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팀의 대승에도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트의 프런트 직원들은 대승 이후에도 전화에 시달렸다.
사장과 단장은 회장에게 불려 간 후 동분서주했고, 운영팀장은 모자란 퍼즐을 맞추기 위해 함성훈 감독과 자리를 함께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오늘 같은 날 이렇게 시간을 빼앗고.”
“트레이드를 위한 회의라면 저야 환영이죠.”
“전력 분석팀도 부를까 했는데 아무래도 이런 일은 속전속결, 비밀 유지가 핵심이라 자료만 받아 놨습니다. 무엇보다…… 감독님이라면 이미 계획이 있을 거 같았습니다. 맞나요?”
“저도 제가 생각해 둔 게 있죠.”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뜬금없이 이최강을 언급하길래 복안이 있으시구나 확신했죠.”
운영팀장은 기지개를 켰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본격적으로 논의를 하면 될 듯싶습니다.”
“사장님께서 재가하신 겁니까?”
“그보다 위에서 재가가 떨어졌습니다.”
함성훈 감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위라고 하면 그룹 고위 인삽니까?”
“그보다 윕니다.”
“……?”
“회장님이 직접 저를 부르셔서 지시하셨습니다. 카드 세 개를 다 써도 좋으니 트레이드를 성공시켜라. 물론…… 우승이 가능하겠냐는 말도 하셨지만요.”
“책임을 지란 얘기군요, 트레이드에.”
“네, 뭐 그렇다고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만큼 진심을 다하라는 말씀이시겠죠.”
“제가 구단주라고 해도 FA 200억짜리를 트레이드하면서 우승을 노리지 않으면 화가 나겠죠. 제가 회장님께 말씀드릴 순 없겠지만, 혹 회장님을 뵙게 되면 말씀해 주십쇼. 우승 못 하면 물러나겠다구요.”
“……어차피 임기가 올해까지 아닙니까?”
“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운영팀장이 피식 웃었다.
“농담도 할 줄 아시는 분이네요.”
“웃겼습니까?”
“조금 어이는 없었습니다.”
“아쉽네요,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제가 농담에는 재주가 없나 봅니다.”
“농담은 이쯤하시죠.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앞으로 일주일 안에 트레이드를 마쳐야 합니다. 상대가 우리 제안을 고민하고 조정하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일주일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네, 그래서 우리가 더 불리하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제안이라면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무산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손해 볼 각오로 상대한테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상대가 덥석 물 수 있는 조건으로요.”
“……여론의 후폭풍이 장난 아닐 텐데요? 우리가 대놓고 밑지는 장사를 하면 상대는 더 우리한테 가혹한 요구를 할 겁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니까요.”
“협상에서 우리가 을이 되면 안 되죠. 협상은 최소한 동등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갑이 되면 더 좋구요.”
“그게 어려우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고 해서 을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여건은 유리한테도 유리합니다.”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함성훈은 손가락 일곱 개를 폈다.
“우리를 제외하고 우리랑 트레이드할 상대는 일곱이나 있습니다. 일혁이는 폭스와 불스 둘뿐이지만 이최강 셋은 페가수스도 탐낼 자원 아닙니까?”
“우리랑 경쟁할 팀에 이최강을 내민다구요?”
“어차피 셋 다 올해는 활약하기 그른 거 아닙니까? 우리한테는 나쁠 거 없죠.”
“내년에 우리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을 텐데요.”
“그땐 제가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일이죠.”
“……진심인가요?”
“이건 진심도 반쯤 담겨 있습니다.”
운영팀장이 크게 웃었다.
“이번엔 정말 웃겼습니다.”
“진심이라는데 웃깁니까?”
“진심이라서 웃기는 겁니다. 감독님이 생불인 줄 알았는데 감정이 있는 분이셨네요.”
“생불이라니요. 저는 오욕칠정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행입니다. 그동안 제가 참 죄송했거든요.”
운영팀장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좋습니다. 어차피 욕은 대외적으로 단장님이 드실 테고 실제론 제가 먹겠지만, 까짓것 먹죠 뭐. 우리 회장님 변덕이 심하셔서 그렇지 화끈하잖습니까? 이최강 다른 팀에 넘겨줘도 더 비싼 애들을 또 지르실 분이니 성적만 좋으면 모든 걸 용서하실 겁니다.”
“결국 팀장님 명줄은 제가 쥐고 있는 셈이군요?”
“이번 트레이드에 제 명줄이 달린 거죠. 우리에게 꼭 맞는 퍼즐을 찾아야 합니다, 감독님. 그래서 감독님의 퍼즐이 뭔가요?”
함성훈 감독이 펜을 꺼냈다.
운영팀장은 빈 종이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자, 우리 팀에 뭐가 가장 필요한지 써 보죠. 우리 선발진은 4선발까진 평균으로 봐서 페가수스와 1~2등을 다툴 정도로 강하다고 봅니다. 압도적인 에이스는 없지만 네 명의 평균 방어율이 한민석만 최근 4점대 초반까지 올라갔고 나머진 3점댑니다. 훌륭하죠. 하지만 5선발, 불펜, 타선은 물음푭니다. 5선발은 어느 팀이나 제대로 된 선발투수가 없으니 제외. 그럼 불펜과 타선이 남는데…… 이최강 셋을 팔면서 공수를 모두 갖춘 타자를 얻을 순 없을 겁니다. 지금 우리 내야와 외야 수비는 좋은 편이기도 하구요. 결국 수비가 안 되더라도 공격력이 보장된 타자가 필요합니다.”
운영팀장이 웃었다.
운영팀장도 펜을 꺼내 이름 석 자를 썼다.
함성훈 감독과 운영팀장이 눈을 마주쳤다.
“팀장님도 이미 생각하고 계셨군요.”
“사실 난이도가 어려운 거지 우리한테는 최고의 카드죠.”
“그렇죠. 사실 이최강 셋을 트레이드로 불렀을 때 저도 이 친구를 트레이드 매물로 생각했습니다. 이최강이 아니면 이 친구 상대로 트레이드에 티읕도 꺼낼 수 없으니까요.”
“저나 감독님이나 이 문제를 풀려면 머리 좀 싸매야겠네요.”
“이건 팀장님이 머리 아플 일이죠. 어떻게 데려오는가는 팀장님 소관이니까요.”
함성훈이 씨익 웃었다.
운영팀장은 한숨으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타선은 이렇게 하고…… 불펜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스는 이미 빼먹었고……. 폭스에선 전병섭을 노리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실투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팀은 이 팀 하나뿐인 거 같습니다, 웨일스.”
“우리랑 4위 경쟁 중인 데다 트레이드가 가장 어려운 팀 아닙니까?”
“어차피 트레이드를 하려면 이제 상위 4팀밖에 없습니다. 이유를 댄다면 다 트레이드가 어렵죠.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승 경쟁하는 페가수스, 스콜피언이 지금 상황에서 불펜 유출을 할 리가 없죠. 이최강 포지션도 충분히 탄탄하구요. 울브스와는 아예 트레이드가 안 된다는 건 아실 테고……. 그럼 남은 건 웨일스 하나죠.”
“피닉스는요?”
“……장난이 심하시네요. 피닉스에 투수가 어딨습니까?”
“저도 장난을 쳐 봤는데 정색하시네요.”
“장난이 과하셨어요.”
운영팀장이 펜을 들어 전력 분석팀에서 받아 온 종이의 이름 하나하나마다 동그라미를 쳤다.
“그럼 여기서 후보군 이렇게 뽑으면 될까요?”
“네, 핵심은 여기, 여기 둘입니다. 여기에 욕심을 내자면 여기, 여기, 여기 이렇게 셋을 더 얻으면 좋구요.”
“쉽지 않겠네요…… 음.”
“이 둘은 꼭 얻어야 합니다. 꼭이요.”
“알겠습니다. 그럼 단장님께 보고한 후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 * *
대구구장.
경기가 끝난 지 오래라 한산한 구장에 거구의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피칭머신의 공을 치고 있었다.
탁!
탁!
탁!
온몸을 비틀어 배트를 힘껏 휘두를 때마다 공을 쪼개 버릴 듯 스윙이 매서웠다.
“하아, 하아, 하아.”
한참 공을 친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연습장엔 남자의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남자가 벽에 기대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뭐 하는 기고, 진짜.”
남자는 짐을 챙겨 복도로 나갔다.
구단 직원 하나가 남자에게 인사했다.
“아, 벌써 가십니까?”
“그래, 가야지.”
“아…… 지금까지 공 치신 겁니까?”
남자는 자기 손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래, 좀 칬다.”
구단 직원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라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눈알을 굴렸다.
“아, 오늘 막창이라도 드실래요? 좋아하시잖아요.”
“됐다. 괴안타. 막창하면 술이 땡긴다 아이가. 시즌 중인데 술은 안 돼.”
“아,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래, 내 간데이.”
“조심히 들어가십쇼.”
남자는 가방을 어깨에 바짝 메곤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이를 본 직원은 한숨을 쉬었다.
“어휴, 어쩌다가 참.”
이때 여직원이 남직원 뒤에 스윽 나타났다.
“오빠!”
“아, 깜짝아! 뭐야, 인기척을 해야지. 그리고 여기서 오빠라고 하면 어떡해?”
“뭐 어때, 오늘 사람도 없는데.”
“그래도 조심해야지. 안 그래도 조금 전까지 선호 형도 있었어.”
“아, 그래? 선호 오빠는 오늘 나와서 뭐 했대?”
“훈련했지, 뭘 했겠어.”
“경기도 못 나가는데 왜 저렇게 열심히 한대?”
“……후, 그러게 말이다.”
“감독이랑 싸워서 이기는 선수가 어딨어? 구단에서도 선호 오빠한테 코치 연수 받으라고 했다면서.”
“아직 팔팔한데 코치 연수라고 하니 그게 되나.”
“야구 선수가 서른셋이면 그렇게 젊은 것도 아니잖아.”
남자가 정색했다.
“유선호야, 유선호. 스콜피언의 심장 유선호. 아직도 30홈런 칠 수 있는 타자라고. 네가 야구를 몰라서 그렇지, 유선호는 그냥 전설이야. 이렇게 얼렁뚱땅 은퇴시킬 타자가 아니야.”
“왜 짜증이야? 내가 뭐 경기 못 뛰게 했어? 감독이 한 거 가지고 나한테 그래?”
“아니, 짜증이 아니라……. 하, 안타까워서 그렇지. 차라리 2군에라도 보내지, 1군에 등록은 시켜 놓고 경기엔 못 뛰게 하면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선수도 감각이 떨어져서 못한다고. 진짜 좋은 형인데 이건 아닌 거 같아.”
“오빠가 그런 걸 왜 걱정해?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구단도 그렇고 스태프들도 그렇고 이미 결정해서 밀어붙이는데 오빠가 브레이크 걸면 오빠만 다쳐.”
“누가 브레이크 건대?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렇지. 아무리 후배들이 잘한다고 해도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타자를 이런 식으로 홀대하는 건 아니지. 후배들 앞에서 망신 주고 나가라고 등 떠미는 거잖아. 저 형 성격에 올해까지 못 버틸 거 같아.”
“왜 오빠가 감정이입을 해?”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단에 왔는데 이런 꼬라지를 보니까 속이 터져서 그런다. 내가 고트 원년 팬이긴 해도 저 형만 보면 가슴이 아프네…….”
“됐고. 퇴근 안 할 거야? 오늘 맛있는 거 먹자며?”
“어? 아, 해야지. 맛있는 거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어?”
여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그럼 여태 생각도 안 해 놨어? 맛있는 거 먼저 먹자고 한 사람이 누구더라?”
“어? 아니, 생각 안 한 건 아닌데? 너한테 의견을 물어본 거지.”
“그래서 오빤 뭐 생각했는데?”
남자가 눈동자를 굴렸다.
“그…… 스테이크 하우스 어때?”
“저번 주에 갔잖아.”
“매운 갈비찜? 너 매운 거 좋아하잖아.”
“나 그거 비주얼 안 예뻐서 싫다고 얘기한 거 까먹었구나?”
“그랬나? 그러면…….”
“됐어. 생각 안 했으면 한 척하지 마.”
“아니, 왜 그래? 오늘 밥 같이 먹기로 했잖아.”
“오랜만에 데이튼데 어떻게 오빤 이렇게 무성의할 수 있어? 오늘도 일찍 끝낸다고 해 놓고 여태 야근하고. 나도 오빠 따라서 지금까지 기다렸어. 여태 이렇게 시간이 많았는데 오빤 우리 데이트에 대해 한 번도 생각 안 했다는 거잖아.”
“아냐. 했어. 그런데 일이 많아서 잠깐 깜박한 거지.”
“후, 됐어. 데이트는 다음에 하자. 데이트할 기분이 아니네.”
“왜 그래? 응?”
두 남녀가 투탁거리면서 구장을 나섰다.
남자가 여자 옆에 착 달라붙어 애교를 떨었고, 여자는 못 이기는 척 남자의 손을 잡았다.
먼저 주차장으로 향했던 거구의 남자, 유선호는 주차장 화단에 앉아 두 남녀를 지켜봤다.
“좋~을 때다. 허허.”
남자는 아무도 없이 주황색 가로등 불빛만 외따로이 켜 있는 주차장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남자의 눈은 낡은 대구구장을 보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평생을 대구구장에서 야구 하는 걸 꿈꿔 왔다.
꿈에도 엔딩이 있던가.
현실의 엔딩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코끝이 찡하다.
구단의 마지막 통보가 떠올랐다.
-지금 은퇴하면 우리가 은퇴식도 열어 주고 코치 연수도 보내 줄 거야. 나중에 돌아오면 네가 코치도 하고 감독도 할 수 있게 끌어 줄 거고. 하지만 네가 이렇게 버티면 우리도 어쩔 수 없어. 널 다른 팀에 보낼 수도 없잖아. 너도 다른 팀에 가고 싶지 않고. 어떤 게 너한테 좋은 판단인지 잘 선택해. 계속 버티면 우리도 곤란하고 네 후배들도 곤란하잖아. 선배라면 때에 맞춰 후배를 위해 물러날 줄 알아야지. 안 그래?
남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눈물은 또르르 볼을 타고 흘렀다.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몸을 말고 고개를 무릎 사이에 묻었다.
“으허허억. 흑흑. 허윽.”
남자가 흐느꼈다.
불이 꺼진 대구구장이 남자의 옆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