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놈 (2)

신규원의 공은 스트라이크존에서 공 하나는 빠진 공이었다.

심판의 존이 오늘 유난히 넓었다는 걸 감안하면 공 한 개 반에서 두 개는 빠진 공이었다.

어떤 타자도 건드리지도 못하는 코스.

포수는 마음 편히 미트를 내밀었으나 공은 오지 않았다.

탕.

“투수 머리로 넘어가는 공! 2루 베이스를 넘어 중견수! 중견수 앞 안타! 송석현 선수가 초구를 공략합니다! 주자는 어느새 홈을 밟으면서 4-1. 고트가 한 점을 따라갑니다.”

1점.

겨우 안타 하나지만 신규원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송석현 선수의 저 타격은 좀 놀랍네요.”

“그렇습니다. 분명 빠지는 공으로 봤는데 그걸 어떻게든 우겨서 치네요.”

“송석현 선수가 원래 남들보다 1인치는 긴 배트를 쓴다고는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대단하네요. 사실 완전히 빠지는 공인데 그걸 칩니다.”

“중심 타선에서 타점을 만들어 내는 능력, 중요하죠.”

송석현이 출루했지만 최재완은 체인지업을 건드려 아웃됐다.

신규원은 어깨를 으쓱하곤 벤치로 들어갔다.

“아까 분명 다 빠진 공 아니었어요?”

신규원의 물음에 포수가 답했다.

“쟤가 이상한 놈이지. 그걸 왜 쳐?”

송석현는 아쉬운 표정으로 벤치로 돌아왔다.

타격코치는 송석현에게 물었다.

“아까 그건 왜 쳤어? 완전 빠진 공인데.”

“좋은 공 안 줄 거 같아서 초구부터 노렸습니다.”

“그래도 좀 기다리지 그랬어.”

“어차피 기다려도 크게 좋은 공은 안 올 거 같아서요.”

공 한 개가 더 안쪽으로 들어왔다면 장타가 될 수 있다.

물론 그래 봐야 담장은 넘길 수 없는 공이다.

칠 수 있는 공은 실투를 노린 장타 아니면 단타.

단타를 친다면 어떤 공이든 배트에 맞혀 내야만 뚫으면 된다.

송석현은 느슨해진 내야 수비를 보곤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휘둘렀다.

-아웃!

“마이클 선수, 공이 매섭네요. 저 공으로 어떻게 4실점을 했나 싶을 정도예요.”

“마이클 선수의 공은 분명 좋아요. 하지만 마음이 급한 게 문젭니다. 공 한두 개 빼면서 상대 반응도 살피고 해야 하는데 계속 공격적으로만 나가니 한번 페이스가 말리면 계속 말립니다.”

“폭스 선수들은 1회에 4점을 낸 이후론 마이클 선수를 버거워하네요. 출루도 쉽지 않아요.”

경기는 4회를 넘어 5회, 6회까지 이어졌다.

폭스 배터리는 송석현에게 애매한 공 하나 없이 깔끔하게 걸러 버리면서 승부를 피했다.

현재 고트 타선에선 설진일과 송석현 말곤 두려워할 타자가 없으니 거르면 그만이라는 작전이었다.

신규원의 기록은 5.2이닝 1실점.

신규원이 마운드로 내려갈 때 박수가 쏟아졌다.

짝짝짝짝.

“고생했다, 규원아!”

“고마 쉬라, 좀.”

신규원은 자신을 향한 박수에 고개를 한번 꾸벅 숙였다.

마이클 피시도 6회까지 추가 실점 없이 막아 냈다.

신규원의 활약에 빛이 바래졌지만 에이스답게 이닝을 충분히 소화하며 불펜의 부담을 덜었다.

양 팀의 선발이 내려가자 함성훈 감독은 불펜 이백찬을 올렸다.

작년 1라운더로 뽑힌 파이어볼러.

패스트볼 하나는 리그에서도 A급 이상으로 뽑히는 대어였지만 아직 2군이든 1군이든 큰 성과를 보여 주지 못했다.

전형적인 새가슴이 문제였다.

“포수 교체하죠, 석현이로.”

“알겠습니다.”

함성훈은 새가슴 투수를 위해 송석현을 포수로 투입했다.

이백찬은 근심이 많은 투수다.

특히 주자가 나가면 어쩔 줄 몰라 한다.

어깨가 좋은 송석현 정도가 이백찬에게 내릴 수 있는 현재 최고의 처방전이다.

7회 초.

마운드엔 이백찬이 올라갔다.

“투수가 바뀌었습니다. 이백찬 선수죠?”

“이백찬 선수가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했지만 아직은 뚜렷한 성과가 없습니다. 1군에서도 2군에서도 성적이 썩 좋다고 볼 순 없구요.”

“하지만 공 하나는 정말 빠르지 않습니까? 직구의 구위가 좋다는 평이 자자한데요.”

“구위가 좋아도 성과로 이어져야죠. 제구가 안 되거나 받쳐 주는 공이 안 되면 소용없습니다.”

“아, 포수도 바뀌었네요. 송석현 선수가 포수 마스크를 씁니다.”

“재밌네요. 이러면 배터리 모두 신인급 선수들인데요. 보통은 신인 투수가 올라오면 노련한 포수를 쓰기 마련이거든요? 아니면 포수가 신인이면 베테랑 투수가 좀 이끌어 주든지 하는데 고트는 그냥 배터리를 둘 다 바꿔 버립니다.”

“확실히 함성훈 감독 대행이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과감한 거 같습니다.”

“글쎄요. 꼭 과감한 게 좋은 건 아니거든요. 이런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잘 모르겠습니다.”

송석현이 포수 마스크를 쓰고 홈에 앉았다.

박신언과 서일혁이라는 포수 때문에 홈에 앉는 게 쉽지 않다.

타자들의 이탈로 지명타자로 나설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은 포수였다.

경기를 책임지는 자리, 포수.

팡!

팡!

이백찬의 연습 투구는 예상대로 좋았다.

미트를 짜릿하게 울리는 공.

148km/h의 강속구.

제구만 되면 리그 A급 공이다.

“폭스의 타선은 2번 김형남 선수부터 시작합니다.”

“김형남 선수는 한 방이 있는 타잡니다. 쉽게 들어가면 안 됩니다.”

송석현은 김형남이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사인을 냈다.

‘패스트볼.’

강속구가 자랑인 투수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있는가.

그냥 꽂아 넣는 거다.

이백찬은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적응했다.

송석현이 어떤 스타일인지 2군에서 이미 경험하지 않았는가.

빠른 템포, 변칙적인 볼 배합, 공격적인 투수 리드.

자신과 정반대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송석현은 언제든 확신을 갖고 볼 배합을 내기에, 없던 자신감도 피어오르는 기분이다.

“투수, 바로 던집니다! 스트라이크! 타자가 준비하자마자 던졌어요.”

“방금은 거의 한복판이었습니다. 타자가 헛스윙 하네요. 저걸 놓치면 안 되죠.”

송석현은 다음 사인을 내지도 않았다.

그저 미트를 가져다 댔다.

투수의 패스트볼은 좋고, 심판은 바깥쪽에 후하다.

고민은 사치다.

이백찬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팡!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과감합니다! 바로바로 승부에 들어가네요.”

“……예. 과감하게 승부하네요.”

송석현은 공 하나를 따로 빼지 않았다.

결정구는…….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가 꼼작도 하지 못합니다! 하이 패스트볼! 높은 공을 놓칩니다.”

“이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 싶네요. 방금은 하나 빼는 게 좋았습니다. 마이클 선수도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가다가 문제가 된 거거든요.”

“이백찬, 송석현 배터리가 빠르게, 빠르게 승부를 가져갑니다. 숨 돌릴 틈이 없네요.”

폭스의 3번 타자는 김경심.

눈에 띄는 장점은 없지만 오툴 플레이어라 부를 수 있는 타자였다.

-파울!

-파울!

“연속 파울 두 개. 배트가 계속 밀립니다.”

“오늘 이백찬 선수의 공이 좋네요. 원래 공이 좋은 선수긴 했는데 오늘 유난히 더 공이 좋은 거 같습니다.”

송석현은 바깥쪽에 미트를 대고 가만히 있었다.

이백찬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바로 공을 던졌다.

타자가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

-파울!

세 번째 공도 파울이 나왔다.

뒤로 넘어가는 파울.

제4구는 바운드에 가까운 슬라이더.

가운데에 오다 뚝 떨어지는 슬라이더에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 이백찬 선수 슬라이더도 날카롭습니다.”

“어린 배터리라 그런가, 참 야구 재밌게 하네요. 심플하게 힘으로 밀어붙입니다. 직구, 직구, 슬라이더. 뻔하지만 공이 받쳐 주면 약점 없는 조합이기도 하죠.”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최재국이었다.

사직에서도 30홈런을 친 거포.

키 190cm에 다다르는 거구에 근육질의 체형은 보기만 해도 상대를 압도했다.

최재국이 들어왔어도 송석현의 사인은 똑같았다.

바깥쪽 패스트볼.

팡!

-스트라이크!

최재국은 초구 하나를 지켜봤다.

대기 타석에서 본 것보다 더 공이 좋다.

살아서 툭툭 날아오는 공.

오늘 심판의 존이 넓은 만큼 욕심을 버리고 진루타를 치기로 마음먹은 순간, 투수가 고개를 한번 젓는 게 보였다.

“음.”

바깥쪽만 던지면 되는 데 여기서 고개를 젓는다?

최재국의 머리가 잠시 복잡해졌다.

변화구에 고개를 저은 걸까?

직구에 자신이 있으니까 그냥 힘으로 승부하고 싶어서?

최재국의 생각은 바로 끊겼다.

몸 쪽으로 들어오는 패스트볼에 자기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섰다.

‘볼, 인사이드.’

“방금은 좀 위험한 공이었습니다. 타자가 맞을 뻔했어요.”

“깊었죠. 맞는 게 두렵다고 너무 공을 붙여서 던진 거 같습니다.”

최재국은 허탈하게 웃었다.

여기서 몸 쪽으로 공을 붙인다?

심판은 바깥쪽에 후하게 공을 판정하는데도?

“흠.”

박신언은 팔짱을 낀 채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과는 다른 스타일이다.

송석현의 볼 배합은 공격적이고 변칙적이다.

일단 말리면 타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지만 흐름이 끊기면 상대에게 말릴 수 있다.

“위험하게…….”

박신언이 혀를 찼다.

이백찬은 송석현과 사인을 주고받으면서 계속 고개를 저었다.

타자가 타임을 한번 불러 흐름을 끊었다.

송석현은 다시 사인을 냈다.

이백찬은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최재국은 타석에 들어서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어떤 공일까?

몸 쪽으로 하나 찔렀으니 다시 바깥쪽 공?

정석적인 볼 배합인데 투수가 자꾸 고개를 젓는 게 이상하다.

다른 사인을 낸 건가?

여기서?

설마 또 몸 쪽 공?

“투수 와인드업!”

이백찬이 무릎을 올리더니 다리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체중을 실은 공은 타자의 몸 쪽으로 파고들었다.

타자의 배트도 공을 때렸다.

“좌측 담장! 좌측 담장! 아! 파울입니다! 공이 휘어서 나가네요!”

“방금은 위험했습니다. 몸 쪽 공 두 개를 연속으로 던지다뇨. 상대는 최재국 선숩니다.”

“실투일까요?”

“아니요. 방금은 사인을 제대로 주고받은 거 같습니다.”

“그런데 왜 저런 공을 던졌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지나치게 공격적이네요.”

이백찬은 담장을 넘어간 파울을 보곤 마른침을 삼켰다.

고트의 투수코치 연우식이 한숨을 쉬었다.

“쟤 볼 배합이 왜 저래? 김 코치님, 벤치에서 사인 내는 게 낫지 않겠어요?”

배터리코치 김태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석현이는 일부러 지금 저러는 거야.”

“일부러 저러는 건 아는데 지금은 그럴 타이밍이 아니잖습니까?”

“백찬이를 더 세게 다루는 거야. 지금 석현이는 투수를 만드는 거라고.”

“네? 투수를 만들어요? 쟤가요?”

“지금은 그냥 두고 봐. 감독님도 아무 말씀 안 하는데 왜 그래?”

“백찬이는 살살 다뤄야 해요. 쟤 멘탈 아시잖아요.”

“저 공을 갖고 애처럼 굴면 안 되지.”

배터리의 사인이 또 길어지자 타자가 심판에게 어필했다.

심판은 포수에게 주의를 줬다.

송석현은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로 향했다.

“형.”

“석현아, 소프트하게 가자. 왜 자꾸 몸 쪽이야?”

“형, 다른 타자도 아니고 최재국을 왜 걸려요? 형이 대놓고 몸 쪽에 던져도 못 쳐요.”

“그냥 쉽게, 쉽게 가자. 승부할 필요 없잖아.”

“전 형 공 믿어요. 왜 형이 형 공을 못 믿어요? 형 공은 몰리는 거 아니면 못 친다니까요.”

“그 정도는 아니지.”

“형이 자꾸 고개를 저어서 형이 선택한 공을 던져서 안타 맞는 것보다 제가 사인 낸 대로 던져서 안타 맞는 게 낫지 않아요?”

“그게 왜?”

“그럼 형 공이 아니라 절 원망하면 되니까요.”

“어?”

“형, 저 믿고 던져요. 안타 맞으면 저 원망하구. 마운드에서 생각하지 마요. 자신감만 갖고 던져요. 주자 나가도 내가 다 잡아 줄게요.”

마운드를 내려가려던 송석현이 주춤하더니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타자 맞혀도 제가 타자를 막아 줄게요. 형은 그냥 도망치면 되잖아요.”

송석현은 마운드에서 내려가 홈으로 돌아갔다.

이백찬은 송진 백을 손에 털어 냈다.

저 어린놈이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무턱대고 믿으라니.

“이백찬 선수가 웃습니다.”

“두 선수가 무슨 얘기를 했을까요?”

송석현은 이번엔 바깥쪽에 슬라이더 사인을 냈다.

이백찬의 슬라이더는 바깥쪽으로 일찍 벗어나면서 볼.

다음 사인은…….

‘패스트볼, 하이. 인사이드.’

4번 타자 상대로 몸 쪽 높은 공 사인.

어이가 없었지만 왠지 마음이 편했다.

저런 공을 투수가 선택해서 던질 리는 없지 않은가?

맞아도 1점이다.

송석현의 얼토당토않는 사인에 웃음이 자꾸 새어 나온다.

“투수가 또 웃네요.”

“무슨 웃긴 상상이라도 하는 걸까요?”

이백찬이 와인드업했다.

몸 쪽으로 붙어 가는 패스트볼.

타자도 힘껏 스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