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54화 (154/201)

프로라는 벽 (4)

2회, 3회, 4회.

양 팀 모두 득점이 없었다.

“의외로 투수전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1회 초 고트의 득점 이후에 양 팀 타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잠잠하네요.”

“오늘 참 의외의 경기로 흘러가네요. 대체 선발 정진오 선수가 호투하고 있고 용병 교체까지 거론되던 브렌트 나이브 선수까지 호투하고 있습니다.”

“고트의 대체 선발 작전이 오늘은 통하나요?”

“정진오 선수의 공이 높게 들어가고 있지만 직구에 힘이 있어서 타자들이 타이밍을 잘 못 잡습니다. 여기에 커브가 떨어지는 폭은 크지 않은데 각이 날카로운 거 같아요. 타자들이 노려서 치는 게 아니라면 쉽게 공략이 어려울 거 같습니다.”

“어제의 대패에도 불구하고 대체 선발을 강행한 함성훈 감독의 노림수가 통했네요.”

“고트도 2군에서 좋은 선수들이 올라오고 있네요. 역시 이래서 투자를 해야 합니다.”

4회 말이 끝난 후 함성훈 감독이 선수들을 모았다.

“나이브의 공 개수가 많아지고 있어. 구위도 떨어지고 있어. 지성아. 네가 보기엔 어때?”

“손이 좀 꼬이긴 했지만 이제는 칠 만합니다.”

“저쪽은 어제 불펜을 많이 아껴서 나이브가 흔들리면 바로 바꿀 가능성이 커. 나이브가 내려가기 전에 공략하자. 5회에는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휘둘러. 병살만 주의하고.”

“네, 알겠습니다.”

5회 초.

고트 타선은 7번 오진영부터였다.

나이브의 초구는 포심 패스트볼.

구속 151km/h의 빠른 공이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스트라이크!

“오진영 선수가 저걸 놓치네요.”

“본인도 아쉬워하고 있네요. 저건 쳤어야죠. 실투를 놓치면 안 됩니다.”

함성훈은 뒷짐을 진 채 한숨을 푹 쉬었다.

“표대일 괜찮다고 했나요?”

함성훈의 물음에 타격코치 강연태가 답했다.

“네. 대일이 덩치는 그렇게 안 큰데 장타툴이 있습니다. 수비는 아직 부족하지만 성장 속도가 빠릅니다.”

“1군에서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2군 성적은 좋습니다만……. 1군에 올라온다면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겁니다.”

함성훈이 발을 탁탁 놀렸다.

“이대성은 어떤가요?”

“대성이도 한 방이 있는 놈이죠. 하지만 수비가 썩 좋지 못합니다. 대일이보다 더 부족합니다.”

“그렇습니까……. 오진영을 대체할 선수가 없네요, 없어.”

오진영은 공 네 개로 삼진.

다음 타자 2루수 정동규는 초구를 힘껏 쳤지만 중견수 플라이.

9번 타자 유격수 정영수는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으로 출루했다.

“으음.”

송석현이 침음을 흘렸다.

“선배님이 좀 사리네요…….”

김인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망이가 안 맞기 시작하면 배트가 잘 안 나오긴 하지.”

“나이브가 내려가면 득점 찬스가 더 안 나올 거 같은데.”

“타순이 좋으니까 점수가 나겠지.”

이지성은 나이브의 초구를 때려 2사 1, 2루를 만들었다.

김인환이 배트를 들고 대기 타석으로 나갔다.

몸을 좀 풀려나 싶었는데 설진일이 초구 체인지업을 건드려 땅볼 아웃.

공수 교대였다.

“안 되네, 안 돼.”

송석현이 고개를 저었다.

유선호도 뒤에서 입맛을 다셨다.

“여서 점수를 뺐어야 캤는데. 아, 꼬이네.”

5회 말.

송석현은 정진오와 함께 그라운드로 향했다.

“오늘 1승 따 가요, 우리.”

“후, 그러면 좋겠는데 될까 모르겠네.”

“오늘 공 좋아요. 자신 있게 던지세요.”

정진오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그래. 해 보자.”

정진오가 마운드에 섰다.

폭스의 공격은 4번 최재국부터.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기까지 아웃 카운트 세 개.

정진오가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커브, 로우.’

송석현은 초구부터 존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를 요구했다.

정진오는 숨을 고르고 초구를 던졌다.

부웅!

-스트라이크!

“헛스윙. 정진오 선수가 커브로 헛스윙을 이끌어 냅니다.”

“정진오 선수의 커브가 참 날카롭네요. 마치 느리지만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보는 거 같아요.”

“슬러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뇨. 슬러브라고 하기엔 구속은 커브가 맞거든요.”

‘체인지업, 아웃사이드.’

좌투수가 우타자 바깥쪽에 던지는 체인지업.

최재국이 배트를 휘둘러 봤으나 바깥쪽으로 더 멀어지면서 떨어지는 공을 칠 순 없었다.

-스트라이크!

최재국이 잠시 타석에서 발을 뺐다.

두 번 연속 헛스윙.

손가락을 한번 털고 다시 타석으로 들어섰다.

‘포심, 하이.’

투수가 공을 던지자 포수가 일어섰다.

공은 타자의 어깨 위로 향했다.

탕!

“쳤습니다! 가운데로 날아가는 공! 높이 떴습니다! 중견수~ 중견수~ 캐치! 중견수가 잡았습니다!”

“높이는 떴지만 멀리는 못 갔네요. 그만큼 정진오 선수의 공에 힘이 있다는 얘깁니다.”

“오늘 정진오 선수의 저 하이 패스트볼은 실투가 아닌 거 같습니다. 저 하이 패스트볼로 오늘 아웃 카운트를 많이 잡아내고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실투로 봤지만 포수가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걸 보면 의도적으로 쓰고 있다고 봅니다. 정진오 선수가 공이 아주 빠른 선수는 아니거든요? 보통 하이 패스트볼은 공이 빠른 선수가 구사하는 편인데 정진오 선수는 공이 빠르지 않은데도 잘 활용하네요.”

“정진오 선수만의 노하우가 있는 걸까요?”

“제가 보기엔 공의 회전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에 다시 한번 봐야겠지만 공의 회전수가 꽤 높은 거 같아요. 저 정도 rpm이면 적어도 2,000대 후반은 된다고 봅니다. 공의 회전수가 많다면 구속이 아주 빠르지 않아도 하이 패스트볼이 통할 순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래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에요. 공이 빠른 선수들도 하이 패스트볼은 위험해서 잘 활용하지 않거든요.”

“그렇군요.”

4번 타자를 잡아낸 정진오가 활짝 웃었다.

승리투수 요건까지는 아웃 카운트 두 개.

정진오는 5번 타자에게 삼진, 6번 타자에게 볼넷, 7번 타자에게 삼진을 잡아냈다.

“좋아!”

정진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송석현은 벤치로 돌아가기 전 정진오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오늘 첫 승 하겠는데요?”

“부탁한다. 점수 좀 더 내줘라. 홈런 좀 빵빵 쳐 줘.”

“그게 그렇게 쉬우면 저도 참 좋겠네요.”

6회가 넘어가자 폭스에선 투수를 교체했다.

바뀐 투수는 좌투수 정하균.

직구와 스플리터를 구사하는 투수로, 좌투수 김인환에겐 최악의 상성이었다.

김인환의 삼진.

송석현은 우익수 앞 안타.

유선호는 땅볼을 치면서 병살.

세 타자 만에 6회 초가 끝났다.

정진오는 다리를 달달 떨면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6회 말.

고트는 불펜 투수 정홍민을 올렸다.

“고트도 오늘 경기 빠르게 승부합니다. 투구 수에 여유가 있는 정진오 선수를 내리고 정홍민 선수를 올렸네요.”

“이러면 양 팀 모두 불펜 싸움으로 가겠네요. 어제 고트가 불펜을 많이 썼거든요. 여유는 없을 거예요.”

“6회 말 폭스의 공격은 하위 타순부터 시작합니다.”

정홍민의 초구는 볼.

송석현은 공을 받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에 힘이 없다.

투수가 공을 제대로 채지 못했다는 얘기다.

정홍민의 컨디션이 오늘 썩 좋지 못하다.

팡!

팡!

팡!

“정홍민 선수가 세 타자 연속 볼넷을 허용합니다. 세 타자 모두에게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 아쉬운 승부였습니다.”

“하위 타순인 만큼 과감하게 승부했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맞더라도 들어갔어야죠. 위기도 위기지만 공을 너무 많이 던졌어요. 아직 6횝니다. 정홍민 선수가 빨리 내려가면 불펜도 그만큼 과부하가 심해지는 겁니다.”

함성훈이 마운드로 향했다.

정홍민은 공을 꽉 쥐고 감독의 눈을 피했다.

“수고했다. 다음에 더 잘해 보자.”

정홍민이 고개를 숙였다.

“후, 죄송합니다.”

“다음에 더 잘하면 돼. 수고했어.”

다음 투수는 고진석.

고진석이 마운드에 올라갔다.

“함성훈 감독이 승부수를 띄우네요. 오늘 경기는 무조건 잡고 간다는 사인입니다.”

“연이어 필승조 두 명을 내세우네요. 이거 오늘 경기에서 지면 고트가 타격이 크겠어요. 어제도 불펜을 많이 끌어다 썼거든요.”

송석현이 고진석의 연습 투구를 받았다.

직구와 포크볼을 구사하는 전형적인 마무리 투수.

국내에 포크볼을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몇 안 되는 투수였다.

팡!

팡!

공을 받은 송석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에 힘이 있다.

다음 타자는 2번 타자 김형남.

2번 타자지만 장타력이 있는 타자였다.

‘포심, 아웃사이드.’

초구는 우선 바깥쪽으로 안전하게.

송석현이 미트를 바깥쪽으로 내밀었으나 공은 몸 쪽 깊숙한 곳으로 흘렀다.

퍽!

김형남은 공을 피하지 않고 맞아 냈다.

송석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필했지만 심판은 고개를 저었다.

“몸 돌렸잖아.”

피하진 않았지만 몸을 가져다 대진 않았다.

밀어내기.

점수는 3-1.

고진석이 미안하다며 손짓했다.

다음 타자는 3번 김경심.

송석현은 타자가 초구 포심을 노리고 올 걸 예상해 포크볼을 요구했다.

타자는 예상대로 헛스윙.

다음 빠른 공도 헛스윙.

송석현이 바깥쪽에 미트를 가져다 댔다.

바깥쪽 빠른 공 사인.

고진석의 공이 미트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탕!

“우익 선상! 빠졌습니다! 빠졌어요! 파울이 아니라 안타! 안탑니다! 3루 주자 홈인, 2루 주자까지 홈인! 1루 주자까지~ 승부, 승부! 세입! 세입입니다! 싹쓸이 2루타가 터집니다!”

“김경심 선수가 기어이 하나 해 주네요. 정말 잘 밀어 친 공이었습니다.”

“김인환 선수의 머리를 지나쳤는데 이게 파울이 아니라 안타가 됐습니다. 폭스가 6회 말에 4점을 내면서 4-3. 역전을 합니다.”

“고진석 선수까지 올리면서 승부수를 띄웠는데 함성훈 감독의 한 수가 빗나갔네요. 이러면 고트, 타격이 큽니다.”

파울이 될 공이 안타가 됐다.

정진오는 끝내 벤치 뒤로 나갔다.

1점 차 역전.

유선호가 목소리를 키워 외쳤다.

“1점이야, 1점! 또 역전하면 돼!”

유선호의 독려에 6회 말 고진석이 추가 실점 없이 내려왔다.

폭스는 9회 초까지 점수를 내지 못했지만 고트도 점수를 내지 못했다.

점수는 4-3.

고트의 패배.

김정률까지 올리는 초강수를 뒀지만 고트는 병살만 네 개를 치면서 자멸했다.

다음 날은 마이클 피시가 등판해 7이닝 1실점 호투를 했지만 김진석, 이백찬이 각각 2실점, 1실점을 보태며 역전.

폭스전 주중 3연전의 결과는 3연패, 스윕이었다.

* * *

[고트의 무리수. 스텝이 꼬이다]

[연승으로 헤이해진 고트. 이 시국에 선발 옥석 고르기?]

[연승으로 가려진 고트의 약점. 믿을 수 없는 불펜]

[홍기원 감독의 일침. 야구는 투수 놀음]

[벌써부터 물밑으로 감독 물색? 고트의 내우외환]

스윕의 후유증은 컸다.

프로야구 최고 인기 팀답게 고트의 패배를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들이 도배됐다.

새 감독을 찾고 있다는 기사까지 뜨자 팬들은 아침부터 갑론을박했다.

야구 커뮤니티에선 고트 감독 교체 기사로 댓글만 1천 개가 넘는 논전이 벌어졌다.

선수들마저 구단이 함성훈 감독을 신임하지 못하고 후임 감독을 찾고 있단 기사에 놀라 서로 다음 감독이 누군지 정보를 염탐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것이 오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자 선수들은 어떤 노선을 타야 할까 눈치 싸움에 들어갔다.

첩첩산중(疊疊山中).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감독 교체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팬들은 차기 감독 후보군을 놓고 좋네 싫네, 싸우기 바빴다.

하필 주말 3연전 상대는 1위 페가수스.

팀 분위기는 어수선했지만 고트는 멕킨지, 이창훈, 한민석으로 이어지는 선발 라인업이었다.

어느덧 순위는 4위.

1위 팀과 홈경기 주말 3연전.

경기 시작 전, 김정률이 선수단을 불러 모았다.

“자, 다들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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