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85화 (85/201)

잠실의 주인 (7)

“그래서 스트라이드를 좁히는 거구나.”

“네, 현대 야구에서 중요한 건 반응이니까요.”

송석현은 김인환과 특타를 하던 중 선배들에게 둘러싸였다.

설진일은 물론 2루수 정동규, 3루수 최재완, 유격수 정영수가 당사자들이었다.

“그러면 인환이가 요새 공을 못 맞히는 이유는 뭐야? 네 말대로라면 인환이는 지금 단점이 없는 폼이잖아?”

정영수의 질문이었다.

“만루 홈런이 문제죠.”

“홈런이?”

“네, 인환이 형이 저번에 만루 홈런을 친 이후로 다시 스트라이드도 길어지고 히팅 포지션도 높아졌어요. 어깨도 빨리 열리구요. 다시 스윙을 콤팩트하게 만들어야죠.”

“어떻게?”

“방법은 많아요. 그런데 최근에 본 훈련 중에 가장 그럴듯한 게 극단적으로 스탠스를 닫아 놓고 치는 거더라고요. 앞발을 고정시켜 놓고 노 스텝으로 치면서 앞발을 조금씩 열어 가는 거죠.”

“그런 건 어떻게 안 거야? 그냥 검색하면 나오나?”

“이건 제가 검색해서 안 건 아니구요. 제 친구 중에 영석이라는 애가 있는 데 걔가 좀 오덕 같은 친구예요. 매일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새로운 거 있으면 저한테 알려 주고 그러거든요. 아무래도 한국에 나와 있는 야구 관련 서적들이 많지 않아서…….”

“야구 선수야?”

“아니요. 그냥 야구 좋아하는 친구예요.”

“신기한 친구네.”

송석현이 배트를 들었다.

“제 짧은 견해지만, 메이저리그를 보면 앞으로의 추세는 스트라이드는 좁히고 히팅 포지션은 높이는 방향이 될 거예요. 싱커, 투심, 커터, 스플리터 이런 공들이 대세가 되면 보고 판단하는 시간이 더 짧아져요.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스트라이드를 좁혀서 반응 속도를 올려야 할 테고, 스트라이드가 좁아지면 파워가 부족해지니 이걸 보충하기 위해선 히팅 포지션이 높아져야 돼요. 밑으로 떨어지는 공이 많아지니까 퍼 올리는 스윙을 해야 하니 히팅 포지션이 높아지는 것도 자연스러워지고요.”

2루수 정동규가 물었다.

“그런데 넌 아니잖아. 손이 어깨높이까지밖에 안 올라가는데? 네 말이랑 달라.”

“예, 맞아요. 히팅 포지션이 올라가면 그만큼 파워는 올라가지만 공과 배트가 맞는 면적이 줄어들어서 컨택이 떨어져요. 그래서 전 히팅 포지션이랑 히팅 포인트 각을 25도 정도로 맞춰서 임팩트 영역을 최대한 늘렸어요.”

“어퍼 스윙이 아닌데 공은 왜 그렇게 멀리 날아가는 거야? 원래 힘이 좋아서 그래?”

“아뇨. 히팅 포지션을 낮춰서 약해진 파워를 풀스윙, 당겨 치기로 보완한 거예요.”

설진일이 물었다.

“넌 밀어서도 치잖아?”

“정확히는 밀어서 친 게 아니라 밀려서 친 거예요. 공이 바깥쪽으로 오다 보니 당겨 치던 배트에 밀려서 공이 나간 거지, 일부러 밀어 친 건 아니에요. 언제나 풀스윙. 이게 제 나름대로 컨택과 파워를 조합한 거예요. 물론 이건 저만의 방식이죠. 여기에 배트까지 무거운 걸 써서 모자란 파워를 더 보충한 거구요.”

최재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잘 치는 놈은 이유가 있네. 그걸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라 네가 혼자 생각한 거라고?”

“혼자 생각한 건 아니구요. 하면서 안 되면 친구들이랑 얘기도 해 보고 영상 찍고 혼자 분석도 하고, 책도 읽고, 다른 영상도 보고, 인터넷에서도 검색해 보고. 그러면서 저한테 맞는 스윙을 찾은 거예요.”

“부지런도 하다.”

김인환이 자기 배트를 어깨에 올렸다.

“내 스윙이 커졌으니 밀어 치면서 스윙을 줄이라는 거지?”

“아까 말한 대로 축발을 닫아 놓고 스윙하면서 스윙 폭을 줄이는 쪽으로 가야죠. 원래 스윙이 커지면 밀어 치기로 교정하잖아요.”

최재완이 물었다.

“그럼 나는?”

“형은 형대로 잘하고 있죠. 제가 무슨 의사도 아니고 어떻게 그걸 다 알겠어요? 인환이 형이야 저랑 친해서 오랫동안 보아 온 사이라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내가 네 뒤에서 죽 쓰고 있잖아. 그런데 뭘 잘해? 네가 보기엔 내 문제점은 뭐 같아?”

“문제점은 아니고…… 결국 타자는 파워냐 컨택이냐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둘 다 하면 좋은 거고. 그게 안 된다면 컨택이 우선이죠. 컨택이 돼야 힘을 실을 수 있잖아요.”

“……내 선구안이 문젠가?”

“외적으로는 투수를 분석해서 선구안을 기르는 방법도 있지만 내적으론 타격 폼을 정리하는 것도 방법이죠. 형은 스트라이드도 크고 히팅 포지션도 높은 전형적인 거포 타입이라 컨택이 좋을 수가 없어요.”

최재완이 볼을 긁적였다.

“갑자기 내가 네 뒤에 서니까 뭘 보여 줘야 하나 싶어서.”

“제 사견이지만, 형은 2군에선 스윙이 더 콤팩트했어요. 감독님이 형을 올리신 건 형이 2군에서 보여 준 모습 때문인데 갑자기 타격 폼을 바꾸면 아무래도 더 적응이 힘들죠. 1군 선수들의 공이 더 빠르고 변화구도 빡센데 이 와중에 타격 폼까지 바꿨으니 적응 기간이 더 길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구요.”

“코치님이 힘 빼라고 하는 게 그런 말이었구나…….”

특타 참석 인원 중 최고참인 유격수 정영수가 크게 웃었다.

“완전 교수님이네, 교수님. 강의를 하고 계셔.”

송석현이 당황해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건방졌습니다.”

“아냐, 아냐. 그런 말이 아니야. 2군에서 올라오자마자 1군 폭격을 하더니만 이유가 있었네. 내가 본 사람 중에 네가 타격 이론은 제일 빠삭한 거 같다.”

“아뇨, 아뇨. 그냥 혼자서 떠드는 거밖에 안 됩니다. 검증된 것도 아니고…….”

“네가 잘하면 검증된 거지. 제법 보는 눈도 좋네. 나도 재완이 폼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거든. 공이 안 맞으면 일단 힘 빼고 밀어 치는 게 우선인데, 내 코도 석 자라 재완이한테는 그런 말을 못 했어.”

최재완은 입맛을 다셨다.

“선배님도 아실 정도면 제 약점은 다 알고 있겠네요, 상대팀도.”

“약점을 안다고 다 공략이 되나. 대처의 문제지.”

김인환이 말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얘기가 길어졌는데, 다시 훈련해도 될까요?”

“아, 그러게. 석현이 말을 듣다 보니까 멍 때려 버렸네. 자 자, 다들 다시 훈련하자. 서로 조 짜서 도와주자고.”

“네, 알겠습니다.”

특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일 경기를 위해 체력을 아껴 두기로 했다.

특타를 마치고 훈련장을 정리할 때였다.

설진일이 송석현에게 다가왔다.

“네가 보기에 나는 어때?”

“네? 뭐가요?”

“나는 타격 폼 괜찮아?”

“그걸 저한테 자꾸 물으시면…….”

“너랑 나밖에 없잖아. 한번 말해 봐. 어?”

“형은 뭐 워낙 잘하셔서. 컨택도 좋고, 출루도 잘하시고, 장타도 있으시고. 컨디션 조절만 잘하시면 1군 붙박이가 아닐까요?”

“그래? 정말루다가?”

“뭐…… 형은 잘하시잖아요. 앞으로도 잘하실 거예요.”

“그러면 나도 TV에 나와서 인터뷰할 수 있겠네?”

“그거야 잘하시기만 하면…….”

설진일이 하하, 크게 웃었다.

“우리 딸내미가 TV에서 자기 이름을 얘기해 달라고 아주 난리거든. 빨리 데일리 MVP가 돼야지, 제 엄마를 닮아서 얼마나 쫑알거리는지 시끄러워 주겠다.”

“어? 형, 결혼하신 거예요?”

“그럼. 우리 애가 좀 있으면 초등학교 간다.”

“아니, 형은 나이도 얼마 안 되시지 않았어요?”

설진일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고 3 때라 피임이 어설펐지…….”

“아…….”

“뭐, 그래도 잘 살고 있으니까. 안 그래도 올해까지도 안 되면 때려치우고 장사나 하려고 했는데 마침 딱 지금 1군에 올라와 버리네.”

“형은 잘하시니까 내일이라도 MVP에 타실 수 있을 거예요. 응원하겠습니다.”

“그래, 말이라도 고맙다.”

설진일과 헤어진 후, 송석현은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경기를 복기하면서 설진일을 떠올렸다.

4차원 관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갔다.

* * *

다음 날.

울브스와의 3차전.

고트는 특타까지 한 보람도 없이 3회에만 6점을 헌납했다.

5선발 전상흠이 시작부터 장타를 허용하면서 무너졌다.

다음 투수 조재진은 피네스 피처라는 말이 무색하게 공도 느리고 제구까지 몰리면서 또 무너졌다.

한번 기세가 넘어가자 타선은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함성훈 감독은 불펜을 아낄 요량으로 점수 차이가 더 벌어져도 투수 교체를 아꼈다.

마지막 점수는 9-2, 대패.

KS포에 잔뜩 기대를 건 고트 팬들은 7회부터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흥이 난 울브스 팬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잠실의 주인이라며 노래를 불렀다.

3연전의 시작은 고트가 웃었으나 3연전의 마지막은 울브스 차지였다.

이틀 만에 잠실의 주인이 바뀐 셈이었다.

그날 저녁.

함성훈 감독은 고트 팬 페이지는 물론 야구 사이트에서 돌성훈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종일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돌성훈이 물러나야 고트가 산다

└돌성훈 오늘 경기 던지는 거 봤냐? 점수 차이 난다고 바로 경기 포기하더라

└돈 주고 이런 경기를 본 내 눈이 썩는다, 썩어

└임탈곡은 버릴 것도 안 버려서 문젠데 돌성훈은 한 경기도 아쉬운데 바로 버리더라

└믿을 구석이라곤 송석현 홈런이 전부인 무능갑

└음주 터지고, 클럽 게이트 터질 때부터 진즉에 이번 시즌 포기했어야 했는데. 내가 미친놈이다, 고트를 믿었다니. 내가 미친놈이야

└우린 언제 울브스한테 큰소리 한번 쳐 보냐? 한 번 이기면 두 번, 세 번을 져 버리네

└맨날 사서 써만 했는데 비싼 돈 주고 산 물건이 죄다 AS 들어갔다. 성적이 나올 리가 있나?

└하, 이러다 우리 6위까지 떨어질 듯. 웨일스 오늘도 이겼더라

└답이 없네. 전반기 6경기 남았는데 5위랑 2경기 차야.

└임탈곡이 지나가고 돌성훈이 왔다! 우리는 감독 운도 없네 ㅋㅋㅋ

6경기 4승 2패.

좋은 성적이지만 문제는 2패가 울브스라는 데 있었다.

울브스 상대로는 1승 2패.

피닉스 상대로 얻은 3승은 누구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송석현은 팀의 패배와 무관하게 오늘 경기를 복기했다.

야구가 개인 스포츠란 소리를 듣지만 야구도 팀 스포츠였다.

타선의 감이 나쁘지 않았지만 선발이 무너지면서 수비 시간이 길어졌고, 그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졌다.

타격의 흐름이 계속 깨지자 타선은 젖은 도화선에 붙은 불처럼 금세 꺼졌다.

송석현은 오늘 경기의 소감을 한 줄로 정리했다.

-수비는 짧게, 공격은 길게.

“하, 내일 드디어 쉬나?”

일주일이 말 그대로 쏜살같이 흘러갔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송석현이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마칠 때였다.

또 문자 소리가 들렸다.

송석현은 잠시 고민하다 핸드폰을 꺼냈다.

-나 오늘 발목 접질렸어. 내일 쉬는 날인데 ㅠㅠ

발신인은 윤로미였다.

송석현은 윤로미의 문자를 한참이나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 이건 뭐야?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송석현에게 목적 없는 문자는 고차방정식 문제나 다름없었다.

무시해야 할지, 답장을 해야 할지, 답장을 하면 뭐라고 해야 할지 당최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송석현은 고민 끝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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