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82화 (182/201)

대전 피닉스의 눈물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피닉스라 행복합니다~.

-딴, 딴, 따다단, 피닉스 홈런!

-딴, 딴, 따다단, 피닉스 홈런!

9회 말.

14-2.

2사 만루 찬스에게 경수인이 나오자 피닉스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가를 힘껏 불렀다.

필사적인 응원가에 고트 선수들도, 고트 팬들도 합죽이가 됐다.

탁!

“우익수! 우익수! 우익수가~~! 잡습니다! 설진일의 파인플레이! 경기 끝! 경수인 선수의 공이 담장을 넘지 못했습니다. 14-2. 고트의 대승입니다.”

“피닉스 팬들이 열과 성을 다해 응원했지만 아쉽게도 오늘도 피닉스는 지고 말았습니다. 잠깐 반짝 반등을 하다가 다시 8위. 피닉스 팬들의 가슴은 오늘도 아리네요.”

“그에 반해 고트 팬들은 축제 분위깁니다. 오늘 경기로 페가수스와는 1경기 차, 1경기 차로 줄었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피닉스와의 대전이 남아 있어요.”

“페가수스 팬들은 피닉스의 활약을 간절히 원하겠네요.”

“오늘 경기의 MVP는 김인환 선수가 뽑혔습니다. 오늘 경기 3연타석 홈런의 주인공이죠? 전타석 출루 기록도 세웠습니다.”

“하하, 김인환 선수, 오늘 열애설 때문에 혼쭐난 게 아닐까 싶었는데 오히려 성적이 더 잘 나왔어요. 이게 사랑의 힘인가 싶습니다.”

“고트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헐크 김인환과 잠실의 왕 송석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홈런을 마구 생산하고 있잖습니까?”

“올해 초만 하더라도 고트의 팜이 황폐화됐다고 너도나도 떠들던 때가 있었는데. 격세지감입니다. 고트의 팜에서 나온 KS포. 리그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의 듀오라고 봅니다.”

* * *

“응, 응. 알았어, 누나. 응. 누나도 힘내.”

경기가 끝난 후 숙소 안.

김인환은 화장실로 들어가 한가연과 통화했다.

송석현은 핸드폰으로 김나영과 톡을 하면서 TV를 힐끔거렸다.

“흠흠.”

화장실에서 나온 김인환이 헛기침했다.

“너도 이제 화장실 써야지?”

“통화 다 했어요?”

“어, 뭐 적당히.”

“좋겠다. 깨 쏟아지네요, 쏟아져. 누나가 되게 적극적이네요. 전화를 몇 번 하는 거예요, 흐흐.”

“그러게, 하하.”

김인환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그런 분이 통곡의 벽이었대요? 그렇게 적극적인데?”

“글쎄, 그거야 나도 뭐 잘…….”

“형의 마력인가?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런 매력?”

“에이, 그런 게 어딨냐? 그냥 뭐 연애 경력이 짧다 보니까 초반에 확 불타는 거 아니겠어?”

“형, 아까 보니까 혼나는 거 같던데, 맞죠? 세리머니 안 했다고 혼났죠?”

“……어떻게 알았어?”

“다 아는 수가 있죠. 다 겪었으니까.”

“너도?”

송석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너무 자주 하지는 마요,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니까. 딱 결정적일 때만.”

“아아, 그런 것도 생각해 둬야겠네.”

김인환이 침대에 누웠다.

송석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형, 푹 자요. 내일 홈런을 쳐야 세리머니 해서 여자 친구의 기분을 풀어 줄 거 아니에요.”

김인환은 얇은 이불을 배에 걸치곤 침대에 바로 누웠다.

눈을 감았는데도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흐흐.”

김인환은 몸을 꿈틀거리면서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고 송석현이 나왔다.

“…….”

“…….”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 말이 없었다.

송석현은 수건을 가리키곤 집어 들었다.

“수건이 여기 있었네요.”

“……그래.”

송석현이 화장실로 들어가자 김인환이 베개로 얼굴을 덮었다.

그때 다시 화장실 문이 열렸다.

“이제는 정말 괜찮아요. 마음껏 좋아해도 돼요, 형.”

“하…… 못 본 척 좀 해라.”

* * *

주중 고트와 피닉스와의 2차전.

어제의 대패에도 대전 구장 내야에는 피닉스 팬들로 가득했다.

피닉스는 선발 김민혁을 내세우며 반격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뒤로~ 뒤로~ 뒤로~ 우익수 뒤로 넘어가는 공! 김인환의 투런포! 오늘도 김인환 선수의 배트가 쉬질 않습니다.”

“이 정도면 피닉스 킬러라고 해도 되겠네요. 정말 배트가 매섭습니다. 맞으면 바로 넘어가는 거 같아요.”

“김인환 선수가 오늘도 홈런을 신고하면서 KS포의 건재함을 알립니다. 2-0. 1회부터 홈런을 허용하는 김민혁 선숩니다.”

“김인환 선수가 손으로 키스를 보내네요. 저건 세리머니겠죠?”

“저건 백 프로죠. 백 프로 세리머니죠. 김인환 선수가 많이 뻔뻔해졌네요, 하하.”

“오늘도 고트가 시원시원한 경기를 보여 줍니다. 김인환 선수 다음에는 또 송석현 선수가 들어옵니다.”

“김민혁 선수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에요. 첩첩산중. 가슴이 답답할 겁니다.”

김인환이 벤치에 들어오자마자 선수들이 발로 엉덩이를 툭툭 찼다.

“여자 친구 생겼다고 생색 엄청 낸다, 너.”

“신성한 야구장에서 연애 놀음 하지 말라고, 인마.”

“좋냐? 좋아?”

선수들의 놀림과 비꼼에도 김인환은 헤벌쭉 웃었다.

탕!

“넘어간다! 넘어간다! 넘어간다! 넘어, 갔습니다! 송석현의 백투백! 3-0. 송석현 선수도 뒤지지 않습니다. 어제 홈런을 신고하지 못한 분풀이를 여기서 하네요.”

“이게 바로 KS폽니다. 피할 수가 없어요. 승부하면 큰 사고가 터집니다.”

“송석현 선수는 세리머니로 윙크를 하네요, 하하. 김인환 선수에게 뒤지긴 싫다 이건 가요?”

“성적은 무시무시한 선수들이지만 이런 거 보면 참 어리고 귀여운 선수들이에요.”

송석현이 벤치로 돌아오자 김인환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좋겠다, 넌. 욕 안 먹어서.”

“저도 나중에 다 공개할 겁니다. 굳이 형처럼 강제 공개당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거지.”

“너 아까 그거 미션이냐?”

“형도?”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하트를 그려 달랜다. 하…… 홈런을 안 칠 수도 없고.”

“달달하다, 달달해. 좋을 때예요.”

“너는 뭐 한 10년 사귄 것처럼 말한다?”

“우리가 만난 건 10년은 넘었죠.”

탕!

“우측 담장!”

송석현과 김인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선호가 두 손을 번쩍 든 채 베이스를 돌았다.

“넘어갔습니다! 유선호의 백 투 백 투 백! KS포에서 그치는 게 아닙니다. KS 그리고 Y. 역대 최고의 클린업이라는 수식어를 증명하는 유선호! 1회부터 경기는 4-0으로 앞서갑니다!”

“고트의 클린업이 역대 최고라더니 빈말이 아니네요. 이거 뭐 화약고예요, 화약고. 기름 냄새만 맡아도 불타 버립니다.”

“유선호 선수까지 홈런을 신고하면서 고트가 오늘 최고의 출발을 알립니다. 스콜피언의 1회 공격이 가장 무섭다고 했나요? 제가 보기에 고트의 1회는 더 무섭습니다. 저 불타는 타선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유선호가 벤치로 들어오면서 선수들과 손을 마주쳤다.

마지막에 송석현과 김인환이 손을 내밀었다.

탁!

김인환과 손을 마주친 유선호가 손가락으로 김인환을 가리켰다.

“힘만 중요한 게 아이야. 테크닉. 테크닉도 중요한 거야.”

“……예?”

“힘하고 테크닉. 알았나?”

“네, 네. 알겠습니다.”

유선호가 자리를 뜨자 송석현이 물었다.

“형, 무슨 말이에요? 힘하고 테크닉이라니.”

“몰라, 무슨 말인지.”

“방금 홈런이 테크닉인가? 실투를 잘 친 거 같던데.”

마운드 위의 투수는 이미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1회 초 마운드에서 내려갈 땐 이미 투구 수만 마흔두 개.

8번 타자까지 상대한 직후였다.

피닉스의 벤치는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경수인은 말없이 거친 숨만 훅훅 내뿜었다.

웃음이 넘치는 반대편 고트의 벤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두 자릿수는 안 된다. 대가리가 깨져도 공 무조건 막아. 알았어?”

“네.”

1회 말.

고트의 마운드에는 정진오가 올라왔다.

피닉스 벤치에선 정진오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쟤 아무것도 없어! 그냥 잡아 놓고 쳐!”

“자 자! 쉽게, 쉽게 가자! 잔챙이는 잡고 가야지!”

김인환이 슬쩍 피닉스의 벤치를 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피닉스의 4번 타자 경수인이 성난 얼굴로 그라운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팡!

팡!

“투 스트라이크! 정진오 선수가 빠르게 스트라이크를 잡습니다.”

“정진오 선수의 저 폼은 쉽게 적응되는 폼이 아니에요. 좌완 투수가 높은 타점에서 공을 때려 넣는다. 그런데 코스의 높이가 하이 볼부터 로우 볼까지 다양하다. 여기서만 끝나면 타자는 높은 공을 노려서 치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정진오 선수의 주 무기는 커븝니다. 높은 공을 노리는데 갑자기 아래로 쑥 빠지는 커브가 들어오면 타이밍을 못 잡는 거예요.”

“정진오 선수의 커브가 꽤 날카롭죠? 상대한 선수들의 얘기로는 최소한 타순 한 바퀴는 돌아야 감을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저런 정통파 투수가 드물거든요. 예전에는 투수들이 극단적이다 싶은 오버핸드로도 던졌습니다. 손이 높이 올라갈수록 아래로 내리꽂는 공이 더 좋아지거든요. 커브나 체인지업의 낙차가 더 좋아지는 거죠. 지금도 그렇지만 투수의 중요한 조건은 큰 키, 높은 타점입니다. 지금이야 피네스 피처나 그라운드 볼러도 많아서 높은 타점이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높은 타점은 높은 타점만의 장점이 있어요. 저런 커브에는 더더욱 말이죠.”

“설명을 해 주시는 사이, 강영호 선수가 풀카운트 승부 끝에 삼진을 당했습니다. 삼진을 잡은 공은 커브였습니다.”

“저거죠. 저 커브. 노리는 거 아니면 치기 어려운데 투수가 하이 볼을 던져 대니 마냥 참기도 어렵습니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세 타자 연속 삼진! 오늘 정진오 선수도 물 만난 고기처럼 날을 잡은 거 같습니다. 고트의 투수와 타자 모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제 실력을 뽐냅니다.”

포수 뒷면 경기장 입구.

피닉스의 단장 김시윤이 눈을 질끈 감았다.

단장 보조 이아영이 자기도 모르고 어깨를 움츠렸다.

“상대는 5선발도 아니고 6선발인데 이렇게 발리네.”

김시윤의 말에 주변의 다른 직원들도 고개를 숙였다.

“……가자.”

김시윤이 자리를 뜨자 단장 보조 이아영도 뒤를 따랐다.

남은 직원들은 침묵을 지키며 서로의 눈치를 봤다.

2회, 3회, 4회, 5회.

회가 거듭해 갈수록 늘어나는 건 고트와 피닉스와의 점수 차였다.

카메라는 줌을 당겨 울고 있는 피닉스 어린이 팬을 찍었다.

“피닉스 선수들 정말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이 어린 팬을 울려서 되겠습니까?”

“과연 이 팀이 작년 우승 팀이 맞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피닉스는 각성해야 해요. 언제까지 이렇게 승점을 퍼 줄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가슴 뜨겁게 응원하는 팬들이 있는데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줘야죠!”

9회 말.

경수인의 병살타로 경기는 끝났다.

점수는 8-1.

카메라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던 어린이 팬을 찾았다.

어린이 팬은 아빠의 품에 시무룩한 폼으로 안겨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 고트 선수들은 숙소로 떠났다.

피닉스 선수들도 모두 떠난 자리.

경수인 홀로 경기장 한편에서 떠나지 못했다.

“뭐 해요?”

“단장님은 안 가시고 뭐 하십니까?”

“둘이 있을 땐 편하게 불러. 무슨 단장님이야?”

“그래도 단장님은 단장님이지.”

피닉스의 단장 김시윤이 그라운드로 걸어 들어왔다.

“내가 면목이 없네, 우리 단장님한테 미안해서 면목이 없어.”

“뭐, 오빠가 못하고 싶어 못했나.”

“영훈이가 없어도 쓸 만한 팀이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네.”

“우리 리빌딩 중이잖아. 내년은 더 나아질 거야. 내후년에는 더 나아질 거고.”

“내가 은퇴할 즈음에 우리 팀이 강해지려나. 후, 우승 반지라도 껴 봤으니 다행이네.”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김시윤은 꺼져 가는 라이트를 보며 말했다.

“내일은 꼭 이겨. 리그 우승은 못해도 야구 보러 오는 애들한테 일말의 희망은 남겨 줘야지.”

“그래, 그래야지.”

김시윤마저 떠난 자리.

경수인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빨리 좀 와라, 이놈의 새끼야. 보고 자퍼 죽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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