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13화 (113/201)

위기는 기회 (1)

“와, 고트 와 저라노?”

고트의 5선발로 나온 정천운은 1회부터 폭스의 불방망이를 견뎌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1회에만 4실점, 2회에 1실점.

함성훈 감독은 김진석을 올리면서 추격의 의지를 다졌지만 안타 하나로 또 2실점.

고트는 1, 2회에 무실점.

티비 밖으로 고트 벤치의 무기력함이 쏟아져 나왔다.

“…….”

송석현은 콧바람을 훅 내뱉었다.

송석현이 빠진 타선은 식물 타선이나 다름없었다.

설진일과 김인환이 분투했지만, 폭스는 다른 팀이 택한 선택지를 뒤따랐다.

까다로운 타자는 거르면 그만이다.

뻔한 전략이지만 적중률이 높았다.

“하이고. 속 터진다, 속 터져.”

유선호가 혀를 찼다.

이지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공이나 치러 갈까요?”

“그래, 그러는 게 낫겠다. 석현이 너도 갈 끼제?”

“……네.”

세 사람은 경기를 보는 걸 포기했다.

역전승을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한 법이다.

벌어진 점수 차를 지켜 낼 투수.

벌어진 점수 차를 따라갈 타자.

선발이 무너져 벌어진 점수 차를 지켜 낼 수 없었고, 송석현마저 빠진 타선은 바람 빠진 풍선이었다.

김인환이 공을 잘 골라냈지만 그게 전부였다.

탕!

탕!

탕!

2군 훈련장에는 이미 많은 선수들이 훈련 중이었다.

송석현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와 그라는데?”

“보통 이 시간에는 경기 보면서 빨래하고 쉬고 그러는데 오늘은 전혀 안 그렇네요.”

“그거 봐서 뭐 하게. 내가 잘해야 올라가지 그거 열심히 본다고 올라가드나?”

“그거야 그렇지만…….”

“내가 스콜피언밖에 안 있어가 다른 데 분위기는 잘 모르지만 여 고트 애들은 진짜 열심히 하는 편이야. 자기들이 봐도 조금만 열심히 하면 뚫고 올라갈 만한 자리가 있다 이거지. 원래 산도 저~ 멀리 정상이 보이면 오히려 힘이 빠지는데 정상이 코앞에 보이면 없던 힘도 생기기 마련이야.”

송석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팀이 보이는 고트도 그렇겠죠? 약점이 많은 팀?”

“뭐…… 약점보다도. 물론 강점도 있겠지만 별로 무서운 팀은 아니지. 고트나 웨일스나 서로 성적은 비슷해도 웨일스가 훨씬 까다로워. 작전도 많이 쓰고 불펜도 좋고, 무엇보다 수비가 좋거든. 팀 전체가 뭔가 끈끈한 그런 게 있어. 걔네들은 이겨도 피곤하지만 지면 더 피곤해.”

“피곤한 팀이긴 하죠. 강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쉬운 것도 아닌 그런 팀……?”

“리그 우승할라카믄 제일로 중요한 게 센터라인이다, 센터라인. 페가수스가 왜 강한 줄 아나? 걔들도 센터라인이 강하다 아이가.”

“그거야 뭐…….”

유선호는 배트를 챙겨 어깨에 걸쳤다.

“그래도 나는 고트에도 희망이 있다고 본다. 잘하믄 올 시즌에 사고 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거지.”

“저희 팀이요?”

“그래. 봐라. 센터라인에서 제일 중요한 게 투수랑 포수 아이가?”

“……투수도 센터라인인가요?”

“센터에 서면 센터라인지. 아무튼 간에, 고트가 이번에 투수 음층이 델꼬 왔잖아. 그리고 포수는 네가 보제? 영수랑 동규가 방망이는 시원찮아도 수비는 괜찮거든. 중견수만 지성이가 잘 맡아 주면 내가 보기엔 페가수스만큼은 아니어도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이지성은 어느새 자리를 잡고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한테 부담 지우지 마십쇼. 저는 그냥 1인분만 해도 만족합니다. 제 목표는 병선이 넘는 거예요. 병선이도 중견수로만 보자면 꽤 잘하잖아요.”

“가는 타격이 아니다 아이가.”

“저는 뭐 타격이 된답니까?”

“내가 보기에 너는 승산이 있다. 요새 바꾼 니 폼이 딱 좋다니까. 아까 호프만도 답답해 죽을라 카는 거 못 봤나?”

“저는 제가 답답해 죽을 뻔했습니다. 분명 뻗어 가야 할 공이 자꾸 파울이 나니 죽을 맛이에요.”

“그것도 장점이라니까.”

“안타 못 치는 타자가 무슨 자랑이겠습니까?”

송석현은 어느덧 두 사람을 따라서 훈련에 합류했다.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송석현이 준비하는 걸 지켜봤다.

“……훈련 안 하세요?”

“니는 저거 안 보이나?”

유선호가 턱으로 훈련장 한쪽을 가리켰다.

송석현이 자리를 잡자 여태 훈련하던 다른 선수들이 삼삼오오 송석현 주위로 모이고 있었다.

“네가 인마, 우째 하는지 궁금해서 애들 모였다 아이가.”

송석현은 콧잔등을 긁적였다.

“아니 무슨 쇼 케이스도 아니고.”

“다들 궁금하지 안 궁금하겠나? 치 봐라. 니는 우예 훈련하는데 어린놈이 펄펄 날아다니는데?”

“저라고 뭐 특별한 훈련을 하겠습니까……. 그냥 저한테 필요한 걸 하는 거죠.”

“그러니까 해 보라고.”

송석현은 배트를 들곤 주변을 살폈다.

열 명이 넘는 선수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시작은 2군도 아닌 재활군 전담 포수.

2군 선수를 무명이라고 한다면 송석현은 흔적도 없는 선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명실상부 최고의 유망주.

유망주란 이름표를 떼도 리그에서 손꼽는 거포.

183cm에 80kg가 조금 넘는 체중으로 잠실 장외를 치는 타자가 됐다.

짧은 기간에 스타가 된 데는 어떤 이유, 비밀이 있지 않을까……라는 게 많은 선수들의 궁금점이었다.

대체 송석현은 어떤 훈련을 할까?

“크흠.”

송석현은 쏟아지는 관심을 모른 체하며 배트를 들었다.

가장 먼저 한 건 기본 자세였다.

발을 90도 각도로 꺾은 후 골반을 회전하며 배트를 내다 멈췄다.

자세는 전반적으로 느리고 또 반복적이었다.

한 번씩 자세를 취할 때마다 스윙 범위를 넓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늘려 나갔다.

“니 뭐 하는데?”

유선호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네?”

“훈련을 그리한다고?”

“아, 일단 하체 회전부터 확인하고 상체랑 핸드로 올라가는 타입이라…….”

“그렇게 하다가 해 뜨것다. 공은 언제 치는데?”

“체조만 한 30분 정도 하고 티 배팅으로 공 서른 개 정도 치면 끝입니다.”

“서른 개? 그걸로 훈련이 되나?”

“저는 스윙에 문제가 없으면 오히려 훈련을 줄이는 편이라서요.”

“이야, 그럼 실질적으로 하는 훈련은 티 배팅 서른 개가 다네?”

“아뇨. 실질적인 훈련은 이 체조죠. 이거 하면서 밸런스 어디 무너진 데 없나 보고 안 좋은 데가 있으면 수정해야죠.”

유선호가 뒷짐을 지곤 웃었다.

“그렇게 해도 1시간이나 하나?”

“보통은 길어도 1시간 전에 끝나죠.”

“하하, 뭐고. 니 예전에도 이렇게 했나?”

“네.”

“훈련을 이리했다고?”

“예전에 타격 폼 만들 땐 많이 하긴 했어도 보통은 이렇게 짧게 하는데요.”

“이야, 이게 운동이나 되나?”

“운동이 아니라 훈련이니까……요.”

“신기한 놈이네. 니 천재가? 이렇게만 하는데 훈련이 된다고? 하루에 공 서른 개 치고?”

“프리 배팅도 하면 오륙십 개는 치는 건데요.”

“프로가 하루에 오륙십 개로 되나?”

“프로니까 더 적게 쳐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미 타격 폼이 완성됐는데 여기서 더 해 봐야 괜히 나쁜 버릇만 들고 하니까요…….”

송석현은 말을 하면서 움츠러들었다.

대선배인 유선호 앞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지켜보는 2군 선수들도 대부분 송석현의 선배였다.

선배들 앞에서 유난 떠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니 숨기는 건 아니제?”

“아뇨. 제가 뭘 숨기겠어요.”

“허허, 허허허. 그래, 뭐 니 나이에 그렇게 칠라믄 그 정도 곤조가 있어야 안 카겠나. 아따, 니도 보통 아이네. 그리 훈련하면 안 불안하나?”

“하루하루 경기 치르는 것도 바빠서 그런 생각은 못 해 봤습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하던 거 마저 해라. 우리도 따로 할게.”

“네, 알겠습니다.”

송석현의 훈련을 본 선수들은 하나둘 뿔뿔이 흩어졌다.

스윙 자세를 천천히 재생하는 송석현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져 버린 탓이다.

송석현 말대로 그건 스윙이라기보단 체조였다.

루틴을 마친 송석현은 티 배팅에 나섰다.

송석현이 배팅에 들어가자 유선호와 이지성은 관심을 두고 지켜봤다.

송석현은 예의 잡아당기는 풀스윙으로 공을 때렸다.

쾅!

훈련장을 메아리치는 소리.

유선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쾅!

쾅!

체조처럼 조심스럽게 몸을 푸는 것과 달리 스윙은 온몸을 던져 도끼질하듯 호쾌했다.

공 서른 개는 금방이었다.

어느덧 먼저 훈련을 끝낸 송석현이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떴다.

“봤제?”

“네.”

“여태 경기를 못 뛰어가 제대로 본 건 처음인데 자 특이하네. 여태 본 아들 중에 타격 폼이 제일 특이하다 안 카나.”

“저는 부럽던데요.”

“뭐가?”

“저런 풀스윙이요. 손목까지 완전히 꺾어서 치던데, 쟤가 손목 힘이 좋은가 봐요.”

“니한테는 도움이 안 될 거 같나?”

“뭐…… 되겠어요?”

“내가 보기엔 니한테 제일 도움 될 거 같은데?”

“저한테요?”

“그래. 저서 손목만 그대로 고정시켜서 쳐 봐라. 그라믄 우째 되겠노?”

이지성이 눈알을 굴렸다.

“너무 이상하지 않을까요? 오른팔을 거의 90도 이하로 좁혀서 치던데.”

“팔을 몸에 단단히 고정시켜서 치는 게 니한테 제일 필요한 거 아이가? 그러면 손목 부담도 덜하고 좋을 낀데.”

“손목을 활용 못 하면 안 그래도 약한 힘이 더 약해지진 않을까요? 스윙 폭이 너무 짧잖아요.”

“위만 생각하지 말고 아래도 생각해라. 니 역도 배웠다메? 상체는 딱 고정하고 하체로 타격하면 되지. 자처럼 완전히 팔을 몸에 붙이는 건 어떻노? 내가 보기엔 네가 써먹을 게 있을 거 같던데.”

“음…….”

이지성은 유선호가 말한 내용을 머리에 떠올렸다.

극단적으로 팔을 붙이고 하체 힘으로만 치는 타격.

이상해 보이긴 하는데 그렇다고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싫으면 말고. 내가 너한테 강요해서 뭐 좋을 게 있노.”

“선배님 말씀인데 한번 생각해 볼게요. 어차피 여기서 더 발전 못하면 저도 나가리라.”

유선호는 이지성과의 대화를 마치고 훈련장 한곳에 서서 팔짱을 꼈다.

송석현의 타격 폼을 보고 이지성에게 써먹을 게 많다고 생각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도 도움 될 게 보였다.

자신은 허리케인 타법이라 말하고 남들은 걸레 짜기 타법이라 말하는 자신의 타격 폼.

송석현은 거포라는 이미지와 달리 스윙 각이 낮았다.

히팅 포지션이 낮다는 얘기다.

스윙각이 낮은데도 잠실에서 외야 홈런을 친다는 건 파워가 좋다는 거다.

파워라는 건 타자의 힘과 배트의 스피드의 조합이다.

송석현의 배트 스피드는 특별히 더 빠르지 않았다.

송석현의 몸이 김인환보다 근육질이거나 더 세진 않은데도 비거리는 김인환보다 좋다.

그 말인즉, 배트에 실린 송석현의 힘이 더 좋다는 얘기다.

여태 순간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히팅 포인트에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나이가 먹어 감에 따라 배트 스피드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근래에 유선호의 고민은 배트 스피드였다.

자신의 타격 폼은 배트 스피드에서 나오는데 배트 스피드가 늦어지면 어떡하지?

송석현의 타격 폼을 보자 실마리가 보였다.

배트와 몸을 하나처럼 고정시켜 휘두르면 김인환처럼 타고난 장사가 아니어도 배트에 힘을 실을 수 있다.

붕, 붕.

이지성과 유선호가 스윙을 하고 생각하길 반복했다.

이들은 모두가 자리를 떠난 후에도 훈련장을 지켰다.

유선호는 뒤늦게야 텅 빈 훈련장을 보았다.

“청백전이 언제고?”

“모렌가 사흘 뒨가 그럴걸요.”

“그때는 석현이 뛸 수 있겠지?”

“그거는 모르죠. 그런데 오늘 보니까 멀쩡해 보이던데 뛸 수 있지 않을까요?”

“한번 보고 싶네, 경기에선 우째 하나.”

사흘 후.

송석현은 아무 이상 없단 소식과 함께 지명타자로 청백전에 출전했다.

송석현의 출전에 1군 타격 코치까지 참석했다.

송석현의 컨디션이야말로 고트의 명줄이나 다름없다.

기대와 걱정 속에서 송석현은 1회부터 타석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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