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95화 (95/201)

폭발! KS포!

다음 날 점심.

송석현은 일찍 출근해 김정률의 공을 받아 주고 있었다.

팡!

“좋아요.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은데요?”

“그래? 냉정하게 봐서 괜찮냐?”

“네, 오늘은 이만하시죠. 어깨 아끼셔야죠.”

“후. 뭐, 괜찮다니 됐네.”

김정률은 어깨를 매만지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송석현은 음료수를 들고 김정률 옆에 앉았다.

“왜 이렇게 조급하게 생각하세요? 공 좋아요.”

김정률이 송석현이 건넨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어제 감독님이 날 따로 불렀어.”

“그래요? 무슨 얘기했어요?”

“뭐…… 곧 알게 되겠지만 만성이 상태가 별로 안 좋데.”

“어…… 박만성 선배님 말이죠?”

“원래 팔꿈치 뼈가 조금 문제 되긴 했었는데 더 두고 볼 순 없다고 하더라. 늦어도 올해 말에는 수술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감독님은 그냥 지금 수술하는 걸 추천했대.”

“왜요? 안 그래도 지금 우리 불펜 상황이 빡빡하잖아요.”

“만성이 성적이 계속 안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걔도 여태 많이 던졌거든. 감독님 말로는 빨리 수술하는 게 좋을 거 같다 하더라. 맞는 말이긴 해. 상태가 괜찮을 때 수술하는 게 복귀도 빠르고 예후도 좋지. 나처럼 미루다 미루다 하면 수술 전으론 절대 못 돌아가고.”

김정률이 자기 팔을 매만졌다.

옷 때문에 보이진 않지만 김정률의 오른팔엔 수술 자국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세 번의 수술이 남긴 후유증이 팔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구단에서 허락할까요? 안 그래도 불펜이 부족한데 여기에 수술까지?”

“감독님이 허락하고 본인도 하고 싶다고 하면 반반이지. 뭐…… 만성이는 벌써 FA로 어지간히 땡겼으니까 드러눕는다고 해도 본인은 손해 볼 것도 없고. 본인이 수술해 버리면 구단에서 어쩌겠어? 수술을 반대했다가 괜히 일 커지면 구단도 손해지.”

“감독님도 대단하신데요? 구단이랑 척질 수도 있는데 성적 욕심 버리고 수술을 권하는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 원래 좀 말이 통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건 알았는데 감독 자리는 다르거든. 감독 대행이라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 통이 크네. 아무튼. 만성이가 빠진 자리를 나보고 채울 수 있냐고 물었어.”

“마무리요?”

“그래, 마무리. 나보고 마무리를 할 수 있겠냐고 하더라.”

송석현은 활짝 웃었다.

“다행이다. 선배님이 마무리하면 좋죠. 그나마 가장 관리해 주는 포지션이잖아요.”

“야, 나는 마무리가 제일 무서워. 선발은 점수를 잃어도 이닝이라도 길게 끌어가면 면피라도 되지. 마무리는 맞으면 끝이잖아?”

“지금 선배님 공은 쉽게 안 맞아요. 디셉션도 좋고 공도 좋은데 무슨 걱정이에요?”

“글쎄다. 언더핸드로 내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내가 나한테 믿음이 안 가서 말이다.”

“갑자기 왜 이러세요, 갑자기 자신감이 훅 사라진 사람처럼?”

김정률이 야구공을 움켜쥐었다.

“여기서 한 번 더 나가리 되면 내가 기회가 있겠냐? 수술만 세 번 했어. 투구 폼까지 바꿨고. 여기서 안 통하면 누가 나한테 기회를 다시 주겠어? 고트에서 풀어 주면 다른 팀에서 한번 긁어 볼 요량으로 데려갈 순 있어도 난 고트에서 은퇴하고 싶어.”

“으음.”

“그래서 더 불안하다. 더 잘하는 건 몰라도 더 못하면 안 되는데 포지션도 마무리 아니냐. 삐끗하면 욕먹는 자리. 안 그래도 나 퇴물이라고 하는 팬들 천진데 블론이라도 해 봐. 기다렸다는 듯이 퇴물을 빨리 방출하라고 난리겠지.”

“형 응원하는 팬들도 많아요.”

“그거야 추억 팔이고. 내가 못하면 바로 은퇴 얘기를 꺼낼 사람들이 더 많을걸.”

김정률이 팔을 매만졌다.

“이 팔이 맛탱이 가기 전에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 마무리로 불 지르다 욕먹으면서 사라지고 싶지 않아.”

“선배님 공 충분히 좋아요. 잘하실 겁니다.”

“뭐…… 아니더라도 그렇게 믿어야지. 후.”

김정률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송석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여러모로 내가 네 덕을 많이 본다. 투구 폼 바꾼 것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이번 일이요?”

“그래, 네 덕에 혜미랑 뭐…… 좀 진전이 됐어.”

“어? 설마 사귀어요?”

“아직은 사귀는 건 아니긴 한데 조금 진지한 관계라고나 할까?”

“축하합니다, 하하. 저를 요긴하게 써먹으신 보람이 있네요.”

“뭘 또 써먹어, 써먹긴. 에헤이, 너 삐졌구나? 그치?”

“열애설 때문에 저 진짜 힘들어진 거 아시죠? 요새 계속 기자들을 피해 다니잖아요.”

“야, 그런데 카페에 간 건 너희 둘이 결정한 거잖아.”

“애초에 선배님이 아니었으면 갈 일이 없었어요. 선배님과 팽 아나운서한테 자리 마련해 주느라 저랑 로미 누나가 자리를 비킨 건데.”

“흠흠, 또 그게 그렇게 되나?”

김정률이 송석현의 어깨를 주물렀다.

“아무튼. 잘되면 내가 너 양복 하나 맞춰 줄게. 그럼 됐지?”

“양복 안 주셔도 돼요. 선배님한테 받은 게 얼만데요. 아무튼 잘됐으면 좋겠어요.”

“잘돼야지. 그래서 더 어깨가 무겁다. 혜미랑 잘돼도 뭔가 좀 멋질 때 딱 연애하고 결혼하고 해야지, 또 퇴물 소리 들을 때 열애설 나고 결혼하고 그러면 모양새가 그렇잖아.”

“그래서 선배님이 이렇게 열심히……. 역시 사랑의 힘이 최고네요.”

“너는? 너도 로미랑 잘되고 있으면서 무슨.”

“저는 그런 관계 아닙니다. 지금 야구 열심히 할 때지, 연애에 한눈팔 때는 아니잖아요.”

“늬예, 늬예. 그런 얘기 하는 애들이 꼭 사고 쳐서 결혼하더라.”

“와, 저한테 이런 악담을……. 너무하시네요.”

“악담이라니? 빨리 결혼하면 안정되고 좋지.”

“선배님은 그럼 왜 안 하셨는데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빨리 하려고 하잖냐.”

* * *

폭스와의 2차전을 앞둔 고트 선수들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폭스의 에이스 신규원을 제외하면 폭스엔 제대로 된 선발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용병 둘은 제 몫을 못 해내고 있었고 나머지 4, 5선발은 방어율이 6점대, 7점대를 오갔다.

특히 폭스와의 2차전 선발 정정국은 제구가 안 좋기로 손꼽는 선수였다.

150km/h에 육박하는 공은 일견 훌륭하다 치켜세울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배팅볼 취급을 당했다.

신규원에 꽁꽁 묶여 있던 고트 타선은 2차전에 대폭발했다.

“설진일 안타! 오늘만 3안탑니다!”

“김인환 선수, 오늘 맹타를 휘두릅니다! 오늘 전 타석 안탑니다!”

“송석현 선수도 오늘 홈런 하나를 추가하면서 전 타석 출루를 기록합니다. 오늘 고트의 타선은 정말 뜨겁습니다! 정말 뜨거워요!”

고트는 2선발 제임스 맥킨지가 7이닝 3실점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기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8회, 9회에 고트 불펜은 4점을 헌납했으나 고트는 10점을 넘게 점수를 뺏어 냈다.

최종 스코어는 14-7.

고트의 대승이었다.

선수들은 2연전 승리에 취했고, 팬들도 환호했다.

웨일스와의 경기 차는 1경기 차.

앞으로 7경기가 남았으니 1경기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승차였다.

전반기 클린업트리오의 이탈로 꼴지 경쟁까지 생각했던 팬들에겐 꿈과 같은 나날이었다.

감독 함성훈을 제외화곤.

* * *

“……후, 그 정돕니까?”

“예, 생각보다 두 팀 모두 고개가 뻣뻣하네요.”

경기가 끝난 후 함성훈 감독은 운영팀장과 트레이드에 대해 논의했다.

서일혁을 매물로 내세운 트레이드는 좀체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 팀 불펜이 약한 걸 잘 아니까 폭스나 불스나 더 뻗대는 거 같습니다. 사실 최근 불펜 실점이 좀 많잖습니까.”

“……네, 그렇죠. 타선의 힘으로 이끌어 가곤 있지만 불펜이 약한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저는 최소한 김진석이나 윤기진, 아니면 전병섭 수준으로 받고 싶었지만 두 팀 다 강경합니다.”

“저쪽에 내민 매물은 누굽니까?”

“한정규랑 심현일입니다.”

“하.”

함성훈이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잘 쳐줘 봐야 롱으로 뛰는 친구들 아닙니까? 아마 방어율도 5점대, 6점대일 텐데요.”

“네, 그렇습니다. 거기에 2군 불펜 투수 한둘을 포함해 줄 수 있다는 게 최종 제안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서일혁인데. 시즌 전이면 전병섭이나 김진석 일대일 트레이드는 저쪽이 고민 없이 받았을 텐데 말이죠.”

“우리 사정이 바뀐 걸 저쪽도 아니까요. 일혁이가 계륵이 된 데다 우리 불펜 사정은 급하고 트레이드 기한은 다가오고……. 갑은 폭스랑 불스 아니겠습니까.”

“그럼 이대로 끝입니까?”

“서일혁에다 하나 더 붙이면 김진석, 전병섭 수준으로 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황대기랑 이대성을 언급했습니다.”

“둘 다 이제 막 터진 선수들 아닙니까? 늦어도 내년에는 1군에서 뛸 수 있는 선수들인데……. 욕심이 너무 과하네요.”

“일단 질러 보는 거죠. 벼랑 끝 전술로 가면 우리가 불리할 거 아니까요. 급한 건 우리 쪽이지 않습니까?”

“하.”

함성훈이 두 눈을 감았다.

오늘은 타선이 터졌지만 타선은 언제나 기복이 있는 법이다.

게다가 KS포 메인인 김인환의 기복이 너무 심하다.

송석현을 받쳐 줄 타자도 나타나질 않으니 김인환이 안 좋으면 상대 팀은 송석현을 걸러 버린다.

송석현의 출루율이 올라가는 만큼 팀의 성적도 올라가야 할 테지만, 송석현은 홈을 밟지 못한다.

송석현의 뒤를 받쳐 주는 최재완이나 오진영이나 공격력으로는 리그 평균을 넘지 못하는 타자다.

“우리 팀 선발은 리그 평균 이상입니다. 좋은 편이죠. 타선은 잘 쳐줘도 리그 평균 이하……. 결국 성적을 결정하는 건 불펜이 될 겁니다. A급 불펜 하나나 레귤러한 불펜 둘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구단에선 서일혁 트레이드까진 찬성하지만 규모를 키운 건 원치 않습니다. 감독님께서 결정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서일혁을 트레이드하느냐, 마느냐.”

“음…….”

함성훈이 주먹을 꽉 쥐었다.

“솔직히 말해서 A급 불펜 하나라고 말한 것도 최상의 가정입니다. 지금 2군에 내려간 불펜 투수들 모두 통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중 둘은 올해 안에 수술해야 할 상황이구요. 불펜을 물음표로 만들어 놓고 후반기를 시작하고 싶진 않지만…… 팀을 위해서 서일혁은 그대로 두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럼 트레이드를 포기하시는 겁니까?”

“지금 상황이면 어쩔 수 없죠. 후반기엔 일혁이 FA 일수를 채워 주고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내년 시즌에 불펜을 얻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어차피 애들이 수술하러 들어가면 빨라야 내년 후반기에 복귀할 테니 내년에도 불펜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운영팀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 시즌을 욕심내실 만할 텐데…….”

“있는 걸로 잘 꾸려 가 봐야죠.”

“제가 죄송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감독 대행을 맡겨 드렸는데 도움도 못 드리네요.”

“상황이 이러니 어쩌겠습니까? 싸다고 덥석 살 수는 없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 몫을 해내는 불펜이니까요.”

운영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함성훈도 따라 일어섰다.

“저희도 어찌 됐든 끝까지 트레이드 진행은 해 보겠습니다. 폭스나 불스도 포수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니 최대한 잘 설득해야죠. 단장님께서도 각별히 신경 쓰고 계시니 그래도 한번 믿고 기다려 주십쇼.”

“네,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아침.

송석현은 늦은 아침을 먹곤 컴퓨터를 켰다.

어제 경기 다른 팀의 하이라이트를 다시 보기 위함이었지만, 이내 손이 딱 멈췄다.

[송석현, 사랑의 힘으로 홈런?]

“하.”

송석현이 고개를 숙였다.

한번 열애설이 터지자 기자들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다른 팀도 아니고 서울 팀, 그것도 원년 서울 인기 팀 고트의 스타가 됐다.

진실과 무관하게 송석현의 이름 세 글자만으로 조회 수를 얻을 수 있으니 기자들은 윤로미와 송석현을 계속 엮어 가며 열애설을 사실처럼 만들었다.

“징글징글하네.”

송석현이 컴퓨터를 끄고 구장으로 일찍 출근했다.

구장에 도착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박신언이었다.

“네, 선배님.”

-너 어디야?

“저 지금 출근했습니다.”

-구장이니?

“네.”

-잘됐다. 나도 출근했어. 이리로 와. 잠깐 할 얘기 있으니까.

송석현은 전화를 끊은 후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보다 루틴을 신봉하는 박신언이 벌써 출근을?

송석현은 핸드폰을 넣고선 박신언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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