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90화 (90/201)

스캔들

야구 선수들의 일과는 정오가 돼야 시작된다.

경기를 마치고 집에 오면 어느덧 자정이 다 돼 간다.

배를 채우고 씻다 보면 어느덧 새벽녘이다.

야구 선수의 일과를 아는 이들은 정오 전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 게 예의지만 오늘은 달랐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아, 진짜.”

송석현은 끊임없이 울리는 진동에 결국 몸을 일으켰다.

평소보다 더 늦은 새벽에 눈을 붙인 터라 몸은 천근만근, 어깨가 무거웠다.

“아, 누구야, 진짜?”

송석현은 저장되지 않은 번호를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는 찰나 전화가 끊겼다.

핸드폰을 열어 보니 문자도 수십 통이었다.

“……어?”

싸한 느낌이 등골이 파고든다.

갑자기 잠이 싹 깬다.

무슨 일이 터졌나, 가슴이 철렁했다.

수많은 문자는 각양각생이었다.

정미남과 김영석의 문자도 있었고 기자들의 문자도 있었다.

김정률과 김인환의 문자도 있었고 여태 교류가 없던 옛 친구들의 문자도 있었다.

많은 문자 중 송석현의 눈을 사로잡는 문자 하나가 있었다.

-송석현 선수, 운영팀 서승조입니다. 절대 전화받지 마시고 일어나면 바로 여기로 전화 주세요.

송석현은 핸드폰을 덮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헬리콥터 소리로 들렸다.

컴퓨터는 또 왜 이리 늦게 켜지는지.

컴퓨터가 켜지자마자 인터넷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을 쳤다.

[송석현, 윤로미. 우리 사랑하고 있어요]

[송석현, 윤로미의 핑크빛 하루]

[송석현, 윤로미. 사랑은 언제부터?]

[야구계 연상연하 커플 탄생?]

[만인의 연인 윤로미의 선택은 라이징 스타 송석현?]

열애설 기사가 가득하다.

심지어 검색어 1위가 송석현이었다.

2위는 윤로미, 3위는 열애.

송석현은 떨리는 손으로 기사를 클릭했다.

“하.”

기사엔 사진 몇 장이 붙어 있었다.

송석현이 윤로미를 물벼락에서 지켰을 때 찍힌 사진부터 병원에서 함께 퇴원한 사진, 카페에서 단둘이 커피를 마시는 사진까지.

기사에는 인터뷰도 있었다.

병원 간호사는 김정률, 팽혜리 얘기는 쏙 빼고 송석현이 애틋한 눈으로 윤로미와 함께 퇴원했다고 전했다.

송석현은 바로 구단 운영팀에 전화했다.

“예, 송석현입니다.”

* * *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열애는 아니라는 거죠?”

“예, 전혀 아닙니다. 그냥 전 정률이 형을 따라간 겁니다.”

송석현은 아침부터 구장으로 출근해 취조 아닌 취조를 당했다.

운영팀 서승조 과장은 수첩을 접었다.

“알겠습니다. 열애가 개인적인 부분이라곤 해도 최근에 불미스러운 일이 많아서 물어본 겁니다.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병원 인터뷰 부분이랑 카페 목격담 전부 거짓말이라는 거죠? 카페에서 단둘이 케이크를 먹여 줬다는 부분이라거나.”

“그건…… 갑자기 주길래 받아먹긴 했는데…….”

“…….”

“정말 아무 사이는 아닌데 갑자기 입 앞에 내미니까 저도 모르게…….”

서승조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그러면 해프닝으로 끝내죠. 홍보팀과 상의해서 열애가 아니라고 발표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서승조 과장은 자리를 뜨다 말고 몸을 돌려 송석현을 바라봤다.

“연애가 문제는 아니지만 사생활은 잘 관리해야 할 겁니다. 꼭 범죄가 아니더라도 연인 관계의 치정 문제로 야구 선수를 그만두는 케이스도 적지 않습니다. 연애를 하더라도 야구 선수도 공인이라는 자각을 갖고 주의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사무실로 홀로 남은 송석현이 한숨을 쉬었다.

카페에서 걱정하긴 했어도 설마, 자기가 열애설 같은 게 날까 싶었다.

연예인도 아니고 야구 선수다.

1군에서 활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고졸 스무 살.

송석현은 윤로미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이제야 체감했다.

자기 때문에 열애설이 날 리는 없다.

야구팬들의 연인이라는 윤로미의 열애가 충격적이었을 거다.

“졸려 죽겠네…….”

뒤늦게 잠이 스르륵 밀려왔다.

이제 와서 다시 집으로 갈 수 없어 구단 마사지 베드에 가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베드에 누워 눈을 감으려다 핸드폰을 들었다.

자신이 이 정도 소란을 겪었다면 윤로미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다.

송석현은 고민 끝에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해도 이 와중에 받을 수 없을 테니 위로의 문자 하나가 적당하다 생각했다.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많이 불편하시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송석현이 문자를 보내고 눈을 감으려는 찰나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윤로미였다.

송석현은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네, 누나. 괜찮아요?”

-응. 너는? 너도 지금 난리지?

“저는 뭐…… 괜찮아요. 구단에서 처리해 주기로 했어요. 누나는요?”

-나도 괜찮아. 이런 기사가 한두 번도 아니고. 이골이 났어.

“회사에서도 괜찮아요?”

-그럼, 별일 없지. 이런 거 가지고 뭘. 내가 미안하네. 괜히 나 때문에.

“아니에요.”

-나 병문안 왔다가 괜히 곤란하게 됐네. 기자들에게서 전화 엄청 오지?

“그 정돈 아니에요. 좀 오긴 했는데 구단에서 처리해 준다고 했으니까 기다리려고요.”

-그래…… 다행이다. 잘됐다고 하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송석현이 헛기침했다.

“누나도 지금 잘 시간인데 일어나신 거죠?”

-어, 오늘 어쩌다 보니 일찍 일어났네.

“지금 어디세요? 집이에요?”

-아니, 회사야. 나도 회사로 왔어.

“그래요…….”

-나 또 전화가 오네. 후, 나중에 또 통화하자.

“알겠습니다.”

송석현은 전화를 끊은 후 눈을 감았다.

졸려서 누웠는데 연신 자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결국 송석현은 몸을 일으켰다.

“목소리가 안 좋던데…….”

* * *

윤로미는 전화를 끊은 후 눈가를 훔쳤다.

불 하나 안 켜져 있는 아나운서 숙직실.

윤로미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벽만 보고 있었다.

똑똑.

문이 열리면서 팽혜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괜찮아?”

윤로미가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

“아침에 엄청 깨졌다며.”

“……괜찮아.”

팽혜리는 불을 켜지 않고 윤로미 옆에 앉았다.

“네가 이해해. 아직 그 사건, 1년도 안 됐잖아. 회사에선 아직 민감할 때지.”

“알아. 그건 괜찮아. 회사에서도 나 걱정해서 그런 거니까.”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왜 이렇게 침울해 있어?”

윤로미는 고개를 푹 숙였다.

“게시판이 난리야. SNS는 더 심해.”

“SNS 안 닫았어?”

“닫았어. 게시판이 문제야.”

“회사에서도 바로 조치할 거야. 문제 있는 글 다 지울 거고.”

“우리 엄마, 아빠한테도 전화 왔어, 괜찮냐고. 엄마, 아빠 둘 다 게시판 봤대. 지금 지우는 게 무슨 소용이야…….”

팽혜리는 한숨을 쉬었다.

팽혜리도 게시판을 보고 왔다.

게시판엔 원색적인 욕설로 도배돼 있었다.

리그에서 팬의 숫자로만 따지자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팀이 고트다.

고트, 불스, 폭스는 누가 더 낫다고 따지기 힘들 만큼 인기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팬들의 숫자만큼이나 세 팀의 열성 팬들도 많았다.

열성 팬은 팀에 대한 충성도도 높지만 과격한 팬들을 지칭하는 다른 말이었다.

송석현은 수십 년 동안 고트에 단 한 번도 없었던 거포 4번 타자였다.

이제 갓 스무 살, 잠실 장외를 넘기는 괴력, 포지션까지 포수.

기존 인기 선수들이었던 최대규, 이낙균, 강문규까지 이탈하자 갈 곳 없던 팬심은 송석현에게 몰렸다.

나이 지긋한 골수팬부터 어린 10대 팬과 여성 팬들까지, 송석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송석현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뜨거웠다.

이제 막 피어나는 스무 살 어린 선수의 스캔들은 팬들이 보기엔 선수 발목을 잡는, 선수의 앞길을 망치는 사건이었다.

스캔들 상대 또한 스포츠 아나운서 아닌가.

야구 선수와 스포츠 아나운서 커플은 종종 있던 터라 팬들의 눈에는 잘나가는 야구 선수를 꾀기 위한 아나운서의 검은 욕망으로 비쳤다.

성난 팬심은 말의 옥석을 가리지 않고 험한 말을 퍼부었다.

윤로미는 게시판의 악성 게시글, 악플보다 부모님이 그걸 봤다는 게 버티기 힘들었다.

송석현에 대한 미안함, 부모님에 대한 민망함, 자신에 대한 원망까지 겹쳐 아침부터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괜찮아. 지나갈 일이야.”

팽혜리는 윤로미를 안고 등을 두드렸다.

“누워. 여기서 자고 있어. 나중에 깨워 줄 테니까 푹 자.”

윤로미는 말없이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올렸다.

팽혜리가 밖으로 나갔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 * *

오후 2시가 되자 선수들이 하나둘 출근했다.

김정률과 김인환도 일찍 출근해선 로커 룸을 두리번거렸다.

“석현이는 아직인가?”

“내 전화도 안 받던데요?”

“걔 잠수 탄 거 아니겠지?”

“설마요.”

“우리 석현이가 첫 스캔들이 정신이 나갔을 텐데 어디서 뭐 하려나? 출근도 안 했나?”

송석현은 단체 훈련이 시작되는 2시 반이 다 돼서야 로커 룸에 나타나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었다.

김인환은 훈련을 가다 말고 돌아와 송석현 옆에 앉았다.

“뭐야, 너 이제 출근한 거야?”

“출근은 아까 했구요.”

“그런데 여태 뭐 했는데 안 보였어?”

“바빴어요. 잠깐 나갔다 왔거든요.”

“왜? 데이트하고 온 거야?”

송석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에요. 정률 선배가 얘기 안 해 줬어요? 그거 정률 선배가 나 끌고 간 건데.”

“별말 없던데?”

“하, 진짜, 너무하네.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는데.”

“그래서, 무슨 사이야? 그렇고 그런 사이?”

“아뇨. 그냥 정률 선배를 따라서 병문안하러 간 건데 그게 찍힌 거예요.”

송석현은 금세 옷을 다 갈아입었다.

“그래서 너 뭐 하다 온 건데? 데이트도 아니라며.”

“밥 먹고 왔어요.”

“혼자?”

“혼자 먹지 누구랑 먹어요, 나 혼자 출근해 있었는데?”

“나 부르지.”

“됐어요. 형 분명 백 프로 나 놀릴 건데 왜요? 형이랑 정률 선배는 절대 안 되죠.”

“짜식, 부럽다. 열애설도 나 보고. 그것도 윤로미랑.”

“하, 저 전화기 꺼 버렸어요. 얘가 한번 쉬어 주지 않으면 배터리가 터질 거 같더라구요.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뭔 전화를 이렇게 하는지.”

“나도 한번 나고 싶다, 열애설.”

“형, 가요. 훈련 시간에 늦은 거 같은데.”

“쩝, 너 잘되면 형도 좀 부탁한다. 다리 좀 놔줘.”

“아니라니까요. 차라리 정률 선배한테 부탁해요. 정률 선배는 진짜 같던데. 팽혜리 아나운서랑 심상치 않던데요?”

“진짜? 그냥 하는 말 아니고?”

“네, 네. 일단 가요 좀. 늦으면 저 혼나요.”

송석현이 그라운드에 나타나자 선수들이 키득거렸다.

코치들도 빙긋 웃었다.

함성훈 감독만 뒷짐을 지고 별말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몸을 풀고, 파트별로 훈련을 했지만 평소와 달리 기자들이 훈련 장면을 계속 카메라로 찍었다.

정확히는 송석현의 훈련 모습일 터다.

함성훈은 훈련이 끝나기 전 송석현을 따로 불러 먼저 미팅 룸으로 보냈다.

기자들은 송석현이 움직이자 인터뷰를 따러 움직였으나 구단 직원들이 길목을 막고 안 비켜 줬다.

“벌써 스타라고 엄청 싸고도네.”

“아, 비싸다, 비싸. 너무 비협조적이네.”

기자들은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함성훈 감독은 고개를 내저었다.

“바람 잠잠할 날이 없네.”

* * *

3연전 첫날의 미팅은 평소보다 더 길기 마련이다.

함성훈 감독은 파트별 미팅이 아니라 전체 미팅으로 진행했다.

“울브스전 2패로 지금 4위 웨일스와는 2경기 차야. 앞으로 남은 경기는 폭스전 6경기, 웨일스전 3경기. 공동 4위라도 가려면 폭스전 6경기 중에 4경기, 웨일스전에서 2경기를 가져와야 안정권이야. 역시 제일 중요한 건 웨일스전이겠지만 폭스전에서 승점 쌓지 못하면 이것도 의미 없어. 다행히 선발 대진운이 좋다. 우리는 1선발부터 시작이고 저쪽은 3선발부터 시작이야.”

함성훈 감독이 PPT 화면을 넘겼다.

“폭스의 타선은 전반적으로 발이 느리고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져. 여기에 병살까지 리그 1위. 이렇게 보면 나쁜 거 같지만 팀 OPS는 리그 3위다. 특히 장타율은 2위, 불 타선이야. 병살 두려워하지 않고 크게 휘두르는 불 타선이야.”

함성훈 감독 다음에는 타격코치가 나와서 말을 이었다.

“자, 그래서 애들을 어떻게 공략하는 게 좋냐. 이걸 말하지면…….”

전체 미팅이 끝난 후 송석현은 눈을 비볐다.

김인환이 송석현의 어깨를 주물렀다.

“왜? 잠 못 잤어?”

“아침부터 전화가 난리였는데 어떻게 자요?”

“점심시간 때 좀 자지.”

“막상 그땐 잠도 안 왔어요.”

“우리 4번 타자께서 오늘 컨디션이 별로라는 거네. 이거 어떡하냐. 내가 삽질하면 너라도 잘해야 하는데.”

“그럼 형이 더 잘하면 되죠.”

“모르겠다. 오늘은 영 느낌이 없네.”

“형까지 그러면 내가 더 부담인데.”

“네가 그러니까 내가 더 부담이거든?”

KS포가 서로 컨디션 저조를 걱정하는 사이 금세 경기 시작할 시간이 다가왔다.

송석현은 찬물에 연신 세수를 한 뒤 붉은 눈으로 거울을 응시했다.

“후, 정신 차리자, 정신.”

폭스의 선발은 신규원.

송석현에겐 궁합이 그리 좋지 못한 체인지업의 달인이다.

오늘 경기는 팀을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라도 잘해 내야 한다.

오늘 경기에 부진하면 또 무슨 기사가 뜰 것인가?

송석현은 제 뺨을 툭툭 쳤다.

“힘 빼고 정확하게. 정확하게.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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