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40화 (140/201)

연전연승 (2)

이창훈은 다음 타자 강기수를 상대로 몸 쪽 빠른 공으로 땅볼을 잡아냈다.

벤치로 돌아오는 길.

이창훈이 송석현을 불렀다.

“오늘 승부 빠르게 가자.”

“네. 알겠습니다.”

“높은 공이랑 몸 쪽 많이 쓰고. 제관이 정도만 빼면 할 만해.”

1회 말 고트의 공격.

고트의 1번 타자는 이지성.

마운드에는 좌투수 김준기가 올라왔다.

“좌투수와 좌타자의 대결입니다. 아무래도 좌투수가 좌타자에게 이점을 갖는 건 분명하지 않습니까?”

“일반적인 인식도 그렇고 실제 결과도 그렇습니다. 요새 투수들은 예전처럼 힘으로만 승부하지 않아요. 자기가 유리한 부분은 확실하게 살립니다. 김준기 선수는 공은 빠르지 않은 대신 공을 잘 숨겨서 던집니다. 체감상으로 150km/h를 상대하는 기분이라는 타자들도 있어요.”

“거의 10km/h 정도 차이네요.”

“그만큼 김준기 선수가 영리하게 던진다는 얘기죠.”

김준기가 어깨를 돌렸다.

이지성.

발 빠른 좌타자.

맞추는 능력도 뛰어나다.

다만 장타력은…… 잠실 구장에서 홈런을 기대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포심, 아웃사이드.’

이런 타입의 타자에겐 간단하게 가야 한다.

빠른 공으로 빠른 승부.

김준기가 다리를 올려 힘을 모은 후 공을 던졌다.

타앗!

김준기의 손을 떠난 공이 존에 조금 몰려서 들어갔다.

이지성은 3루수를 보며 공을 밀어 때렸다.

“3루수! 머리 위로 가는 공을 놓칩니다. 3루수 강제관 선수의 점프가 조금 모자랐네요.”

“이지성 선수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달려드네요. 공을 보는 것보다 일단 치고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겠죠?”

이지성이 1루를 밟고 숨을 골랐다.

자신 같은 유형의 리드오프에게 투수들의 선택지는 언제나 비슷했다.

빠른 공, 빠른 공.

변화구 하나 정도가 섞이긴 하지만 70% 이상이 빠른 공 승부다.

주자가 없다면 70% 이상.

초구라면 80% 이상.

초구를 변화구로 던지는 이유는 손이 덜 풀렸거나 공 하나를 빼기 위한 것 정도가 전부다.

그동안 팀을 위해 공을 오랫동안 지켜봤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일단 치고 나가야 한다.

“이지성 선수가 나가면서 무사 1루. 울브스 입장에서도 꽤 골치 아픈 주자죠?”

“타자는 설진일 선수, 초구를 잘 노리는 선숩니다. 빠른 주자가 나가면 배터리는 바깥쪽 빠른 공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그만큼 볼 배합이 단순해진다는 얘깁니다. 공격 측에서도 이걸 잘 알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바깥쪽 빠른 공을 던지자니 설진일 선수는 빠른 공도 잘 치고, 특히 초구는 더 잘 치는 타자예요. 초구부터 투수가 받는 압박감이 상당하단 얘깁니다.”

포수가 사인을 냈다.

‘슬라이더, 로우.’

빠른 변화구로 땅볼을 노려 병살을 만들자.

김준기는 사인을 확인한 후 주자를 슬쩍 쳐다봤다.

병살을 노리자면 주자의 리드 폭을 줄여야 한다.

이지성의 리드는 여섯 발자국 정도.

180cm 내외로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다.

우선 눈으로 주자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퀵 모션을 취했다.

팡!

아래로 떨어지는 전매특허의 슬라이더.

포수는 공을 잡은 채 타자와 주자를 번갈아 봤다.

-볼, 로우.

“변화구 하나를 지켜보는 설진일 선숩니다.”

“초구를 공격적으로 노리는 설진일 선순데 먹음직한 초구를 그냥 지켜봤습니다. 저건 안 속아 넘어가기가 더 어려운 공이었는데요.”

“일단 울브스가 초구 하나를 낭비하게 됐습니다.”

주자의 2차 리드도 길지 않다.

타자는 초구를 치지 않았다.

도루할 생각이 없는 건가?

울브스 벤치에서 사인이 나왔다.

‘승부.’

이지성은 잊고 승부하라는 사인이었다.

송석현을 제외하곤 이번 3연전에서 크게 두려운 타자는 없다.

괜히 머리 아프게 꼬았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슬라이더, 로우.’

똑같은 슬라이더.

타자가 슬라이더를 보고 골랐을 리 없다.

주자가 도루 생각이 없다면 병살을 또 노려 본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주자가 뛰었다.

“설진일 선수, 번트! 번틉니다!”

설진일은 김준기가 공을 던지는 순간 몸을 낮춰 배트를 내밀었다.

배트 끝에 맞은 공이 3루 라인을 따라 흘렀다.

“마이! 마이!”

투수와 포수가 서로 소리쳤다.

공은 투수에게 조금 더 가까웠으나 김준기는 좌투수였다.

좌투수가 1루로 공을 던지기 위해선 몸을 반 바퀴 돌려야 한다.

던지는 건 포수가 더 용이했고 가까운 건 투수가 더 가까웠다.

포수와 투수가 잠시 주춤하다 투수가 공을 잡았다.

1루로 던진 공은 1루수의 글러브에 들어갔으나, 1루수가 점프를 해야 잡을 수 있는 공이었다.

-세입!

“세입! 세입입니다! 동 타이밍 승부였는데 1루수의 발이 베이스에서 떨어졌어요.”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서 작전이 나왔습니다. 상당히 빠른 템폽니다. 설진일 선수가 초구를 지켜봤잖습니까? 그래서 울브스가 작전을 염두에 두지 못한 거 같아요.”

“번트를 잘 대지 않는 설진일 선수라 더 그런 것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런 것도 영향이 있죠. 공격적인 타자 아닙니까?”

김준기가 콧바람을 훅 내뱉었다.

마음이 급해 제대로 송구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설진일의 발이 더 빠른 탓이었다.

“미안해요, 형.”

김준기가 신민호를 보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됐어. 뭐, 그럴 수도 있지.”

자신도 작전을 생각지도 못했으니 큰 소리를 낼 형편은 아니다.

“설진일이 번트도 잘 대네…….”

울브스의 감독 장태섭이 뒷짐을 졌다.

존 아래로 빠르게 꺾이는 변화구를 번트하는 건 쉬운 게일이 아니다.

번트는 배트가 지면과 수평을 이뤄야 하는데 빠르게 떨어지는 변화구의 경우 자기도 모르게 배트가 기울기 마련이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몸을 낮춰 배트로 공을 맞춰 기어이 번트를 댔다.

코스도 좋고 침착했다.

“음.”

이지성이야 발 빠르고 작전도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저 공격적이기만 한 설진일까지 저 정도 센스가 있다면…… 고트의 1, 2번이 굉장히 까다로워진다.

특히 포스트시즌 같은 단기전에 이지성과 설진일의 발은 비수로 꽂힐 수 있다.

“3번 타자 김인환 선수가 나옵니다. 무사 1, 2루. 타점을 만들어야 할 찬스죠.”

“김준기 선수가 지금 정신이 없습니다. 한 번 숨을 고르고 가야 할 거 같아요. 이제부터 상대는 김인환, 송석현 선수거든요.”

김인환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하나만 노리자, 하나만.”

김준기의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 커브, 슬라이더.

김준기의 결정구는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다.

포심과 슬라이더를 구분하기 어려운 데다 땅볼과 삼진도 많이 만들어 내는 조합.

커브도 나쁘진 않지만 그리 뛰어나지도 않다.

그저 흔한 써드 피치 정도.

김준기의 초구는 50% 포심, 40% 슬라이더, 10% 커브다.

딱 하나 노려서 치기 어려운 볼 배합.

타자들은 김준기의 슬라이더를 의식해 일단 공 하나를 지켜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투수라면 어떤 공을 던질까…….

생각이 길어지는 찰나, 김인환이 고개를 도리질했다.

자신은 송석현 같은 타자가 아니다.

볼 배합을 읽고 예측하는 두뇌파가 아니다.

머리를 비우고 계획대로 가야 한다.

확률대로 친다.

김준기의 초구는 50%가 포심이다.

포심을 노린다.

팡!

-스트라이크!

“김인환 선수. 화끈한 스윙을 보여 줍니다만, 헛스윙이 되고 말았습니다.”

“초구 날카로운 슬라이더에 헛스윙. 김준기 선수의 슬라이더는 역시 명품입니다.”

김인환이 헬멧을 손으로 꾹 눌렀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다.

잊어버리자.

머리를 비우고 계획대로 간다.

이번엔 노리는 구종을 바꾼다.

슬라이더.

병살을 노리는 만큼 몸 쪽 직구나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몸 쪽 공이 오면 스트라이크 하나 먹어 주고 바깥쪽 슬라이더는 많이 빠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풀스윙이다.

“…….”

포수 신민호가 김인환을 곁눈질로 살폈다.

침착하다.

언제나 타석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던 김인환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근래에는 침착해졌다.

무엇보다 타석에 미련이 없어진 게 색다르다.

삼진을 당하면 세상 무너진 사람처럼 고개를 축 떨어뜨리고 벤치로 돌아가던 놈이다.

지금은 삼진을 당하면 별일 아니라는 듯 벤치로 사라진다.

마음을 비운 건가?

‘슬라이더.’

신민호는 김인환의 약점을 한 번 더 노리기로 했다.

떨어지는 공.

김인환이 최근에는 떨어지는 공을 노려서 치는 경우도 왕왕 생겼지만, 여전히 떨어지는 공에 헛스윙한다.

초구에도 헛스윙을 시원하게 돌리지 않았나.

바깥쪽에서 뚝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헛스윙 혹은 병살을 노려 본다.

정타를 쳐도 여간해선 멀리 나갈 일 없는 공이다.

김준기가 공을 던졌다.

“후.”

김인환이 옅은 숨을 내뱉곤 시동을 걸었다.

머리를 비우고 계획대로.

탕!

“좌익수 뒤로! 좌익수가 놓치는 공! 안타! 안탑니다! 2루 주자는 홈으로! 1루 주자까지 홈으로! 타자 주자는 2루까지! 2루까지 넉넉하게 안착! 2타점 2루타! 김인환 선수가 기어이 타점을 올리고 맙니다.”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기술적으로 잘 밀어 쳤습니다. 김인환 선수의 테크닉이 대단하네요. 좋은 공이 나오기 힘든 코스거든요. 먹히는 공이라고 봤는데 그라운드 안에 기어이 집어넣고 맙니다.”

“이창훈 선수가 1회를 참 어렵게 넘겼는데 김준기 선수도 1회가 고빕니다. 쉽게 넘기기 참 어려워요.”

“점수는 3-2. 이틀간 잠잠했던 고트의 타선에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페가수스와 스콜피언 상대로 선전했던 데에는 타선의 힘이 컸거든요. 잠시 주춤했지만 역시 컨디션이 문제였나 봅니다. 다시 살아나고 있어요.”

“이렇게 되면 무사 주자 2루에 타자로는 송석현 선수가 올라옵니다.”

“그동안 철저하게 송석현 선수를 피해 가던 울브스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습니다. 타선의 컨디션이 올라왔거든요. 주자를 쌓아 뒀다가는 더 큰 화를 당할 수 있어요.”

울브스는 송석현을 거르고 유선호를 선택했다.

“울브스는 안전한 선택을 합니다. 송석현 선수를 1루로 보내 유선호 선수를 상대로 병살을 노려 볼 심산이에요.”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을 친다는 유선호 선수 아닙니까? 괜찮을까요, 이 선택?”

“송석현 선수보단 유선호 선수가 더 낫다는 판단이겠죠. 송석현 선수는 잠실에서 가장 강한 선수거든요. 잠실 담장이 집 앞 담벼락보다 낮은 게 송석현 선수예요.”

송석현은 1루에 나가 몸을 낮췄다.

최악의 경우의수, 병살을 면하기 위해선 2루로 빨리 뛰어야 한다.

병살을 노린다면 슬라이더가 좋은 김준기는 바깥쪽 떨어지는 코스를 노릴 거다.

몸 쪽을 노리기엔 직구 구속이 140km/h 초반이라 강타자 상대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바깥쪽 코스로 간 공에는 언제든 2루로 뛸 준비를 한다.

송석현이 리드 폭을 넓히면서 투수의 발뒤꿈치를 노려봤다.

‘포심, 인사이드.’

포수 신민호의 선택은 몸 쪽 빠른 공.

침착하고 서두르지 않는 유선호라면 초구 몸 쪽 공이나 커브를 제외하고 바깥쪽 공을 노리고 있을 거다.

일단 몸 쪽 공 하나로 카운트 하나를 잡고 바깥쪽 커브와 슬라이더로 땅볼을 노려 본다.

김준기가 던진 공이 타자의 몸 쪽을 찔렀다.

김준기의 공은 빠르지 않아도 투구 폼이 좋아 체감상 더 빠르게 느껴진다.

탕!

“우중간! 우중간을 꿰뚫는 안타! 2루 주자는 3루 밟고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1루 주자는 3루까지,  3루에서 멈춥니다. 타자 주자는 2루로 넉넉하게 안착하면서 점수는 3-3, 동점이 됩니다.”

“오늘 고트가 승부를 빠르게 봅니다. 템포가 빨라요. 울브스가 계속 꼬이고 있어요.”

신민호가 포수 마스크를 올렸다.

마음이 급했다.

유선호 정도의 타자라면 풀카운트를 각오하고 어려운 승부를 갔어야 했는데 최근 두 경기에서 부진했다고 쉽게 생각했다.

정직한 승부는 유선호 정도의 타자에겐 고마운 승부일 뿐이다.

“1회 말, 경기는 다시 동점이 됩니다. 양 팀 모두 타선이 불타오르면서 이제야 잠실 라이벌전이 제대로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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