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78화 (178/201)

천재 (8)

2회 초.

이창훈은 첫 타자 안타 이후 병살, 삼진으로 이닝을 끝냈다.

2회 투구 수는 여덟 개.

스콜피언의 이건후 감독이 타격코치를 가까이 불렀다.

“꾸역꾸역 집어넣는 거 같으니까 볼넷 기다리지 말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네. 적극적으로. 알겠습니다.”

2회 말, 고트의 공격.

데일 예거는 송석현을 거른 후 좌타자 유선호와 승부했다.

탁!

“유격수! 유격수가 잡고 2루로, 2루에서 1루로. 6-4-3. 6-4-3 병살입니다.”

“데일 예거 선수의 저 슬라이더가 상당히 날카롭습니다. 잘못 건드리면 저렇게 배트 끝에 맞는 경우가 많아요.”

“고트는 오늘 시동이 늦게 걸리나요? 출발이 아쉽습니다.”

6번 타자 최재완은 범타.

3회 초로 넘어갔다.

“이창훈 선수가 좀 쉴 만하면 올라오고 쉴 만하면 올라오고 그러네요. 힘들겠어요.”

“공격은 길게, 수비는 짧게가 중요한데 공격이 너무 짧았어요.”

“타석에는 정대한 선수가 들어섭니다. 공수주 모두 갖춘 천재 타자죠? 올해 겨우 스물한 살인데 이미 리그 특급 타자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컨택이 좋고, 장타율도 좋고 발도 빨라서 작전도 잘하는 선숩니다. 정말 다재다능한 선수죠.”

송석현은 이창훈의 팔꿈치를 슬쩍 본 후 투수에게 사인을 냈다.

이창훈이 공을 던지자 정대한이 배트를 내려다 말았다.

-볼. 아웃사이드.

“공이 살짝 빠졌습니다. 좋은 코스였는데요.”

“정대한 선수가 잘 참았네요.”

송석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투수에게 공을 던졌다.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홈 플레이트를 손으로 털면서 시간을 끌었다.

“존 잘 보이십니까?”

“응? 아, 잘 보여.”

송석현은 심판에게 질문을 하면서 투수에게 사인을 냈다.

‘커브.’

이창훈의 커브가 존 아래로 쑥 빠졌다.

부웅.

허공을 스치는 배트. 헛스윙이었다.

-스트라이크!

“1-1. 정대한 선수가 커브에 솎았습니다.”

“이창훈 선수의 커브는 정석적이죠. 낙차와 각도 모두 좋은 커븝니다.”

공을 받은 송석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공은 체인지업, 체인지업으로 2-2.

결정구는 몸 쪽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삼진입니다. 정대한 선수에게 삼진을 뺏어 냅니다.”

“바깥쪽 승부를 집요하게 하다가 몸 쪽 높은 공. 이러면 타자는 꼼짝도 못 하죠.”

“까다로운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이창훈 선수. 역시 이게 에이스의 품격인가요?”

정대한이 물러간 후 나온 타자는 4번 타자 조양철.

이창훈은 7구 승부 끝에 삼진, 다음 타자에겐 초구 범타를 유도했다.

“이창훈 선수가 1회에 흔들린 후 2회, 3회 연속으로 호투합니다.”

“오늘 이창훈 선수의 체인지업이 춤을 추네요. 타자들이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함성훈 감독이 그제야 팔짱을 풀고 박수를 보냈다.

투수코치도 한숨을 돌렸다.

“어떻게 경기는 잘 풀어 가네요. 오늘 최고 구속이 140km/h밖에 안 되는데 창훈이가 노하우가 있어요.”

함성훈이 벤치로 돌아온 송석현을 바라봤다.

“창훈이도 창훈이지만…….”

“네?”

“아닙니다.”

이창훈은 수건을 목에 걸쳤다.

송석현이 옆에 앉자 이창훈이 주먹을 내밀었다.

툭.

송석현과 이창훈이 주먹을 맞댔다.

“갑자기 왜 사인을 바뀐 거냐?”

“저쪽에서 작전을 바꾼 거 같아서요.”

“어떻게 알았어?”

“대한 선배의 팔꿈치가 치기도 전에 조금 올라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공 하나 빼 봤죠. 반응 보니까 혹시가 역시가 됐죠, 뭐.”

“이야, 너는…… 짜식.”

이창훈이 송석현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똑똑한 새끼. 그걸 알아차린다고?”

“대한 선배가 잘 치는 건 맞는데 아직 쿠세 정리가 안 됐어요. 우리한테는 다행이죠.”

“타자 쿠세가 보이냐?”

“투수보다 타자 쿠세가 훨씬 더 잘 보여요. 투수는 자기가 자꾸 의식해서 고치잖아요. 그런데 타자는 투수한테 신경 쓰느라 정작 자기 쿠세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패턴이 있다니까요. 아까 대한 선배는 떨어지는 공을 칠 생각을 하니까 팔꿈치가 조금 올라가잖아요. 그럴 땐 아예 반대로 높은 공을 주든지 아니면 아까처럼 더 느리고 각 큰 변화구를 주는 거죠, 타이밍 못 잡게.”

“그래서 결정구는 몸 쪽 하이 패스트볼이었구만?”

“아무래도 선배님 체인지업을 신경 쓰다 보니 몸 쪽 높은 공은 아예 생각 안 했을 거 같아서 그리로 유도했죠.”

이창훈이 씨익 웃었다.

“오늘 이대로 가면 퀄스는 하겠다.”

“이제 반 왔어요. 반만 더 하면 돼요.”

“그래. 반만. 반만 더 하자. 근데 승리투수는 안 되겠냐?”

“……그게 제 마음대로 안 된다니까요.”

데일 예거는 3회 말에도 무실점.

고트의 하위 타선은 데일 예거의 날카로운 공을 공략할 수 없었다.

4회 초.

“선두 타자로 리그 최고의 6번 타자라고 불리는 조철웅 선수가 들어옵니다.”

“어느 팀을 가든 1번부터 9번까지 모든 타순에 들어갈 수 있는 타잡니다. 매년 100안타 이상 치고 있고 통산 타율도 3할이 넘는 타잡니다. 해마다 홈런을 두 자릿수로 치고 있고요.”

“좋은 타자죠.”

“그럼요. 뚜렷한 약점이 없는 타잡니다. 투수 입장에선 참 까다로운 타자죠.”

이창훈의 초구는 117km/h 체인지업.

조철웅이 헛스윙했다.

-스트라이크!

“변화구로 스트라이크 하나를 잡아내는 이창훈 선숩니다.”

“방금은…… 이야, 체인지업이 정말 느리네요. 느리지만 각도는 큰 체인지업입니다. 저 정도면 커브보다 느린 체인지업 아닌가요?”

조철웅이 헬멧을 고쳐 썼다.

제2구는 바깥쪽 바른 공.

조철웅이 공을 쳤지만 파울.

제3구는 128km/h 체인지업이었다.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 삼진! 이창훈 선수의 삼구 삼진이 나옵니다.”

“조철웅 선수가 참 끈질긴 선수거든요. 삼구 삼진 좀체 안 나오는 편인데 말이죠. 그만큼 이창훈 선수의 체인지업이 좋은가 봅니다.”

조철웅은 벤치로 돌아오면서 헬멧을 벗었다.

타격코치가 조철웅을 불러 물었다.

“저 공을 왜 못 쳐? 오늘 쟤 공 140 넘는 것도 없어.”

“타이밍을 못 잡겠어요.”

“어차피 느린 공밖에 안 오잖아. 최대한 타이밍을 잡아 두고 치면 되지.”

“……네. 알겠습니다. 다음 타석부턴 해 볼게요.”

스콜피언 벤치에선 다시 사인을 바꿨다.

침착하게 공을 고르고 기다려라.

이창훈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적인 투구로 삼진, 삼진을 잡아냈다.

“세 타자 연속 삼진! 이창훈 선수가 포효합니다!”

“절묘한 제구예요. 타자들이 배트를 내기도, 안 내기도 어려운 코스로 공이 들어가고 있어요.”

스콜피언 이건후 감독의 한쪽 눈썹이 일그러졌다.

“쯧쯧.”

고트의 반격은 4회 말부터 시작이었다.

김인환의 2타점 적시타로 3-2.

송석현을 거르고 상대한 유선호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3-3.

데일 예거는 4회에만 공 서른두 개를 던졌다.

5회 초.

9번 타자를 범타로 잡아낸 후 황기덕과의 승부.

이창훈의 136km/h 패스트볼이 외곽으로 들어왔다.

황기덕은 공 하나를 지켜봤지만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황기덕 선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공이 너무 멀어 보였나요?”

“저런 공은 어쩔 수 없죠. 타자에겐 너무 먼 공이에요.”

이창훈이 다시 똑같은 코스에 공을 던졌다.

황기덕이 스윙을 참았지만 스트라이크.

“빠진 거 아닙니까?”

황기덕이 참다못해 심판에게 물었다.

심판은 대답 대신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경기에 집중하란 신호였다.

“하.”

송석현은 기다렸다는 듯 존 안쪽으로 들어오다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결과는 삼진.

황기덕이 한숨을 푹푹 쉬면서 벤치로 돌아갔다.

“오늘 존이 너무 이상한데요?”

“판정이 왜 저러는 거야? 태평양이네, 태평양.”

스콜피언 코치와 선수들이 불만을 쏟아 냈다.

3할 타자 강균승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 바깥쪽 체인지업을 건드려 범타.

3번 타자 정대한이 떨어지는 공을 퍼 올려 2루타를 만들었으나 다음 타자 조양철이 플라이를 치며 5회가 끝났다.

“와, 돌겠네.”

“판정을 저따구로 주면 어떻게 치라는 거야?”

“저 공을 어떻게 치냐? 타석에 완전히 붙어도 배트 끝에 맞는 공인데.”

스콜피언 타자들이 하나둘 불만을 토로했다.

5회 말 고트의 무득점 이후 6회.

5번 타자 고원성은 바깥쪽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콜을 받자 타석에서 나왔다.

“빠졌잖아요.”

“뭐?”

“완전히 빠졌잖아요.”

송석현이 고개를 돌려 타자를 바라봤다.

짝다리를 짚고 심판을 노려보는 자세가 사뭇 공격적이었다.

“심판 권한이야. 왈가왈부하지 말고 들어와.”

“……하, 잘 좀 보시죠.”

고원성이 타석에 들어오며 중얼거린 말이 트리거였다.

심판이 고원성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뭐 해보겠다는 거야?”

“잘 좀 보라고 하는 거잖아요!”

“뭐? 잘 좀 보라고?”

“제대로 보라는 게 뭐 잘못이에요?”

스콜피언 벤치에서 감독과 코치가 우르르 나왔다.

코치가 고원성을 말렸지만 심판은 삿대질까지 하면서 고원성에게 다가갔다.

고원성도 이에 질세라 대거리를 퍼부었다.

“아…… 잠시 경기가 과열된 거 같습니다.”

“고원성 선수가 많이 흥분했네요. 스트라이크존은 심판의 권한입니다. 타자들은 불만이 있더라도 경기 중에 어필하면 안 돼요. 선수가 어필한다고 판정이 바뀌는 건 아니거든요. 상황에 맞게 적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고원성과 심판의 싸움은 오래지 않아 끝났다.

이건후 감독은 베테랑답게 심판에게 사과를 건넸다.

함성훈 감독은 내내 서 있다가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경기가 재개됐습니다. 동점 상황이 되면서 너무 과열됐던 거 같아요.”

“어린아이들도 보는 스포츱니다.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야죠.”

“스포츠맨십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요. 스포츠에서 스포츠맨십보다 더 중요한 게 있겠습니까?”

송석현은 바깥쪽 빠른 공만 요구했다.

존에서 조금씩 빠지는 공이었지만 판정은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로 삼진.

고원성이 이를 꽉 물고 타석에서 내려갔다.

이창훈은 안타와 볼넷을 하나씩 허용했으나 두 명을 연속 아웃 처리하면서 6회를 마쳤다.

“오늘 판정이 후하네.”

이창훈이 활짝 웃었다.

송석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쪽만 집요하게 파니까 심판도 존이 넓어진 거예요. 계속 존에 넣다 뺐다 하면 심판도 헷갈리죠. 심판도 사람인데 어쩌겠어요.”

“오늘 경기 의외로 잘 풀린다, 야.”

“스콜피언 쪽에서 흥분했어요. 아까 어필 정도만 했으면 바깥쪽 존이 조금 좁아질 뻔했는데 심판을 도발해서 심판은 곧 죽어도 계속 판정하던 대로 할 거예요. 선배님은 계속 바깥쪽에다만 던지세요. 볼을 던져도 스트라이크 주는데 뭐 하러 스트라이크를 던져요.”

“그러게 말이다. 오늘 운이 좋네.”

“운이 아니라 실력이죠. 외곽에 저렇게 꽂을 수 있는 것도 실력이에요. 그러니까 스콜피언도 자멸한 거고. 선배님 실력 덕분에 이기고 있는 겁니다.”

이창훈이 씨익 웃었다.

“지금 하는 말은 듣기 좋네.”

“진심이라서요?”

“푸하하. 그래그래. 진심이라서 더 좋다.”

한번 꼬인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고트가 1점씩 착실히 따라가는 동안 스콜피언 타자들은 이창훈의 공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스트라이크존은 조금씩 더 넓어졌고 타자들은 초구부터 억지로 공을 건드려 무너지기 일쑤였다.

경기 결과는 6-3.

마무리 김정률의 세이브로 경기가 끝났다.

“자 자, 수고했어. 모두 수고했어.”

함성훈 감독이 박수로 벤치로 들어오는 선수들을 맞았다.

이건후 감독은 주머니에 양손을 꽂은 채 벤치로 사라지는 이창훈을 바라봤다.

“야구는 잘하는 놈이 어떻게든 잘하게 돼 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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