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41화 (141/201)

연전연승 (3)

“음…….”

울브스의 감독 장태섭의 미간이 좁아졌다.

저 폭발력.

페가수스를 스왑하고 스콜피언에게 위닝 시리즈를 가져간 건 우연이 아니다.

송석현과 아이들 수준의 타선이라면 전력이 탄탄한 페가수스와 스콜피언이 그리 쉽게 승리를 내줄 리 없다.

“오늘 불펜 컨디션 어떻지?”

장태섭의 물음에 투수코치가 움찔했다.

“불펜 말씀이십니까? 오늘은 좀 여유가 있습니다.”

“석남이 컨디션은 어때?”

“베스틉니다.”

“대희랑 원성이는?”

“둘 다 괜찮지만…….”

“괜찮지만? 뭔데?”

“대희는 괜찮을까요? 고트전 성적이 별론데요.”

“일단 올려 보고 보면 되지.”

“네, 알겠습니다.”

김준기는 1회 3실점으로 이닝을 끝냈다.

벤치로 돌아온 김준기의 얼굴엔 땀으로 가득했다.

“형, 오늘 내 공 별로야?”

김준기의 물음에 신민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괜찮아.”

“쟤들이 잘 치는 거지?”

“만만한 타선이 아니야. 이틀 동안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거지.”

“왜 하필 나랑 할 때 터지고 난리래.”

“마음 편하게 먹고 던져. 여기 잠실이야. 어지간하면 야수들이 커버해 줄 테니까 1회는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고 덤비라고. 알았지?”

“오케이, 오케이.”

1회부터 불붙었던 타선은 2회에는 잠시 쉬어 갔다.

양 팀 모두 2회에 득점 없이 3-3.

3회 초. 선두 타자는 1루수 정인하였다.

“후우.”

이창훈이 숨을 고른다.

울브스의 타선은 짜임새가 좋다.

하위 타선에는 일발 장타가 가능한 타자가 있어 신중하게 승부해야 한다.

상위 타선은 어떤가.

2, 3, 4번의 통산 OPS가 모두 0.8을 넘는다.

특히 4번 타자 강제관은 통산 타율 3할, 출루율 4할, 장타율 5할.

잠시 빈틈을 보이는 순간 턱 밑까지 쫓아온다.

‘커브, 존으로.’

송석현은 타자 정인하를 상대로 초구 변화구를 택했다.

정인하는 신중한 타입이다.

웬만해선 쉽게 승부하지 않는다.

쉬익. 팡!

-스트라이크!

송석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정인하의 어깨가 움찔했지만 배트를 내지 않았다.

애초에 칠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정인하 선수가 한가운데 커브를 놓치고 맙니다.”

“아마 직구를 노렸던 거 같네요. 하지만 저런 코스의 공은 직구가 오든 변화구가 오든 쳤어야죠. 아쉽네요.”

송석현이 정인하의 발을 바라본다.

스트라이드가 넓은 편이다.

선구안을 기반으로 큰 스윙을 가져가는 타자.

게스 히팅에 능한 타자일 거다.

정인하가 노리는 공은 아마…… 직구.

오늘 이창훈의 공이 쭉쭉 뻗어 나간다.

구위가 약하다는 얘기다.

투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구종의 반절은 직구를 던져야 한다.

투수의 구위가 약하다면 더더욱 타자는 투수의 직구를 노려야 한다.

‘커브.’

송석현은 반절의 도박에 들어갔다.

상대가 직구를 노릴 걸 알고 커브를 요구했지만, 똑같은 구질을 두 번 던지는 건 타자의 눈에 익어 위험하다.

그런데도 커브를 던지게 한 건……

탁!

-파울.

“정인하 선수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밖으로 많이 빠지는 파울이에요.”

“공이 많이 빠진 거 같은데 정인하 선수가 조금 서둘렀네요.”

존 아래로 빠지는 커브.

우투수가 좌타자 상대로 커브를 던지면 좌타자 입장에선 바깥쪽에서 몸 쪽으로 공이 들어온다.

변화구가 몸 쪽으로 온다는 건 그만큼 공을 보기 더 쉽고, 배트와도 더 가까워진단 얘기다.

타자 입장에서도 욕심이 안 생기기 어려운 공.

정인하는 두 번째 보는 공이기에 빠지는 공에도 배트를 휘둘렀다.

“좋았어.”

고트의 배터리코치 김태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송석현은 프로에서 닳고 닳은 포수처럼 볼 배합을 하고 있다.

포수마다 자신만의 볼 배합 성향이 있다.

투수도 자신이 선호하는 볼 배합이 있다.

배터리의 호흡에 따라 그날의 볼 배합이 달라진다.

어린 포수들의 볼 배합은 극과 극이다.

게임처럼 공격적인 볼 배합이거나 교과서 같은 볼 배합이다.

송석현은 초기엔 매우 공격적인 볼 배합으로 코치진의 우려를 샀으나 경기를 거듭해 갈수록 게임에 적응하고 있다.

최고의 볼 배합이란 투수의 컨디션, 구종과 타자의 컨디션, 노림수를 염두에 두는 볼 배합이다.

방금 전 두 개의 커브.

타자가 초구 커브를 놓친 데 아쉬워하는 기색을 파악하곤 다시 한번 타자를 꼬드긴 거다.

다른 포수였다면 아마 열에 일고여덟은 빠른 공 하나 더 보여 준 뒤 변화구를 던졌을 거다.

타자가 빠른 공에 반응하는지 변화구에 약한지 가늠하기 위한 교과서적인 볼 배합이니까.

틀에서 벗어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포수로서 경력이 짧아서 그런 걸까.

송석현은 틀이란 게 없다.

틀이 없으니 상대 타자들도 송석현의 스타일을 예측하기 어렵다.

배터리의 궁합에 포수의 공이 많아야 3할이라지만, 야구에서 3할은 크면 컸지, 작은 숫자가 아니다.

공은 투수가 던지는 거라지만 포수가 투수의 등에 날개를 달아 줄 수도 있고, 투수의 등에 짐이 될 수도 있다.

‘포심, 하이.’

송석현이 요구한 공은 높은 쪽 빠른 공.

이창훈은 표정을 숨기면서 다리를 번쩍 들었다.

구위가 약한데 하이 패스트볼을 구사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하지만 자신이 말한 게 있지 않은가.

공격적으로 공을 던지겠다고, 공언했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 삼진! 정인하 선수가 꼼짝도 못 하고 당해 버렸습니다.”

“몸 쪽에 바짝 붙는 빠른 공이었습니다. 정인하 선수가 고개를 떨어뜨리네요. 본인은 아쉬운 모양이에요. 깊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이창훈 선수가 정인하 선수를 잡아내면서 3회에는 산뜻하게 시작하네요.”

이창훈이 침을 꼴깍 삼켰다.

등골이 시리다.

잡아내긴 했어도 위험한 공이었다.

이래서 도박을 하나?

“다음 타자는 오늘 스리런의 주인공이죠. 강제관 선수가 들어옵니다.”

“다행히 앞에 주자는 없지만 위험한 타잡니다. 조심해서 상대해야겠죠?”

송석현이 몸 쪽 빠른 공을 요구했다.

이창훈은 표정 관리가 어려울 지경이었지만 눈 딱 감고 초구로 몸 쪽 공을 던졌다.

팡!

-볼, 인사이드.

“깊었네요. 볼이에요.”

“일단 몸 쪽으로 공 하나를 보여 주고 시작하네요.”

강제관이 고개를 갸웃한다.

저 날리는 공 가지고 이렇게 공격적으로 던진다고?

하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는다.

어차피 그래 봐야 오늘 이창훈의 공엔 힘이 없다.

기껏해야 꼼수로 위기를 넘길 작정일 거다.

조금 전 정인하 타석처럼 말이다.

놓치지만 않으면 된다.

존에 들어오는 공만 치면-.

-스트라이크!

“바깥쪽 공 스트라이크. 이창훈 선수의 공이 기가 막히게 들어갑니다.”

“저런 공은 알려 주고 던져도 못 칩니다. 타자 입장에서 너무 멀어 보이는 공이에요.”

강제관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잠깐 잊었다.

이창훈이라는 투수는 구위로 윽박지르는 타입이 아니다.

공이 아주 빠르지도 않고 변화구도 현란하지 않으며 제구가 기가 막힐 정도도 아니다.

뚜렷한 장점은 없는데도 리그 A급 선발 요원이다.

공이 아주 빠르지 않지만 145km/h 정도는 쉽게 나온다.

변화구가 현란하지 않지만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모두 평균 이상이다.

제구가 정밀하지 않지만 볼넷은 적다.

여기에 금강불괴, 이닝 이터라는 장점까지.

구위가 별로여도 존 구석구석을 언제든 찌를 수 있는 투수가 이창훈이다.

“후우우우.”

심기일전.

집중해서 공을 봐야 한다.

다시 한번 들어오는 바깥쪽 빠른 공.

강제관의 배트가 돌았다.

-스트라이크!

“헛스윙. 강제관 선수가 헛스윙을 하네요.”

“체인지업이 정말 잘 떨어졌네요. 바깥쪽에서 저렇게 떨어지면 타자는 곤혹스럽습니다. 직구와 구분이 너무 어려워요.”

이창훈이 씨익 웃었다.

손아귀에 힘이 잘 안 들어가니 체인지업이 더 잘 먹힌다.

억지로 손가락에 힘을 뺄 필요가 없다.

“좋아, 좋아.”

이러면 오늘의 메인 구종은 체인지업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때워야 하는 게 선발투수 아니던가.

‘슬라이더.’

이창훈이 포수의 사인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 송석현과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거 같다.

구위는 개떡 같은데 어깨가 가볍다.

팡.

-볼, 아웃사이드.

바깥쪽에 빠지는 슬라이더 하나.

장제관이 어깨가 들썩했다.

장계성처럼 밖으로 훅 빠지는 수준의 슬라이더는 아니지만 투 스트라이크를 잡은 이후에 이창훈의 슬라이더는 충분히 날카롭다.

그리고 결정구는……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여기서 또 삼진이 나옵니다.”

“이창훈 선수가 감을 잡았나요? 중심 타선 상대로 삼진을 연속으로 잡아내네요.”

“그림 같은 체인지업이었습니다. 공이 정말 뚝 떨어졌어요.”

“오늘 이창훈 선수의 체인지업은 명품이네요. 원래 저렇게 체인지업이 좋았나요?”

다음 타자는 힘은 좋지만 선구안이 부족한 정병수.

이창훈의 체인지업에 정병수는 맥을 못 췄다.

“세 타자 연속 삼진! 이창훈 선수 오늘 체인지업이 정말 무섭습니다. 뚝뚝 떨어져요.”

“울브스 타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죠? 저 체인지업에 적응하지 못하면 오늘 어렵습니다. 빨리 방법을 모색해야 돼요.”

마운드에서 내려온 이창훈이 송석현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송석현이 주먹을 부딪치자 이창훈이 물었다.

“체인지업 괜찮지?”

“네. 오늘은 체인지업으로 좀 재미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사람 사는 거 새옹지마다. 손가락이 아프니 또 이런 장점이 있네.”

3회 말.

김준기는 한숨을 먼저 쉬었다.

첫 타자가 송석현이다.

“김준기 선수는 1회 이후로 안타를 많이 맞고 있습니다. 전매특허 아래로 떨어지는 슬라이더가 잘 먹히질 않고 있어요.”

“제가 보기엔 고트 타자들이 잘 친다고 봅니다. 떨어지는 각은 좋거든요.”

“혹시 어떤 습관, 이런 게 보이는 걸까요?”

“글쎄요. 슬라이더는 변화구 중에 가장 습관이 적은 구종이거든요. 직구와 똑같은 그립인 데다 던질 때도 손목이나 팔이 꺾이는 각도가 작아서 이걸 보고 구종을 판단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면 정말 고트 타자들이 잘 친다고 봐야 하나요?”

“노려서 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컨디션이 돌아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포수 신민호가 사인을 보냈다.

‘포심, 아웃사이드.’

하던 대로 계속 바깥쪽 공으로 빼자.

김준기는 유선호의 타격감이 생각나 잠시 주춤했지만 송석현보단 나을 거라 생각했다.

탕!

“안타! 안탑니다! 송석현 선수의 우전 안타!”

“결대로 밀어 치네요. 장타는 안 됐지만 깔끔한 안타였습니다.”

김준기는 입안의 혀를 이리저리 굴렸다.

존 구석에 정확하게 들어간 공을 쳐 냈다.

“알 수가 없네, 알 수가 없어.”

포수 신민호도 한숨을 내뱉었다.

어떤 때는 풀카운트도 두려워하지 않고 공을 고른다.

어떤 때는 설령 빠진 공도 쳐 낸다.

초구는 그냥 지켜보다가도 초구에 완전히 빠진 공을 홈런으로 쳐 내기도 한다.

뚜렷한 패턴이 없다.

어떤 타자도 100% 똑같은 패턴은 없지만 최소한의 경향성은 있는데 송석현은 뭐라 콕 집어 얘기할 수 없다.

확실한 건 오로지 하나뿐.

“잘 치네, 잘 쳐.”

울브스 벤치에서 나온 소리였다.

“김 수석. 웨일스가 올라갈 거 같아, 고트가 올라갈 거 같아?”

“지금으로 봐선 고트가 가능성이 높은 거 같습니다.”

“후우, 못해도 플레이오프까진 가야 안심할 수 있겠어. 포스트시즌에서 쟤 만나면 내가 뒷골 잡고 쓰러질 거 같거든.”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린다.

득점 찬스에 들어선 송석현이라니.

바깥쪽으로 빼면 남들보다 긴 배트로 밀어 치고, 밑으로 빼면 어떻게 알고 기가 막히게 퍼 올린다.

송석현의 파훼법이 있다면 아예 맞출 각오로 몸 쪽에 던지는 수밖에 없는데 웬만큼 간 큰 투수가 아니면 송석현에게 몸 쪽 공을 쉬이 던지지 못한다.

물론 작정하고 송석현을 맞춰서 타석에 떨어뜨릴 순 있지만,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둬야 한다.

송석현이 겁을 먹고 물러서는 게 아니라 잔뜩 화가 난 채 타석에 들어선다면?

침착한 송석현이 아니라 잔뜩 성이 난 송석현이라면?

자신이 투수도 아닌데 오금이 저린다.

“그래도 맞춰야 하나…….”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웨일스가 선전하길 바랄 뿐.

탕!

잡념을 깬 건 유선호의 안타였다.

좌중간을 가른 안타에 송석현이 2루를 밟고 3루까지 갔다.

무사 주자 2, 3루.

김준기가 모자를 벗어 후드득 떨어지는 땀을 닦아냈다.

“불펜 준비하라고 해.”

“네, 감독님.”

오늘 경기, 암운(暗雲)이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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