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23화 (123/201)

Team

-스트라이크! 아웃!

“김정률!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고트가 페가수스와의 주말 3연전에서 기분 좋게 1승을 따내고 시작하네요.”

“마지막에 저 떨어지는 싱커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김정률이 마운드에서 포효했다.

송석현이 마운드로 가 김정률과 주먹을 부딪쳤다.

“축하드립니다, 승리 따내신 거.”

“오늘 형 쩔지 않았냐?”

“네. 오늘 공이 뭐 아주 살벌하던데요?”

“이게 되네. 공이 느린데 애들이 치질 못해. 캬, 이럴 거면 내가 뭐 하러 그렇게 어깨 빠지게 빠르게 던졌나 모르겠다.”

김정률 곁으로 김인환이 다가왔다.

“승리 축하해요, 형.”

“땡큐, 땡큐.”

유격수, 2루수, 3루수까지 와서 김정률의 승리를 축하했다.

김정률은 광대가 한껏 올라가 껄껄 웃었다.

“오늘 니들 약속 빼 버렷! 형이 고기 쏜드아!”

“한우! 한우! 한우! 한우!”

“먹고 싶은 거 다 사 줄 테니까 나를 따르라!”

“김정률! 김정률! 김정률!”

김정률이 앞장서서 뛰자 선수들이 기차놀이를 하듯 김정률 뒤에서 발맞춰 뛰었다.

이를 본 함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팀 같네요.”

감독의 말에 배터리코치 김태우가 답했다.

“그동안 분위기가 너무 처져 있었죠.”

“참…… 그동안 많이 기다렸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감독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속 많이 썩으셨죠?”

“다 제 불찰입니다. 뎁스를 튼튼하게 키웠어야 했는데……. 석현이가 아니었다면 이번 시즌은 정말 암담했을 겁니다.”

“그것도 다 저희 복이지 않겠습니까. 운도 실력이죠, 프로에선.”

어느덧 외야수에 벤치 선수들까지 모여서 긴 기차를 만들었다.

김정률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행렬에 난색을 표했지만 김인환이 김정률의 혁대를 잡고 안 놔줬다.

“야! 너무 많잖아! 내 지갑 빵꾸 나!”

“김정률! 김정률! 김정률!”

“야, 이 미친놈들아! 내가 법인 카드냐? 니들한테 어떻게 한우를 다 사 주냐고!”

“김정률! 김정률! 김정률!”

“김인환! 벨트 놔! 놓으라고~~!”

“한우! 한우! 한우! 한우!”

수훈 선수 인터뷰는 김정률이 아니었다.

결승타를 친 최재완도 아니었다.

홈런을 친 송석현도 아니었다.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한 정천운이었다.

“오늘 승리를 따내지 못했지만 페가수스 상대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습니다. 소감 한마디 들을 수 있을까요?”

정천운은 헤드셋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저도 던지고 나서 알았습니다.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할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 호투의 비결이 있을까요?”

“포수가 던지라는 데로만 던졌습니다.”

“사전에 약속되거나 훈련한 게 따로 있었을까요?”

“아뇨. 그냥 포수가 던지라는 대로만 던졌습니다.”

해설자가 허허 웃었다.

“오늘 템포가 상당히 빨랐습니다. 승부도 아주 과감했구요. 미리 준비했던 거 아닙니까?”

“아니요. 저는 포수가 던지라는 대로만 던집니다.”

“그런가요? 그만큼 포수에 대한 믿음이 있는 걸까요? 송석현 선수가 정말 대단한 타자이긴 하지만 아직 어린 신인 포순데 선배로서 이끌어야 한다, 뭐 이런 생각은 없으신가요?”

정천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석현이가 저보다 똑똑한데 제가 석현이 말 듣는 게 낫지 않나요?”

“아……하하,  그렇군요. 송석현 선수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시네요.”

“저보다 똑똑한 친구가 저 대신 머리 써 주면 고맙죠. 아, 석현아, 고맙다. 다음에도 부탁한다.”

인터뷰가 끝난 후 캐스터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인터뷰에서 건질 게 너무 없었는데요?”

“그러게. 저렇게 인터뷰하면 너무 시시하잖아.”

“저거 진짜예요? 위원님은 투수였으니까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저거 진심인지, 아닌지.”

“저기서 거짓말할 필요 있나. 오늘 좀 위험한 장면이 있긴 했어도 송석현이 리드할 줄은 알던데?”

“이제 갓 스무 살짜리가 그게 되나?”

“그러게 말이야. 박신언 팔릴 때만 해도 고트가 문 닫으려고 그러나 했는데.”

“고트가 참 운이 좋아요, 하필 이 타이밍에 송석현이 툭 나오고.”

“그거야 작년 피닉스만하겠어?”

* * *

“젠장! 젠장! 젠장! 돼지를 먹었는데도 지갑이 후달리다니!”

식당에서 나온 김정률 뒤로 선수들이 줄줄이 따라 나왔다.

“잘 먹었습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선배님!”

“형! 고마워요!”

김정률은 손가락으로 눈가를 매만졌다.

송석현은 김정률에게 가 조용히 물었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크, 걸신이 들렸나. 애들이 왜 이렇게 많이 처먹는 거야.”

“죄송합니다. 저도 많이 먹었는데…….”

김정률이 송석현에게 어깨동무했다.

“넌 괜찮아. 넌 매일 한우 사 줄 수 있어.”

뒤에 있던 이지성이 입맛을 다셨다.

“저도 오늘 잘했는데 저도 한우 먹을 자격 있는 거 아닙니까?”

“그래, 지성이. 너도 잘했어. 너도 오늘같이 하면 매일 돼지고기 정도는 사 줄 수 있지.”

“석현이는 한운데 왜 저는 돼집니까?”

“넌 스페인 돼지 말고 한돈까지 오케이 해 줄게.”

“그거나, 그거나 똑같잖아요.”

“그럼 네가 석현이만큼 치든가. 그럼 매일 한우 사 줄게.”

“……에이, 그건 좀.”

유선호는 이쑤시개를 입에 물곤 김정률의 엉덩이를 발등으로 툭 찼다.

“치사하구로, 먹는 거 갖고 아를 차별하나.”

“아, 형. 나도 체면이 있는데 대로변에서 엉덩이를 까면 어떡해요?”

“어쭈? 대가리 좀 컸다 이거야?”

“형, 조심해요. 내가 형보다 먼저 은퇴해서 코치 하는 수가 있어.”

“어이구, 무서워라. 무서워서 오금이 저리 뿌네. 야. 니가 투수라고 포수 너무 감싸는 거 아이가? 지성이도 오늘 날라다니는 거 못 봤어?”

“지성이도 잘했다니까요. 그래도 내 베스트 픽은 석현이예요. 형도 억울하면 석현이만큼 해요. 그럼 내가 형 소개팅도 시켜 줄게.”

“치아라. 니가 무슨 연줄이 있어가 소개팅을 시켜 주는데?”

송석현이 말했다.

“곧 국수 먹을지도 모르는데…….”

“국수? 무슨 국수?”

김정률이 송석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직 국수 확실한 거 아냐, 아직.”

“어허, 말해 봐라. 니 누구 있나?”

“에헤이, 아직 아닙니다. 아직 오픈 전이에요.”

“확 마. 이적생이라고 차별하는 기가?”

“에이, 그건 아닌데.”

“빨리 말 모 다나?”

대답은 김인환이 했다.

“형, 팽혜리 아나운서랑 진지하게 사귄 지 좀 됐어요.”

“혜리? 팽혜리? 가가 니랑 사귄다꼬? 와? 가가 미칬나?”

“에헤이, 형. 곧 제수씨가 될 사람한테 미쳤다니.”

“가가 뭐가 아쉬워가 니랑 사귀는데?”

“아쉽다니, 내가 어때서? 나는 뭐 어디 빠지나?”

“그렇다고 알아주는 얼굴도 아이니까 하는 얘기지.”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하지, 무슨. 노총각이라고 부러워서 질투하는 거 봐.”

“질투는 무슨. 하이고. 됐다, 마. 치아라. 누군 뭐 못 사겨서 이라는 줄 아나. 야들아, 2차 갈 사람 붙어라. 애인 있는 놈들 빼고 내랑 놀러 갈 놈 있으면 손들어 봐라. 2차는 더 좋은 데로 갈 끼다. 니는 마 빠지고. 애인이나 만나러 가라, 인마.”

“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 나도 데이트 약속 있는 남자야, 왜 이래.”

유선호가 2차를 쏜다고 하자 선수들은 또 우르르 모였다.

김정률과 유부남 몇만 빠지고 대부분 유선호를 따랐다.

“석현이 니는 와 안 가는데? 니도 여자 있나?”

“저는 잠잘 시간이라서…….”

“……니 얼라가? 이 시간에 잔다꼬?”

“네. 죄송합니다, 선배님.”

유선호는 황당하다는 듯 송석현을 바라보다 이내 웃어 넘겼다.

“그래, 마. 누가 니한테 뭐라 할 끼고. 그래. 가서 푹 자라. 내일도 한 방 쌔려야지.”

“죄송합니다, 선배님. 다음에는 꼭 참석하겠습니다.”

“그래, 오늘 고생했다. 내일 보자이.”

“들어가십쇼.”

유선호는 손을 흔들곤 선수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송석현은 유선호를 따라나서는 이지성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이지성 선배님도 자기 관리 철저하신 분인데 회식을 2차까지 따라가시네요.”

김정률이 말했다.

“자기 관리는 자기 관리고, 때론 자기 관리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 오늘 같은 날이 딱 좋거든.”

“뭐가요?”

“뭐긴. 첫 1군 등록일이고, 페가수스 상대로 역전승까지 한 날이야. 이런 날처럼 친해지기 좋은 날이 어딨냐? 회식 하면서 노가리도 까고 그래야 또 으쌰으쌰 하는 거지.”

송석현은 고개를 돌려 김정률을 봤다.

“그럼 선배님 오늘 회식도 일부러 한 거예요?”

“겸사겸사. 이런 날 명분 만들어서 회식하는 거지. 이런 회식은 고참 선에서 스윽 진행하는 거야.”

“저는 유선호 선배님이랑 이지성 선배님이랑 여태 함께 지내서 오늘 회식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그런 건 공부로 되는 게 아니지. 눈치껏 하는 거니까.”

“유선호 선배님도 다 아시고 2차 가시는 거네요, 그럼?”

“저 양반이 그 정도도 모를까 봐. 덩치만 저렇지, 여우야, 여우. 그리고 여태 감투를 쓴 게 몇 년인데 그 정도는 기본이지, 인마.”

송석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나도 따라갈걸. 지금이라도 갈까요?”

“너는 굳이 안 따라가도 돼. 포수는 언제나 익스큐즈다. 송석현은 고트에선 언제나 프리패스지. 누가 너한테 터치를 하겠니?”

“누가 들으면 제가 되게 싸가지 없다고 보겠어요, 쩝. 선배님은 이제 데이트 가시는 거죠?”

“나? 아니.”

“아까 데이트 있다면서요?”

“오늘 없어. 그냥 가라로 한 말이야.”

“왜요? 회식 가기 싫어서요?”

“그게 아니지, 인마. 내가 빠져 줘야 선호 형이 으쌰으쌰 할 기회가 생기는 거 아니냐. 내가 있으면 형이 좀 불편하지 않겠냐?”

“아…….”

송석현이 김정률을 새삼스럽게 쳐다봤다.

“이거까지 다 생각한 거예요?”

“생각은 무슨. 그냥 보통 그렇게 하는 편이야. 이 정도는 눈치지, 뭐.”

“일부러 유선호 선배님이 후배들이랑 친해질 수 있게 자리 만들려고 큰 그림을……?”

“오바, 오바. 큰 그림은 아니고, 원래 이렇게 서로 기름칠할 기회를 줘야 팀이 매끄럽게 돌아가는 거야. 아무리 야구가 개인 스포츠라고 해도 서로 아다리가 맞출 기회는 있어야지. 선호 형이 와서 난 한숨 돌렸다.”

“선배님이 왕고에서 내려오는 건데 안 아쉬우세요?”

“아쉽긴. 내 나이에 왕고는 너무 일러. 우리 팀이 이상한 거지. 선호 형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이야, 너도 옆에서 봤으면 알겠지만.”

“네. 되게 성실하고 생각이 많으신 분 같았어요.”

“이제야 우리 팀이 팀 같아지는 거야. 투수조에는 내가 있고, 야수조에는 선호 형이 있고, 포수에는 일혁이가 있지. 일혁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일혁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팀 리더는 실력도 있어야 하고 카리스마도 있어야 하거덩. 선호 형만한 팀 리더가 없지. 누가 선호 형 커리어에 태클 걸 거야?”

“그건 뭐 그렇죠.”

김정률이 손을 탁탁 털었다.

“자, 우리는 이만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푹 잡시다. 내일도 모레도 이겨 버리자고. 우리 선발 라인업 좋잖아. 안 그래?”

“예,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십쇼, 선배님.”

“오냐. 너도 내일 보자.”

송석현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숨 돌릴 틈도 없었다.

팀에 불미스러운 일이 연이어 터지는 바람에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팀.

이제야 한 팀 같다.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만 해도 감사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일 경기가 기다려진다.

“김성훈……. 후, 빡센데.”

* * *

다음 날.

경기 전 브리핑 시간.

야수조, 투-포수조로 나누기 전 전체 미팅이 있었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오늘 페가수스에선 김성훈이 올라온다. 우타자 상대로는 조진희보다 더 짜증 나는 타입인 거 잘 알 거야. 오늘 우리 팀의 컨셉은 투수전이다. 우리 팀에서 1선발 마이클 피시가 나오는 만큼 투수를 믿고 짜내기로 갈 거야. 타석에선 큰 거 욕심 버려. 삼진 당해도 좋으니까 투구 수 늘리는 방향으로 가. 6회 이전에만 김성훈 내리면 우리 목표 달성이다. 김성훈이 우리 팀 상대로 악마인 거 잘 알잖아, 너희도.”

“……네.”

“오늘은 마이클 믿고 가 보자. 불펜도 세 명은 대기조로 준비해 둘 테니까, 마이클. 긴 이닝 끌어가는 것보단 점수를 최소한으로 주는 쪽으로 가자. 오케이?”

“오케이.”

“그럼 조별로 나눠서 미팅 하자. 오늘은 김성훈 꼭 이겨 보자. 벌써 김성훈 상대로 몇 승을 내준 거야?”

송석현은 투수들과 함께 페가수스 타자들 분석에 동참했다.

“어제도 얘기했듯이 전 구단 통틀어서 3, 4, 5, 6번이 균형 있게 강한 팀은 페가수스가 1등이야. 클린업에선 확실하게 결정해. 거르든 승부하든, 둘 중 하나를 택하란 말이야. 어떤 경기든 이겨야 한다지만 오늘은 꼭 이겨야 해. 김성훈한테 호구 잡힌 거 오늘 꼭 털어 내고 간다.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어느덧 경기 시작일이 다가왔다.

송석현은 김성훈의 대고트전 성적을 살폈다.

방어율 2.11

김성훈의 통산 방어율보다 1점 이상 낮다.

우타자 상대로는 조진희보다 더 까다로운 투수.

감독도 이를 알기에 송석현에게 적극적인 스윙을 요구하지 않았다.

전력 분석 보고서에 쓰여 있는 김성훈의 장점.

-보기 드문 정통 횡 슬라이더.

우타자 바깥에서 더 바깥으로 흐르는 횡 슬라이더.

실력만으로 국내 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투수다.

여기에 우타자에게 극강인 실력까지.

송석현에겐 조진희보다 더 까다로운 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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