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80화 (180/201)

더블데이트

월요일 점심.

송석현과 김나영은 동네 공원에서 만났다.

“어때? 이 정도면 몰라보겠지?”

선글라스를 쓴 송석현이 의기양양하게 김나영에게 웃어 보였다.

김나영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다.

“너 진심으로 그렇게 다니면 사람들이 몰라볼 거라고 생각해?”

“눈 가렸잖아. 왜? 이상해?”

“…….”

김나영이 이마를 짚었다.

“너는 맨날 선글라스 쓰고 경기 하면서 이상한 거 못 느껴? 차라리 선글라스를 벗고 다녀. 선글라스 쓰고 야구 모자 쓰고 다니는데 누가 널 못 알아보겠어?”

“……그런가? 그럼 마스크를 쓰는 건 어때?”

“야구 모자에 선글라스에 마스크? 신고당하고 싶어?”

“그렇네.”

김나영이 송석현의 모자를 벗기고 선글라스를 벗겼다.

“차라리 이러고 다녀. 괜히 티 나게 다니지 말고.”

“차라리 이게 나으려나.”

“아니면 그냥 우리 만화 카페나 가자니까. 웬 코엑스야.”

“나 거기서 데이트 하고 싶었단 말이야. 우리도 동네 벗어나서 좋은 데도 다니고 해야지. 언제까지 동네만 배회할 거야.”

“그렇게 사람 많은데 가면 다 너 알아볼걸.”

“내가 뭐라고. 내가 야구 선수라고 광고하지 않은 이상 나를 어떻게 알아본다고.”

“너만 모를걸. 너 9시 뉴스 단골이야. 웬만한 사람들은 네 얼굴을 다 알고 있을 거라는 거 확신할 수 있어.”

“좀 알아보면 어때. 알아보라지. 나는 거리낄 거 없다구. 너는 나랑 사귀는 게 알려지는 거 싫어?”

“그런 건 아니지만 너 저번에도 스캔들 났는데 이번에도 스캔들 나면 사람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겠어…….”

“부럽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뭐?”

송석현이 한발 뒤로 물러섰다.

“일단 우리 좀 빨리 가자. 나 시간 별로 없어. 저녁에는 복귀해야 한다고. 응?”

김나영은 송석현에게 눈을 흘기다 손을 내밀었다.

“후. 그래, 가자.”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코엑스로 향했다.

코엑스에 도착한 두 사람은 서점에 들러 사진을 찍었다.

간단한 점심을 마친 후엔 영화관으로 향했다.

“커플석이…… 저기 제일 위에 있거든? 저쪽. E, F야.”

“발 안 걸리게 조심해서 가.”

두 사람이 커플석에 앉아 콜라를 한 모금씩 먹었다.

“사람이 많진 않네.”

김나영의 말에 송석현이 씨익 웃었다.

“월요일 점심인데 사람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어. 우리한테는 다행이지.”

“이 시간에 영화 보는 건 처음인 거 같네.”

송석현이 김나영의 손을 잡더니 입술을 쭉 내밀었다.

“야.”

김나영이 소리를 죽여 핀잔을 줬지만 송석현은 굴하지 않았다.

김나영은 한숨을 푹 쉬더니 송석현에게 입맞춤했다.

“헤헤.”

송석현은 헤벌쭉 웃었다.

그때 계단을 타고 커플석으로 올라오는 인형 둘이 보였다.

송석현과 김나영은 앞만 보면서 팝콘을 먹었다.

두 사람은 송석현과 김나영을 지나쳐 송석현 옆에 앉았다.

여자와 남자 모두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남자의 덩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뭔가를 얘기하더니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영화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남자가 먹거리를 사 들고 다시 올라왔다.

남자는 두 손이 자유롭지 못하자 팔로 모자챙을 위로 들어 올렸다.

“……어?”

“어?”

커플석에 다다른 남자가 멈칫했다.

송석현도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모자챙 아래의 얼굴은 송석현이 잘 아는 얼굴이었다.

“인환이 형?”

* * *

영화가 끝난 후 송석현은 김나영과 조용히 인파에 묻혀 나가려 했지만 김인환에게 붙잡혔다.

“잠깐만 얘기 좀 할까?”

김인환은 송석현을 데리고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석현아, 알지? 비밀로 좀 해 줘.”

송석현이 저 멀리 혼자 서 있는 여자를 쳐다봤다.

“형, 어떻게 된 건데요?”

“그게 그렇게 됐어.”

“그때 말한 한가연 아나운서 맞죠?”

“…….”

김인환이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와…… 형 결국.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먼저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문자 보냈어. 그게 다야.”

“저번에는 여자 친구 없다면서요. 그게 페이크였어요?”

“아냐. 그때는 정말 없었어.”

“그럼 사귄 지 얼마 안 됐겠네요.”

“일주일도 안 됐어.”

“일주일……. 대박. 형 리얼 능력자네요.”

김인환이 송석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너는? 너는 없다며? 내가 병원에서도 딱 느꼈어.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거.”

“아니에요. 그때는 친구였어요.”

“친구는 무슨. 분위기가 그렇던데 뭐. 나도 비밀로 해 줄 테니까 너도 비밀로 하는 거다. 오케이?”

“알았어요. 상부상조. 그런데 형.”

“왜?”

“정말 어떻게 사귄 거예요?”

김인환은 구레나룻을 긁적였다.

“나도 모르겠어. 아다리가 돼서 커피 한잔하자고 했는데 그때 어쩌다 보니 잘 풀려서 말이야.”

“천하의 한가연을……. 형, 욕 많이 먹겠어요.”

“나도 어떻게 된 지 실감이 안 간다. 갑자기 이렇게 풀려 버리네.”

“아무튼 축하해요.”

“그래, 고맙다. 너도 잘 놀다 가.”

“형도 데이트 잘해요.”

김인환이 한가연에게 돌아가자 한가연이 김인환의 팔짱을 꼈다.

김인환의 몸에 바짝 붙어선 영화관을 나갔다.

멀리서 지켜보던 김나영이 송석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으음, 서로 비밀 하나씩 주고받은 거지.”

“김인환 맞지?”

“응. 인환이 형이랑 인환이 형 여자 친구야.”

“내가 슬쩍 봤는데…… 한가연 같던데 아니야?”

송석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거짓말은 못하겠고. 맞아. 그런데 비밀로 하기로 했으니까 절대 어디 가서 말하지 마.”

“내가 어디 가서 말한다고. 그런데 한가연이면 유명한 아나운서 아니야? 스포츠 아나운서 중 몇 안 되는 정규직 아나운서라고 들었는데.”

“맞아. 다른 아나운서들처럼 언론 노출이 적어서 그렇지 인기는 엄청 많아. 야구 선수들 사이에선 철벽녀로 더 유명해. 그래서 신기한 거지, 어떻게 인환이 형이……. 저 형, 나보다 더한 숙맥이거든.”

“너도 좋아했어, 한가연?”

송석현이 도리질했다.

“아니. 나는 이미 임자가 있었걸랑. 한가연보다 더 어리고 예쁘고 똑똑한 미래의 내 와이프.”

김나영이 입꼬리가 씰룩했다.

송석현은 김나영의 허리를 감쌌다.

“일단 가자. 오늘 저녁 먹고 나 들어가야 돼. 시간이 넉넉하지 않네요. 너 바래다 주려면 시간 빠듯해.”

“안 바래다 줘도 돼. 나 혼자 갈 수 있어.”

“나는 혼자 보내기 싫거든요. 가자, 얼른.”

두 사람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갔다.

송석현은 김나영을 배웅한 뒤 다시 잠실로 향했다.

원래라면 경기가 끝나고 원정 도시로 바로 가는 게 원칙이지만 함성훈 감독이 월요일을 가족과 보낼 수 있게 하루를 유예시켰다.

그 덕에 화요일 원정 경기가 있는 날이면 월요일 저녁 늦게서야 선수단이 잠실로 모여 함께 이동했다.

“여어, 잘 놀다 왔는가.”

“뭐 했어? 뭐 하다 왔어?”

“니들 딴짓하다 온 거 아이제?”

선수들이 서로 장난을 치며 키득거리는 사이 김인환도 모습을 드러냈다.

송석현과 눈이 마주친 김인환이 눈짓을 보냈다.

송석현도 고개를 한번 끄덕했다.

“자 자, 타자. 얼른 타자. 오늘은 야수, 투수조 가리지 말고 편한 대로 타.”

“네, 알겠습니다!”

선수들이 탄 버스는 대전으로 향했다.

위닝시리즈 이후 피닉스와의 대결.

선수들은 잠 대신 수다를 떨었다.

버스가 막 대전 톨게이트를 들어가려던 찰나 김인환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깜짝아. 와 그라노?”

유선호의 물음에도 김인환은 안절부절못했다.

“와 그러노, 인마.”

“아, 아니에요. 저기 기사님! 제가 배가 갑자기 너무 아파서 그런데 여기서 좀 세워 주세요.”

“호텔 다 왔어. 10분도 안 걸려.”

“진짜 급해서 그래요.”

버스가 잠시 서자 김인환이 서둘러 내렸다.

“점마 저거, 뭐 잘못 먹은 거 아이가?”

“속이 안 좋나.”

버스가 숙소에 도착하자 선수들이 짐을 싸 들고 호텔로 들어갔다.

자기에는 아직 시간이 좀 일러 선수들끼리 모여 TV를 보거나 수다를 떨고 있을 무렵이었다.

막내 홍대성이 갑자기 헐, 이러더니 핸드폰을 내밀었다.

“인환이 형 기사 떴어요.”

“기사?”

기사라는 말에 선수들이 놀라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기사 내용은 열애설이었다.

“……뭐야, 이거. 잘못 나온 거 아냐?”

“한가연? 한가연?”

“뭐가 잘못됐겠지. 기사가 잘못된 거겠지.”

“인환이한테 전화해 봐, 빨리.”

김인환과 한가연의 열애설.

한가연의 SNS 비공개 사진을 공개로 잘못 체크하면서 순식간에 열애설이 퍼졌다는 내용이었다.

“인환이 형 안 받는데요.”

“아, 짜식이. 이거 이래서 아까 버스에서 내렸구만.”

“근데 이거 진짤까요? 한가연이 뭐가 아쉽다고 인환이 형이랑 사귀어요. FA 대박 맞은 선배들도 다 까였다면서요.”

“한가연 집안도 빵빵하고 자기 스펙도 빵빵해서 아쉬울 게 없거든.”

유선호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다 혀를 내둘렀다.

“이 봐라, 이 봐. 이 보이나? 공개된 사진이란다.”

유선호가 보여 준 사진은 김인환과 한가연의 커플 사진이었다.

한가연이 김인환 옆에 바짝 붙어 볼에 뽀뽀를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사진이 많았는데 대부분 한가연이 김인환 옆에 찰싹 달라붙어 행복해하는 사진이었다.

“…….”

“……대체 뭐지? 무슨 매력이 있는 거지?”

“천하의 한가연이…… 와…….”

선수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송석현은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인환이는 아직도 전화 안 받냐?”

“전화기를 꺼 놓은 거 같은데요?”

“빠르네. 이놈 오늘 숙소에 안 들어오는 거 아냐?”

유선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술 한잔하러 갈 사람 읎나?”

“…….”

“아무도 없는 기가?”

김정률이 유선호의 등을 쓰다듬었다.

“형, 사우나나 가요. 땀이나 쭉 빼고 오늘 푹 자시죠.”

“……하, 돌긋다. 이해가 안 가서 더 돌긋다. 내가 인환이보다 못하나? 우째 가는 한 방에 한가연이 같은 아랑 사귀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인환이만의 매력이 있겠죠. 형도 잘되고 있잖아요.”

“잘되면 이라겠나?”

“……잘되겠죠.”

“후, 이라다 노총각으로 은퇴할 참이다. 남들은 은퇴식에 와이프랑 아들이 와서 축하해 주는데 내는 혼자서 하게 생겼다.”

“제가 좋은 애들 있으면 꼭 소개시켜 줄게요, 형. 파이팅.”

“하.”

“사우나나 가죠, 우리. 얘들아, 우리 땀이나 쭉 빼고 잠이나 푹 자자. 어때?”

김정률의 주도로 선수들은 호텔 사우나로 향했지만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하필 공사 중.

선수 중 일부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근처의 다른 사우나로 향했다.

첨벙.

선수들이 샤워를 하고 온탕에 들어갔다.

김정률과 유선호는 사우나실로 향했다.

끼이익.

문을 열자 사우나 안에 있는 사람이 김정률과 유선호를 바라봤다.

증기가 사라지자 김정률과 유선호도 사우나 안의 사람을 바라봤다.

“니……!”

“야, 너 인마.”

사우나 안의 사람은 김인환이었다.

김인환은 두 사람을 확인하자 당황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 어, 어, 어. 저기…….”

그대 김정률과 유선호의 눈이 김인환의 얼굴에서 점점 아래로 향했다.

유선호는 고개를 더 내려 자신을 바라보더니 다시 김인환을 바라봤다.

“됐다. 가자.”

김정률이 김인환에게 말했다.

“오버하지 말고 이따 늦지 않게 들어와. 알았어?”

“네.”

김정률은 다시 한번 김인환의 몸을 훑었다.

“……역시.”

“네?”

김정률이 사우나실의 문을 닫았다.

“…….”

유선호는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김정률은 유선호의 등을 두드렸다.

“사람마다 다 매력이 있다니까요.”

“뭐꼬? 누가 뭐라 캤나?”

“형, 쟤는 사우나에 있어서 그런 거예요. 형은 냉탕에 들어갔다 왔잖아요.”

“지는. 니는 뭐 열탕에 있다 왔으면서도 그게 최선이가?”

“무슨 말씀이세요. 전 내실형입니다.”

“내도 내실은 탄탄하다, 인마.”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다 사우나를 나갔다.

김인환은 영문을 모른 채 서 있다가 자리에 앉았다.

“후, 석현이 마음을 이제 알겠네. 아이고, 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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