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07화 (107/201)

야구는 변수의 스포츠

[올 시즌 가장 충격적인 트레이드]

[고트. 이번 시즌 우승에 도전하나?]

[이낙균, 최대규, 강문규을 내보내는 초강수. 과연 통할까?]

[이.최.강 셋 주고 얻어 온 자원에 팬들은 갸우뚱]

고트와 웨일스의 경기 이후에 포털을 도배한 건 송석현의 장외 2홈런이 아닌 고트의 트레이드였다.

박신언, 이낙균, 최대규, 강문규.

리그 어느 팀을 가도 주전급을 넘어 A급으로 손꼽히는 선수 넷이 유출됐다.

넷을 주고 얻은 선수라곤 고진석, 정홍민, 유선호, 이지성, 김진석 외 세 명의 무명 투수.

넷을 주고 여덟을 가져왔으니 숫자로는 풍부해졌을지언정 데려온 자원은 물음표투성이었다.

고진석은 광주 불스의 마무리 투수지만 올해가 FA다.

정홍민은 웨일스의 좌타 스페셜리스트지만 나이가 서른셋에 풀타임이 단 한 해도 없다.

유선호는 KPBL의 레전드지만 수술, 재활, 최근의 부진, 서른셋의 나이 때문에 에이징 커브를 의심받고 있다.

이지성은 국가 대표 출신 중견수였지만 손목 부상 이후 장타력이 실종된 수준이며, 김진석은 불펜의 뎁스를 채우는 수준에 그친다.

어린 투수 셋은 아직 경험이 부족해 내년이나 내후년에야 1군을 노릴 수 있다.

이름값으로 보자면 비슷한 트레이드로 보이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고트의 넉넉한 판정패.

고트 기사마다 팬들은 갑론을박하며 서로 싸우기 바빴고, 팬 페이지와 공식 홈페이지도 욕설과 분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트레이드에 대한 비난이 7할 이상이었지만 나머지 3할엔 기대와 희망을 품는 팬들도 있었다.

-[고트] 그래도 우리 불펜이 빵빵해졌는데 해볼 만하지 않나요?

└데려오려면 잘 치는 타자 좀 데려오든가. 설진일이랑 김인환, 송석현 빼곤 허수아비만 가득한데 늙다리 유선호랑 맛탱이 간 이지성 둘 데려와서 뭘 할 수 있음? 기사 보니까 바로 2군행이라는데 쟤들 둘 스콜피언에서도 이미 논외 취급당했음.

└미친 감독 새끼가 불펜 투수를 시즌 중에 두 명이나 수술시켜 버림. 지가 투수를 갈아 버리는 바람에 투수가 모자라니까 박신언, 이낙균, 최대규, 강문규 넷이나 팜. 이게 제정신임?

└저는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요……. 꼴 보기 싫은 놈들 셋 갖다 버리고 어쨌든 쓸 수 있는 애들을 데려온 거니 찬성합니다. 개인적으로 사고 치는 애들은 극혐하는지라…….

└감독 대행이라고 앉혀 놨으면 그냥 무난하게 가면 되는데 꼭 사고를 쳐 버리네. 하.

└이 정도면 윗선에서 개입한 거지 무슨 감독 대행을 욕하네 ㅋㅋㅋ 허수아비 감대가 뭘 한다고. 야알못들 많네.

└스콜피언 팬으로 한마디 합니다. 유선호 아직 충분히 잘합니다. 애초에 슬로 스타턴데 감독 새끼가 언플 하면서 처박아 둬서 그런 거지 아직도 충분히 잘합니다. 고트 팬 여러분. 유선호 선수 많이 사랑해 주세요. 보이는 이미지랑 달리 선행도 많이 하고 착해요. 감이 올라오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분명 올라오면 잘할 겁니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웨일스 애들 불펜 넷이나 내줄 만큼 걔들 형편이 괜찮음?

└정홍민 빼곤 다 쩌리라 상관없을 듯

└우선 좀 지켜보고 얘기하죠. 팬들끼리 왜 싸움? 트레이드 되돌릴 수도 없는데.

* * *

2차전 경기 당일.

웨일스와 고트 팬들의 탄식을 불러일으키는 뉴스가 떴다.

[웨일스 심수경 부상 심각. 수술 후 재활 기간만 최소 반년 이상. 최악의 경우 1년 이상도……]

[고트로 트레이드 된 강태양, 수술 후유증으로 은퇴 위기? 고트는 제대로 메디컬 테스트 했는지 의문]

심수경은 웨일스에선 보기 드문 강타자였다.

웨일스 팬들이 애지중지하는 유망주가 군 제대 후 이제 좀 활약을 하려는 찰나 장기 부상을 당했다.

어린 나이의 부상과 재활로 사라져 간 선수들이 많았기에 웨일스 팬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걱정과 불안은 심수경에게 부상을 안겨 준 고트에 대한 분노로 표출됐다.

고트 팬들은 거물 타자 둘이나 내주고 얻은 유망주 투수 중 하나가 벌써 은퇴 기로에 섰다는 얘기에 뒷목을 잡았다.

고트 구단의 반박 기사로 재활 중일 뿐, 은퇴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으나 의심의 눈초리가 깊어진 팬들은 이를 무시했다.

경기 시작 전 원정 팀 훈련 시간.

송석현은 프리배팅을 마치고 타석에서 나왔다.

뒤에선 김인환이 서 있었다.

“오늘 영 타격감이 별론 거 같다?”

“그러게요. 심란해서 그런가?”

“네가 왜 심란해?”

“오늘 우리 팀 기사 댓글들 보니까 살벌하던데요? 분위기가 급변한 거 같아요.”

“트레이드 하면 원래 그래. 우리도 FA 할 때마다 보상 선수 나가면 그때마다 난리였어.”

“저번 스캔들 때 데인 게 있어서 그런가, 댓글들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니까요.”

“그래서, 그때 이후로 연락 안 했어?”

“무슨, 연락은요. 그냥 그때 사과하고 땡이죠. 누나도 따로 연락 안 했고.”

“뭐야, 시시하게.”

“한번 언론에 시달리니까 아주 진이 쭉 빠져요. 요새 우리 팀 기사에 댓글 달리는 거 보면 내가 한번 부진하면 어떤 댓글이 달릴지 벌써부터 등골이 오싹해진다니까요.”

“지금도 잘하고 있구만, 뭘.”

“당분간 제가 일혁 선배 대신에 주포 해야 되잖아요. 예전에는 빨리 주전하고 싶었는데 오늘 댓글 보니까 실책 한 번 했다간 다짐육 될 분위기라 엄청 쫄린다니까요.”

“엄살은. 하던 대로만 해, 하던 대로만.”

둘이서 얘기를 나누는 사이 김정률이 다가왔다.

김정률은 시무룩한 얼굴로 푸념했다.

“오늘 조졌다.”

“왜요?”

“어제 자다가 잘못 잤나 허리에 담 걸렸어.”

“네? 다친 건 아니구요?”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오늘, 내일은 어려울 거 같아.”

“아…… 형 없으면 오늘 힘들 텐데.”

“그러니까 니네 둘이 점수를 많이 내줘. 뻥뻥. 어?”

“그게 말처럼 쉬우면 다 우승하죠.”

김정률은 허리를 툭툭 두드리면서 경기장을 벗어났다.

송석현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 일진이 뭔가 안 좋은데요?”

“이거 어제부터 뭔가 불운의 기운이……. 아,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퉤퉤. 재수 옴 붙을라.”

“그래도 고진석 선배님이 있으니 다행이네요. 고진석 선배님마저 없었으면 오늘 어려웠을 거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경기 시작이 가까워져 오자 관중석에 사람들이 들어찼다.

선수들도 인터뷰를 마치고 경기를 준비했다.

-플레이볼!

웨일스의 선발은 성종현.

웨일스의 토종 1선발이자 이제 스물네 살의 정통 우완파 투수였다.

빠른 공, 각 큰 커브, 체인지업을 주 무기로 삼는 투수.

그에 비해 고트는 5선발 전상흠이었다.

똑같은 스물네 살의 정통파 우완 투수에 빠른 공, 커브, 체인지업 세 구질을 구사했지만 구위에 비해 제구와 변화구가 부족해 1, 2군을 오가는 투수였다.

퍽!

-스트라이크! 아웃!

“성종현 선수, 1번 타자 설진일 선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빠른 공 좋아요. 설진일 선수의 배트가 늦었습니다.”

성종현은 설진일 삼진을 시작으로 김인환에게 플라이 아웃, 송석현에겐 2루수 직선타 아웃을 만들어 내며 세 타자를 잡아내고 마운드로 내려갔다.

“음…… 오늘 쉽지 않겠는데.”

함성훈 감독이 팔짱을 꼈다.

성종현의 공이 오늘 유난히 좋다.

소위 긁히는 날이다.

그에 비해 전상흠은 오늘 컨디션마저 좋지 않다.

투수코치가 전상흠의 구속이 평소보다 2~3km/h 정도 적게 나온다고 귀띔한 참이었다.

탕!

“안타! 웨일스가 첫 타자부터 안타를 신고합니다!”

-볼.

“아, 여기서 볼넷을 내주나요?”

-볼.

“두 타자 연속 볼넷입니다. 이러면 만루죠.”

-볼.

“밀어내기 볼넷! 1회에 밀어내기 볼넷이 나옵니다.”

“이건 아니죠. 승부해야죠. 이런 식의 투구를 하면 안 됩니다.”

안 좋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던가.

전상흠은 오늘 자기 공이 시원찮다고 생각이 들자 피해 가는 피칭을 택했다.

송석현이 존에 넣으라고 미트를 내밀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투수코치가 1회부터 올라옵니다.”

“승부를 하다 맞는 거면 몰라도 피해 가다 점수를 내주는 건 최악입니다.”

투수코치 연우식은 전상흠의 어깨를 먼저 두드렸다.

“힘 빼. 왜 힘주고 볼을 던져?”

“죄송합니다.”

“맞기 싫어서 힘을 줄수록 공은 더 제멋대로 간다. 포수 미트만 봐. 세게 던진다는 생각은 버리고 미트에 넣는다는 생각만 해. 알았어?”

“네.”

투수코치가 내려간 후 투수가 모자를 다시 썼다.

포수 미트만 보자.

포수 미트만.

포수 미트만 보고 던진 공은 미트와 상관없는 곳으로 날아갔다.

탕!

“3루 주자 홈으로! 2루 주자까지 홈으로!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싹쓸이 2루타! 웨일스 1회부터 시원하게 득점을 뽑아냅니다!”

“방금 공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저렇게 높은 코스로 변화구가 밋밋하게 들어가면 못 칠 타자가 없을 겁니다.”

“1회부터 위기에 몰리는 고트. 함성훈 감독의 한숨이 여기까지 들리는 거 같습니다.”

“1회부터 선발 투수가 흔들리면 감독이 속 타죠. 엄청 탈 겁니다.”

1회의 불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병살 찬스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 뺏어 내더니 홈런까지 허용하며 1회 6실점을 내줬다.

“…….”

벤치로 들어온 전상흠은 말이 없었다.

선수들도 전상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1회부터 무너진 선발 투수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송석현도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선발 투수의 부진에 주전 포수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웃!

-아웃!

-아웃!

“오늘 성종현 선수 정말 화끈합니다. 세 타자 연속 삼진을 뽑아내네요!”

“웨일스의 최고의 유망주 둘이 심수경과 성종현 선순데 심수경 선수의 빈자리를 성종현 선수가 이렇게 메워 주네요. 웨일스 팬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예뻐 보이겠어요.”

성종현의 호투, 전상흠의 부진.

전상흠은 2회에도 2실점을 하면서 결국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스물네 살의 어린 투수는 벤치 한구석에 앉아 수건을 얼굴에 쓴 채 숨죽였다.

“오늘 고트 경기가 정말 안 풀립니다. 5회에 10-2에요.”

“고트 타자들은 그럭저럭 제 몫을 해 주는데 오늘 투수들이 영 아니네요. 선발이 무너지고 뒤이어 올라온 불펜까지 무너져 버립니다.”

“불펜을 보강했는데 불펜의 힘을 아직 느껴 보지 못하네요.”

“이렇게 선발이 빨리 무너지면 불펜을 투입할 타이밍도 놓치는 거죠.”

“어제는 고트가 힘들게 승리를 따왔는데 오늘은 고트가 너무 쉽게 점수를 내주는 거 같습니다.”

큰 점수 차, 상대 선발은 5회에도 투구 수가 일흔두 개.

짧아도 6회, 길면 7회까지 던질 수 있다.

김인환, 송석현이 힘을 냈지만 성종현은 영리했다.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두 사람의 조급증을 이용해 연신 범타로 처리했다.

“7회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 둔 채 성종현 선수가 마운드에서 내려갑니다. 투구수는 아흔두 개. 아직 여유가 있지만 감독이 일찍 바꾸네요.”

“외야로 뻗어 나가는 공이 심상치 않으니 빠르게 결정한 거 같습니다.”

“오늘 고트는 KS포가 활약을 해 주지 못하면서 타선이 전반적으로 침체됐습니다. 설진일 선수까지 오늘은 잘 맞은 타구도 잡히면서 단 한 번의 출루에 그칩니다.”

“이게 고트의 문제입니다. 믿을 만한 타자가 너무 적어요. 그렇다고 투수진이 뛰어나냐? 오늘 경기를 보시면 알겠지만 투수의 뎁스에 대해서도 고개가 갸웃합니다.”

“트레이드로 투수를 대거 영입했는데 막상 쓸 만한 투수가 없다는 얘긴가요?”

“오늘 경기만 보면 그렇습니다. 선발이 무너지면 받쳐 줄 투수가 있어야 하는데 에이스급 불펜 투수를 보강하긴 했지만 숫자가 적잖습니까? 확실히 이길 때에만 넣어야 하니 투수를 아낄 수밖에 없죠.”

9회 초.

김인환은 볼넷으로 출루하고 송석현이 타석에 들어섰다.

송석현은 초구 밋밋한 슬라이더를 잡아당겼으나 폴대를 벗어나며 파울이 됐다.

제2구, 제3구는 볼.

제4구 바깥쪽 패스트볼을 밀어 쳤으나 1루수 직선타로 병살이 나오며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오늘은 고트가 아예 맥을 못 췄네요.”

“오늘 경기는 아쉽네요. 제대로 된 경기를 볼 수 없었습니다. 고트의 취약점만 두드러진 경기라고 봅니다. 5선발과 대체 선발의 부재. 포스트시즌이라면 모를까, 긴 리그를 이끌어 가려면 믿을 만한 5선발, 롱 릴리프를 찾아야 할 겁니다. 오늘 함성훈 감독의 머리가 아프겠어요. 투수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는데 트레이드로 투수를 대거 영입했어도 투수가 부족하네요.”

* * *

“죄송합니다.”

경기를 마친 후, 선발 투수 전상흠이 투수코치에게 고개를 숙였다.

“뭐가 죄송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기회를 주셨는데…….”

“요새 제구가 계속 날리지? 공도 제대로 안 뻗고.”

“네.”

“아무래도 밸런스가 무너진 거 같다. 2군에서 한번 잡고 오는 거 어때?”

“……안 갈 순 없나요?”

“안 갈 수도 있지만 너 지금 성적으로 네가 5선발이라고 어필할 수 있겠어? 1군 성적은 누적되는 거야. 1군에서 성적 나쁘면 기회를 더 얻기 힘들어. 차라리 2군에서 제대로 컨디션 올리고 1군에서 한 경기라도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알겠습니다.”

전상흠이 떠난 후 투수코치는 송석현을 따로 불렀다.

꼭 물어볼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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