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02화 (102/201)

어셈블!

“안녕하십니까. 고트의 서승조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서승조는 눈앞의 사내, 유선호를 두고 마른침을 삼켰다.

키 190cm에 다다르는 덩치에 남보다 한 배 반은 더 넓은 어깨는 비현실감까지 자아냈다.

“유선호라고 합니다.”

유선호의 태도는 긴장한 서승조의 어깨가 낯부끄러울 정도였다.

유선호의 말투는 정중하고 점잖았다.

“많이 놀라셨죠?”

“아입니다. 괜찮습니다.”

“평생 뛰어 온 팀을 떠나시는 게 어렵겠지만 저희 팀도 꼭 유선호 선수가 필요해서 이렇게 부득불 큰 출혈을 각오하고 트레이드를 진행한 겁니다.”

“제가 다 놀랐습니다, 낙균이를 저랑 바꾼다고 카길래…….”

“그만큼 저희에겐 절실히 필요한 선수가 유선호 선숩니다.”

“말이라도 고맙습니다.”

“아니요, 아니요. 말뿐만 아니라 팀 사정상 정말 유선호 선수가 간절하게 필요합니다. 우리 고트에서 가장 필요한 선수가 유선호 선수처럼 믿고 맡길 수 있는 타잡니다. 유선호 선수는 KPBL의 레전드 아닙니까?”

유선호는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상심이 크실 거라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고트에서-.”

“트레이드 된 거 아입니까?”

“……네?”

유선호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저, 트레이드 된 거 아이냐고요.”

“마, 맞죠.”

“그란데 뭐 변명처럼 말을 합니까? 트레이드 됐으면 이제 저 고트 선수 아입니까?”

“맞……습니다.”

“그러면 뭐 더 할 얘기가 없는데. 짐 싸서 잠실로 가면 되잖아요?”

“……네.”

“듣기로는 트레이드하면 구단에서 서포트를 해 준다고 카든데…… 이제 저는 뭐 하면 됩니까?”

서승조는 그제야 얼굴을 풀었다.

고트로 안 가고 은퇴하겠다고 고집을 부릴까, 서승조는 잔뜩 긴장했다.

스콜피언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 아닌가.

선수 본인 또한 황소고집에 자기애가 강한 선수이니만큼, 만에 하나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했는데 유선호 본인은 담담했다.

“원하시는 집이 있으면 귀띔해 주십쇼. 최대한 빨리 전세 매물이든 매매 매물이든 찾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바로 합류하시는 건 어려울 테니 일단 오늘은 짐 정리를 먼저 하시고 내일 야구장으로 출근하시면 됩니다. 오전 중에 한 번 찾아 주시면 감사드리구요. 아마 입단식 겸 기자회견도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저도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됩니까?”

“네. 말씀해 주시죠.”

“한…… 2주 정도 2군에 좀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내가 경기를 안 한 지 오래돼서…….”

“그거는 감독님과 상의 후에 결정할 일 같습니다. 제가 감독님께 유선호 선수의 의견을 전달해 놓겠습니다.”

“그러면 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 하나만 알아봐 줬으면 좋겠는데…… 되겠습니까? 가격을 얼마든 상관없습니다. 한 40평대 정도면 적당할 거 같은데. 이왕이면 아파트로.”

“네. 그것도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면 됐네요.”

유선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승조도 따라서 일어섰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유선호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서승조도 따라서 허리를 숙였다.

“저희야말로……. 힘든 결심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유선호와의 만남이 끝난 후 서승조는 바로 김학인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어, 그래. 어떻게 됐어?

“쿨 하던데요? 바로 오케이 때렸습니다.”

-그래? 유선호가?

“네. 일언반구 반문도 없었습니다.”

-스콜피언에 쌓인 게 많았나 보네. 감독이랑 사이가 안 좋은 건 알고 있었는데……. 잘했어. 고생했네.

“팀에 대한 애정이 깊다더니 꼭 그런 건 아닌가 봐요.”

-그럴 리가 있나, 스콜피언 가겠다고 유급을 선택한 친군데. 뭐 애정이 깊으면 증오도 깊은 법이라잖아. 스콜피언에서도 쿨하게 유선호를 풀어 준 거 보면 애초에 잡을 생각이 없었던 거 같은데 유선호도 그런 분위기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겠지.

“혹시 은퇴 선언이라도 하면 어쩔까, 고민했는데 진짜 다행입니다. 한숨 돌렸어요.”

-이러면 KYS포가 되려나, KSY포가 되려나.

“아. 유선호가 자기 2군에 먼저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감독님께 말씀드려야겠네.

“네. 집은 잠실에게 최대한 가까운 곳에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구요.”

-그거야 뭐 금방 구해 주면 되는 거고.

“그러면 저도 바로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래, 고생했어. 서울에서 보자고.

김학인은 전화를 끊고 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수신자는 함성훈 감독이었다.

“네, 감독님. 좋은 소식 전해 드리려 전화드렸습니다.”

-유선혼가요?

“네. 생각보다 더 수월하게 오케이했다고 합니다. 조금 걱정은 했는데 의외로 쿨했습니다.”

-후, 다행이네요. 이번 딜의 핵심은 유선호였는데 낙균이로 유선호를 낚아 올 줄은 몰랐습니다. 방망이로만 보면 유선호가 낙균이보다 한 클래스 이상 아닙니까?

“뭐, 그래도 객관적으로 둘 몸값을 비교하면 적어도 두 배 이상 차이 나니까 스콜피언에서도 덥석 문 거 아니겠습니까. 수비 안 되고, 성격 꼬장하고, 수술만 세 차례에 내년이면 서른넷인 타자랑 지금이 커리어 하이인 스물아홉 홈런왕 좌익수는 트레이드 가치가 다르죠. 게다가 작년이랑 올해 유선호 성적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하긴, 그런 거 아니면 유선호는 언감생심이죠, KPBL 역대 최고의 타자 중 하난데.

“그런데 감독님.”

-네.

“정말 유선호 리바운딩 자신 있으세요? 성적 하락세가 뚜렷하잖습니까.”

-그거야 감독이 경기를 제대로 안 내보내니까 성적이 들쑥날쑥하는 거죠. 올 초까진 재활이랑 병행했고요.

“서른셋이 적다면 적은 나이지만 야구 선수로는 환갑 가까운 나이 아닙니까. 유선호 리바운딩 못하면 정말…… 저희 프런트 폭발하는 거 아시죠?”

-글쎄요. 저는 올해까지 하고 갈 사람이라 저는 별문제 없습니다.

“하하, 감독님 농담도 참.”

-항상 이런 말은 진담이 5할 이상입니다.

“……아무튼 유선호 리바운딩 하겠죠? 그렇죠?”

-이미 트레이드 끝난 거 아닙니까? 그러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수밖에 없죠. 유선호 수술이 큰 수술이 아니었으니 웬만하면 리바운딩 할 겁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확률이니 재수가 없으면 안 될 수도 있구요.

“그런 말씀은 좀 넣어 두시죠……. 회장님께서 눈 부릅뜨고 보고 계신단 말입니다.”

-아, 이번에 이지성 데려오신 건 정말 좋았습니다. 역시 회장님과 독대하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요. 사실 조금 걱정하긴 했거든요. 상식대로라면 어려운 트레이드는 아니겠지만 지금 우리 구단 이미지가 호구로 찍혀 있어서 말이죠.

“스콜피언이 급하긴 급했나 봅니다. 유선호도 한바탕 씨름할 거 각오했는데 바로 오케이 사인 낸 것도 그렇고 이지성도 덤으로 얹어 준 것도 보면 말이죠.”

-유선호가 은퇴 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구단에선 유선호는 그저 골칫덩이죠. 강제 은퇴를 시키면 팬들이 들고일어날 거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1군 티오 낭비고. 2군에 보내서 유선호가 2군 폭격하면 1군 안 올리냐고 난리칠 테고. 유선호 보내고 이낙균 데려오면 팬들 마음도 달래고~ 명분도 있고~ 팀 전력에도 도움이 되고~ 서로 윈윈이죠, 윈윈.

“감독님, 지금 기분 좋으신 거 맞죠?”

-예, 예. 그럼요. 유선호에 이지성이면 당장 1군 전력이죠.

“유선호는 2군행을 먼저 자청했습니다.”

-올스타 끝난 후에 올라올 생각인가 보네요. 이지성이랑 같이 2군에서 감각 좀 올리고 와야겠네요. 2주 동안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에이, 감독님. 엄살떨지 마세요. 웨일스에서 투수 넷이나 옵니다. 이번에 불스에서 받은 고진석, 김진석까지 치면 불펜만 여섯이에요.”

-그중에 지금 1군에서 당장 뛸 선수가 몇이나 되죠?

“……그래도 두셋은 됩니다.”

-하기야. 우리 팀 사정 생각하면, A급 불펜 둘 수급됐으면 대성공이긴 하죠. 앞으로 2주가 고비네요. 유선호, 이지성이 올 때까지 우리 타선으로 어떻게든 해 봐야죠.

“인환이랑 석현이가 잘해 주길 빌어야죠.”

* * *

김학인은 서울로 돌아와 웨일스와 트레이드를 마쳤다.

A급 타자 둘과 A급 불펜 하나, 어린 투수 셋을 바꾸는 트레이드.

웨일스의 좌완 셋, 그것도 20대 초반의 좌완 투수 둘을 포함했으나, 누가 봐도 웨일스에 기우는 트레이드였다.

고트가 웨일스에게 얻은 즉시 전력이라곤 A급 불펜 정홍민 하나.

정홍민이 최근 방어율 3점대를 기록하는 좌완 파이어볼러라지만 올해 나이가 서른셋이었다.

대졸로 입단해 10년 가까이 무명이었다가 작년에야 1군 무대에서 활약한 늦깎이 신인.

좌타자 상대론 방어율 1~2점대를 오갔지만 우타자에겐 방어율 4점대 이상을 넘기는 전형적인 좌타자 킬러.

극단적인 오버핸드 투구 폼 덕에 혹시 부상을 당하지 않을까 현장에선 항상 조마조마했다.

성적만 보자면 리그 A급 불펜이긴 하지만 물음표가 많이 붙는 투수.

웨일스 입장에선 반짝 한 해만 활약한 노장 투수 하나로 A급 타자 둘을 얻는 셈이다.

웨일스가 잠실까지 와서 서둘러 트레이드에 응한 이유가 있었다.

“후, 이제는 돌 맞을 각오를 해야겠죠?”

서승조의 한숨에 김학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우린 지금 못 쓰는 걸 팔고 필요한 걸 얻었잖아. 그것만 생각하자고.”

“하, 차를 다른 데다 주차하고 다녀야겠네요.”

“그래도 이번 3연전이 잠실이 아닌 게 어디야. 이번 3연전이 잠실이었으면…… 어휴.”

“팬들은 오히려 그거 때문에 더 열받아 하지 않을까요, 일부러 이런 타이밍 노려서 했다고?”

“하기야. 이미 화가 났으니 뭘 하든 어차피 화는 내겠네.”

“원정 경기 성적이 잘 나오면 그나마 나을 텐데…….”

김학인은 서승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도 우리가 필요한 선수들은 다 모았잖아? 그러면 우리 할 일은 다 한 거야. 경기는 선수들 몫, 경기가 끝난 후에는 우리 몫. 드래곤볼은 다 모았으니 이제 용왕님을 기다려 보자고.”

* * *

“자, 오늘부터 우리 팀에 합류하게 된 고진석과 김진석 선숩니다. 모두 환영의 박수를 보내 줍시다.”

짝짝짝짝.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고진석입니다.”

“김진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광주 불스에서 트레이드 된 두 명의 투수, 고진석과 김진석은 인천 웨일스전부터 합류했다.

고진석은 광주 불스의 마무리 투수로, 근래 보기 드문 정통 포크볼러였다.

김진석은 광주 불스에서 스윙맨, 한국에선 마당쇠라 부르는 전천후 불펜 이닝이터였다.

“광주에서 서울로 오느라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을 거야. 같은 선수들끼리 서로 도와줄 건 도와주고, 프런트에 도움 요청할 거 있으면 요청해. 팀에서 두 사람이 적응할 수 있게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좋아. 오늘 경기의 중요성은 다들 알 거야.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지는 말고 딱 한 가지만 생각해. 내 할 일을 잘하자. 중요한 경기라고 평소보다 더 무리하거나 긴장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자 자, 모여. 고트, 고트, 고트, 파이팅!”

“고트, 고트, 고트, 파이팅!”

웨일스와 고트의 3연전.

최근 고트는 울브스가 아닌 웨일스와 라이벌전을 형성하고 있었다.

잠실 라이벌 울브스는 두터운 뎁스를 자랑하며 페가수스, 스콜피언 전통의 2강과 함께 3강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에 반해 고트는 최근 몇 년간 웨일스와 4위를 치열하게 다투며 의도치 않은 라이벌전을 형성했다.

안정적인 수비, 약한 타선이 두 팀의 공통점이라면, 고트는 선발투수가 강하고 웨일스는 불펜 투수가 강하다는 게 차이점이었다.

다만, 최근엔 변화가 있었다.

고트에 여태 없었던 타입의 타자, 홈런 타자 두 명이 두각을 나타내며 웨일스를 긴장시켰다.

좌타자 김인환과 우타자 송석현.

잠실 담장을 동네 담벼락으로 만드는 거포.

웨일스의 감독 송정남은 전체 미팅 때 선수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김인환, 송석현. 두 사람한테 절대 좋은 공은 안 주는 게 이번 3연전의 첫 번째 목표야. 볼넷을 줘도 좋아. 걸러. 고트 타선은 이 둘 빼면 지금 시궁창이니까.”

김인환과 송석현은 프리 배팅 내내 인천 구장 담장을 쉽게 넘겼다.

웨일스 투수들은 감독의 지시를 다시금 되뇌었다.

절대 좋은 공은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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