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14화 (114/201)

위기는 기회 (2)

마운드에는 주판석이 섰다.

우완 파이어볼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주로 구사하는 전형적인 불펜 투수.

팀 사정에 따라 2군에선 선발과 불펜을 오가고 있었다.

선발에 설 땐 커브나 체인지업을 던지지만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주판석은 송석현이 타석에 서자 숨을 골랐다.

이제는 스무 살의 어린 타자, 재활군의 포수가 아니다.

1군을 폭격하는 대형 거포.

자신의 공이 1군에서 통하는지 확인하기에 가장 좋은 선수가 송석현이다.

그렇다면 초구는 역시 패스트볼.

바깥쪽으로 붙는 패스트볼이다.

팡!

-스트라이크!

청백전이지만 심판도 있었다.

올스타전 이후 경기 감각을 익히기 위해 심판들은 자체 청백전에도 참여했다.

“공이 좋네.”

송석현의 청팀과 달리 백팀에 배정된 유선호, 이지성이 주판석의 공에 박수를 보냈다.

“석현이 오자마자 피치를 올리네요.”

“지기 싫다 이거지.”

“공만 보면 1군감인데요?”

“저런 공만 계속 던지만 1군 가지. 그런 애들이 어디 한둘이가?”

주판석은 초구 스트라이크가 나오자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제법 제구가 잘되는 편이다.

평소엔 제구가 들쑥날쑥한데 송석현이 타석에 서자 왠지 집중력이 더 올라간다.

한번 이겨 보고 싶다는 호승심이 몸을 불태운다.

‘다시 한번.’

포수가 똑같은 사인을 냈다.

바깥쪽 패스트볼.

잘만 들어가면 바깥쪽에 붙어 가는 빠른 공보다 더 좋은 공은 없다.

주판석은 제2구도 빠른 공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조금 안쪽으로 말려들어 갔지만 스트라이크.

송석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배트를 고쳐 잡았다.

“잘한다.”

“좋아, 좋아. 그대로 던져.”

백팀 선수들도 주판석을 응원했다.

1군을 평정하고 온 선수를 상대로 주판석이 선전하고 있다.

선수들은 절로 감정이입해 몰입했다.

-슬라이더.

바깥쪽 공 두 개 이후 슬라이더.

정석이다.

배트를 안 내면 그만이고, 배트를 내면 최고다.

팡!

잘 빠진 슬라이더였지만 송석현은 배트를 내다 말았다.

주판석이 아쉬움이 입맛을 다셨다.

“오, 저거 참네?”

“역시. 이유가 있네.”

백팀, 청팀 선수들이 수군거렸다.

주판석은 제구가 문제지 구위 하나만큼은 1군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공 세 개 연속 제구가 잘돼서 들어가는 경우 대부분 삼진이 나온다.

제 나름의 결정구가 안 먹혀서일까.

주판석은 제구가 흔들려 송석현을 볼넷으로 내보냈다.

송석현은 배트 한 번 내지 않고 1루로 걸어갔다.

“스윙을 우째 하는지 함 봐야 카는데. 아숩네.”

유선호가 입맛을 다셨다.

청팀이 득점하지 못하고 이닝을 교대했다.

이지성은 청팀 투수 전장일의 초구를 쳐서 1루로 나갔다.

1루에선 바로 2루로 도루했다.

투수도 포수도 송구할 엄두도 못 낼 만큼 빠른 발이었다.

“확실히 아직도 발은 좋아.”

2군 감독 구창현이 입맛을 다셨다.

‘방망이만 좀 쳐 줬어도 좋았을걸.’이란 뒷말은 꾹 삼켰다.

방망이까지 좋았다면 스콜피언에서도 안고 죽었을 터다.

이지성이 2루에 나가자 2번 타자의 플라이로 3루, 3번 타자는 유격수 직선타 아웃이 됐다.

4번 타자 유선호가 나오자 투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생전 한 번도 붙어 보지 못한 대타자.

지금은 나이도 먹었고 수술도 했다지만 여전히 타석에서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전장은 초구는 안전하게 바깥쪽 빠른 공을 던졌다.

탕!

유선호는 초구를 노렸지만 파울.

유선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도 이라믄 안 되는데.”

투수 전장일은 아직 2군 태를 못 벗은 투수다.

초구라지만 노리고 쳤는데 파울이 나왔다는 건 아직 컨디션이 다 안 올라왔다는 방증이다.

탕!

제2구로 들어온 커브는 유선호의 먹잇감이었다.

유선호는 좌중간을 꿰뚫는 큼지막한 2루타로 타점을 올렸다.

말 그대로 허리케인, 서른셋의 나이가 무색한 빠른 스윙이었다.

짝짝짝.

벤치에서 박수가 나왔다.

역시 유선호란 말이 나왔다.

꽤 오랫동안 제대로 경기를 못 뛰었는데 폼을 회복하는 속도가 경이롭다.

1군에서 제대로 뛴 시절이 까마득하다.

작년까지 생각하면 1년이 훌쩍 넘도록 1군에서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

구창현 감독은 침음을 흘렸다.

자신이 아는 유선호와는 아직 괴리가 있다.

아직 컨디션이 안 올라온 건지 현재 실력인 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지성도 유선호도 아직은 미지수.

함성훈 감독의 의도는 알겠지만 시즌 초도 아니고 시즌 중에 미지수 두 명을 받아 온 건 영 께름칙하다.

“자 자. 파이팅하자, 파이팅!”

구창현 감독이 손뼉을 치면서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이와 달리 코치들은 딴청을 피우며 경기를 보는 둥 마는 둥이었다.

구창현은 이를 알고도 못 본 체하면서 경기에만 집중했다.

“판석아. 자신 있게 던져, 자신 있게.”

송석현의 타석이 또 돌아오자 전장일은 벌써 모자를 벗어 땀을 닦았다.

어느덧 4실점.

자체 청백전이라지만 3회에 4실점은 좋은 성적이 아니다.

주판석은 초구부터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팡.

확연한 볼.

제2구는 떨어지는 커브였다.

-볼, 로우.

구창현 감독이 크게 소리쳤다.

“자신 있게 하자! 맞더라도 자신 있게!”

주판석은 포수가 던진 공을 받았다.

감독의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몸이 따르질 않는다.

이제는 미스터 장외 홈런이라 불리는 타자 아닌가.

자기 공이 저 멀리 하늘을 쭉쭉 뻗어 가 장외로 넘어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감독이 보는 앞에서 또 볼을 던질 순 없는 노릇이라 바깥쪽에 패스트볼 하나를 꽂아 넣었다.

탕!

송석현은 살짝 빠진 공을 우익수 방향으로 밀어서 안타를 쳐 냈다.

볼을 던지려던 공이 안타가 되자 주판석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야, 저걸 치네.”

이지성이 어이가 없어 웃었다.

배트 끝에 걸릴까 말까 한 공을 밀어 쳤다.

타석에 바짝 붙었다면 이해라도 하지만 그마저도 아니었다.

“석현이 배트가 남들보다 좀 더 길어요. 더 무겁구요.”

지켜보던 다른 선수가 이지성에게 송석현의 배트에 대해 말했다.

“그래? 일부러 그란 기가?”

유선호의 질문에 다른 선수가 대답했다.

“네, 남들보다 한 1~2인치 길고 무게도 1kg 가까이 될걸요.”

“그래? 엄청 무겁겠네, 그럼?”

“네, 저희도 한번 휘둘러 봤는데 중심 잡기가 어렵더라구요.”

“음…… 그럼 이해가 되네.”

유선호가 고개를 돌려 송석현을 바라봤다.

“배트가 무거우니까 팔을 몸에 쫙 붙어서 치지. 팔이 몸에 붙으니까 정확도도 높고 힘도 싣기 좋고. 배트를 무거운 거 쓰는 이유가 있네.”

“그런 걸 생각하면 배트 스피드가 빠른 거 아니에요? 배트가 무거운데 배트 스피드는 비슷하면 다른 애들보다 파워가 더 좋단 얘기잖아요.”

“맞는 말이다. 그래서 쟤가 스윙을 아끼는 갑네. 스윙 한 번 할 때마다 억수로 힘들 끼다. 저렇게 무거운 배트를 풀스윙으로 돌리 삐면 공이 장외로 가는 게 이상치 않지. 대신에 체력이 많이 들 끼고. 훈련량이 적은 이유도 그런 거 아이겠나?”

“선배님은 척척박사십니다. 어떻게 그걸 다 이세요?”

“측하면 측이지. 보면 모리나?”

“선배님은 타격 이론서를 내야 한다니까요.”

“아직 은퇴할라믄 멀었다.”

“그런데 저렇게 타격하는 애는 쟤가 처음인 거 같아요. 그쵸?”

“보통 저렇게 타격점을 뒤에 두고 치는 애들은 삼진 먹기 싫어가 그라는 긴데 자는 다르다. 타격점은 뒤에 두고 스윙은 풀스윙이야. 보통 공이 뒤에서 맞으면 당연히 앞에서 맞을 때보다 덜 날아가는데 쟤는 배트도 무겁고 손목도 180도 가깝게 꺾으니까 뒤에서 맞아도 쭉쭉 날아간다 안 카나. 희한하데이. 저걸 혼자 했다면 미친놈이고, 저런 폼을 만들어 준 스승이 있다면 보통 사람이 아닐 끼다. 너무 실험적이야. 내도 이 허리케인 타법을 만들고서 엄청 욕 마이 묵고 놀림도 당하고 안 했나. 나도 나이 먹고 이 짓을 했는데 저걸 스무 살짜리가 했다는 게 말이 되나?”

어린 선수 하나가 스윽 끼어들었다.

“석현이가 혼자서 만든 거라고 들었습니다. 석현이도 아는 거 많아요. 국내에서 나온 야구 책은 다 읽었데요. 해외 서적도 번역해서 읽는다고 하던데.”

“그래? 저놈도 미친놈이네.”

청팀 백팀의 경기는 난타전으로 흘렀다.

쓸 만한 투수들은 모두 1군으로 간 데다 부상 선수들까지 많아 2군에는 쓸 만한 투수가 적었다.

유선호가 4안타를 이어 가는 동안 송석현은 볼넷 두 개, 삼진 한 개, 안타 한 개에 그쳤다.

9회.

구창현 감독은 다음 투수로 올라갈 준비를 마친 오영식을 불렀다.

웨일스에서 데려온 신인 투수이자 공이 빠른 좌완 투수였다.

“……어. 알았지?”

구창현 감독의 지시에 오영식이 힘차게 대답했다.

9회 초는 3번 타자부터 시작이었다.

오영식의 빠른 공에 밀린 타자가 외야 플라이로 물러섰다.

4번 송석현이 타석에 들어서자 오영식은 초구부터 몸 쪽 공을 던졌다.

팡!

몸 쪽으로 깊이 들어온 공에 송석현이 뒤로 물러섰다.

몸에 맞을 만한 공은 아니었지만 구인선의 공이 생각났다.

“음.”

구창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빈볼 이후 몸 쪽 공에 약점이 생기는 타자들도 많다.

오영식은 제2구도 몸 쪽 빠른 공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이번엔 스트라이크존 중심에 가까운 공이었다.

송석현은 한복판 스트라이크를 놓쳤다.

“끄응.”

구창현의 신음이 커졌다.

혹시가 역신가.

부상을 염려해 너무 붙이지 말라 투수에게 얘기를 해 놨는데도 송석현의 반응이 심상찮다.

프로는 사바나나 다름없다.

약점이 보이면 집요하게 공략당한다.

특히 몸 쪽 공에 약하다 싶으면 투수들은 맞고 죽으라는 듯 빈볼도 개의치 않고 몸 쪽 공을 던져 댄다.

제아무리 타자가 괜찮은 척해도 140km/h이 넘는 야구공을 한 번 맞으면 멍이 최소한 2주, 길면 한 달 이상도 간다.

멍이 아물라 치면 또 멍이 들고, 또 멍이 들다 보면 골병까지 든다.

타자는 자연스레 타석에서 물러나 서게 되고, 투수는 비어 버린 바깥쪽을 신나게 공략할 수 있다.

바깥쪽과 몸 쪽 모두에게 약점이 생기는 셈이다.

신인 시절 잘나가던 강타자 중에 부침이 심한 타자들이 이러한 경우였다.

강점이 분명한데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다.

최근 김인환도 그러했다.

바깥쪽 떨어지는 공에 쥐약이었다.

향상된 선구안으로 약점을 쇄신했으나 아직도 투수들은 집요하게 바깥쪽 떨어지는 공을 던진다.

송석현이 몸 쪽 공에 약해진다면?

바깥쪽에 약한 타자보다 몸 쪽에 약한 타자가 더 문제다.

공을 무서워한단 얘기니까.

‘하나 더.’

감독이 사인을 냈다.

약점인지 공 하나를 놓친 건지 확인해야 한다.

오영식은 다시 한번 크로스로 내려찍는 패스트볼을 던졌다.

대각선으로 파고든 공은 스트라이크존을 넘어 타자의 몸 근처에서 잡혔다.

“…….”

송석현은 말없이 투수를 봤다.

이 정도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노골적인 투구.

감독은 또 사인을 냈다.

투수는 이번엔 조금 더 안쪽으로 던졌다.

스트라이크존 안쪽으로 완벽하게 제구된 공.

송석현은 이번에도 힘껏 배트를 돌렸다.

쾅!

제대로 맞은 공은 볼 것도 없이 중앙 담장을 넘어 까마득히 날아갔다.

송석현은 말없이 1루 베이스를 향해 뛰었다.

짝짝.

구창현 감독이 짧은 박수를 보냈다.

이 정도면 됐다.

트라우마 같은 건 없다.

조금 더 검증해야 나오겠지만 최악은 면했다.

구창현 감독이 유선호에게 향했다.

유선호, 이지성.

이제 두 복권에서만 꽝이 안 나오면 고트가 이번 트레이드의 승리자가 될 거다.

“777은 안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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