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30화 (130/201)

천재

아웃을 당한 강균승은 감독의 눈을 피해 벤치로 들어왔다.

스콜피언의 감독 이건후가 침음을 흘렸다.

“쟤 팝타임이 얼마라고 했지?”

“최근에 잰 것 중에선 1.91초가 가장 빨랐습니다.”

“그래…….”

감독이 턱을 매만졌다.

“한 번만 더 해 봐. 피지컬이 다가 아니니까.”

“네.”

감독의 눈이 송석현에게 향했다.

“어깨까지 저렇게 좋다고……?”

* * *

탕!

정대한은 이창훈의 패스트볼을 때려 우익수 앞 안타를 만들었다.

“안타! 정대한 선수가 힘껏 당겨서 안타를 만듭니다.”

“바깥쪽으로 잘 들어간 공이었는데 잘 맞췄습니다. 이창훈 선수의 직구를 저렇게 때리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역시 정대한 선숩니다. 천재라는 소리는 아무나 듣는 게 아니거든요.”

투수 이창훈이 마운드를 발로 다졌다.

안타를 맞은 게 못내 분한 눈치였다.

송석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야수 수비를 다시 뒤로 밀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홈런왕 조양철.

홈런왕 타이틀만 세 개가 있는 타자였다.

몇 년째 홈런왕 타이틀은 없었지만 꾸준히 홈런왕 경쟁에선 빠지지 않는 강타자.

“조양철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존재감이 참 무시무시하네요. 최근 다시 홈런 페이스를 올리고 있죠?”

“그렇습니다. 조양철 선수의 장점이죠. 홈런에 기복이 없어요.”

“스콜피언이 과감하게 유선호 선수를 넘길 수 있었던 데는 조양철 선수의 몫도 컸을 겁니다.”

“그렇죠. 유선호, 이지성을 주고 이낙균을 데려온 건 스콜피언 입장에서도 괜찮은 트레이드였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이낙균 선수가 올 시즌에 복귀를 못하면 크게 손해 보는 트레이드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한 데에는 황기덕, 강균승, 정대한, 조양철이라는 황금 라인이 버티기 때문이죠. 여기에 이낙균 선구까지 복귀한다면 스콜피언은 이낙균, 조철웅 선수까지 1번부터 6번까지 국가 대표급 타선을 보유하게 됩니다. 물론 이 중에 핵심이 있다면 황기덕 선수와 조양철 선수겠죠.”

“기복 없는 홈런 타자. 투수 입장에서는 참 어려운 상대일 거 같네요.”

“그럼요. 이창훈 선수라고 해도 조양철 선수는 까다로운 타자일 겁니다.”

볼 카운트는 2-0.

이창훈의 커브와 슬라이더 모두를 골라낸 조양철이 배트를 다시 한번 고쳐 잡았다.

송석현의 손가락이 주저했다.

1루의 정대한은 발도 빠른 타자다.

정대한의 도루를 잡기 위해선 투수는 빠른 공을 던져야 한다.

송석현은 도루를 염두에 두고 역으로 투수에게 변화구 두 개를 요구했지만 주자는 움직이지 않았고 타자는 치지 않았다.

투 볼 상황이면 투수는 패스트볼을 던져야 하는 압박에 직면한다.

‘포심, 아웃사이드.’

공 두 개를 낭비했으니 투수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타자가 패스트볼을 노리는 걸 알면서도 들어가야 한다.

이창훈이 여태 나온 공 중 가장 빠른 공을 던졌다.

탕!

조양철이 힘껏 휘두른 배트에 맞은 공이 좌익 선상을 넘어 3루 관중석 상단을 때렸다.

큼지막한 파울 홈런.

“조양철 선수, 아쉬워하네요. 방금은 너무 배트가 돌아간 거 같습니다.”

“힘이 많이 들어갔네요. 바깥쪽 공이 저렇게 잘 들어오면 결대로 밀어 치는 것도 필요한데 홈런 욕심이 컸나 봅니다.”

“그래도 저런 파울 홈런이 나왔다는 건 타자가 타이밍을 잡았다는 얘기죠?”

“그럼요. 타이밍이 맞았어요. 이창훈 선수라고 해도 조양철 선수의 노림수는 완전히 다 피해 가기 어려울 겁니다.”

이창훈은 로진백을 손에 털었다.

한 방이 있는 타자가 침착함까지 갖췄다.

관중의 시선이 이창훈과 조양철에게 쏠려 있을 무렵, 스콜피언 벤치에서 사인이 나왔다.

‘런 앤드 히트.’

타자와의 싸움에 집중하는 지금 타이밍이 작전의 최적 타이밍이다.

사인을 받은 정대한은 눈만 조금 깜박였다.

강균승이 잡혔다.

작전 미팅에서 듣던 대로 포수의 어깨가 좋다.

다른 팀이라면 도루를 자제할 테지만 스콜피언은 달랐다.

“너희도 익히 알고 있지만 한 번 더 강조할게. 도루는 포수와의 대결이 아니야. 투수와의 눈치 싸움이지. 아무리 어깨가 좋은 포수라도 투수가 타이밍을 내주면 별수 없어. 그러니까 포수 어깨에 신경 쓰지 말고 타이밍 잡히면 뛰어.”

강균승이 잡혔지만 정대한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여기서 도루를 성공하면 강균승보다 발이 빠른 게 된다.

팀에서 도루 3인자보단 2인자가 나은 법이다.

황기덕 같은 돌연변이야 애초에 제외하는 게 맞는 법이다.

“후우.”

정대한이 몸을 살짝 좌우로 흔들었다.

투수가 발을 들기 전 0.3초 전에 뛴다.

너무 빨리도 늦어도 안 된다.

투수의 몸이 살짝 움찔하며 다리가 들리는 찰나가 스타트다.

도루하기로 마음을 먹자 시간이 점점 느려진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뛴다.

뛴다.

뛴……다!

팟!

이창훈이 다리를 드는 것과 동시에 정대한이 스타트를 끊었다.

이창훈의 공은 포심 패스트볼.

조양철이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탕!

“좌측 담장! 좌측 담장! 좌측 담장! 아! 파울입니다. 마지막에 많이 휘어서 나가네요.”

“방금은 정말 타이밍이 제대로였죠? 아주 미세한 차입니다. 정말 미세한 차이로 배트가 조금 빨리 돌았어요.”

이미 2루에 도착한 정대한이 몸을 뒤집어 두 팔로 땅을 짚었다.

옷 앞섶은 이미 흙먼지로 가득했다.

“하.”

정대한은 허탈하게 웃었다.

“정대한 선수가 스타트를 잘 끊었는데 정말 아쉽겠네요.”

“작전이 나오는 타이밍은 좋았는데 여기서 고트가 한 번 더 꼬았습니다. 바깥쪽 빠른 공이 아니라 몸 쪽 높은 쪽에 빠른 공을 던졌어요. 보통 도루를 염두에 두면 바깥쪽 빠른 공을 유도하기 마련이거든요. 조양철 선수도 초점을 바깥쪽 빠른 공에 뒀을 텐데 여기서 몸 쪽, 그것도 높은 코스로 올 거라는 건 생각 못 했을 겁니다.”

스콜피언의 감독 이건후의 미간에 내 천 자가 깊게 새겨졌다.

“장 수석.”

“네, 감독님.”

“고트 볼 배합, 포수가 한다고 하지 않았어?”

“네, 감독이 웬만하면 포수에게 맡긴다고 합니다.”

“그래…….”

이건후가 미간을 더 좁혔다.

모두가 투수와 타자의 대결에 신경 쓸 타이밍에 작전을 꺼냈다.

도루를 신경 써서 빠른 공을 던졌다면 조양철의 배트에 걸렸을 테고, 변화구를 던졌다면 정대한의 스타트를 고려해 볼 때 2루에서 살았을 터다.

스콜피언 입장에선 어떤 결과든 손해 보지 않는 장사였는데 여기서 몸 쪽 빠른 공이 들어왔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홈런 타자에게 몸 쪽으로 찌르는 빠른 공.

스콜피언의 작전은 무산됐고 조양철은 카운트를 하나 낭비했다.

누가 봐도 스콜피언이 유리했던 이지선다 게임이었다.

이걸 스무 살짜리가 역으로 허를 찔렀다……?

“차라리 운이었으면 좋겠는데…….”

“네?”

이건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양철이 삼진으로 물러섰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에 헛스윙 삼진.

벤치에서 탄성이 터졌다.

“아깝네.”

“파울 홈런 나오면 꼭 이렇다니까.”

선수들이 한두 마디씩 아쉬움을 표하며 그라운드에 나갈 채비를 했다.

이건후는 품속의 담배를 찾더니 벤치 뒤로 걸어갔다.

“후우.”

붉은 담뱃불과 하얀 연기 속으로 졸린 듯, 부리부리한 눈이 끔벅거렸다.

“하아.”

이건후은 연달아 담배를 한 대 더 피운 후에야 벤치로 돌아올 수 있었다.

* * *

짝짝짝짝.

이지성이 타석으로 가는 길, 양 팀 팬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3루 홈팀의 관중석에는 이지성의 스콜피언 유니폼을 걸어 둔 팬들이 보였다.

부상 후에 계륵 같은 선수로 전락했지만 이지성은 스콜피언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선수였다.

빠른 발, 정확한 타격, 넓은 수비 범위, 좋은 어깨까지.

부상 후에도 외야 백업으로 충분히 활용도가 높은 선수였다.

팬들도 이지성에게 외야 백업으로 남으라는 말이 욕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한때 국가 대표까지 맡았던 이지성이다.

정상을 밟았던 선수가 후배에게 밀려 외야 백업으로 만족하기엔 이지성의 스물일곱이란 나이는 어렸다.

팬들도 이를 알고 있기에 야구 팬 사이트에서 이지성은 트레이드 매물로 자주 언급됐다.

-이지성으로 누구까지 받아 올 수 있나요?

-이지성+α로 누구까지 가능?

-이지성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트레이드해야 B급이라도 받아 올 수 있습니다.

-이지성 정도면 A급 외야 백업인데 굳이 팔 필요가 있나?

계륵 같던 선수라지만 한때나마 부동의 주전이었던 선수다.

스콜피언 팬들의 박수에 이지성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 헬멧을 벗고 3루 관중석에 고개를 숙였다.

짝짝짝짝.

마운드의 선발투수 강구일은 글러브 위로 손을 두세 번 쳤다.

이지성이 헬멧을 쓰고 타석에 들어섰다.

강구일과 눈이 마주친 이지성이 싱긋 웃었다.

강구일도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상대 팀으로 맞붙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그러게나 말이죠. 이지성과 강구일, 모두 스콜피언의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공신들 아닙니까? 또 재활 동료이기도 하구요.”

“이지성 선수와 강구일 선수 모두 재활로 긴 시간을 보냈었죠?”

“네, 그렇습니다. 이지성 선수는 손목을 다쳤었고 강구일 선수는 팔꿈치를 다쳤었죠. 두 사람 모두 2년 가까운 재활을 거치면서 상당한 친분을 쌓았던 거로 압니다. 강구일 선수는 큰 구속 저하를 겪었지만 스플리터를 갈고닦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는데, 이지성 선수는 끝끝내 예전으로 돌아오지 못했죠. 황기덕이라는 유망주가 리그 최고의 중견수로 우뚝 서면서 자리도 애매해졌구요.”

“한 살 차이로 서로 형, 동생 하는 사이라고 하는데 두 선수 모두 기분이 남다를 거 같습니다.”

이지성이 타석에 들어서자 포수 구승철이 말했다.

“잘해.”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래도 안 봐줄 끼야.”

“네, 그럼요.”

이지성이 타석에 바짝 붙었다.

구승철은 바로 몸 쪽 포심 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강구일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켰다.

손목이 약점인 이지성에게 가장 치기 어려운 공이 있다면 역시나 몸 쪽 빠른 공일 거다.

치사하다 생각할 수 있고, 프로답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강구일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지성과 눈이 마주쳤다.

이지성의 눈빛이 형형하다.

평소 이지성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프로가 프로다워야지.”

프로.

이지성이 매번 강조하던 단어.

강구일이 자세를 잡았다.

어쭙잖은 공은 이지성을 욕보이는 일이다.

프로는 프로답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빠른 공이라고 해 봐야 145km/h가 최선이지만 이지성의 몸 쪽으로 온 힘을 다해 던졌다.

탕!

이지성은 몸을 돌리면서 공을 쳐 냈다.

공은 2루수 머리를 훌쩍 넘기는 단타였다.

“초구를 때려 내는 이지성 선숩니다. 이지성 선수가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나가네요.”

“허허, 설진일 선수를 닮아 가나요? 평소에는 공을 많이 보는 선순데 오늘은 초구부터 방망이를 냈네요. 그것도 몸 쪽에 붙은 공이었는데 말이죠.”

포수 구승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손을 올렸다.

포수도 투수도 야수들도 웃음을 지었다.

몸 쪽 공을 쳐 냈다.

장타는 아니지만,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는 아니지만 몸 쪽 공을 쳐 냈다.

“해냈네, 형.”

강구일이 1루로 간 이지성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이지성은 피식거리며 못 본 체했다.

1루수 조양철은 이지성의 엉덩이를 툭툭 손으로 쳤다.

“잘 치네, 지성이.”

“감사합니다.”

“손목은 괘안나?”

“네, 아직은.”

“그래. 됐다, 그럼.”

스콜피언의 감독 이창훈은 뒷짐을 진 채 이지성을 바라봤다.

“쟤 여기 있을 땐 몸 쪽 공 아예 손도 못 대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음.”

이창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저놈도 난놈이었지. 고트 간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방법을 찾았나 보네.”

머리가 지끈하다.

이번 3연전이 꽤 어려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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