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3)
송석현의 홈런 한 개가 경기에서 나온 유일한 득점이었다.
마이클 피시는 3안타 무실점 완봉승.
경기 MVP는 마이클 피시였다.
“오늘 고트 입장에선 최고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마이클 피시 선수가 완봉을 하면서 불펜을 많이 아꼈어요.”
“하지만 타선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여 주면서 양 팀 감독의 시름이 깊을 것 같습니다. 고트는 출루는 많이 했지만 잔루가 많았고, 울브스는 마이클 피시 선수에게 완전히 꽁꽁 묶여 버렸어요.”
“그만큼 양 팀의 마운드가 높다는 얘기 아닐까요?”
“내일은 장계성 선수와 제임스 멕킨지의 대결입니다. 둘 다 내로라하는 선발투수이니만큼, 내일도 투수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경기가 끝난 후.
송석현이 퇴근 준비를 마치고 로커 룸을 나왔다.
김인환이 보이지 않아 문자를 보내자 답장이 왔다.
-연습 좀 하고 갈 생각. 먼저 들어가. 오늘 수고했어.
* * *
탕!
탕!
탕!
실내 연습장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소리가 쉬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급해. 허리가 제대로 돌고 나서 어깨가 돌아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하냐.”
“죄송합니다.”
“마음이 급하면 안 돼. 지금은 연습이잖아, 연습. 공을 못 치더라도 자세를 고치는 게 우선이지 여기서 홈런 빵빵 치면 뭐 할 낀데? 다시 쳐 봐라.”
“네.”
송석현은 말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연습장에 얼핏 보아도 대여섯 명이 넘는 선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유선호가 최재완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봐라. 재완이, 너.”
“네.”
“너는 눈이 좋아. 공은 잘 고르는데 타율은 별로제? 그제? 그게 다 니 머리가 움직여서 그칸기다. 딱 대가리를 뒤에 고정시킨 다음에 휘둘러야 카는데 마음이 급하니까 몸이랑 머리랑 같이 돌아 삐는 기지. 머리가 흔들리면 시선이 고정이 안 되는 거고. 무슨 말인지 아나?”
“네.”
“니도 야구 할 만치 했을 낀데 이걸 모르겠나? 결국 맘이 급한 게 문제다. 스윙을 왜 그렇게 서두르는데?”
“그게 자꾸 헛스윙이 나와서요. 제 뱃 스피드가 좀 느린 거 같아서 마음이 급해진 거 같습니다.”
“니도 니 문제점을 잘 아네. 그럼 그걸 고치면 되지, 왜 못 고치는데?”
최재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고쳐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거운 배트로 연습해 봐도 스윙이 빨라지는 건지 모르겠고…….”
“그럼 자세를 바꿔야지. 보폭을 줄여. 배트도 조금 더 가벼운 거 쓰고.”
“그것도 시도해 봤는데 장타가 너무 안 나오던데요.”
“야, 본즈도 860인가 880짜리 배트 들고 홈런 빵빵 쳤는데 가벼운 배트라고 홈런이 안 나올 거 같나? 적응 기간이 짧아서 그래. 처음부터 욕심 내지 말고 차근차근. 안타를 먼저 많이 만들고 난 다음에 멀리 칠 생각을 해야지. 처음부터 힘 빡 주고 멀리 칠 생각을 하면 되나?”
“아…….”
“니 배트 가벼운 거 쓸 때 안타 많이 안 나오더나?”
“그때는 조금 올랐습니다.”
“조금이 얼만데?”
“그때는 한 3할…….”
“3할? 하이고, 니 지금 타율 을메고?”
“……2할 3푼…….”
“확 마. 이란데도 헛소리할래? 3할을 치면 무조건 바꿔야지. 장타? 장타아아? 정신 차리라, 인마. 먼저 잘 치고 장타를 찾아야지.”
최재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와? 니도 욕심나나? 석현이랑 인환이 맨치로 빵빵 치고 싶어가 욕심 마이 나나?”
“…….”
“니 야구 하루 이틀 하나?”
“……죄송합니다.”
“니 할 것부터 찾아 해야지. 니는 홈런 타자가 아이야. 니 컨셉은 딱 중장거리 타자다, 중장거리. 내도 딱 니 같은 스타일이라 잘 안다. 욕심 버리고 잘 보고 잘 칠 생각부터 해. 멀리 치는 건 다음이야.”
“네, 알겠습니다.”
유선호가 최재완에게 어깨동무했다.
“인마, 내도 양철이 마이 부러워했다. 와 나는 저맨치 못 치는지 답답해 죽을라고 캤다. 그래도 우짜겠노, 사람이 타고난 게 다른데. 욕심 버리고 니가 지금 잘할 수 있는 거 먼저 해라. 알았나?”
“네, 선배님.”
“그래. 다시 함 해 봐라. 어이?”
최재완은 유선호의 지시대로 보폭을 줄이고 피칭머신의 공을 쳐 내기 시작했다.
피칭머신이 멈추자 최재완은 구석으로 가 홀로 스윙에 매진했다.
최재완이 빠지자 다른 선수들도 유선호에게 묻고 대답을 듣고 또 물었다.
송석현은 물끄러미 이들을 지켜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잘된 건가…….”
자신이 연습할 때도 다른 선수들이 와서 슬쩍 본다거나 물어본 적은 있었으나 유선호한테 하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묻진 않았다.
한참이나 어린 신인이자 막내에게 무언가를 물어본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다.
선수들도 송석현의 실력을 타고난 재능으로 치부하며 넘겨 왔다.
유선호는 송석현과 달랐다.
베테랑이자 리그에서 손꼽는 타격 장인이다.
이론적으로나 실전으로나 검증된 베테랑.
코치에게도 물어보기 어려운 부분을 도움 받기에 유선호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었다.
당연한 건데, 괜스레 서운한 밤이었다.
* * *
울브스와의 2차전.
어제의 접전으로 오늘도 잠실은 매진이었다.
울브스의 에이스 장계성과 멕 교수님으로 불리는 제임스 멕킨지의 대결.
어제 홈런을 친 잠실의 왕 송석현까지.
라인업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했다.
문제는 경기 내용이었다.
“4회까지 양 팀이 득점이 없습니다. 서로 양 팀 선발투수에게 꽁꽁 묶여 버렸습니다.”
“좌완 특급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선발투수는 예상대로 잘해 주고 있습니다만, 타자들이 전혀 힘을 못 쓰고 있습니다.”
“고트가 어려울 건 예상이 되던 그림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잘 치는 타자 중에 좌타자가 많지 않습니까? 이지성 선수나 김인환, 유선호 선수가 좌타자이고 장계성 선수가 좌타자에 강한 만큼 무게추가 울브스에게 기울었는데 울브스 타선도 이렇게 힘을 못 쓸 줄은 몰랐습니다.”
“울브스도 좌타자가 셋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그만큼 제임스 멕킨지의 공도 아주 좋다는 얘기겠죠.”
“투수전. 이런 경기도 야구의 묘미라지만 어제, 오늘 득점이 너무 안 나옵니다. 잠실 라이벌전인데 말이죠.”
“이러면 승부는 또 한 방으로 갈릴 수 있습니다. 어제처럼 말이죠.”
“오늘 울브스는 어제처럼 송석현 선수를 철저하게 피해 갑니다. 애매한 공도 안 주고 있어요. 송석현 선수를 거르고 좌타자만 상대한다는 전략 같습니다.”
“결국 좌타자들이 한 방 쳐 줘야지 별수 없죠.”
4회 말.
유선호의 병살타로 이닝이 끝났다.
유선호는 1루 베이스를 밟고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유선호 선수, 오늘 벌써 병살 두 개입니다.”
“장계성 선수의 저 슬라이더가 좌타자에겐 참 특횹니다. 바깥쪽으로 훅훅 휘어 나가는데 직구랑 구분하기가 어렵거든요. 헛스윙도 많이 이끌어 내지만 커터처럼 배트 끝부분에 맞아서 배트를 부러뜨리거나 땅볼도 많이 만들어 냅니다.”
“송석현 선수는 거르고 좌타자 김인환, 유선호 선수와 승부한다. 오늘 울브스의 작전은 제대로 먹혀들고 있네요.”
고트의 벤치는 조용했다.
어제는 잔루라도 남겼지만 오늘은 출루 자체도 어렵다.
좌타자뿐만 아니라 우타자들도 장계성의 공을 치지 못했다.
148km/h에 육박하는 직구, 타이밍을 잡기 어려운 투구 폼, 빠르고 날카로운 횡 슬라이더와 종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
울브스의 에이스이자 국가 대표로 뽑히는 이유를 실력으로 보여 줬다.
“후.”
함성훈 감독은 팔짱을 낀 채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예상한 대로 경기는 흘러간다.
변수를 만들어야 하는데 출루 자체가 어려우니 작전도 낼 게 없다.
이지성, 유선호가 들어오면서 팀 타선의 수준은 올라갔지만 확실한 문제점도 생겼다.
수준급 좌완 투수에게 약하다.
다행이라면 수준급 선발 좌투수는 팀마다 한두 명이 고작이지만 이 정도로 약하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포스트시즌에서 1승을 헌납해 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울브스는 수준급 좌투수가 장계성, 김준기 두 명이다.
스콜피언에도 데일 예거라는 용병 출신의 좌투수가 페가수스엔 조진희라는 국대 1선발투수가 있다.
A급 좌투수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희끄무레한 안개가 낀 것처럼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 * *
5회 초.
0-0의 균형을 깬 건 울브스의 4번 타자 강제관이었다.
탕!
“좌측 담장! 좌측 담장! 넘어갑니다! 강제관의 투런이 터집니다!”
“여기서 강제관 선수가 해 주네요. 투수의 실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멕킨지 선수가 제구가 좋은 선순데 결정적인 타이밍에 실투가 나옵니다.”
“공을 많이 던지다 보면 어쩔 수 없어요. 집중력도 떨어지지만 체력이 떨어지기 마련이거든요.”
“2-0. 먼저 앞서가는 울브습니다. 어제는 고트의 4번 타자 송석현 선수가 홈런으로 무득점을 깼는데, 오늘은 울브스의 4번 타자 강제관 선수가 홈런으로 0-0 균형을 무너뜨립니다.”
마운드 위의 투수, 제임스 멕킨지가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송석현은 자리에서 일어선 채 홈을 밟는 강제관을 바라봤다.
투 아웃에 풀카운트를 잡아 놓고 홈런.
제임스 멕킨지는 홀로 화를 삭이고 있으리라.
제임스 멕킨지는 5번 타자를 땅볼로 유인했으나 2루수의 실책으로 아웃 카운트를 잡지 못했다.
6번 타자에겐 높은 플라이볼을 유도했으나 유격수와 좌익수가 서로 양보하다 텍사스 안타.
울브스의 7번 타자는 유격수 이용철이었다.
“2사 1, 2루 상황. 타자는 유격수 이용철 선숩니다. 유격수지만 3할 타자, 쉬운 선수가 아닙니다.”
“아, 여기서 포수가 마운드 위로 올라가네요. 잘 끊어 줬다고 봅니다. 여기서는 한 템포 끊어 줘야죠.”
제임스 멕킨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송석현은 마운드에 통역사가 오기도 전에 말했다.
“쏘리.”
멕킨지는 고개를 들어 송석현을 봤다.
통역사가 옆으로 오자 멕킨지가 물었다.
“뭐가 미안해?”
“포수로서 타자로서 미안해.”
“네가 뭘 잘못했다고. 미안할 거 없어.”
“오늘같이 공을 던지는데 타자들이 승리를 안겨 주지 못하면 미안해해야지.”
멕킨지가 웃었다.
“오늘 내 공 별로야. 그러니까 홈런을 맞았지.”
“강제관 선배는 뛰어난 타자야. 그러니 이제야 겨우 홈런 하나를 친 거지. 네 손에서 공이 미끄러지지 않았다면 삼진이었을 거야.”
“실투는 실투지. 내 잘못이야.”
“실점은 투수의 잘못이 아니야. 3점까진 익스큐즈잖아. 오히려 3점도 못 낸 게 잘못이지. 그러니 우리 타자들을 욕하면서 던져, 본인 탓하지 말고.”
송석현이 멕킨지를 보며 웃었다.
멕킨지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헤이, 미스터 나이스 가이. 이럴 땐 화 한 번 내도 돼.”
송석현이 마운드를 내려갔다.
통역이 멕킨지와 송석현을 한 번씩 보더니 마운드를 내려갔다.
멕킨지는 글러브로 입을 가린 채 크게 웃었다.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했을까요? 좀 길게 얘기한 거 같은데요.”
“송석현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가면 투수들이 좀 달라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게 용병한테도 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송석현이 홈플레이트로 돌아왔다.
제임스 멕킨지.
지나칠 정도로 착하고 매너 좋은 남자다.
별명도 나이스 가이.
독실한 크리스천.
성격이 좋다는 게 언제나 장점이 되는 게 아니다.
속으로 화가 들어찰 때도 꾹꾹 눌러 삭인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침착한 건 좋지만, 화를 참지 못할 때도 있는 법이다.
“굿 보이.”
멕킨지는 송석현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포수지만 든든한 녀석이다.
투수코치는 감독에게 말했다.
“제가 나갈 타이밍에 석현이가 나가 버리네요.”
“그만큼 경기 보는 눈이 빠른 거죠.”
“저 어린애가 참 해 주는 게 많아요, 팀에.”
“그래서 더 미안합니다. 감독으로서 제대로 못 하는 거 같아서요.”
고군분투.
타자로서 포수로서 팀의 중심에서 딱 버티고 있다.
멕킨지는 송석현이 내려간 후 이용철에게 초구로 몸 쪽 싱커를 던졌다.
퍽!
미트에 꽂히는 소리가 묵직했다.
송석현은 보란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면서 투수에게 공을 던졌다.
멕킨지도 송석현에게 보란 듯이 공을 받고선 제 가슴을 두드렸다.
나를 믿으라는 신호였다.
-스트라이크! 아웃!
멕킨지는 연속으로 몸 쪽 공 세 개로 루킹 삼진을 뽑아냈다.
“와우!”
멕킨지가 포효하자 고트 선수들이 웃었다.
“생전 저런 거 안 하던 애가 왜 저런데?”
“그러게.”
송석현은 벤치로 들어오면서 멕킨지의 어깨를 툭툭 치곤 엄지를 내밀었다.
“굿. 베리 굿. 유아 마이 베스트 피처.”
송석현과 멕킨지가 웃자 실책으로 눈치 보던 정동규와 정영수도 한숨을 돌렸다.
멕킨지는 7회까지 3점을 내주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고트는 불펜 김진석을 올렸지만 2실점.
득점은 한 점도 없이 5-0 패배였다.
단 한 점도 내지 못한 채 5-0으로 경기를 마쳤다.
“자 자, 오늘 다들 약속 없지? 바닥 찍었으면 이제 올라가야지. 같이 연습할 아들은 여 남아라. 내가 맛있는 거 시킬 테니까 먹고 가레이. 알긋나?”
유선호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선수들을 모아 놓고 야간 연습조를 모았다.
타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특타를 요청했다.
코치들까지 모두 남아 훈련을 도왔다.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선호가 송석현을 따로 불렀다.
“석현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