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우리를 막을 수 없다 (1)
[송석현의 빈자리, 메울 수 있을까?]
[고트. 4위를 지킬 것인가 뺏길 것인가?]
[잠실의 왕 없는 잠실 경기, 고트 또 위기]
함성훈이 스포츠 신문을 접었다.
감독실에 모여 있던 코치들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석현이 하나 없다고 아주 쌩난리 굿판이네요.”
“그러게. 난리 부르스야, 난리 부르스.”
“우리 안되는 거 좋아하는 애들이 너무 많은 거 같아.”
함성훈이 피식 웃었다.
“그만큼 우리가 주목을 받고 있다는 뜻이잖습니까. 석현이도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으니 어쩔 수 없죠. 지금 우리 팀에서 석현이 말고 전국구 스타로 꼽을 사람…… 마땅치 않잖아요?”
“음.”
“인환이나 선호는 괜찮지 않나요?”
“인환이는 아직 스타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선호도 잘하긴 잘해도 실력에 비해 인지도는 부족하잖습니까. 꾸준히 잘하는 거, 인지도엔 별 도움이 안 되잖아요?”
“어쩌다 우리 팀이 석현이 원맨팀이 됐는지 원.”
“석현이라도 이만큼 해 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일단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감독님, 석현이가 잘해 주고 있지만 이렇게 석현이만 띄워 주면 팀 케미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함성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석현이가 굴러들어 온 돌이라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을 때의 얘기죠. 서울 토박이, 고트 프랜차이즈 스타, 스무 살 막내, 주전 포수, 성실한 성격. 석현이 질투할 사람이 어딨습니까? 오히려 지금처럼 석현이 원맨팀으로 인식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좋은 거예요. 객관적으로 우릴 판단할 수 없잖습니까? 선입견 그거, 무서운 거예요.”
투수코치가 말했다.
“그런데 이번 스콜피언 3연전 괜찮을까요? 석현이 빠진 것도 빠진 거지만 천운이랑 진오를 또 연달아 올리시는 건 좀 아까워 보이는데요……. 결국 6선발 아닙니까? 월요일까지 쉬는 걸 감안하면 7선발입니다. 우리 팀 사정에는 이것도 사칩니다. 차라리 진오를 불펜으로 옮겨서 전력을 극대화시키는 게 어떨까요?”
함성훈은 침음을 흘렸다.
“지금 우리 팀이 문제없이 순항한다고 보세요?”
“네?”
“연패 끊고 겨우 2승입니다. 창훈이나 민석이가 언제 또 컨디션이 떨어질지는 아무도 몰라요. 불펜 투수를 선발로 올리는 것보단 선발투수를 당겨 쓰는 게 훨씬 쉽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올 시즌 들어 거의 쉬지 못한 거 아세요? 취소된 경기가 없었어요. 제가 세어 보니 딱 3경깁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렸는데 우리 팀만 겨우 3경기 취소됐어요. 선발이고 불펜이고 과부하가 많이 걸려 있어요. 지금은 임시방편이에요. 2~3주 더 상황을 봐 가면서 창훈이랑 민석이가 괜찮으면 천운이나 진오 중에 하나를 불펜으로 돌리고 안 좋은 애 있으면 교체해야죠.”
투수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마음이 급했습니다, 요새 불펜도 많이 부족한 거 같아서…….”
“원래 불펜이야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불펜 아직 버틸 만합니다.”
“만성이나 석현이, 환윤이라도 있었으면 로테이션이라도 돌릴 텐데…….”
함성훈이 대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수술시키자고 강행해서.”
“아닙니다. 그런 말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순리대로 해야죠. 아무리 운동선수가 부상을 달고 산다지만 아프면 쉬게 하고 다쳤으면 고쳐야죠. 환윤이는 내년이면 올라올 거고, 만성이나 석현이는 재활이 빠르게 잘 되고 있다 하니 늦어도 내후년에는 올라올 겁니다.”
“내후년……. 후, 머네요, 멀어.”
“만성이나 석현이나 이제 서른 줄입니다. 욕심내서 당겨 쓰면 1~2년 후에 은퇴할 겁니다. 하지만 그 1~2년 참고 기다리면…… 음…… 뭐 나이가 있으니 1년도 못 뛸 수 있겠지만 3년, 5년도 뛸 수 있습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고트, 여러분의 팀입니다. 여러분이 아껴 주셔야 튼튼한 팀이 되죠.”
코치들이 헛기침하며 고개를 숙였다.
“자 자. 스콜피언 3연전 미팅 시작하죠. 선수들이 출근하기 전에 우리가 잘 숙지해야 하지 않겠어요?”
“네, 먼저 오늘 경기에 나올 강구일 공략법부터 말씀드리자면…….”
* * *
송석현 없는 3연전.
송석현은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에 앉아 있는 게 어색했다.
“다시 백업 시절로 돌아간 거 같네요.”
“편히 쉬고 있으려니 별생각을 다 하네.”
김인환은 송석현의 발을 툭툭 쳤다.
“그냥 집에서 쉬지 왜 나왔어?”
“회사원이 출근은 해야죠.”
“회사원이세요?”
“직장 다니면 회사원이죠, 뭐.”
“어차피 경기도 못 나오면서.”
“승리 토템으로 생각하세요, 그럼.”
“아하, 승리 토템? 그거 나쁘지 않네.”
김인환이 송석현의 코를 만졌다.
“아들 낳게 해 주세용~.”
“형, 애 생겼어요?”
“농담, 농담. 어우, 재미없어.”
“저도 농담, 농담. 어우, 진지해.”
송석현은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이내 시무룩해졌다.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경기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심정이란.
송석현은 침울해하자 불쑥 음료수를 건네는 손이 있었다.
“이거 한잔해. 경기를 보는 것도 은근 체력이 필요한 일이거든.”
“아, 감사합니다, 선배님.”
음료수를 건넨 건 조지호였다.
“제가 경황이 없어서 축하 못 드렸습니다. 끝내기 홈런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그런 거라도 없으면 내가 여기서 밥 먹고 살겠어? 가끔 그렇게 뜬금포로라도 터뜨려야 안 잘리고 버티는 거지.”
“제가 뒤늦게 하이라이트로 봤는데 홈런 죽이던데요. 멋졌어요.”
“그거 정타도 아니었어. 솔직히 나도 아웃인 줄 알았거든.”
“정타가 아닌데도 넘어갔다는 게 더 놀라운 일 아닌가요?”
“놀랍기는, 잠실 장외를 뻥뻥 넘기는 네가 더 놀랍지. 크크. 어떻게 하면 너처럼 칠 수 있는 거냐? 뭐 좋은 거라도 먹냐?”
“비법이라는 게 있으면 저도 좀 배우고 싶어요.”
“에이, 그러지 말고 좀 알려 줘 봐. 노하우는 있을 거 아냐.”
“노하우요? 음…….”
송석현은 손가락을 들었다.
“일단 뭐든 일을 하는 건 다섯 단계잖아요. 목표를 세운 다음에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뭐가 문제인지 분석하고, 보완하고. 아, 네 단계구나. 목표, 계획, 실행, 피드백. 목표를 먼저 잘 세워야죠.”
“목표? 목표야 야구 잘하는 거지.”
“그건 목표가 아니라 그냥…… 음…… 그러니까 목표는 구체적인 수치를 말하는 거예요. 타율을 1푼 올리겠다든지, 출루율을 1푼 올리겠다든지 뭐 그런 거죠.”
“그러면 나는 타율이지. 타율 2할 5푼만 돼도 소원이 없겠다.”
“선배님은 왜 2할 5푼을 못 친다고 생각하세요?”
“나?”
조지호가 눈동자를 위로 올렸다.
“선구안도 별로 안 좋고, 컨택도 별로고 그러니까?”
“너무 광범위한데……. 예를 들어 가장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거 뭐 있어요?”
“변화구에 약한 거? 빠른 공은 나름 치거든.”
“그러면 그거 먼저 시작하면 돼요. 가장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나면 또 부족한 부분이 나오거든요. 계속 그렇게 부족한 부분을 메우다 보면 저절로 실력을 전반적으로 향상되는 거죠, 뭐.”
“아니 그래서 변화구에 약한 걸 고치려면 어떡해야 하는데?”
“변화구면 어떤 변화구에 약하세요? 바깥쪽 떨어지는 공? 커브?”
“둘 다?”
“그 중에 하나를 꼽아야죠.”
“그럼 역시 바깥쪽 떨어지는 공이지.”
“그럼 답은 간단하죠. 타석에 붙어서 치세요.”
“에엥? 뭐야, 그게. 그러면 몸 쪽 공에 약점이 생기잖아.”
“약점은 당연히 생기죠. 하지만 저울질을 하는 거예요. 몸 쪽 공을 버리고 바깥쪽을 노리는 거랑 바깥쪽에 약점을 그대로 가져가는 거. 솔직히 선배님이 타석에 바짝 붙어 있으면 웬만한 투수들 몸 쪽 공 못 던질걸요. 한국에선 더더욱 몸 쪽 공을 잘 못 던지죠. 그만큼 제구 좋은 선수도 많지 않고, 또 다들 아는 사인데 맞히면 또 그렇잖아요.”
“……그런가?”
“우선 몸 쪽 공을 버리고 바짝 붙어서 보세요.”
“그러다 몸 쪽 공이 공략당하면 다시 떨어져서 치고?”
“안 되죠. 그러면 기존 약점을 다시 공략당하는 거잖아요. 그럴 땐 스탠스를 조금씩 열거나 배트를 더 가벼운 거로 쓸 수도 있고, 인앤아웃 스윙으로 몸 쪽 공 그라운드에 떨구거나 아예 확 당겨서 파울로 만들 수 있죠. 방법은 많아요. 우선 가장 약한 부분에 집중한 다음에 매일 개선해 나가는 거예요. 목표라고 해도 거창한 게 아니에요. 내 가장 취약점을 어떻게 보완할 건가? 그러면 저절로 계획이 생기죠. 계획이 생기면 실행해야 하고, 하다 보면 장단점이 보이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고. 그거 반복이에요. 매일 경기 끝날 때마다 복기하는 거죠. 내 가장 취약점이 뭘까?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 이렇게 보완한 게 맞나?”
조지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우, 머리 아파. 그렇게까지 야구를 해? 안 힘들어?”
송석현은 눈을 깜박거렸다.
“우린 프로잖아요.”
‘프로’라는 두 글자에 조지호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프로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어요?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처럼 코치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세상도 아니고, 자기가 알아서 자기를 코칭해야죠.”
“그……런가?”
“모르겠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어쩌다 나가리가 돼서 혼자서 계속 뭘 해 왔거든요. 그러다 이게 인이 박여서 그런가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건데……. 뭐, 사람마다 스타일이 있으니까요.”
조지호가 생각에 잠겼다.
송석현은 음료수를 한 통 다 비우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송석현이 떠난 벤치는 조용했다.
송석현의 얘기를 들은 건 조지호만이 아니었다.
“……쩝.”
조지호가 입맛을 다셨다.
내야 멀티 플레이어 정백선이 조지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앞으로 우리도 잘하면 되지, 뭐. 안 그래?”
“후, 그러게요.”
조지호가 벤치에 몸을 기댔다.
“괜히 허송세월한 거 같네…… 하하.”
* * *
송석현 없이 스콜피언 3연전.
정천운, 정진오, 피시로 이어지는 5선발, 6선발, 1선발.
선발 라인업이나 타선의 무게감 모두 약해졌지만 결과는 남달랐다.
첫 번째 경기는 역전패를 당했지만 정천운이 완투를 하면서 이닝 이터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두 번째 경기는 정진오가 112구 완봉으로 1-0 승리.
세 번째 경기는 피시가 7이닝 무실점 괴력투로 9-2 승리를 이끌었다.
2승 1패, 위닝시리즈.
2위 팀 스콜피언을 맞아 2승을 챙기며 고트는 단독 3위에 올랐다.
팀이 상승세에 오르자 함성훈은 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배트를 잡을 수 있게 된 송석현을 폭스전 원정에 데려가지 않았다.
아직 미트를 잡을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덜됐으니 주전 포수로도 완벽한 컨디션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지나친 자신감이 아니냐는 외부의 평이 많았지만, 함성훈은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부산 원정 주말 3경기.
고트는 무려 3연승을 거두면서 새로이 5연승을 이어 갔다.
모든 건 결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함성훈이 송석현을 뺀 건 치밀한 계산을 통한 과감한 결정으로 평가되었고, 그라운드의 제갈량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폭스전 3연승.
단독 2위.
다음 경기도 부산 주중 3연전이었다.
폭스는 3연패 후 또 고트와 맞붙게 되면서 대진운을 저주했다.
무엇보다 가장 껄끄러운 건 송석현이 복귀한다는 사실이었다.
* * *
복귀 첫날.
함성훈이 송석현을 맞았다.
“미트 쥐는 거는 어때? 괜찮아?”
“네, 전혀 문제없습니다. 멀쩡합니다.”
“다행이네. 병원에서도 코치들도 문제없다고 한 얘기는 들었어. 팔 보여 줘 봐.”
“여기…….”
“아우, 아직 멍이 심하네. 붓기도 다 안 빠졌고.”
“그거야 야구공에 맞아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경기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이 정도면 아직 조심해야겠다. 일단 미트 쥐는 건 조금 더 미루자.”
“네? 저 괜찮은데요?”
“팔뚝 이런 데는 대근육이 아니라 근육량이 많이 부족해. 140km/h가 넘는 공을 많이 받다 보면 팔에 무리가 생길 수 있어. 그럼 회복도 더딜 거고. 마음 같아서는 더 쉬게 해 주고 싶지만 그건 여건상 어렵고. 일단 지타로 나가자.”
“그럼 유선호 선배님이…….”
“일단 좌익수로 보낼 거야. 안 그래도 저번 주부터 연습시켰어.”
“……만세 수비로 유명하지 않나요?”
“일단 무조건 뒤로 가라고 해 놨어. 후진 수비해야지.”
“될까요……?”
“본인도 수비하는 거 좋아해. 최악의 참사만 아니라면 유선호의 공격력을 믿고 가야지.”
“그냥 제가 포수하겠습니다.”
“안 돼. 넌 빨리 낫는 게 최우선이야. 찜질 잘하고 왼손 아껴 써. 알았지?”
감독의 방에서 나온 송석현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사직에서 좌익수 폭탄……. 후, 무섭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