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73화 (173/201)

천재 (3)

탕!

-아웃!

탕!

-아웃!

“이백찬 선수가 타오르던 스콜피언의 타선에 찬물을 제대고 끼얹습니다. 세 타자 연속 아웃. 마운드에 올라온 지 채 3분이 안 된 거 같은데 이닝이 끝났어요.”

“이백찬 선수의 빠른 투구 템포에 스콜피언 타자들이 낚였어요.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타격해도 되는데 도지환, 김세균 선수 모두 2구 안에 타격해서 아웃이 됐습니다.”

“이백찬 선수의 전략일까요? 바로바로 승부하는 전략이 먹혀들었습니다.”

마운드에서 내려온 이백찬이 숨을 헐떡였다.

송석현은 바로 음료수를 건넸다.

“괜찮아요?”

“어. 괜찮아. 후, 후. 괜찮아.”

이백찬은 음료수를 단숨에 비우곤 숨을 골랐다.

서일혁은 벤치로 들어오자마자 이백찬의 등을 두드렸다.

“좋더라. 던질 수만 있으면 이렇게 해 봐.”

“네, 알겠습니다.”

이백찬이 벤치에 앉았다.

송석현은 이백찬에게 수건을 건넸다.

“처음엔 적응이 힘들어요. 단거리랑 마찬가지라…….”

“그러게. 장난 아닌데? 생각할 틈이 없으니까 마음이 너무 급해.”

“형, 직구만 던진다고 생각해요. 상대의 스윙 타이밍이 빨라졌다 싶을 때 슬라이더. 투수가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면 타자는 그것보다 훨씬 더 부족해요. 생각하지 말고 던져요.”

“오케이. 알았어. 해 볼게.”

송석현이 씨익 웃었다.

“저도 컨디션이 처질 때 써먹은 방법인데 이게 의외로 잘 먹혀요. 긴장감이 확 올라가거든요.”

“난 정신없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잘하고 있다는 건 확실해요.”

고트의 3회 말은 짧았다.

스콜피언의 에이스 챔피언은 세 타자 범타 처리를 하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이백찬은 제 뺨을 툭툭 두드리곤 마운드로 뛰어 올라갔다.

“이백찬 파이팅!”

송석현의 응원에도 이백찬은 오로지 앞만 보고 뛰었다.

“후우우.”

마운드에 올라온 이백찬이 숨을 길게 내뱉었다.

첫 타자는 공 네 개로 범타 처리.

문제는 다음 타자였다.

“황기덕 선수가 들어섭니다. 오늘 컨디션 최고조죠.”

“이백찬 선수, 이제는 신중하게 승부해야 합니다. 상위 타순이에요. 스콜피언의 상위…… 던졌네요. 초구부터 직구로 윽박지릅니다.”

“오늘 이백찬 선수가 정말 마음이 급한가 봅니다, 하하.”

초구 스트라이크를 먹은 황기덕은 고개를 갸웃했다.

배트를 잡고 숨을 한번 고르자 바로 또 들어오는 공.

황기덕이 배트를 휘둘렀다.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 이백찬 선수가 슬라이더로 황기덕 선수에게 헛스윙을 이끌어 냅니다.”

“황기덕 선수가 타석에서 물러섭니다. 생각할 시간을 갖겠다는 거죠.”

황기덕은 입술을 모은 채 배트를 들어 얼굴 앞에 뒀다.

잠시 배트를 응시하던 황기덕이 타석에 들어섰다.

“이백찬 선수는 마음이 급해요. 빨리 던지고 싶어 안달이 난 거 같습니다.”

“오늘 이백찬 선수 왜 저러죠? 너무 급한데요?”

이백찬의 제3구는 포심 패스트볼.

황기덕이 스윙했다.

탁!

“파울! 뒤로 가는 파울입니다.”

“이백찬 선수의 구위는 확실히 좋아요. 구속도 빠른 편이지만 구위도 좋아요.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고트가 1라운드에서 뽑은 이유가 보입니다.”

“파울! 그사이에 또 던졌어요. 이백찬 선수, 제대로 숨은 쉬고 있나요? 숨 쉴 틈이 없는데요?”

황기덕이 손목을 돌렸다.

이백찬은 발로 마운드를 툭툭 쳤다.

황기덕이 배트를 잡자마자 이백찬은 공을 던졌다.

툭.

이백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기습 번트! 기습 번트가 나옵니다! 이백찬 선수가 공을, 공을 잡고 1루로! 세입! 세입입니다!”

“방금은 이백찬 선수가 공을 한 번에 잡지 못했죠? 저런 기본기 미스가 이백찬 선수의 실링을 낮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공도 빠르고 슬라이더도 좋지만 기본기가 참 아쉬운 선수예요. 황기덕 선수가 발이 빠른 선수지만 제대로만 잡았다면 아웃될 코스였거든요.”

“이백찬 선수가 아쉬움에 입술을 깨무네요. 1사 1루. 주자는 황기덕. 스콜피언의 필승 득점 공식이 나왔습니다.”

2번 타자 강균승이 타석에 들어섰다.

“이백찬 선수가 퀵 모션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황기덕 선수가 도루…… 또 바로 던졌어요. 스트라이크입니다.”

“이거 뭐 저희가 말할 틈을 안 주네요. 정말 타이트합니다.”

이백찬은 제2구 슬라이더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 이백찬 선수가 엄청나게 빠른 페이스를 보여 주고 있어요.”

“빠르네요. 정말 빠릅니다. 이렇게 빨라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빠르네요. 투구 템포가 왜 이렇죠? 숨이나 제대로 쉴까요?”

이백찬의 어깨가 들썩였다.

강균승이 준비를 마치자마자 또 공을 던졌다.

강균승은 파울.

황기덕은 2루로 가다 다시 1루로 돌아왔다.

“황기덕 선수도 이제 적극적으로 뛸 겁니다. 병살을 피하기 위해선 1루 주자의 센스 있는 주루가 필요해요.”

제4구도 파울.

제5구도 파울.

이백찬이 제6구로 체인지업을 던졌다.

팡.

바깥쪽으로 조금 빠진 체인지업에 강균승의 몸이 움찔했지만 스윙은 없었다.

“황기덕 선수, 도루 시도! 서일혁 선수가 쏩니다! 세입! 세입입니다! 무난하게 세입!”

“황기덕 선수, 대단합니다. 결국 도루를 하고 마네요.”

“이백찬 선수가 도루할 틈도 없이 몰아붙였지만 소용없었네요. 황기덕 선수의 발이 더 빨랐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또 득점 찬스죠? 웬만한 짧은 안타도 황기덕 선수의 발이면 바로 득점으로 연결됩니다.”

이백찬은 모자를 벗었다.

땀이 벌써 한가득이다.

팔소매로 땀을 닦은 후 로진백을 들었다.

헐떡이는 가슴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후우.”

이백찬은 로진을 털어 버리고 다시 힘껏 공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헛스윙 삼진! 이백찬 선수가 슬라이더로 강균승 선수를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강균승 선수가 속을 수밖에 없는 슬라이더였습니다.”

“이백찬 선수의 공은 참 매력적이에요. 기복은 있지만 잘 할 때는 정말 좋은 선수인 건 확실하네요.”

“하지만 아직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천재 타자 정대한 선수가 나오거든요.”

“정대한 선수는 좌타자거든요.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이백찬 선수는 우투수구요. 결정구 슬라이더의 위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어요.”

이백찬은 초구로 바깥쪽 직구를 던졌다.

정대한이 공을 쳤지만 배트가 부러졌다.

“땅볼! 땅볼입니다! 2루수 방향의 땅볼! 2루수! 2루수가…… 아! 공을 놓쳤습니다! 정대한 선수는 그대로 1루로, 어? 그사이에 황기덕 선수는 홈으로 쇄도! 2루수의 반응이 늦었습니다! 홈 승부! 홈 승부! 홈! 홈! 세입! 세입입니다! 황기덕 선수의 그림 같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아슬아슬하게 서일혁 선수의 태그를 피하면서 다시 추가 점수를 올립니다!”

“방금은 황기덕 선수의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리드를 적당히 길게 가져가다 땅볼이 나오자 순식간에 홈까지 뛰었어요. 3루가 아니라 홈으로 뛰었습니다. 부러진 배트 때문에 2루수가 움찔한 걸 곁눈질로 본 거예요. 보통 다른 주자들은 애매하니까 안전하게 3루에서 멈췄을 텐데 황기덕 선수는 3루를 밟고 가속했습니다. 이걸 득점으로 연결시켰구요.”

“황기덕 선수의 주루는 정말 역대 최고 수준이네요. 앞으로 한국에서 도루왕 타이틀은 황기덕 선수의 차지일 거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참 기세가 좋았던 이백찬 선수의 흐름이 끊기죠? 방금은 무난하게 아웃될 흐름이었는데 여러모로 운이 안 좋았어요. 부러진 배트 때문에 2루수가 수비를 제대로 못 했고, 2루 주자는 하필 황기덕 선수라 홈까지 쇄도했습니다. 정대한 선수의 센스도 좋았어요. 배트가 부러지자 당황하지 않고 1루로 뛰었습니다. 정대한 선수의 발도 빠르지 않습니까?”

“빠르죠. 상당히 빠르죠.”

“이게 스콜피언의 힘입니다. 황기덕, 정대한이라는 천재 타자 둘이 안 될 거 같은 상황에서도 기어이 득점을 해냅니다. 상대에게 흐름이 넘어갈 수 있는 타이밍에 나온 추가 점수라 꽤 커요.”

이백찬의 눈에 쌍꺼풀이 생겼다.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조양철.

정대한은 초구부터 2루를 훔치며 이백찬을 흔들었다.

“잠깐만. 타임 요청하겠습니다.”

서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운드로 걸어갔다.

이백찬은 풀린 눈으로 서일혁을 맞았다.

“백찬아.”

“네.”

“아까처럼 던져.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네.”

“템포 죽이지 마.”

“네.”

서일혁은 쓴웃음을 짓더니 이백찬의 볼을 꼬집었다.

“정신 차리고.”

“네.”

서일혁이 다시 홈 플레이트로 돌아왔다.

서일혁이 사인을 내기도 전에 이백찬이 공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몸 쪽 직구를 던지네요. 조양철 선수가 아쉬워합니다. 공을 놓쳤다는 거죠.”

“아마 바깥쪽 직구를 생각했을 텐데 허를 찔렸어요. 배터리의 선택이 좋았습니다.”

이백찬이 포수가 던진 공을 받았다.

“……공이 빠지네.”

이백찬은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다음 공은 바깥쪽 슬라이더.

조양철의 배트가 돌았다.

제3구도 슬라이더.

-스트라이크! 아웃!

“이백찬 선수가 1점을 내줬지만 스콜피언의 상위 타선을 잘 막아 냈습니다. 4번 타자 조양철 선수에게서 삼진을 뺏어 내면서 이백찬 선수가 4회 초를 끝냅니다.”

“이번 이닝은 이백찬 선수의 장단점이 모두 잘 드러난 이닝이라고 봅니다. 공을 던질 땐 확실히 타자를 윽박지르는 힘이 있는데 주자가 나가니까 견제도 안 되고 안타도 내줬습니다. 번트 수비도 아쉬웠구요.”

“하지만 아직 어린 선수 아닙니까?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주리라 믿습니다.”

“그럼요. 재능은 확실히 있는 선수예요.”

벤치로 돌아온 이백찬은 침울했다.

투수코치가 이백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야, 1점 내준 거야. 잘했어.”

“……네.”

“막을 수 있는 데까지 막아 보자. 오케이?”

“네.”

이백찬의 눈은 1루로 뛰어오는 정대한에게 가 있었다.

송석현이 이백찬 옆으로 와 엄지를 내밀었다.

“형, 오늘 공 진짜 좋아요.”

“그래, 고맙다.”

이백찬은 말과는 달리 한숨을 푹 쉬었다.

“왜 그래요? 점수 내줘서 그래요?”

“후, 아니.”

이백찬은 정대한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김인환이 송석현의 어깨를 툭툭 쳐 자기 쪽으로 불렀다.

송석현이 이백찬의 옆을 떠나 김인환에게 다가가자 김인환이 목소리를 낮췄다.

“부러워서 저럴 거야. 정대한이랑 동기에다 같은 1라운더잖아.”

“오늘 잘하고 있는데…….”

그때 타격코치가 김인환을 불렀다.

“대기 타석 준비 안 하냐?”

“네, 네! 알겠습니다!”

김인환이 송석현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질투 없는 놈이 어딨어?”

챔피언의 구위는 설진일의 배트를 부숴 버렸다.

설진일이 바뀐 배트로 챔피언의 직구를 노렸지만 플라이 아웃.

타석에 김인환이 들어섰다.

-포심. 아웃사이드.

포수가 바깥쪽으로 미트를 가져다 댔다.

투수가 힘껏 던진 공은 미트에 닿지 못했다.

쾅!

“우측 담장! 우측 담장! 우측 담장을 훌쩍, 훌~~~쩍 넘어서 장외를 넘어갑니다! 김인환의 솔로포가 터집니다! 다시 한번 추격 의지를 불태우는 고트! 4회 말, 고트의 클린업이 또 점수를 뽑아냅니다. 주자가 없어도 고트의 클린업은 점수를 낼 수 있어요!”

“김인환 선수는 잠실 장외 홈런을 무슨 동네 담벼락 넘기듯 넘겨 버리네요. 방금은 크게 힘들인 것 같지도 않았는데 초대형 홈런이 나와 버립니다.”

“스콜피언에는 황기덕, 정대한이라는 천재 타자가 있다면 고트에는 헐크 김인환이 있습니다! 황기덕 선수가 역대 최고의 주자라면 김인환 선수는 역대 최강의 거포예요. 맞으면 넘어갑니다. 챔피언 선수가 납득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습니다. 메이저리그 유망주 상위 톱 텐에 들었던 투수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타자가 김인환 선수예요.”

“아직 점수 차이가 크지만 이렇게 고트가 따라가면 경기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아직 4회거든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트에 김인환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송석현이 배트를 어깨에 멘 채 타석으로 향했다.

김인환과 송석현이 하이 파이브 했다.

“타석에는 송석현 선수가 들어섭니다.”

“황기덕, 정대한 선수 천재 맞죠. 대단한 선숩니다. 하지만 잠실에서만큼은, 아니 이번 시즌만큼은 이 선수를 빼고 천재를 논할 수 있을까요? 호사가들은 요새 이렇게 말합니다. 고트는 200억짜리 FA에 당첨된 거나 다름없다고 말이죠.”

“챔피언 선수가 자존심이 세거든요. 오늘 홈런을 맞은 타자에게 또 정면 승부를 할 수 있을까요?”

송석현이 배트를 어깨 위로 올리고 얕은 숨을 내뱉었다.

마운드 위의 투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