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59화 (159/201)

팀 고트 (5)

“음냐음냐.”

송석현의 집.

송석현은 입을 헤벌리고 자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는 몰라도 연신 손을 허우적거렸다.

“아니, 벌써 이러면 안 되는…….”

송석현이 몸을 뒤척였다.

“싫은 건 아닌…… 헤헤. 나도 좋지.”

입에서 침이 나오는 줄도 모르고 잠을 자던 송석현의 잠을 깨운 건 한 통의 전화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웬만하면 귀를 막으려고 했지만 진동 소리가 요란했다.

혹시 나영인가 싶어서 핸드폰을 잡았다.

“뭐야……?”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여보세요.”

-그래, 뭐 하냐?

“네, 선배님.”

전화를 건 사람은 한민석이었다.

“저……는 자고 있었는데요.”

“그래……?”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송석현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시 36분.

아직 다들 자고 있을 시간이다.

송석현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송석현은 세수로 잠을 쫓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선배님. 무슨 일 있으세요?”

-일어났냐?

“네. 선배님 목소리가 좀 안 좋은데 감기라도 걸리셨어요?”

-……그래. 몸살 같다.

“네?”

-놀라긴. 조금 전에 수액 한 방 맞았다.

“갑자기 웬 몸살이에요?”

-어제부터 몸이 으슬으슬하더니만 몸이 영 아니네.

“그럼 오늘 경기 하실 수 있겠어요?”

-모르겠다……. 그래서 고민 중이야, 어떻게 해야 할지. 다들 자고 있을 거 아니냐.

송석현은 입술을 쭈삣거렸다.

나는 안 자나?

“너는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전화 걸어 봤어. 괜히 깨워서 미안하다, 인마.”

-아니에요. 곧 일어날 참이었습니다.

“하, 대체 선발 내세울 사람도 없잖아. 뛰어야겠지?”

-선배님, 컨디션 많이 안 좋으세요?

“어깨는 올라가는데……. 음, 오늘 새벽까진 39.8도였거든.”

“그거 심각한 거 아니에요?”

-지금은 열 내렸어. 37도까지.

“음…… 그러면 제가 그리로 갈게요. 거기 병원이 어디에요?”

-여기? 네가 온다고?

“어차피 일찍 일어나서 겸사겸사.”

-올 필요까지는 없는데…….

“지금 채비해서 나갈 테니까 문자로 보내 주세요.”

* * *

“잠은 주무셨어요?”

송석현이 본 한민석은 쌍꺼풀이 눈만큼 커져 있었다.

“조금. 한 2시간 잤나? 아까 수액 맞고 좀 잔 거 같다.”

“다른 데는 괜찮으세요? 어디 쑤시거나…….”

“다 쑤시지. 그런데 신기하게 어깨는 괜찮네.”

한민석이 어깨를 휙휙 돌렸다.

“신기하단 말이지. 어깨가 안 올라가면 얄짤 없이 쉬려고 했는데 어깨는 또 올라가…… 하.”

“병원에선 뭐래요?”

“쉬라고 하지. 감기 몸살이라고 좀 쉬래.”

“경기 나간다는 말은 했어요?”

“물어봤는데 쉬래. 무리하지 말고.”

“그래요…… 음…….”

한민석이 제 머리를 툭툭 쳤다.

“괜히 오버한다고 새벽까지 운동했더니 컨디션만 망치고. 하, 망했어. 진짜 죽도 밥도 안 됐어.”

“진전은 좀 있으셨어요?”

“진전? 아픈 거 말고 진전이 있나.”

“새벽까지 운동하신 거 보면 뭐 변한 게 있으니까 하신 거 아니에요?”

한민석은 코를 찡긋했다.

“네가 말한, 앞으로 끌어당겨서 치는 느낌이 뭔지는 알겠어. 컨디션 좋을 때 공 꽂아 버리는 그때 그 느낌이잖아. 그치?”

“네, 컨디션 좋으면 공이 쭉 하고 날아가는 기분이 아니라 갑자기 ‘팡!’ 하고 미트에 꽂히는 기분이죠.”

“그래, 그거. 너도 투수를 해 봤으니 아네.”

한민석이 갑자기 투구 자세를 취했다.

“내가 그동안 도루 신경 쓴다고 너무 어깨를 움츠리고 쫄아 있었거든. 그러다 보니까 뭔가 밸런스가 안 맞은 거지. 밸런스가 안 맞는데 세게는 던져야 하니까 밸런스가 더 안 맞아지고. 이번에 다시 연습해 보니까 뭔가 예전 느낌이 오더라고. 그동안 너무 밀어 던졌던 거지. 밸런스 찾는 느낌이 나니까 너무 오버 트레이닝 했어. 이 여름에 감기 몸살 걸릴 줄 누가 알았냐? 하.”

“그러면 진전은 있었던 거네요?”

“어, 이번에 확실히 진전이 좀 있었어.”

“그래요…….”

송석현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한민석은 송석현의 얼굴을 살폈다.

“왜?”

“선배님, 제 사견이지만…… 이럴 때 공 한 개라도 던져야 그 감이 유지되는 거 아시죠?”

한민석의 이마에 석 삼 자가 새겨졌다.

“등판하라고?”

“한 타자만 잡고 내려가도 되니까 일단 던져 보는 게 어떠세요?”

“고작 한 타자 잡으려고 경기를 뛰란 말이야?”

“한 타자만 잡는 게 아니죠. 그게 팀을 위해서도 나쁜 일은 아니에요.”

팀이라는 얘기에 한민석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가?”

“생각해 보세요. 선배님이 정말 한 타자만 상대하다 내려간다면 위장 선발이나 다름없잖아요. 하지만 선배님이 아파서 내려간다면 페가수스에서 뭐라고 하겠어요? 그리고 선배님은 감을 찾는 데 도움이 돼서 좋고, 오늘 대체 선발은 아웃 카운트 하나라도 아껴서 좋죠.”

한민석이 팔짱을 꼈다.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결정은 선배님이 하시는 거겠지만, 몸살까지 나면서 감을 잡으셨는데 기회가 아까워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음.”

한민석의 고민이 길어지자 송석현이 나섰다.

“일단 밥 먼저 드시고 코치님한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는 게 어떠세요? 코치님이 판단하시는 게 더 빠르잖아요.”

“그럴까?”

“네, 일단 밥부터 든든하고 먹고 생각해 보시죠.”

한민석은 자신이 잘 아는 집이 있다며 점심부터 해물탕 대짜를 싹 비워 냈다.

“밥을 먹어서 그런가 몸이 좀 나은 거 같네.”

“일단 출근하시죠. 감독님하고 코치님한테 상의해야죠.”

두 사람이 출근했을 땐 이미 함성훈은 경기장에 나와 있었다.

한민석의 설명을 들은 함성훈은 감독실 문을 가리켰다.

“민석아, 빨리 나가서 조금이라도 더 자고 와. 오늘 훈련 다 빠져도 좋으니까 경기 시작 1시간 전에만 와라. 알았지?”

“훈련을 다 빼도 되겠습니까?”

“일단 자. 자고 체력 채우고 와.”

“감사합니다, 감독님.”

한민석이 먼저 자리를 떴다.

송석현도 자리를 뜨려는데 함성훈이 붙잡았다.

“민석이가 너한테 전화를 했다고?”

“네, 저 자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대뜸 몸이 아프다고 해서요.”

“그래…….”

함성훈이 피식 웃었다.

“틱틱거리더니 그래도 포수라고 너한테 의지하는 면이 있었나 보네.”

“네? 의지요? 에이, 설마요.”

“그게 아니라면 너한테 먼저 전화할 리가 있냐. 일혁이도 있을 텐데.”

“그거야 제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니까…….”

“투수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기적인 존재야. 자기가 주인공이지. 일혁이가 자고 있다고 전화를 안 걸었겠어? 아픈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어딨겠어? 네가 생각나서 전화한 거지.”

송석현은 눈알을 굴리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뭔가 좀 으스스한 기분인데요?”

“나쁜 거 아니야. 뭐가 으스스해? 그만큼 너를 심적으로 의지한다는 얘긴데.”

“그런 얘기 맞겠죠?”

“그럼 민석이가 너한테 관심이라도 있을까 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하하, 좋은 거야, 좋은 거. 투수를 포수를 신뢰한다는 건 좋은 거지. 저 고집불통이 언제 저렇게 유순해졌는지 모르겠네. 신언이랑 있을 때도 데면데면했는데 말이야.”

“그거야 신언 선배도 성격이…….”

“칼 같지. 공사 구분이 칼 같아. 영 자기 곁을 안 내주는 타입이긴 해.”

“그래도 정말 좋은 선배님이십니다.”

“알아.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프로 의식이 넘치는 친구지. 그래도 사람 일이잖아. 곁을 안 주는 친구한테 마음을 터놓을 순 없잖아. 프로 의식도 중요하지만 야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야. 실력도 중요하지만 유대감도 있으면 좋으면 좋지, 더 나쁠 건 없잖아.”

함성훈이 다시 책상으로 눈을 돌렸다.

“너도 눈을 좀 더 붙이든가 좀 쉬어. 일찍 나왔잖아.”

“네, 알겠습니다.”

송석현이 나간 후 함성훈은 감독실 문을 쳐다봤다.

“다음에 올 감독은 좋겠어. 완성형 송석현이 포수라……. 헛짓거리만 안 하면 무조건 우승 후본데 말이야. 아쉽다, 아쉬워.”

* * *

연습 때부터 한민석이 보이지 않자 선수들이 수군거렸다.

한민석이 감기 몸살에 걸렸다는 소식은 상대 팀 페가수스에까지 금세 번졌다.

“몸살?”

“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링거 맞았답니다.”

“그런데 선발로 올라온다고?”

“네, 일단 강행하는 거 같습니다.”

“어쩌면 싱겁겠는데……. 저기 불펜 몇 명 남았는지 리스트 가져와 봐.”

“네.”

리스트를 확인한 페가수스 감독 최성연이 씨익 웃었다.

“이거 원. 성훈이가 불 지르지만 않으면 무조건 이기겠어. 쟤들도 불펜 사정이 별로 안 좋네, 안 좋아.”

“폭스전에서 불펜을 많아 써서 오늘 경기에 올라올 선수는 한 세 명 정도가 맥스일 거 같습니다. 김정률 빼곤 둘 다 최근 부진했구요.”

“좋아, 좋아. 오늘 실수만 하지 말자고.”

페가수스의 연습이 끝날 때쯤에야 한민석이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한민석을 본 고트 선수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얼굴이 좀 부었네.”

“잠을 많이 자서 이런 거야, 안 자서 이런 거야?”

“원래 얼굴이 오늘내일해서 이렇게 봐도 모르겠네.”

“평소에는 오늘내일인데 지금은 임종 전 수준인데?”

선수들의 농담에 한민석이 빽 소리를 질렀지만 선수들을 키득거리기만 할 뿐 무서워하지 않았다.

경기 중이 아니라면 한민석은 너그러운 편이었다.

“아픈 사람 놀리면 좋냐, 이것들아?”

“그러게 누가 아프래?”

“어쭈? 야, 이창훈, 너까지?”

정리는 유선호 담당이었다.

“스읍, 너 인마. 우리 창훈이한테 그러만 안 돼.”

“……네? 우리 창훈이요?”

이창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됐어.”

“뭐야, 이 커넥션은?”

“어이, 그래서 컨디션은 괘안나?”

한민석이 뒷목을 조물조물했다.

“미열은 있는데 그거 말고는 괜찮은 거 같아요.”

“그라몬 됐다. 운동선수가 쪼매 아픈 거 같고 엄살 피워가 되겠나?”

“새벽엔 겁나 아팠다구요.”

“알았다, 알았어. 하이고, 사내새끼가 참 앓는 소리 한다.”

“아아, 형.”

“누가 니 형이고? 내 동생은 창훈이밖에 없다.”

“아, 눈꼴시어서 못 봐 주겠네. 둘이 왜 저러는 거야?”

선수들의 대거리를 보던 함성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를 본 투수코치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참, 천지개벽할 일입니다. 파벌로 나뉘어서 서로 앙숙처럼 으르렁거리던 애들이 지들끼리 농담 따먹기 하고 웃고 하는 걸 보면 신기해요.”

“아…… 예……. 좀 그런 게 있었죠. 옛날부터 우리 팀이 라인이 좀 많았어요.”

“외부 FA 영입이 많다 보니 서로 안 맞는 것도 많았죠. FA 선수들은 FA 선수들대로 불안해서 학연, 지연, 혈연 찾아서 라인 만들고, 그러다 보니 고트 선수들은 이에 질세라 더 라인을 만들고. 악순환인 거죠. 외부 영입이 너무 없어도 문제지만 내부에 팀 기강을 잡아 줄 사람도 없는데 외부 영입만 돼도 문제죠. 이번에는 운 좋게 내부에 석현이랑 인환이, 정률이가 터지고 외부에서 온 선호도 팀 퍼스트라 다행인 거지…….”

연우식이 쓰게 웃었다.

“팀에 확실한 프랜차이즈 스타가 없으면 기강 잡기 힘들죠. 선호가 협조적이니 망정이지.”

“석현이가 조금만 연차 쌓이면 주장 노릇할 겁니다. 그 전까지는 선호랑 정률이가 투타에서 잘 잡아 줘야죠. 저는 떠나도 코치님이 남아 있을 거 아닙니까? 코치님이 애들 잘 봐주세요.”

“아…… 예…….”

연우식이 감독과 눈을 못 마주쳤다.

함성훈은 팔짱을 끼고 한민석을 바라봤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민석이 몸 상태가 최악은 아니라서.”

“오늘 김성훈이라 안 그래도 어려운 경긴데 더 어렵게 됐어요.”

“어떻게든 되겠죠. 오늘 불펜을 최대한 아끼는 쪽으로만 생각해 봅시다.”

“민석이가 1, 2회라도 무사히 버텨 주면 좋겠는데…….”

“그러면 베스트긴 하죠.”

한민석이 1, 2이닝이라도 소화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경기였다.

상대는 고트전에 강한 우완 에이스 김성훈.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경기를 뛰는 이들은 모두 페가수스가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회가 끝나자 양 팀 모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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