 내려놓았다.

고트 팬들이 구인선을 향해 욕설을 쏟아 냈지만 구인선은 입술 한 번을 스윽 훔치는 게 전부였다.

“무사 1, 2루. 타석에는 유선호 선수가 들어섭니다.”

“구인선 선수가 볼넷과 몸에 맞는 공을 내주면서 6회 말 위기를 자초합니다.”

유선호마저 타석에 바짝 붙자 구인선은 로진백을 매만지면서 시간을 벌었다.

“내도 맞히면 그때 우예 되는지 알제?”

유선호의 말에 웨일스의 포수가 침을 삼켰다.

“아까 그건 빠진 거였어요. 정말 맞힌 건 아니에요.”

“됐다, 마.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해라. 어차피 내도 자 공 못 친다 아이가.”

포수의 사인은 바깥쪽 슬라이더.

구인선의 초구는 한참 빠졌다.

2구, 3구도 볼.

스리볼 상황에서 구인선은 볼넷을 내줬다.

“무사 만룹니다. 구인선 선수가 안타 하나 없이 무사 만루 상황에 빠졌습니다.”

“이번 타자는 최재완 선숩니다. 올해 3루를 맡아 잘해 주고 있죠? 오늘 경기에서 출루는 없지만 끈질긴 승부를 보여 줬습니다.”

포수가 마운드로 올라갔다.

“형, 괜찮겠어?”

“선호 형보다 쟤랑 하는 게 백 배 나.”

“어떻게 갈까?”

“그냥 힘으로 찍어 누르자.”

“쟤 직구를 잘 쳐. 변화구에 약하고.”

“투 스트라이크 잡기 전까지는 직구 위주로 승부하자. 저런 애한테 직구가 밀리면 안 되지.”

“자신 있구나, 형?”

“저런 애송이 정도야.”

최재완이 스트라이드를 조금 좁게 벌렸다.

이를 본 포수가 말했다.

“석현이 따라 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파워가 나오겠어?”

최재완은 답하지 않았다.

포수는 바깥쪽 빠른 공을 요구했다.

구인선이 던진 공은 한가운데였지만 150km/h가 넘는 속도로 날아왔다.

탕!

“좌중간! 뚫었습니다! 최재완의 적시타! 3루 주자, 2루 주자까지 홈인! 1루 주자까지~~ 들어왔습니다! 최재완은 2루로! 2루에서 멈춥니다! 최재완의 3타점 2루타!”

“방금은 최재완 선수가 정말 잘 노려서 쳤습니다. 간결하고 깔끔한 스윙이었어요.”

“고트가 결국 6회에 3점을 내면서 0-0의 균형을 깨네요. 고트의 클린업이 침묵하는 날에도 이렇게 득점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줍니다.”

웨일스의 송정남 감독이 맨얼굴을 두 손으로 쓸었다.

“쟤들도 프론데 송석현만 거른다고 될 일은 아니지.”

송정남 감독이 쓴 웃음을 지었다.

3득점을 지원받은 피시는 솔로 홈런 하나만 허용하며 8이닝 1실점으로 웨일스의 공격을 막아 냈다.

김정률이 세이브를 따내면서 4-1.

함성훈 감독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페가수스가 오늘 졌답니다. 3경기 차로 줄었어요.”

프런트 직원이 전달한 소식은 덤이었다.

“피시.”

함성훈이 피시를 부르자 피시가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켰다.

“오늘, 최고의 피칭이었어.”

함성훈의 말에 피시도 웃어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