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딱, 똑딱
페가수스와 고트의 경기.
마운드에는 페가수스의 용병 투수 스티브 호프만이 서 있었다.
최근 부상으로 2군에서 재활한 뒤 컨디션을 조율 중이었다.
곧 1군으로 올라가는 만큼 구위가 제법 올라왔을 텐데 고트의 1번 타자에게 무려 8구를 던지며 좀체 승부를 내지 못했다.
고트의 1번 타자는 이지성, 이번에 스콜피언에서 드래프트 된 타자였다.
탁!
“와, 저걸 치네…….”
이지성이 친 공이 파울이 됐다.
투수는 얼굴이 붉어진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송석현의 머릿속에 스티브 호프만의 정보가 촤르르 떠올랐다.
우완 파이어볼러.
키 크고 힘 좋은 전형적인 백인 투수.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패스트볼과 커브, 슬라이더 세 구질을 바탕으로 구위로 윽박지르는 스타일.
150km/h 내외의 패스트볼은 메이저리그에선 특별하진 않지만 국내에선 보기 드문 강속구였다.
국내에선 150km/h 넘는 공에도 배트가 못 쫓아가는 타자들이 부지기수다.
하물며 2군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전광판에 구속은 149km/h,
제구도 나쁘지 않은 강속구다.
저런 공을 상대로 공 아홉 개를 골라냈다.
송석현은 두 사람의 승부에 집중했다.
팡!
호프만은 결정구로 떨어지는 커브를 던졌다.
이지성은 가까스로 배트를 멈추면서 심판을 봤다.
스트라이크 콜은 없었다.
“…….”
호프만은 포수가 던져 주는 공을 받으며 입을 앙 다물었다.
1회 1번 타자에게 공 열 개를 던졌지만 볼넷.
안타 하나 맞는 것보다 더 힘이 빠지는 결과다.
이지성은 나가자마자 1루 베이스에서 다섯 발자국 떨어졌다.
호프만은 곁눈질로 이지성을 바라봤다.
이지성은 호프만의 눈길을 느끼자 한 발자국 더, 떨어졌다.
팡!
-세이프.
호프만이 벼락같이 송구했지만 이지성의 귀루가 더 빨랐다.
호프만은 콧바람을 훅 내뱉으며 1루수의 공을 받았다.
“…….”
호프만이 셋업 포지션을 취하자마자 이지성은 또 1루에서 멀어졌다.
대놓고 도루를 하겠다는 듯 몸을 낮추고 호프만을 노려봤다.
호프만이 다시 견제했지만 이번에도 이지성의 귀루가 빨랐다.
이지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을 툭툭 털었다.
1회부터 유니폼이 흙먼지에 휩싸였다.
이지성은 호프만이 셋 포지션 자세를 취하자 다시 베이스에서 떨어져 도루를 준비했다.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호프만을 보며 포수가 공을 던지라 사인했다.
호프만은 바깥쪽에 빠른 공을 던지며 2루 송구를 염두에 뒀지만 이지성은 그새 2루에 도착해 있었다.
“@#[email protected]%%!”
호프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하며 2루를 가리켰다.
왜 도루를 못 잡았냐는 항의일 테다.
“아니지, 아니지. 도루는 7할이 투수 잘못이라고.”
송석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지성에게 너무 많은 거리를 내줬다.
이지성의 빠른 발을 생각하면 더 빨리 공을 던졌어야 한다.
초로 재지 않아도 호프만의 슬라이딩 스텝이 1.3초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구위가 좋고 이닝도 많이 소화하는 투수가 한국에 왔을 땐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국내에 있는 용병 투수들은 공이 빠르거나 변화구가 특별하기에 스카우트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에 갈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 이들의 단점은 크게 두 가지, 기본기와 성격.
성격이야 어떻게든 살살 달래고 큰돈을 쥐여 주면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
문제는 기본기다.
슬라이딩 스텝이 느리다거나, 번트 수비가 안 된다거나, 상황마다 투수가 어떤 포지션에 있어야 하는지 숙지가 안 된 케이스가 많다.
특히 용병들의 슬라이딩 스텝은 고질병에 가까웠다.
메이저리그에선 효용성과 부상 때문에 도루가 많이 줄어 슬라이딩 스텝의 중요성도 그만큼 떨어졌지만 한국은 달랐다.
부족한 파워를 대신해 아직도 작전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래도 저 정도 케이스는 드문데…….”
국내에서도 서서히 도루가 줄어들고 있다.
부상 위험도 높고, 체력 소모도 크고, 무엇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국내 야구에서도 파워를 높이기 위해 체격을 키우는 타자가 많아지면서 발 빠른 주자들은 줄어들고 있다.
하물며 이지성처럼 저렇게 대놓고 도루하겠다며 거리를 벌리고 투수를 도발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호프만은 2번 타자를 삼진으로 잡은 뒤 숨을 돌렸다.
3번 타자에겐 짧은 외야 플라이를 내줬다.
이지성은 우익수가 공을 잡는 순간 3루로 대시했다.
우익수도 3루를 향해 공을 쐈다.
촤아아악!
이지성은 벤트 레그 슬라이딩으로 여유 있게 세이프 했다.
호프만의 푸르죽죽한 표정은 덤이었다.
“……장난 아니잖아?”
발도 빠르지만 무엇보다 센스가 남다르다.
페가수스 1군 우익수라면 아슬아슬한 동 타이밍 싸움이 됐을 거다.
이지성은 페가수스 2군 우익수의 송구 능력을 계산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이 아닌 벤트 레그 슬라이딩으로 들어간 게 분명했다.
벤트 레그 슬라이딩으로 들어갔음에도 타이밍에 여유가 있었다는 게 증거다.
투아웃 후 4번 타자의 차례.
4번 타자로 유선호가 나왔다.
KPBL의 전설이지만 유선호는 오랫동안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수비가 엉망이었고, 장타자치고 홈런도 적었다.
구장이 크지 않은 대구구장을 쓰면서 30홈런을 넘긴 게 몇 번 없었다.
여기에 정 많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또한 문제를 만들었다.
유선호는 모두가 기피하는 선수협의 회장을 맡아 후배들을 외면한다면서 야구계 선배, 원로들과 설전을 벌였다.
구단은 선수협 문제 때문에 유선호를 냉대했다.
스콜피언 팬 중에도 훈련할 시간에 다른 팀 선수들을 돕는다며 비아냥대는 이들도 있었다.
최근에는 부상과 재활, 감독과 구단과의 불화로 1군 무대마저 서지 못했다.
대내외적인 상황은 유선호의 실력을 폄하하는 분위기로 이어졌고, 종내에는 한물간 타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팡!
-스트라이크!
호프만의 초구는 150km/h이 넘었다.
유선호는 공이 지나간 후에 배트를 휘두르며 아쉬움을 표했다.
“역시…….”
공백이 크다.
타자들은 나이가 먹어 갈수록, 경기 감각이 떨어질수록 강속구를 쳐 내는 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호프만처럼 높은 타점에서 나오는 패스트볼은 체감상 3~5km/h는 더 빨라 보이기 마련이다.
탁!
제2구는 파울.
파울을 만들었지만 유선호의 배트가 부러졌다.
유선호는 멋쩍은 표정을 짓고선 새 배트를 가져왔다.
팡!
제3구는 볼.
체인지업 하나를 그대로 지켜봤다.
호프만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떨어지는 커브를 던졌다.
유선호는 칠 듯 말 듯 몸을 흔들다가 마지막엔 배트를 참아 냈다.
팡!
제4구도 볼.
송석현은 작게 감탄했다.
“선구안은 쩐다.”
칠 듯 말 듯 건들거리는 특유의 폼.
저 큰 덩치에 우스꽝스럽다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팡!
제5구는 높은 코스의 하이 패스트볼.
이번에도 유선호는 공을 골랐다.
투 스트라이크가 어느덧 풀카운트.
호프만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몸 쪽으로 빠른 공을 던졌다.
탁!
-파울.
몸 쪽으로 붙는 공은 걷어 낸다.
호프만은 숨을 깊게 들이켰다.
이번에는 반대로 간다.
떨어지는 커브.
높은 타점에서 내리꽂는 커브는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기 좋은 공이다.
타이밍 한 번 잃으면 루킹 삼진은 덤이고.
쾅!
유선호는 특유의 휘청거리는 폼으로 풀스윙했다.
누군가는 허리케인 타법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걸레 짜기 타법이라고도 부른다.
온몸을 비틀 듯 단숨에 풀스윙하는 특유의 저 폼.
맞자마자 공은 그대로 담장을 넘어갔다.
짝, 짝, 짝.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송석현은 박수를 보냈다.
영리한 타자다.
빠른 공을 치지 못하니 상대가 변화구를 던지도록 유도했다.
자기가 원하는 공은 놓치지 않는다.
송석현과 궤가 비슷한 타자다.
다른 게 있다면, 송석현은 스윙을 최대한 아끼면서 자기 의도를 숨긴다.
타자의 스윙 하나가 포수와 투수에게 데이터가 된다.
송석현이 덫을 쳐 놓고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는 사냥꾼이라면, 유선호는 사냥감을 몰아간 뒤 목덜미에 작살을 꽂는 사냥꾼이다.
송석현이 여태 본 프로 선수 중 가장 타격의 수준이 높다.
스타일은 달라도 타격의 완성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왜 감독이 자신을 2군으로 보냈는지 감이 왔다.
저런 타자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 * *
경기가 끝난 후 송석현은 감독을 찾아갔다.
2군 감독 구창현은 송석현을 보자 밝게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그래. 1군에선 잘 지냈고?”
“네,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머리는 괜찮아?”
송석현이 머리를 만졌다.
“네, 괜찮습니다.”
“나도 경기 봤는데 아주 맞자마자 픽 쓰러져서 놀랬다, 야.”
“죄송합니다. 그땐 제가 맞은 데가 핑 하고 돌아 가지고.”
“네가 죄송할 게 뭐 있어. 던진 놈이 나쁜 놈이지. 사과는 받았고?”
“네, 선배님이 실투라고 사과하셨습니다.”
“실투가 맞나 모르겠네, 그놈 성깔도 보통이 아니라서.”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이라 신경 안 쓰기로 했습니다.”
“그래, 그게 더 마음이 편하겠네.”
구창현이 자리에 앉아 파일 하나를 꺼냈다.
“너 여기서 당분간 지켜보면서 상태를 살피라고 지시가 내려왔더라. 올스타 끝날 때까진 개인 훈련만 해야겠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올스타 끝나면 경기를 뛸 수 있나요?”
“그때 의료진 결과를 확인하고 결정하겠다는데?”
“아…… 건강하면 괜찮겠죠?”
“봐야겠지. 머리라는 게 언제 어떻게 영향이 올지 모르는 일이라서 말이야. 아무튼 지금은 건강하다는 거지?”
“네, 그럼요.”
“그래, 건강이 최고야. 운동도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 건강 잃고 돈 벌면 뭐 하냐?”
감독과 헤어진 후 송석현은 2군 선수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김정률의 전담 포수로 지내면서 2군 선수들과 어울린 시간을 짧았지만 송석현에겐 친정과도 같았다.
2군 선수들도 스타가 돼 돌아온 송석현에게 시샘 대신 부러움을 표했다.
“너 배트 이거, 나 주면 안 돼?”
“배트를요?”
“어, 1군의 기운을 좀 받아야지.”
“에이, 형. 그런 건 돈 주고 사야죠. 그냥 가져가면 재수 없어요.”
“그래? 석현아, 그럼 팔아라. 형한테 팔아.”
인간사 새옹지마라던가.
송석현은 자신을 둘러싼 선수들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볼과 반년 전만 해도 사실상 없는 사람 취급 아니었던가.
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고 식당으로 향했다.
밥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송석현은 한 식탁에 앉아 있는 유선호, 이지성을 찾아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송석현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지성과 유선호가 수저를 놓았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유선호였다.
“그래, 석현이. 만나서 반갑다. 니가 요새 그리 잘 친다고?”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야, 인마. 내도 테리비 다 본다. 니 맨날 하이라이트 나오던데?”
“아…… 예…… 하하.”
“니 잠실에서 장외 홈런 칬다메? 대단하네. 잠실에서 장외 친 건 여태 몇 사람 안 될 낀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노? 몸만 보면 호리호리하니 지성이처럼 뛰다녀야 하는 타입인데.”
이지성이 한마디 거들었다.
“숨겨진 근육이 있나 보죠.”
“근육? 내가 야보다 근육이 없을까 봐 그라나? 뭔가 되게 기술적인 거지. 힘만으론 안 돼. 그럼 개나 소나 잠실 넘기게?”
유선호는 테이블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앉아라. 같이 밥 묵자.”
“네, 선배님.”
송석현이 음식을 받아 와서 테이블에 앉았다.
송석현은 밥을 먹기 전 이지성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경기를 봤는데 선배님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호프만 멘탈이 제대로 나갔던데요?”
“그래? 봤어?”
“네, 오늘 조금 일찍 왔거든요.”
“용병 애들은 자존심이 세서 조금만 살살 건드려 주면 멘탈 금방 나가. 그거 보는 재미도 있어.”
송석현을 밥을 먹다 말고 자기 식판과 이지성의 식판을 번갈아 봤다.
음식이…… 다르다.
송석현의 식판에는 갈비가 한가득인데 이지성의 식판에는 웬 오징어와 샐러드가 가득하다.
“오늘 오징어 있었습니까? 안 보이던데…….”
“이건 나만 먹는 식단이야. 이모님한테 부탁했거든.”
“오징어를요?”
“어, 단백질 중에 해산물이 제일 좋다고 해서 말이야. 그 중에서 중금속 안 들어간 게 연체동물 같은 애들이래. 단백질도 많고 건강하고. 낙지가 제일 좋긴 한데 비싸서 쭈꾸미, 오징어 이런 거 먹거든.”
“아…….”
유선호가 말했다.
“지 몸은 음청 챙겨요, 챙기긴.”
“이렇게라도 해야죠. 또 트레이드 될 순 없잖습니까.”
“내도 오징어 좀 먹을까?”
“선배님, 이런 해산물만 먹으라는 거지 해산물도 먹으라는 거 아닙니다. 선배님은 다 드실 거잖아요.”
“허허허, 야. 골고루 먹어야 건강한 거야.”
“저는 제 식단대로 갈 겁니다.”
세 사람은 밥을 다 먹은 후 약속이라도 한 듯 숙소 복도의 티비 앞으로 갔다.
오늘은 올스타전 폭스와의 마지막 경기가 있는 날이다.
티비를 켜자 이제 막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