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고트 (2)
페가수스와의 2차전.
투수코치 연우식은 자신을 찾아온 한민석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지금 투구 폼을 바꾸겠다고?”
“네, 요새 제구가 너무 날리는 거 같아서 중심축을 좀 더 세워 보려 합니다.”
“그래……? 예전에는 괜찮다더니.”
“그건……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내일이 등판일인데 괜찮겠어?”
“다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조금씩 개선할 생각이라서……. 어려울까요?”
“일단 좀 해 보자. 투수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이유가 있겠지. 결국 자신이 제일 잘 알거든.”
“감사합니다, 코치님.”
경기 시작 전.
송석현은 불펜에서 이창훈의 공을 받았다.
감독과 투수코치 모두 참관하에 불펜 피칭을 지켜보는 일은 종종 있지만 이창훈은 유독 더 긴장했다.
팡!
팡!
공 하나를 받을 때마다 송석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 투구가 끝나자 함성훈 감독이 송석현을 불렀다.
“어떤 거 같아?”
“직구 구위는 조금 줄어든 게 맞는 거 같습니다. 불펜 피칭이라고 해도 회전이 안 느껴져요.”
“단순한 컨디션 문제가 아니라는 건데…….”
“그래도 체인지업은 정말 좋습니다. 급이 달라졌어요.”
“그래? 다른 구종은?”
“그에 반해 커브나 슬라이더는 직구 회전이 줄어서 그런지 조금 무딘 느낌은 있습니다. 그래도 서드 피치로는 충분히 좋습니다.”
“그러면 슬라이더는 체인지업이 안 먹힐 때만 구사하고 커브를 서드 피치로 던지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 거 같은데. 포수 생각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슬라이더는 회전에 민감해서 굳이 안 써도 될 거 같고……. 커브는 공 하나씩 보여 주기 용으로 쓴다면 타이밍 무너뜨리기에 좋을 거 같습니다.”
“좋아. 오늘 창훈이 컨셉은 체인지업 마스터로 가 보자. 체인지업 비중을 확 올려 버려. 그래야 다음 경기부턴 커브나 슬라이더가 더 잘 먹힐 거 아냐.”
“아, 예. 그렇네요. 알겠습니다.”
함성훈 감독이 먼저 자리를 떴다.
투수코치 연우식이 송석현에게 어깨동무했다.
“확실히 우리 감독님이 스마트해. 그치?”
“예,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런데 석현아.”
“네, 코치님.”
“듣자 하니 어제 민석이 공을 따로 받아 줬다면서?”
“네, 민석 선배님이 말씀하셨나요?”
“그래, 섀도 피칭으로 교정하는 법을 네가 알려 줬다고 하던데.”
“그냥 제가 했던 방법을 보여 드린 겁니다. 저는 코치님께 여쭤보고 결정하시는 게 좋다고 귀띔했는데……. 죄송합니다, 코치님.”
연우식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냐. 너 혼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저한테요?”
“그래, 민석이가 언제부터 너한테 그런 걸 물어보기 시작한 거야?”
“어제 갑자기 절 붙잡고 물어보셨습니다.”
“어제부터라……. 하여간 성격 급한 건 확실하네, 오늘 바로 나한테 달려온 걸 보면. 다행이야.”
연우식이 송석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워낙 공이 좋은 놈이라 고집 드럽게 셌는데 몇 번 털리고 나니까 자기도 심각한 걸 깨달은 모양이야. 진즉에 깨달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달라졌으니 다행이지. 앞으로 민석이가 너 귀찮게 하거들랑 나한테 말해. 내가 남아서 연습시키는 게 맞지, 우리 에이스를 야근시킬 순 없잖아.”
송석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저야 공 받는 거 상관없는데…….”
“민석이가 성격이 거칠어 보여서 그렇지 심성은 착해. 그러니 너무 안 좋게 보지 말고.”
“예, 그럼요.”
“오늘 창훈이 어때? 진희 상대로 해볼 만하겠어?”
송석현이 자신의 미트를 내려다봤다.
“저 체인지업이라면 충분히요.”
* * *
경기 시작 전.
주말 홈경기 3연전임에도 1루 내야 곳곳이 비어 있었다.
4연패와 더불어 뉴스 랭킹을 뒤덮은 부정적인 기사, 상대는 리그 1위 팀.
또 한 번 패배를 목도하고 싶진 않았던 팬들은 경기장을 찾지 않았다.
-플레이볼.
이창훈이 먼저 마운드에 올랐다.
페가수스의 1번 타자는 부동의 리드오프 최영석.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2루수 후보로 언급되는 선수였다.
“고트가 피시, 멕킨지 두 용병을 내세우고도 패전의 명예를 뒤집어쓰면서 4연패에 빠졌습니다. 평소라면 에이스 이창훈 선수에게 기대를 걸 텐데, 최근 고트의 팀 분위기도 그렇고 이창훈 선수의 성적도 그렇고 썩 좋지 못합니다.”
“어느덧 페가수스와 4경기 차이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번 3연전에서 1승도 못 가져가면 사실상 1위 탈환은 어려워집니다. 4경기 차도 쉽게 줄일 수 없는 차이거든요.”
이창훈은 초구로 바깥쪽 빠른 공 하나를 던졌다.
최영석은 고개 한번 끄덕이더니 타석에 더 바짝 붙었다.
“몸 쪽 공이 안 무섭다 이거네?”
“창훈이가 좀 빡치겠는데.”
고트 벤치에서 걱정과 우려가 쏟아졌다.
에이스 이창훈을 상대로 1번 타자가 타석에 바짝 붙었다.
몸 쪽 빠른 공에 연연하지 않고 다 치겠다는 선언이었다.
“참 나.”
이창훈은 쓴웃음 한번 짓고선 다시 바깥쪽에 공을 던졌다.
탕!
최영석이 공을 쳤지만 2루수 땅볼.
힘껏 1루로 뛰었지만 넉넉하게 아웃이었다.
-아웃!
“첫 타자 최영석 선수를 공 2개로 잡아냅니다. 일단 이창훈 선수의 시작이 좋네요.”
“방금은 최영석 선수가 체인지업을 너무 급하게 건드렸어요. 똑같은 코스로 오다 보니 너무 쉽게 생각한 거 같습니다.”
최영석은 벤치로 돌아가자마자 손가락을 흔들었다.
“오늘 직구 별로야. 직구 노려서 치면 돼.”
리드오프의 첫 번째 임무는 상대 투수에 대한 정보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입수하는 일이다.
공을 많이 보면서 팀 타자들에게 상대 투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본인이 직접 상대해서 알려 주곤 한다.
최영석은 공수 모두 뛰어난 2루수이기도 했지만 영리하고 눈치가 빠른 선수이기도 했다.
상대 야수는 물론 투수의 특징과 디테일까지 잡아내는 눈이 있기에 페가수스 왕조 부동의 리드오프로 평가받았다.
“오케이. 직구가 별로라는 거지…….”
페가수스 선수들은 이창훈의 직구에 포커스를 맞췄다.
어떤 투수든 간에 적어도 50% 이상은 직구로 던지기 마련이다.
직구가 별로라는 말은 타자가 50%는 먹고 들어간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탕!
2번 타자 심창규가 이창훈의 초구 커브를 받아쳐 2루로 나갔다.
커브의 궤적을 본 4번 타자 김욱은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홈런 좀 까 놔야겠는데?”
이창훈은 3번 타자에게 풀카운트 끝에 볼넷을 허용하며 1회부터 땀을 뻘뻘 흘렸다.
“오늘 이창훈 선수가 제구에 애를 먹네요.”
“공을 상당히 신중하게 던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글쎄요. 너무 잘 던지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꼬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원님도 투수 출신이니 잘 아시겠군요.”
“네, 저도 현역에 있을 때는 오히려 칠 테면 쳐 보라고 생각하고 던질 때가 구위도 그렇고 제구도 가장 좋았습니다. 너무 잘 던지려고 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거든요.”
“이창훈 선수도 지금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걸까요?”
“오늘 구위가 그렇게 안 좋은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신중하게 던지려고 몸에 힘이 들어가고 역으로 더 제구가 안 되는 거 같습니다.”
“위기의 순간, 4번 타자 김욱 선수가 나옵니다. 1사 1, 2루. 고트로선 참 힘든 상황이에요.”
김욱은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송석현에게 인사했다.
“석현아, 석현아. 홈런 좀 그만 쳐라. 형한테 홈런왕 양보해야지.”
“그럼요. 선배님이 홈런왕 가져가셔야죠. 저 요새 홈런 안 나오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럼 형한테 홈런왕 양보하는 거지?”
“예, 예. 얼마든지 가져가십쇼.”
팡!
-볼. 아웃사이드.
“오늘 창훈이 공 너무 시원찮은 거 아니냐?”
“선배님 홈런 치라고 던져 주시는 거 몰랐습니까?”
“이런 밀어주기는 담합인데……. 그래도 내가 고맙게 받을게.”
다음 공은 아까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오는 직구.
김욱이 제대로 힘껏 스윙했다.
부웅!
-스트라이크!
“오우. 뭐야, 이거. 제대로 속았네.”
“선배님, 저런 힘 빠진 직구도 못 치시면 후배 속상합니다.”
“힘 빠진 직구였어? 내가 보기엔 체인지업이던데.”
“아니에요. 밋밋한 직구였습니다. 선배님, 제가 루테인이라도 사다 드려야겠습니다.”
김욱은 허허 웃으면서 배트를 꽉 쥐었다.
다시 한번 바깥쪽 코스의 빠른 공.
아까보다 더 빠지는 공이라 배트를 내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김욱은 고개를 돌려 심판을 봤다.
“쓰읍.”
김욱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초구와 비슷한 코슨데 스트라이크가 됐다.
이러면 스트라이크존이 애매해진다.
다시 한번 똑같은 코스의 빠른 공이 왔다.
김욱이 짧게 밀어 쳤으나 공이 갑자기 멈추면서 떨어졌다.
“아이…… 씨.”
탁.
배트 끝에 맞은 공은 그대로 2루수 앞으로 향했다.
2루수 정동규가 공을 잡고 유격수 정영수에게 토스.
정영수가 2루 베이스를 밟고 1루로 송구.
김욱은 터덜터덜 뛰었다.
“4-6-3. 4-6-3 병살이 나옵니다. 4번 타자 김욱 선수가 중요한 찬스에서 병살을 때립니다.”
“투 스트라이크라 인내심이 부족했습니다. 변화구 타이밍이었거든요.”
“페가수스가 득점 찬스를 만들고도 점수를 내지 못했네요. 잔루 1, 2루. 점수는 0-0. 동점입니다.”
김욱은 배트를 쥐고 벤치로 돌아왔다.
글러브를 낀 김욱이 말했다.
“오늘 창훈이 체인지업 좋다. 참고해.”
1회 말.
마운드에는 조진희가 올라왔다.
에이스 조진희의 등장에 페가수스 팬들은 공격도 아닌데도 박수를 보냈다.
“페가수스가 에이스 조진희 선수를 마운드에 세웁니다. 조진희 선수가 고트 상대로 통산 성적이 좋죠?”
“하하, 조진희 선수가 통산 성적이 나쁜 팀이 있을까요? 팀도 안 가리고 선수도 안 가리는 게 조진희 선숩니다.”
“하지만 송석현 선수에게는 꽤 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뭐…… 이것도 반대로 말할 수 있겠네요. 송석현 선수에게서 좋은 성적을 거둔 투수가 몇이나 있을까요?”
“이러면 창과 방패의 대결이 되는 건가요?”
“그렇게 되겠네요.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방패 조진희와 창 송석현의 대결로 보면 되겠습니다.”
조진희는 첫 타자 이지성을 삼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다음 타자 설진일은 초구 커브 땅볼.
함성훈의 한숨이 커졌다.
“주눅 들지 않는 성격은 좋은데 초구를 좋아하는 저 성격만 고치면 더 좋을 텐데…….”
타격 코치 강연태가 말했다.
“그래도 진일이 같은 에버리지 타자는 참 드뭅니다. 어떤 투수를 상대로든 3할을 치는 놈 아닙니까?”
“예, 뭐, 제 욕심이죠. 인내심만 더 기르면 최고일 텐데.”
3번 타자 김인환이 나오자 조진희는 초구부터 몸 쪽 공을 찔러 넣었다.
좌타자 상대로는 한층 더 강해지는 투수가 조진희다.
김인환이 몸 쪽 공을 노렸으나 헛스윙.
김인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154km/h. 조진희 선수가 점점 피치를 올리네요.”
“저게 에이스 조진흽니다. 140km/h 중반부터 최고 160km/h까지. 구속을 조절하면서 던지는 투수는 정말 흔치 않아요. 저런 완급 조절 때문에 조진희 선수가 더 빛이 나는 겁니다. 아마 메이저에 가더라도 5선발 안에는 무조건 들 거라고 장담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저런 스타일의 투수는 흔치 않아요.”
김인환이 배트를 한층 더 짧게 잡고 타석에 붙었다.
포수 정용욱은 바깥쪽 빠른 공 사인을 냈다.
팡!
-스트라이크!
연속 투 스트라이크.
김인환은 이번엔 배트를 내지도 않고 지켜봤다.
‘슬라이더. 로우.’
투 스트라이크 이후 떨어지는 변화구.
떨어지는 공에 약한 김인환에겐 정석적인 볼배합이다.
조진희는 예의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종 슬라이더를 던졌다.
존 아래로 날아가다 더 아래로 뚝 떨어지는 공.
김인환이 스윙했다.
탕!
“……?”
정용욱의 미트엔 공이 들어오지 않았다.
김인환이 친 공은 그대로 중견수 앞 안타가 됐다.
“김인환 선수가 안타를 치고 나갑니다. 고트의 첫 출루가 되네요.”
“기어이 4번 타자 송석현 선수에게 기회를 줍니다. 김인환 선수가 안 좋은 공을 쳤지만 어떻게든 출루는 하네요.”
정용욱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일부러 볼을 쳤다?
김인환이 떨어지는 공을 노려서 친 거라면 안타 하나 내준 것보다 더 골치 아픈 일이다.
볼을 노려서 안타를 친다…….
어디서 많이 본 케이슨데…….
정용욱이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타석엔 송석현이 들어섰다.
“오오, 고트의 송석현. 팔방미인 송석현. 장외 홈런 송석현. 날! 려! 버! 려!”
“잠! 실! 의! 왕! 송! 석! 현! 날! 려! 버! 려!”
귀가 아플 정도로 쩌렁쩌렁하다.
고트의 부진할수록 팬들은 더더욱 고트의 4번 타자에 희망을 걸었다.
“오늘은 쉽지 않을 거야. 진희가 칼 갈았거든.”
정용욱이 송석현에게 잽을 날려 본다.
송석현은 배트로 신발을 툭툭 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칼 갈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