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충격 1 : 2 트레이드! 박신언 ↔ 고진석, 김진석]
[고트! 시즌 중에 주전 포수 트레이드? 야구계 갸우뚱]
[고트가 불펜 투수 급히 수혈한 까닭은?]
[고트! 올 시즌 우승을 노리나?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 많아]
* * *
따르릉, 따르릉.
우우웅. 우우우웅.
따르릉, 따르릉.
전화 왔어요~ 전화 왔어요~ 전화 왔어요~.
폭탄.
고트 사무실은 그야말로 폭탄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점심이 지나자 발표된 기사는 고트 팬들은 물론 야구팬들까지 충격에 빠뜨렸다.
“네, 네. 네. 네. 좀 진정하시고. 네, 네. 그렇죠. 화가 많이 나시는 건 알겠는데요-.”
“욕은 좀 자제해 주시겠습니까? ……구단도 다 생각이-.”
“그만 좀 물어봐. 내가 어떻게 아냐고! 김 기자! 전화를 몇 번 하는 거야? 어?”
구단과 관계가 어긋난 것도 아닌데 주전 포수를 트레이드했다.
KPBL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는 케이스였다.
선수단도, 구단 직원들도, 팬들도 모두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라 허둥댔다.
혼란에 혼란이 가중될 무렵.
함성훈 감독은 단장실에 서 있었다.
“함 감독, 다시 말해 보지. 알고 있었다고?”
“네, 알고 있었습니다.”
김명수 단장은 예의를 차리는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그런데 왜 구단에 알리지 않았지?”
“선수가 의사와 상의한 후에 알린다고 말했습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분명 미리 알았다면 구단에 알렸어야지. 선수를 왜 기다리지?”
“의사도 경기를 뛰는데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본인이 경기를 뛰는 거 아니겠습니까? 선수의 의사를 존중해야죠.”
“하, 함 감독. 아니, 감독 대행 함성훈 씨.”
김명수 단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돈은 우리 돈을 받으면서 선수 편을 들어 주면 어떡합니까?”
“편을 든 게 아닙니다. 그게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원칙이라고? 병든 선수가 있는데 그걸 말하지 않은 게 원칙?”
“어디까지나 선수 본인의 개인 사정입니다.”
“선수가 아픈 게 어디 개인 사정이야! 구단의 중대한 손실인데! 선수가 숨기면 그걸 밝히는 게 감독의 일 아니야?”
“의사도 괜찮다고 했고 본인도 의사와 수술 날짜를 상의한 후에 구단에 전달한다고 했습니다. 숨긴 게 아니라 정당한 과정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똥오줌을 못 가리는구만!”
함성훈은 콧바람을 훅 내뿜었다.
“제 질문에 대답 먼저 해 주십쇼. 왜 그러셨습니까? 왜 불법적으로 개인 정보를 취득해서 트레이드를 진행하신 겁니까? 분명 이거 나중에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큰 문제? 너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야! 함성훈! 너 이 새끼가 진짜!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 뭐야!”
“단장님, 단장님을 위해 말씀드리는 겁니다. 불법적인 개인 정보 취득이 밝혀지면 구단 이미지 추락은 물론 단장님도 곤란해지십니다.”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나를 협박해?”
단장이 함성훈의 멱살을 잡았다.
“안 그래도 열받아 죽겠는데 뭐 하자는 거야? 야! 네가 감독 하니까 진짜 뭐라도 된 줄 알아?”
벌컥!
“단장님!”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운영팀장 김학인이었다.
김학인은 멱살 잡힌 함성훈을 보더니 달려와 단장을 만류했다.
“단장님, 이럴 때가 아닙니다.”
“손 놔. 어디 내 손을 잡아!”
“단장님! 지금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구장 앞에 시위대까지 왔습니다.”
“시위대?”
단장이 함성훈의 멱살을 놨다.
함성훈은 목을 한번 매만졌다.
“무슨 시위대?”
“지금 구장 앞에 모인 팬들만 최소 서른 명이 넘습니다. 계속 모이고 있구요.”
“뭐? 벌써? 기사가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여론이 너무 안 좋습니다. 이미 구단 홈페이지는 다운됐습니다.”
단장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운영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사장님께는 보고된 사항이겠죠?”
단장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단장실을 박차고 나갔다.
단장실에 남게 된 함성훈과 김학인이 서로를 바라봤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감독님.”
“……후, 팀장님이 하신 일이 아니시겠죠.”
“단장님이 지인을 통해 병원 기록을 입수하신 모양입니다. 제가 만류해 봤지만 뒤통수 맞았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굉장히 화를 내셔서…….”
“너무 감정적으로 처리했습니다. 신언이 올 시즌까지는 충분히 뛸 수 있다고 본인이 말했습니다. 의사와 얘기를 마친 부분이구요. 최소한 신언이와 얘기라도 했으면 오해가 풀렸을 텐데요.”
운영팀장이 입을 쩍 벌렸다.
“감독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네, 신언이가 저와 먼저 상담했습니다.”
“그런데 왜 말씀을 안 하셨습니까?”
“신언이가 의사와 수술 일정을 잡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 했습니다. 경기 뛰는 데 문제도 없고 개인 정보 아닙니까? 본인도 기다려 달라 얘기했구요.”
운영팀장이 미간을 좁혔다.
“그럼 아까 단장님이 그렇게 화내신 게 혹시……?”
“예, 제가 알고 있었다고 하니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아…… 그래서 저렇게 화를 크게 내셨네요. 어쩐지 좀 과하다 생각했습니다.”
“신언이랑 한 번이라도 대화를 했다면 신언이가 고의로 속인 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요……. 과정이 많이 아쉽습니다.”
“신언이와 얘기하면 우리 구단이 신언이 상태를 안다는 게 들통난다고 바로 트레이드하라 하셨습니다.”
“……하, 그렇습니까.”
함성훈이 고개를 숙였다.
“선수가 병을 숨겼다고 생각하실 순 있지만 이게 이렇게 화를 낼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일에 바로 트레이드할 정도로 화가 납니까?”
“배신당했다는 생각을 하신 거 아닐까요?”
“배신이라고 하면 여태 고트에서 뛴 선수들이 배신을 당했죠. 혹사까지 해 가면서 팀에 헌신했지만 헌신짝처럼 버려진 케이스가 어디 한둘입니까? 정률이만 해도 올 시즌에는 사람 취급도 안 했잖습니까?”
“…….”
“후, 그래서 더 배신감이 든 걸까요? 사람 취급을 안 해 왔는데 뒤통수 맞아서?”
“꼭 그런 건 아닐 겁니다.”
함성훈이 두 눈을 감았다.
“이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거 아시죠?”
“……네.”
“신언이가 저와 병에 대해 얘기한 건 사실입니다. 제가 구단에 얘기 안 했다고 해도 신언이가 수술을 받게 되면 저한테 얘기한 게 구단에 얘기한 게 될 겁니다. 제가 부정해도 구단에서 고의적으로 병을 숨기고 트레이드한 걸로 오해될 가능성이 농후하구요.”
“……그런 것까진 몰랐습니다.”
“어쩌면 이번 트레이드 이후로 당분간 트레이드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속았다고 생각하면 누가 트레이드하겠습니까? 신언이가 저한테 사실을 얘기한 걸 숨긴다면 모를까, 이렇게 트레이드시켜 놓고 신언이에게 협조를 바라는 것도 우스운 일이죠. 이젠 다른 팀이기도 하구요.”
김학인이 이마에 손을 올렸다.
“생각보다 더 큰일이네요.”
“트레이드 자체는 나쁜 건 아닙니다. 불스의 마무리랑 나름 유망주 불펜 투수를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주전 포수를 시즌 중에 트레이드한 건 여러모로 큰 사건입니다. 신언이 자존심에도 큰 상처구요. 신언이 협조는 어려울 겁니다.”
“……후.”
“제가 구단 운영에 왈가왈부는 할 수 없죠. 하지만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예, 말씀하시죠.”
이윽고 함성훈의 입에서 나온 말에 김학인의 얼굴이 굳었다.
“네에?”
* * *
[박신언을 돌려내라!]
[미친 트레이드 취소해라!]
[고트는 제정신이냐!]
현수막도 없이 스케치북과 하얀 천에 급히 써 내려간 글은 온통 고트를 욕하는 내용이었다.
박신언은 리그에서도 손꼽는 포수였다.
FA로 고트에 온 후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하면서 돈값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줬다.
송석현이라는 신인 포수가 들어왔지만 송석현은 이제 갓 스무 살이다.
송석현이 박신언 밑에서 노하우를 배우고 군 문제를 해결할 때까진 적어도 3~4년이 필요하다.
박신언의 나이를 감안하면 앞으로 3~4년 정도는 A급 포수로 충분히 제 몫을 해낼 수 있다.
박신언의 노쇠화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송석현의 출장 비율을 높이면서 물 흐르듯 세대교체를 하면 된다.
여기에 송석현이 군대에 가 있을 동안 박신언의 백업을 해 줄 서일혁까지 있으니 고트는 앞으로 10년 이상 포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팬들의 생각이었다.
트레이드를 한다면 서일혁까지는 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박신언 트레이드는 상상조차 못 한 일이다.
“하.”
김명수 단장은 자꾸만 늘어나는 팬들의 숫자에 뒷목을 주물렀다.
벌써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인다.
일반인인지 기자들인지 알 수가 없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단장은 휴대폰 발신자를 보곤 사색이 됐다.
고트의 사장 이화성.
김명수는 이화성의 심복이었다.
그룹 복귀에만 온 힘을 기울이는 이화성을 대신해 김명수는 사장 역할까지 겸했다.
평소 이화성은 야구단에서 문제만 안 터지면 된다는 주의였지만, 전화를 받기도 전부터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보세요.”
-김 단장, 지금 뭐야? 여론이 왜 이래? 어떻게 된 거야?
“저…… 그게……. 일단 제가 만나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김명수가 전화를 끊었다.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박신언이 자신의 병을 숨겼으니 분명 큰일은 맞다.
괘씸한 일이다.
구단의 돈을 받아먹으면서 구단을 농락하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박신언의 병을 알아냈냐고 추궁받는다면?
일이 복잡해지는 걸 싫어하는 이화성이 혹시 자신을 손절하지 않을까?
함께한 세월도 그렇고 두 사람의 긴밀한 사이를 생각하면 최악까지 고려하는 건 과할 수 있지만 회사에 의리가 어디 있겠는가.
단장은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사장은 오늘도 골프장에서 접대를 하고 있다.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대응해야 한다.
명분 있는 트레이드 아닌가?
송석현이라는 대형 포수 유망주도 있으니 실리까지 다 챙긴 트레이드다.
김명수는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문제없는 트레이드다.
문제없는 트레이드다.
잘된 트레이드다.
잘한 트레이드다.
* * *
“이딴 트레이드를 해?”
1시간 후.
김명수가 서 있는 곳은 골프장이 아니었다.
구장도 아니었다.
그룹 본사 회장실.
회장 김명진의 사무실.
사장 이화성과 단장 김명수는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야, 이 미친놈들아! 야구단을 운영하면 기본은 있어야 할 거 아냐!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주전 포수를 트레이드해? 미쳤어? 너희들 미쳤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야구를 몰라도 그렇지, 밑의 애들한테 물어보면 얘기할 거 아냐! 실무자가 이걸 오케이했어? 반대했지? 어? 반대했지?”
이화성이 눈으로 김명수를 바라봤다.
김명수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죄, 죄송합니다!”
“대체 이따위 트레이드를 누가 주도한 거야? 이 사장, 당신이야?”
“아닙니다.”
“그럼? 김 단장? 당신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김명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불같은 성격에 야구단 운영이 취미인 회장이다.
회장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만큼 사장과 단장의 식은땀도 폭발하듯 샘솟았다.
“이 사장.”
“네, 회장님.”
“주전 포수를 트레이드시켰단 말이지. 어?”
“네.”
“올해 우승할 거야?”
“네?”
이화성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래, 우승할 생각으로 이렇게 했겠지. 아니야?”
이화성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야구단에 밝진 못해도 지금 고트로 우승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박신언으로 고진석, 김진석 데려온 사람 누구야? 누가 이 트레이드 주도했어? 실무자가 누구냐고.”
“저, 저, 저…… 김학인 운영팀장입니다.”
“두 사람 다 나가. 다 나가고 운영팀장더러 이리로 오라 그래, 당장. 지금!”
이화성 사장과 김명수 단장은 이때다 싶어 뒷걸음질로 회장실을 벗어났다.
홀로 남은 회장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자기 손으로 회사를 수십 배 이상 키웠다.
사업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는 사람이 김명진 회장이었다.
미다스의 손이라는 김명진 회장이라지만 그토록 좋아하는 야구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벌써 마지막으로 우승한 지 23년째.
우승을 하면 먹으려고 둔 담금주가 회장실 한편에 놓인 지가 23년째란 얘기다.
다른 건 다 되는데 왜 야구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가?
가장 많은 돈을 퍼붓고,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야구에 대해 잘 아는 자신이 구단주인데 왜 고트는 우승을 못하고 항상 빌빌대는가!
김명진은 혈압약을 꺼내 먹었다.
“야구를 끊어 버리든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