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72화 (172/201)

천재 (2)

황기덕이 나가자 멕킨지가 몸을 웅크렸다.

“타자는 공수겸장 강균승 선숩니다.”

“현재 최고의 2루수 중 하나죠? 수비면 수비, 타격이면 타격, 주루면 주루 어디 하나 빠지는 곳 하나 없는 만능 멀티 플레이업니다. 심지어 유격수와 3루수 수비까지 잘하는 선수예요.”

“스콜피언 최고의 공격 루트 아닙니까? 1루엔 황기덕, 타석엔 강균승. 안타 하나면 무사 2, 3루도 만들 수 있는 찬습니다.”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조합입니다.”

강균승이 배트를 짧게 잡았다.

서일혁은 초구로 몸 쪽 싱커를 요구했다.

멕킨지가 고개를 젓자 서일혁은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사인을 바꿨다.

“투수, 초구 던집니다.”

멕킨지의 손을 떠난 공이 바깥쪽을 찔렀다.

똑바로 가다 바깥쪽으로 더 휘어서 떨어지는 공,

부웅!

강균승은 헛스윙.

서일혁이 공을 잡자마자 송구할 준비를 마쳤다.

“황기덕 선수가 귀루합니다.”

“방금 체인지업은 좋았네요. 저게 바로 좌투수가 우타자에게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입니다. 멕킨지 선수의 저 체인지업은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어요. 분명 치기 전에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인데 배트를 내면 멀리 도망가 버리거든요.”

“고트가 내야 수비를 좁히네요. 병살을 잡겠다는 뜻이겠죠?”

“최고는 병살이죠. 병살을 못 잡더라도 강균승 선수가 장타력은 조금 부족하니까 내야 전진 수비는 좋은 판단입니다.”

멕킨지가 황기덕을 힐끔 쳐다봤다.

황기덕은 다리를 양옆으로 뻗은 채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긴 다리가 돋보이는 자세였다.

“투수와 포수의 사인이 기네요. 타자가 타임을 외칩니다.”

“주자에게 도루 타이밍을 안 주겠다는 얘기죠. 황기덕 선수가 2루에 가면 웬만한 안타 하나로 바로 득점입니다.”

멕킨지는 포수와 한참의 사인 교환 끝에 제2구를 결정했다.

바깥쪽 빠른 공.

멕킨지가 공을 던졌다.

탕!

“2루수 점프! 놓쳤습니다! 안타! 안타!”

“강균승 선수가 제대로 노려서 잘 쳤네요. 큰 욕심 없이 공을 밀어 올립니다.”

“주자는 3루까지. 타자 주자는 1루에 멈춥니다. 강균승 선수의 진루타.”

멕킨지가 볼을 부풀렸다.

벤치의 송석현은 한숨을 쉬었다.

“구위가 약해졌어.”

멕킨지는 3번 타자 정대한에게 3루타를 얻어맞은 후 4번 타자 조양철에게 플라이를 허용했다.

“3-0. 3-0입니다. 1회부터 멕킨지 선수가 고군분투하네요.”

“결국 황기덕 선수부터 시작됐다고 봅니다. 황기덕 선수가 1루에서 투수의 신경을 건드리다 보니 투수는 바깥쪽 공만 던지게 되었는데, 그러면 타자는 공을 예측하기 쉬워지죠. 멕킨지 선수의 공 끝이 더럽다곤 해도 어느 곳으로 올지 예측이 가능하면 그만큼 타자는 안타를 쳐 내기 쉬워지는 겁니다. 멕킨지 선수가 싱커와 커터를 자유자재로 쓰는 선수인데 오늘은 몸 쪽 공을 안 던졌어요. 빠른 발을 의식하다 보니 투구 패턴이 단순해진 겁니다.”

“혹시 오늘 계속 멕킨지 선수가 고개를 흔든 것과 관계있을까요?”

“네, 저는 있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멕킨지 선수의 공이 오늘은 그리 좋은 거 같지 않습니다. 땅볼 유도를 잘하는 선수가 멕킨지 선순데 공이 자꾸 위로 떠요. 이건 그만큼 공이 무디다는 얘기예요.”

고트의 투수코치가 감독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오늘 멕킨지가 길게 못 던질 거 같습니다.”

“오늘 올릴 투수 누구 있죠?”

“백찬이랑 진석이가 있습니다.”

“백찬이 먼저 나가고 작은 진석이는 뒤에 붙여 보죠.”

“네, 그럼 언제부터 몸 풀게 할까요?”

“일단 2회까지 지켜보고 결정하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멕킨지는 5번, 6번, 7번 타자에게 연속 안타를 맞아 한 점을 더 추가한 후 병살로 이닝을 끝냈다.

1회 초, 4-0.

멕킨지가 침울한 얼굴로 벤치로 돌아왔다.

툭툭.

용병 투수 피시가 말없이 멕킨지의 어깨를 두드렸다.

멕킨지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곤 코로 숨을 내뿜었다.

1회 말.

스콜피언에선 용병 케니스 챔피언이 올라왔다.

팡!

팡!

팡!

-스트라이크! 아웃!

“이지성 선수가 손도 못 대 보고 타석에서 물러섭니다.”

“스콜피언이 공들여서 영입한 이유가 있죠. 대학교 시절에는 유망주 랭킹 톱 텐까지 올라갔던 선숩니다. 그만큼 한국 야구팬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었을 텐데요. 마이너리그에선 곧잘 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선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스콜피언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했는데 투자한 이유를 올 시즌 여실히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고트의 마이클 피시와 참 비슷한 유형의 투숩니다. 빠른 공으로 윽박지르는 우완 투수 아닙니까?”

“한국에서 용병 투수를 영입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건 역시 구속이죠. 한국 타자들이 빠른 공에 약한 모습을 보이거든요. 반면에 메이저리그에선 빠른 공을 지녀도 성공 못 하는 선수들이 많다 보니 한국의 용병들 중에는 제구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아도 공은 빠른 선수들이 많습니다.”

탕!

“말씀드리는 순간 설진일 선수가 안타를 치고 나가네요.”

“설진일 선수가 또 초구를 쳤네요. 하하. 초구를 참 좋아하는 선수예요.”

“다음 타석은 헐크 김인환 선수가 나옵니다. 파워 하나는 역대 최고인 선수죠?”

“기술적인 면모를 떠나서 단순 힘으로 본다면 송석현 선수보다 한 수 위라고 봅니다. 그러니 송석현 선수가 잠실 장외 홈런을 날리는 게 놀라운 일이지 않습니까? 반면에 김인환 선수가 잠실 장외 홈런을 때린다면 왠지 ‘역시 김인환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하, 평범한 플라이가 될 공도 홈런이 되는 경우가 있죠. 정말 힘 하나로는 메이저리그에 가서도 상위권에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용병 투수들과 인터뷰해 보니까 메이저리그에서도 굉장히 보기 드문 파워라고 합니다.”

김인환이 타석에 들어서 숨을 골랐다.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배트는 너무 높지 않게 들었다.

챔피언의 초구는 바깥쪽 커브였다.

-스트라이크!

“허를 찔렸네요. 초구 커브로 스트라이크 하나를 가져가는 챔피언 선숩니다.”

“김인환 선수한테 초구 커브. 좋은 선택이에요.”

챔피언은 보더 라인을 따라 빠른 공과 변화구를 섞으며 풀카운트까지 몰아붙였다.

마지막 공은 체인지업.

김인환의 배트가 공을 건드렸다.

“투수가 공을 잡아 2루로! 2루에서 1루로! 아웃! 아웃입니다! 김인환의 병살타!”

“김인환 선수가 욕심을 냈어요. 차라리 삼진이 더 나을 뻔했습니다.”

“김인환 선수의 병살타로 고트의 추격이 멈추고 말았습니다.”

2회 초.

멕킨지는 9번 타자에게 볼넷을 내줬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황기덕.

멕킨지는 초구로 바깥쪽으로 도망가는 체인지업을 던졌지만, 공이 안쪽으로 몰렸다.

탕!

“우중간! 우중간을 꿰뚫습니다! 황기덕의 적시 2루타! 1루 주자가 홈까지 달리기에 충분한 안탑니다.”

“멕킨지 선수, 오늘 제구가 그렇게 좋지 못하네요. 구위도 썩 좋은 거 같지 않은데……. 제구만큼은 언제나 리그 상위권이라는 평가를 받는 멕킨지 선순데, 아쉬운 모습입니다.”

“점수는 5-0. 5-0까지 벌어집니다.”

“5점 큽니다. 4점까지는 한두 이닝만 몰아치면 따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만 5점은 쉽지 않아요. 한 경기에 5점도 못 내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투수코치가 감독에게 다가갔다.

“지금 몸 풀게 할까요?”

“그러죠. 백찬이 바로 투입할 수 있게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함성훈은 눈두덩을 매만졌다.

“저 좋은 공을 가지고도 메이저리그를 못 뚫은 이유가 있다니까.”

멕킨지는 강균승을 볼넷으로 1루로 보낸 후 정대한과 승부했다.

정대한에게는 병살을 유도했으나 4번 타자 조양철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점수는 6-0까지 벌어졌다.

2회 초가 끝난 후 멕킨지는 교체 지시를 받았다.

글러브를 벗은 멕킨지가 벤치 뒤로 나갔다.

“…….”

선수들은 멕킨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경기를 망친 선발투수처럼 벤치에서 예민한 동물은 없는 법이다.

2회 말.

선두 타자는 송석현.

챔피언은 초구부터 빠른 공을 몸 쪽에 하나 찔렀다.

팡!

-스트라이크!

“챔피언 선수가 과감하게 몸 쪽으로 공 하나 찔러 봅니다.”

“승부하겠다는 얘기죠. 챔피언 선수도 구위로는 어디 가서 지는 선수는 아니거든요.”

투수와 포수가 사인을 교환했다.

포수는 체인지업을, 투수는 빠른 공을 원했다.

투수가 원하는 건 힘 대 힘.

메이저리그를 밟아 봤던 투수로서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루키를 피해 가는 건 쉬이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포수 구승철은 소리 없이 콧바람을 뿜었다.

사인을 바꿔 떨어지는 커브를 요구했지만 투수는 또 고개를 저었다.

“…….”

결국 포수는 투수가 원하는 사인을 냈다.

바깥쪽 빠른 공.

챔피언이 힘껏 공을 던졌다.

최고 구속 158km/h

송석현의 골반이 돌았다.

배트는 더 빨리 돌았다.

공은 생각보다 더 멀리 날았다.

“좌측 담장~~~~~!”

고트 팬들이 벌떡 일어섰다.

하늘 높이 솟구친 공이 관중석 상단, 먹거리를 사던 팬들 사이로 떨어졌다.

“넘어갔습니다! 송석현의 솔로포! 송석현이 챔피언을 상대로 솔로포를 신고합니다. 고트의 첫 득점이 홈런이네요. 점수는 6-1. 5점 차로 고트가 줄였습니다.”

“방금은 바깥쪽에 잘 들어간 공이었습니다. 거의 160km/h에 가까운 공이었는데 송석현 선수의 레이더망은 피해 가지 못했어요. 제대로 스위트스폿에 맞았네요.”

“챔피언 선수가 화가 많이 나나 봅니다. 얼굴이 굉장히 붉어졌네요.”

“자기 자신은 잘 던진 공인데 타자에게 맞게 되면 허무하죠. 실투라면 운으로 치부하겠지만 저런 공이 안타가 됐는데 어떻게 운으로 치부하겠습니까? 저건 실력이거든요.”

송석현이 홈으로 돌아와 유선호와 주먹을 부딪쳤다.

다음 타자 유선호는 삼진.

다음 타자도 삼진, 삼진.

경기는 3회로 넘어갔다.

“고트의 추격이 1점에서 끝났습니다. 챔피언 선수의 한 이닝 세 타자 삼진은 대단했어요.”

“챔피언 선수의 공은 쉽게 공략하기 힘듭니다. 높은 타점에서 나오는 빠르고 강한 공. 어떤 타자도 부담스러워하죠.”

“고트가 투수를 바꿨네요. 멕킨지 선수를 벌써 내렸습니다.”

“아, 이백찬 선수가 나오네요. 최근에는 가비지 이닝을 맡아 주고 있죠. 공은 빠르지만 아직은 미숙함이 보이는 선숩니다. 이제 프로 2년 차니 당연한 일이죠.”

“작년 최대어 중 하나였죠? 구속은 최대 153km/h가 나온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140km/h대 후반에 그치고 있지만 제구력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네요.”

이백찬이 몸을 풀었다.

팡!

팡!

서일혁이 이백찬의 공을 받으며 엄지를 추켜올렸다.

“공 좋아. 이대로만 던져.”

선두 타자는 조철웅.

스콜피언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했다.

“스콜피언의 강한 6번 타자죠. 6번 타자라고 쉽게 보면 안 됩니다. 다른 팀에선 클린업에 들어가도 무방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잘 치고 멀리 치는 선숩니다.”

팡!

-스트라이크!

“말씀드리자마자 이백찬 선수가 바로 승부에 들어가네요. 바깥쪽 빠른 공이었습니다.”

“템포가 상당히 빨랐네요.”

팡!

-스트라이크!

“공을 거의 받자마자 던졌어요. 조철웅 선수가 타석에서 물러섭니다. 당황했어요. 이렇게 빨리 승부할지 몰랐다는 거죠.”

조철웅이 타석에 들어서자 바로 또 공이 들어왔다.

조철웅은 스윙했고 공은 바깥쪽으로 휙 빠져나갔다.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삼구 삼진! 이백찬 선수가 슬라이더로 삼진을 잡습니다.”

“이백찬의 빠른 템포에 조철웅 선수가 말렸어요. 직구, 직구, 슬라이더. 단순한 조합인데 투 스트라이크 이후 마음이 급해진 게 원인인 거 같습니다.”

“이백찬 선수의 전략적 선택이었을까요? 어려운 타자를 생각보다 쉽게 잡아냅니다.”

이백찬이 숨을 골랐다.

송석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페이스 좋아요. 그대로 던져요.”

이백찬이 송석현을 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했다.

숨은 차도, 마음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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