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24화 (124/201)

우완 파이어볼러 김성훈

1회 초 마운드에는 김성훈이 등판했다.

1번 타자는 이지성.

김성훈은 초구 140km/h의 포심을 꽂아 넣었다.

-스트라이크!

외곽에 꽉 차는 공.

김성훈이 제2구도 바깥쪽에 포심으로 꽂아 넣었다.

탕!

이지성이 쳐 냈지만 포수 뒤로 가는 파울.

송석현은 팔짱을 낀 채 입술을 모았다.

“구속이 142km/h인데 배트가 밀리네요.”

“직구는 알아주잖아. 그러니까 원 패턴인데도 공략이 안 되는 거지.”

김인환은 벌써 나갈 채비를 마쳤다.

“형, 한 방 날려 줘요. 오늘 난 힘들 거 같아요.”

“나라고 쉽겠냐.”

“화끈하게 돌려 버려요, 배트.”

이지성은 어느새 2-2까지 카운트를 끌고 갔다.

김성훈은 결정구로 체인지업을 던졌으나 이지성이 삼유간을 꿰뚫는 땅볼을 치면서 1루로 나갔다.

“고트가 선두 타자를 출루시킵니다. 이렇게 되면 1회부터 김성훈 선수의 머리가 복잡해지겠죠?”

“이지성 선수의 발을 생각하면 김성훈 선수가 변화구를 던지기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 설진일 선수도 초구 빠른 공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어요.”

1루에 나간 이지성은 예의 그랬던 것처럼 리드 폭을 잔뜩 넓혔다.

투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엉덩이를 씰룩였다.

김성훈은 곁눈질로 한번 이지성을 본 뒤 초구로 바깥쪽 포심을 던졌다.

탕!

설진일이 기다렸다는 듯이 휘둘렀지만 공은 우익수 정면으로 가는 플라이.

이지성은 뛰지 못하고 귀루했다.

“150km/h. 김성훈 선수가 기어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게 김성훈 선수의 매력이죠. 직구를 140km/h부터 155km/h까지 구속 조절을 하면서 던집니다. 여기에 체인지업까지 섞으면 타자는 직구인지 체인지업인지 구분이 안 돼요. 보통 직구 구속을 조절하면 컨트롤에 애를 먹기 마련인데 김성훈 선수가 제구는 또 칼 같지 않습니까?”

“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투수죠.”

어느새 김인환이 타석에 들어섰다.

송석현도 대기 타석에서 배트를 들었다.

김성훈은 던지는 공의 60%가 바깥쪽 포심이다.

나머지 30%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몸 쪽 공을 던질 때도 있지만 비율이 많아 봐야 10%를 넘지 않는다.

실투가 아니면 몸 쪽 포심을 던지는 비율이 적다는 얘기다.

주구장창 바깥쪽 포심만 던지는데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우완 파이어볼러다.

구속 조절이 가능한 포심, A급 슬라이더, 칼 같은 제구.

팡!

-스트라이크!

“김인환 선수, 초구를 놓치고 상당히 아쉬워하네요.”

“저렇게 꽉 찬 공이 들어가면 어쩔 수 없죠.”

김성훈은 초구 바깥쪽 꽉 차는 포심을 찔러 넣어 스트라이크 하나를 얻어 냈다.

김인환이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분명 바깥쪽에 빠른 공이 올 거라는 걸 아는데도 쉽게 배트가 나가지 않는다.

김인환은 타석에 더 붙었다.

팡!

-스트라이크!

김인환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김성훈의 공은 포심 패스트볼.

배트가 늦었다.

“후우.”

송석현이 숨을 내뱉었다.

히팅 포인트를 뒤로 두면서 김인환의 선구안이 좋아졌지만 결국 임시방편일 뿐이다.

김성훈처럼 빠른 공을 바깥쪽에 붙이는 투수에겐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둬야 한다.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당긴다면……?

-스트라이크! 아웃!

“헛스윙 삼진! 체인지업이 잘 떨어졌습니다.”

“김인환 선수, 마음이 너무 급했네요. 체인지업 코스도 조금 빠졌거든요.”

“김성훈 선수가 빠른 주자를 1루에 두고도 두 타자 연속 아웃을 잡아냅니다.”

“김성훈 선수의 퀵 모션은 리그 최고 수준이죠. 1.3초는 넉넉하게 들어옵니다. 이지성 선수가 뛰기도 쉽지 않아요. 퀵 모션 빠르고, 바깥쪽 빠른 공을 주 무기로 하는 선수를 상대로 도루를 잘못했다간 아웃 카운트 하나만 낭비하는 셈이죠.”

타석엔 송석현이 들어섰다.

송석현은 타석에 바짝 붙어 스탠스를 더 열었다.

김성훈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깥쪽으로 공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슬라이더로 카운트를 하나 올리는 김성훈 선숩니다.”

“송석현 선수가 완전히 속았죠? 저게 김성훈 선수의 슬라이더입니다. 사이드암 투수가 던지는 것처럼 공이 바깥쪽으로 휙 빠져 버립니다.”

송석현이 헬멧을 매만졌다.

말도 안 되는 궤적이다.

영상으로 본 것보다 더 많이 꺾인다.

공이 배트를 피해 도망가는 기분이다.

송석현이 김성훈의 투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거친 조진희의 투구 폼과 달리 김성훈은 그야말로 교과서 그 자체다.

다만 독특한 점이 있다면 오버핸드라기보단 스리쿼터라고 부릴 수 있을 만큼 릴리스 포인트가 낮다는 것다.

교과적인 폼, 낮은 릴리스 포인트는 제구만 향상시키는 게 아니다.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슬라이더의 위력을 배가시킨다.

“빡빡하지?”

정용욱이 히죽거렸다.

송석현은 대답 대신 숨을 골랐다.

‘슬라이더.’

정용욱은 다시 한번 슬라이더를 요구했다.

송석현이 얼마나 골라낼 수 있는지 볼 참이었다.

-스트라이크!

“송석현 선수! 또 헛스윙! 역시 김성훈 선수네요. 우타자 상대로는 천적과도 같은 선숩니다.”

“우타자의 천적이자 고트의 저승사자죠. 고트의 우타자들에겐 최악의 투수네요.”

송석현이 타석에서 한 발 물러섰다.

진짜 말도 안 되는 공이다.

홈 플레이트까지는 직구처럼 날아오는데 갑자기 밖으로 빠진다.

커터라면 모를까, 슬라이더가 이렇게 각이 날카롭고 클 수가 있다고?

송석현은 타석 맨 앞으로 붙었다.

“송석현 선수가 몸 쪽을 아예 버리고 가나요?”

“저렇게 서면 스트라이크존이 확 좁아지죠.”

슬라이더가 꺾이기 전에 쳐 버린다.

정용욱은 다시 슬라이더를 요구했다.

탕!

송석현의 배트 끝에 걸린 슬라이더가 1루수를 스치는 파울이 됐다.

정용욱은 혀를 쑥 내밀었다.

“야, 그거 사기템 아니냐. 그거 닿아?”

“저 공이 더 사기템 같은데요.”

송석현이 장갑을 매만졌다.

걷어 내긴 했지만 까다로운 슬라이더다.

정용욱은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김성훈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수긍했다.

탕!

“중견수! 중견수! 중견수! 놓쳤습니다! 담장을 맞고 튕겨 나오는 공! 중견수가 잡아서 바로 2루로! 타자 주자는 2루를 가지 못하고 1루에서 멈춥니다. 타구 속도가 너무 빨라서 타자 주자가 2루까지 못 가네요.”

“떨어지는 공을 퍼 올려서 쳐 버리네요. 무서운 건 말이죠, 거의 직선타에 가까웠는데 잠실의 중앙 담장을 맞혔다는 겁니다.”

“김성훈 선수, 간담이 서늘하겠어요. 카운트를 유리하게 끌어가 놓고 하마터면 사고를 낼 뻔했네요.”

정용욱은 1루의 송석현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 새끼가 제일 사기템이라니까. 거기서 체인지업을 치냐.”

2사 1, 3루.

실점 위기지만 김성훈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유선호는 타석에 들어서자 정용욱에게 말을 걸었다.

“내 얼굴 봐서 공 하나만 도.”

“저번에도 공 줬는데 네가 못 쳤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도 하나 달라꼬.”

“알았어. 그럼 직구 하나 줄게, 직구. 됐지?”

팡!

-스트라이크!

“153km/h! 여기서 또 피치를 올립니다. 유선호 선수가 배트도 못 냈어요.”

“저렇게 외곽으로 꽉 채운 공을 던질 수만 있다면 누가 칠 수 있겠습니까.”

정용욱이 투수에게 공을 던지며 말했다.

“됐지?”

“하이고, 됐다. 저 공을 우예 치노.”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징징거리긴.”

김성훈은 외곽에 또 포심을 찔러 넣었다.

탕!

“파울입니다. 배트가 밀리네요.”

“저게 김성훈 선수의 특징이죠. 위기 상황에 오면 공이 더 좋아지거든요.”

제3구 체인지업은 볼.

제4구 포심에 유선호가 헛스윙 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유선호 선수, 좋은 기회를 잡았지만 타점을 올리지 못합니다.”

“제가 보기엔 말이죠, 아직 유선호 선수의 컨디션이 다 올라오지 못한 거 같습니다. 특히 2군에선 저런 직구 보기 힘들거든요.”

“고트가 득점권 찬스를 놓치면서 1회 말로 넘어갑니다.”

유선호는 배트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벤치로 돌아왔다.

김정률이 벤치에 앉아 껌을 씹고 있었다.

“형, 어제 너무 달려서 그런 거 아냐?”

“어제 술 안 마셨어. 2차만 하고 딱 끝났다, 인마.”

“웬일로, 형이?”

“나도 나이가 있는데 내 앞가림을 먼저 해야 할 거 아이가.”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배트가 느림보야?”

“후, 그러게 말이다. 머리는 이미 홈런을 쳤는데 배트가 못 따라오네.”

유선호는 벤치를 양손으로 짚고선 큰 눈을 깜박거렸다.

그라운드는 아직 파릇하고 저녁노을은 제 몸을 뉘고 있었다.

유선호가 제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아이겠지, 설마.”

1회 말.

고트의 선발 투수 마이클 피시가 마운드에 올랐다.

고트의 1선발답게 마이클 피시는 1회 세 타자를 범타로 끝냈다.

“오늘 경기는 투수전 양상으로 갈 확률이 높겠는데요? 양 팀 선발 투수가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습니다.”

2회, 3회, 4회, 5회.

양 팀은 상대의 선발 투수의 구위에 눌려 점수를 좀체 내지 못했다.

김성훈이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우완 투수 중 하나라면, 마이클 피시는 메이저리그에서 5선발 로테이션에 돌던 자원이다.

5회까지 0-0 팽팽했던 점수는 의외의 곳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악!”

고트의 9번 타자 정영수가 엉덩이를 붙잡았다.

김성훈의 포심이 엉덩이를 강타한 탓이었다.

“아, 여기서 사구가 나옵니다.”

“몸 쪽 공을 잘 안 던지는 김성훈 선수지만 이번에는 마음먹고 던졌는데 실투가 됐습니다.”

“이러면 첫 타자부터 출루하게 됩니다. 타순은 1번으로 이어지는데요.”

1번 타자 이지성이 배트를 짧게 잡고 타석에 섰다.

페가수스 벤치가 분주해졌다.

6회 초 0-0 상황.

무사 주자 1루.

번트를 대기 좋은 상황이다.

정용욱이 몸 쪽 포심 사인을 냈다.

김성훈은 고개를 저었다.

타자가 번트를 대기 가장 어려운 공이 몸 쪽에 붙어 오는 낮은 코스다.

몸 쪽 공은 설령 높게 들어가도 한가운데 코스만 아니면 타자가 손대기 어렵다.

방금 전 사구 때문에 몸 쪽 공을 꺼리고 있다.

정용욱은 바깥쪽 포심으로 사인을 바꿨다.

바깥쪽 낮은 코스 포심도 번트 대기 어려운 코스다.

수비수들도 슬금슬금 몸을 앞으로 움직였다.

김성훈이 마운드에서 발을 떼자 이지성이 번트 자세를 취했다.

그와 동시에 페가수스 내야수들이 앞으로 뛰었다.

“어? 쳤습니다!”

이지성은 번트 자세를 취하다가 수비수가 앞 대시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타격 자세를 취하곤 공을 때렸다.

공은 멀리 가진 못했지만 2루수가 역동작에 걸린 사이 2루수 머리 위를 훌쩍 지나갔다.

“1루 주자! 3루까지! 3루까지! 3루!!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번트가 아니었습니다.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였습니다. 고트는 작전을 잘 안 내는 팀인데 여기서 작전이 성공했습니다.”

페가수스 벤치에선 탄식이 터졌다.

알고도 당했다.

김성훈은 덤덤한 표정으로 포수에게 괜찮다고 손짓했다.

“저걸 치뿌네.”

유선호가 손뼉을 쳤다.

김성훈의 150km/h 포심을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로 때려서 안타를 만들었다.

예전 이지성이라면 손목이 풀리면서 잘해 봐야 파울이 날 공이다.

방금 이지성은 톱 핸드를 완전히 몸에 붙이며 쳤다.

팔로 스루(Follow through)가 끊겨 장타는 나오지 않았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제대로 된 팔로 스루 없이도 내야를 넘길 방법을 찾은 거다.

몸에 딱 붙은 톱 핸드.

그야말로 송석현의 트레이드마크 아닌가.

무사 1, 3루.

김성훈은 처음으로 볼넷을 내주면서 무사 만루를 만들었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김인환!”

고트 팬들이 한목소리로 이름을 외쳤다.

타석에 김인환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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