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51화 (151/201)

프로라는 벽

“3연전 선발을 얘네들로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부산 ×× 호텔.

고트 선수단의 숙소.

함성훈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 전원이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네, 1+1으로 갈 겁니다. 천운이는 수요일 경기, 피시는 목요일 경기에 준비시킬 생각입니다.”

코치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미 알고 있었냐는 눈치였다.

특히 투수코치 연우식을 쳐다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연우식은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연우식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1경기 선발이나 중간에 롱으로 한 번 투입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금 1위가 코앞입니다. 힘들더라도 여기서 스퍼트를 내야 하는데…….”

“여기서 1위를 따내는 게 의미가 있습니까? 억지로 쥐어짜서 1위를 해도 1위를 뺏기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아직 시즌이 끝나려면 멀었어요.”

“2위, 4위가 양옆에 붙어있습니다.”

“세금을 미뤄 봤자 피할 수 없습니다. 시즌 초중순부터 선발감 발굴에 꾸준히 힘을 썼어야 했는데 제 마음이 급하다 보니 이 부분에 대해선 미흡했습니다. 우선 여러분들에게 사과드리겠습니다.”

함성훈이 고개를 숙이자 코치들도 얼결에 고개를 숙였다.

배터리코치 김태우를 빼면 함성훈보단 다 나이가 어렸다.

“창훈이랑 민석이, 천운이가 모두 제 몫을 해 주다 보니 제가 느슨했습니다. 꾸준히 대체 선발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제 경험 부족입니다. 지금 당장 창훈이랑 민석이를 대신할 선발을 찾을 순 없겠지만 롱으로 뛰어 줄 선수가 필요합니다.”

“지금 불펜을 활용해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배터리 코치의 질문이었다.

“네, 맞습니다. 우리 불펜 지금 튼튼합니다. 자원도 풍부하구요. 어떤 팀이 선발을 다 갖추고 하겠습니까? 시즌 말에 가면 다 불펜으로 때우고 하는 거죠.”

“A급으로 분류할 애들만 셋은 될 텐데 그중에 하나를 롱으로 뽑아 쓰고 이번에 올린 애들을 불펜으로 쓰는 게 더 무난하지 않을까요?”

함성훈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 불펜이 완성돼 보이는 건 그만큼 관리가 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면면을 보면 불안 요소가 분명합니다. 정률이는 수술, 재활을 오랫동안 반복하다 언더로 폼을 바꿔서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언더는 아무래도 그동안 안 썼던 근육을 써야 할 테니 허리에 부담도 많이 갈 겁니다. 경기 수며 이닝이며 관리를 해 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홍민이는 지금 성적이 좋긴 해도 올해 나이가 서른셋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1군 불펜에서 뛰고 있어요. 경험도 없을뿐더러 체력적으로 준비가 안 됐을 겁니다. 특히 우타자에게 약하다는 약점은 극복된 게 아니에요. 최근에 좋아진 거지.”

함성훈이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고진석은 프로 생활 내내 불펜, 마무리로만 뛰었던 애니 패스. 그러면 김진석, 홍대성, 이백찬이 남는데, 이백찬은 주자가 나가 있을 때 보이는 불안한 모습을 못 고치고 있습니다. 짧게 쓰기엔 좋은 선수지만 선발로 쓰면, 그것도 포스트시즌이라면 이걸로 집요하게 공격당할 겁니다. 김진석은 선발로 쓸 구종 자체가 없고 대성이 정도만 가능성이 있는데 지금 불펜에서 잘해 주고 있잖습니까? 1군에 올라와서 쭉 불펜으로 뛰고 있는데 갑자기 선발로 바꾼다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코치들은 말이 없었다.

완벽해 보이는 고트 불펜도 찬찬히 따져 보면 모래성일 뿐이다.

현재 불펜의 에이스는 김정률, 고진석, 정홍민.

셋 중에 김정률, 정홍민은 언제 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백찬, 홍대성, 김진석을 선발로 돌리다 불펜이 터져 버리면 진퇴양난이다.

함성훈의 지적에 코치들은 연승에 가려졌던 팀의 사정을 체감했다.

“그동안 5선발로 롱으로 뛰어 주던 상흠이나 재진, 석주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상흠이를 제외한 재진이, 석주는 나이를 감안하면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죠. 시즌 중반에 대체 선발을 올리면서 다른 선발감을 찾았어야 했는데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선 늦었습니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면 피시, 멕킨지, 창훈이, 민석이 이렇게 4선발로 나갈 겁니다. 하지만 지금 창훈이랑 민석이 상태가 썩 좋지 못한 만큼 대체 선발 한둘은 필요해요. 일단 천운이가 있는 만큼 한 명 정도라도 괜찮은 선발이 있다면 좋을 듯싶습니다.”

코치들도 더는 반박하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직행이 아니라면 선발 네 명은 있어야 포스트시즌을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다.

한민석이 부진하고 이창훈도 흔들리는 만큼 전천후 선발, 불펜 투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도 2군 투수 셋을 세 경기 선발로 올리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위험하죠. 그래서 천운이랑 피시를 뒤에 두는 겁니다. 일찍 무너지면 바로 투입할 생각입니다.”

“폭스가 공격력은 꽤 좋습니다. 어어, 하다가 훅 치고 나갈 가능성도 높다고 봅니다.”

“폭스전은 1승이 목푭니다. 2승까지 가져가면 베스트고 3승은 천운이죠. 연승이 계속될 순 없어요. 선수들한테도 부담이고……. 스퍼트를 내기 전에 한 텀 쉬면서 전력을 정비하는 기간으로 삼을 겁니다. 그동안 기회를 못 받은 백업이나 2군 선수들한테도 충분히 기회를 줄 거예요. 그 친구들도 포스트시즌에 나가고 싶을 거 아닙니까?”

“타자들도 올리실 겁니까?”

“네, 그동안 기회는 줄 만큼 줬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포스트시즌에 가겠지, 생각하는 선수들에겐 경각을 줘야 정신 차리지 않겠습니까? 석현이랑 인환이가 올라왔을 때만 해도 다들 긴장감이 넘쳤는데 두 사람이 너무 잘하다 보니 지금은 오히려 긴장감이 풀려 버렸어요. 언제든 자기 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있어야 하는데 두 사람이 워낙 잘하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치부해 버려서.”

코치들이 하하 웃었다.

“하기야 뭐…… 두 사람한테 질투하기도 우습죠.”

“2군 애들이 죄다 석현이나 인환이처럼 했으면 리그 우승이 문제였겠습니까?”

함성훈이 말했다.

“지금은 포스트시즌이 아니라 정규리급니다. 빨리 치고 나가는 것보다 정석대로 차근차근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폭스전 다음에 페가수스전, 스콜피언전입니다. 그다음은 폭스전 6연전이구요. 폭스전에서 1, 2경기를 내줘도 다시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페가수스, 스콜피언을 상대로 1경기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못 찾아올 수 있어요. 실험을 하려면 지금 해야 돼요.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투수코치 연우식이 말했다.

“최고의 베스트는 진필이, 판석이, 진오, 천운이로 폭스전을 마무리하고 페가수스전부터 1, 2, 3선발 붙는 거겠네요. 피시를 당겨써도 2, 3, 4선발이니 나쁠 건 없다고 봅니다. 폭스전에 에이스들을 다 당겨쓰고 페가수스한테 승점을 퍼 주는 것보다, 폭스한테 점수를 내주더라도 페가수스한테 점수를 빼 가는 게 훨씬 낫겠죠.”

함성훈이 웃었다.

“네, 실험을 한다고 해서 실리를 내팽개칠 수는 없죠.”

* * *

다음 날 부산 사직 구장.

팡!

팡!

경기 시작 전 임진필이 몸을 풀었다.

송석현은 임진필의 공을 받아 주면서 사인을 교환했다.

“어때?”

임진필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송석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습니다.”

“이 정도면 통할 거 같아, 1군을 상대로?”

“어…… 제구만 좋으면 먹힐 거 같아요.”

“그래?”

임진필이 손을 털었다.

“하필 폭스네. 피닉스랑 붙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는데.”

선발투수의 몸풀기가 끝난 후, 투수코치 연우식이 송석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때?”

“괜찮습니다.”

“아니, 진짜로. 냉정하게. 폭스 애들한테 통하겠어?”

“어…….”

송석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연우식이 송석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별로구나?”

“별로까지는 아닌데…….”

“아닌데?”

“결정구가 마땅치 않아서 좀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요.”

“역시 그렇지?”

연우식이 턱을 매만졌다.

“저런 애들이 정말 애매하단 말이지. 딱히 약점은 없는데 강점도 없어……. 후, 그래, 알았어. 천운이도 준비시켜야겠구만.”

경기 시작에 임박하자 사직의 1, 3루 내야석엔 발 디딜 틈도 없이 팬들로 가득 찼다.

홈팀 폭스는 최근 불스를 꺾고 6위에 올랐다.

4위가 보이기 시작하는 순위다.

고트에 스윕 당한 불스가 이후 연패로 빠진 게 폭스엔 행운이었다.

5위 웨일스와의 승차도 그리 많이 나지 않는다.

아직 가을야구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 * *

“안녕하십니까, 야구팬 여러분. 사직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SBC 캐스터 구정윤.”

“해설 최희동입니다.”

“오늘 고트와 폭스와의 경기, 사직에 많은 팬들이 찾아와주셨습니다.”

“고트도 상승세, 폭스도 상승세 아닙니까? 고트는 이제 한국시리즈 직행을 위해 뛰고 있고, 폭스는 포스트시즌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 양 팀의 타격이 살아나면서 상승세가 시작됐는데 좀처럼 방망이가 식지 않고 있어요.”

“원래 폭스야 불방망이로 유명한 팀이었지만 올해 최고의 타선을 뽑으라면 아무래도 고트의 KSY를 빼놓을 수 없죠. 역대 최고의 클린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파워의 김인환, 완성형 송석현, 연륜의 유선호까지. 이제는 송석현 하나만 피하면 끝나는 타선이 아니에요.”

“분명 투타 모두 고트가 앞서고 있긴 한데 오늘 경기는 좀 색다릅니다. 고트가 대체 선발을 내세웠어요.”

“고트가 조금 여유가 있나 봅니다. 임진필 선수를 선발로 내세웠습니다. 아직 1군에서 보여 준 게 없는 투순데 과감하달까요, 아니면 좀 과하달까요. 2군 성적도 나쁘진 않지만 확 눈에 띄는 면모도 없었거든요.”

“오늘 폭스도 5선발 최영경 선수 아닙니까? 양 팀 선발이 조금 약하다……. 이러면 양 팀 타선이 오늘 또 터질 수 있겠는데요?”

“오늘 사직마저 타격전으로 간다면 양 팀 팬들은 신나게 즐기기 어려울 겁니다. 가슴 좀 졸여야 할 거예요.”

-플레이볼.

1회 초 마운드에는 투수 최영경.

1번 타자는 이지성.

최영경은 직구와 스플리터 두 개로 스트라이크 두 개를 잡았다.

이지성은 배트를 더 짧게 잡고 타석에 바짝 붙었다.

어떻게든 치고 나가겠다는 심산.

직구와 스플리터 두 개밖에 없는 타자이니만큼 타자의 선택지도 좁았다.

컨택이 좋은 이지성에게 구종이 단조로운 투수는 쉬운 상대였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삼진을 잡아내는 최영경 선숩니다.”

“이지성 선수가 꼼짝을 못 했죠? 저 커브, 굉장히 좋네요. 각이 좋아요.”

“원래 최영경 선수가 커브를 던졌나요? 처음 보는 거 같은데요.”

“최영경 선수가 새로운 구종을 연마했나 봅니다. 커브, 사실 가장 배우기 쉬운 구종이지만 가장 실전에서 써먹기 힘든 구종이기도 한데 최영경 선수가 잘 써먹네요.”

벤치로 돌아온 이지성이 고개를 내저었다.

“커브 각이 상당한데?”

송석현이 물었다.

“빡세요?”

“노리는 거 아니면 치기 힘들겠어.”

이지성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설진일이 땅볼로 아웃.

커브를 건드려 땅볼이었다.

“아나, 갑자기 웬 커브야?”

송석현은 대기 타석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투수가 새 구종을 장착해서 나타났다.

시즌 중에 새 구종을 장착하는 일은 드물지만 최영경이라면 그럴 만하다.

투 피치 불펜 투수.

선발로 뛰기 위해선 구종 세 개 정도는 필요한 법이다.

이지성, 설진일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니 커브를 새로 배운 게 아니라 다시 던지기 시작한 게 분명하다.

팡!

-스트라이크!

“최영경 선수가 커브를 잘 써먹네요. 타자들이 커브에 적응을 못 합니다.”

“커브를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터라 타자들이 혼란스러워할 만하죠.”

커브가 먹히자 직구와 스플리터도 먹히기 시작한다.

떨어지는 공에 약한 김인환은 스플리터에 삼진.

송석현은 다시 벤치로 돌아가야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함성훈의 미간이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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