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82화 (82/201)

잠실의 주인 (4)

“예아!”

고트의 선발 제임스 맥킨지가 삼진을 잡고 포효했다.

어느덧 3회 초.

2-2의 점수는 그대로 이어졌다.

동점 상황이지만 1회부터 달궈진 분위기는 좀체 식지 않았다.

“3회 초 제임스 선수가 삼진을 잡아내면서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양 팀 선발 모두 좋은 투수들입니다. 1회에 실점을 했지만 금세 다시 자기 페이스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3회 말은 좀 다릅니다. 다시 송석현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습니다. 1회 때 워낙 어려운 승부를 한 터라 장계성 선수가 어떻게 송석현 선수를 맞이할지 정말 궁금합니다.”

3회 말.

타순은 다시 1번 타자 설진일부터 시작됐다.

팡!

-스트라이크!

“와.”

설진일은 초구부터 들어온 몸 쪽 패스트볼에 혀를 내둘렀다.

통상 몸 쪽 패스트볼은 바깥쪽 패스트볼에 비해 구속이나 구위가 더 약한 법이다.

투수도 사람이다 보니 빈볼을 신경 쓰면서 던지느라 공을 더 조심스럽게 다루기 때문이다.

조금 전 공은 달랐다.

투수는 타자가 맞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전력으로 던지고 있다.

“제2구! 스트라이크! 설진일 선수가 꼼짝 못하네요.”

“우타자 몸 쪽으로 꺾어지는 슬라이더였습니다. 다른 투수들은 저렇게 못 던지죠. 하지만 장계성 선수는 과감하게 슬라이더를 섞습니다. 워낙 슬라이더가 날카롭고 파고드는 속도도 좋아서 직구보다 타자들이 더 어려워하는 공입니다.”

카운트는 0-2.

설진일은 타석에서 바짝 붙어 다음 공을 기다렸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삼진이 나옵니다!”

“몸 쪽 높은 공! 설진일 선수가 배트도 못 휘두르네요.”

“146km/h이 나옵니다! 정말 좋은 공이었습니다.”

“장계성 선수가 오늘은 기어를 잔뜩 올린 거 같습니다. 쉬엄쉬엄 가는 공이 없어요.”

“보통 선발은 완급 조절을 하면서 던지지 않습니까?”

“장계성 선수가 원래 공격적인 투수긴 한데 오늘은 조금 더 세게 나가네요.”

2번 타자 김인환은 초구 빠지는 슬라이더를 건드려 범타로 물러났다.

김인환이 고개를 숙였다.

“자, 여러분이 그토록 기다린 대결입니다. 장계성 대 송석현. 송석현 대 장계성.”

“장계성 선수가 1회에 당한 홈런을 갚아 줄 수 있을까요?”

장계성이 손에 송진을 묻혔다.

송진 가루가 눈앞에 휘날린다.

송진 가루가 걷히자 타석에 자리 잡은 송석현의 얼굴이 보였다.

“후우우우.”

송석현은 아직 앳된 얼굴이 남아 있었다.

장계성은 초구로 몸 쪽으로 꺾이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방금은 굉장히 날카로운 슬라이더였습니다.”

“송석현 선수가 초구는 지켜보네요.”

“지금 공은 정타를 맞히기 힘든 공이었습니다. 각도가 너무 좋았어요.”

장계성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야 한다.

1회 때 백도어 슬라이더를 기다릴 정도로 노림수가 좋은 놈이다.

승부가 길어질수록 투수의 패는 읽힌다.

‘패스트볼, 몸 쪽 위로.’

포수도 볼 배합을 공격적으로 가져갔다.

어설프게 머리를 쓰면 된통 당한다는 걸 1회 때 보지 않았는가?

카운트를 빠르게 가져가야 한다.

“흡.”

투수가 숨을 들이켰다.

몸 쪽으로 파고드는 패스트볼.

공은 포수의 미트보다 바깥쪽으로 빠졌다.

한가운데 높은 공.

송석현은 힘들이지 않고 배트를 돌렸다.

“갑니다! 갑니다! 갑니다! 갑니다!”

1회 때 맞자마자 무섭게 날아간 공과 달리 이번에는 공이 두둥실 떠올랐다.

3루 선상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공.

좌익수가 글러브를 들고 기다렸다.

“좌측 담장! 넘어갔습니다! 또다시 홈런! 두 번째 홈런 터집니다! 송석현 3회 솔로 홈런!”

“이게 넘어갑니까? 그냥 플라인 줄 알았는데요?”

“장계성 선수의 실투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통타하는 송석현 선수! 오늘 장계성 선수에게 홈런 두 개를 빼앗습니다!”

“장계성 선수, 고개를 숙이네요. 방금 공은 솔직히 명백한 실투여서 할 말이 없습니다. 공도 빠르지 않았고 코스는 더 안 좋았습니다.”

“장계성 선수가 저런 실수를 하네요. 대놓고 치기 좋은 공이었습니다.”

“그래도 송석현 선수도 힘들이지 않고 쳤는데 이게 넘어갔다는 건……. 와, 송석현 선수의 힘은 정말 보통이 아니네요. 이쯤 되면 무섭습니다.”

송석현이 1루를 밟고 2루를 밟았다.

카메라가 장계성의 얼굴을 찍었다.

굳은 얼굴에 잔뜩 상기된 표정.

울브스 벤치에서도 침묵이 스며들었다.

“오오오!”

“송석현! 송석현!”

“잘해쓰! 송석현 최고다!”

벤치의 동료 선수들이 송석현을 치켜세웠다.

송석현은 하이 파이브를 하며 벤치로 들어왔다.

선발투수 제임스는 송석현을 꽉 안았다.

“후아.”

송석현이 헬멧을 벗자 김인환은 송석현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송석현은 김인환의 주먹을 툭 쳤다.

“오늘 컨디션 좋네.”

“그러게요. 오늘 좀 방망이가 잘 돌아가네요.”

“넌 장계성 공이 보이냐? 난 하나도 안 보이던데.”

“그거야 형은 좌타자고 저는 우타자잖아요. 저도 장계성 공이 잘 보이진 않아요, 워낙 디셉션이 좋아서.”

“돌겠네. 전혀 모르겠어. 직군지, 슬라이던지, 체인지업인지. 보이질 않아.”

“그래요? 그 정도로 좋나? 원래 좌타자 성적이 좋긴 한데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하, 그냥 내가 문젠가.”

함성훈 감독은 김인환과 송석현을 힐끔 봤다.

KS포.

터지면 강한 타선이지만 S의 비중이 크다.

김인환은 컨택과 선구 모두 부족한 타입이라 기복이 심하다.

김인환이 앞에서 제 몫을 해내지 못한다면 송석현의 비중은 더 커진다.

문제는 송석현 뒤에 받쳐 줄 타자가 없다는 데 있다.

송석현 뒤를 받쳐 줄 타자가 없다면 송석현을 거르면 그만이다.

KS포를 SK로 바꾸는 건 조삼모사에 불가하다.

송석현이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타선을 혼자 이끌 수는 없다.

국가 대표 경수인이 10년이 넘도록 피닉스에서 무엇을 이뤘는가?

김영훈이 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없었다.

천재 타자도 혼자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후.”

함성훈의 한숨 소리와 함께 그새 이닝이 끝났다.

송석현에게 홈런을 맞을수록 장계성의 공은 더 사나워졌다.

독이 바짝 오른 장계성의 공을 감당할 타자는 드물었다.

송석현은 6회 말에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점수는 3-2, 고트가 리드하고 있었다.

마운드에는 여전히 장계성이 버티고 있었다.

“선두 타자 송석현 선수가 나옵니다.”

“세 번째 만남인데, 장계성 선수가 이번에도 송석현 선수와 정면 대결을 할까요?”

장계성은 입을 꾹 다문 채 포수만 바라봤다.

포수는 새끼손가락이 꼬물거렸다.

바깥쪽으로 빼라는 사인.

장계성은 모자챙을 한번 꾹 눌렀다.

팡!

팡!

팡!

3구 연속 바깥쪽 패스트볼.

모두 스트라이크존에서 공 한두 개 정도 빠진 공이었다.

“울브스가 정면 대결을 피하는 거 같죠?”

“어쩔 수 없습니다. 오늘 홈런만 두 개 친 타잡니다. 점수도 3-2. 타이트한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정면 승부는 비효율적입니다. 이기려면 실리를 찾아야죠.”

“장계성 선수가 오늘 기분이 좀 나쁘겠네요. 하하, 워낙 공격적인 선수라 싸움닭이라는 별명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자존심을 내세우는 건 오기밖에 안 됩니다. 성과가 안 나온다면 팀의 결정에 따라야죠.”

장계성의 4구는 바깥쪽 체인지업.

아슬아슬하게 스트라이크존에 걸치면서 심판의 손이 올라갔다.

“어어? 설마 승부하나요?”

“글쎄요. 공 3을 던져 놓고 이제 와서 설마요. 그건 비효율적이고 또 위험한 선택입니다.”

포수는 미트를 아예 바닥 쪽으로 내렸다.

확실하게 떨어뜨리라는 사인이었다.

장계성은 혀로 볼을 쑥 밀더니 포수의 말대로 체인지업을 땅에 닿을 정도로 떨어뜨렸다.

“사실상 송석현 선수와의 승부를 거릅니다.”

“당연하죠. 어쩔 수 없잖습니까. 오늘 방망이가 가장 뜨거운 타자거든요. 오늘 송석현 선수 말고는 눈에 띄는 타자가 없기도 하고요.”

송석현 뒤의 타자는 주전 3루수 강문규의 백업 최재완이었다.

아직 스물두 살의 어린 선수였고 일찌감치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았지만 FA로 수십억을 받은 강문규의 빈자리를 채우긴 아직 일렀다.

-스트라이크! 아웃!

“아, 최재완 선수. 장계성 선수의 공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게 당연한 겁니다. 장계성 선수는 공만 빠른 게 아니라 투구 폼이 좋아서 체감상 훨씬 더 공이 빠르게 느껴지거든요. 장계성 선수의 공에 익숙해지기까진 시간이 필요합니다. 익숙해지더라도 쉽게 칠 수 있는 공이 아니지만요.”

“하지만 송석현 선수는 오늘 바로 첫 만남에 홈런을 두 번이나 때려 냈지 않았습니까?”

“하하, 송석현 선수가 특이한 거죠. 장계성 선수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대회에서도 성적이 좋은 선숩니다. 특유의 투구 폼 때문에 공이 잘 보이지 않는 데다 패스트볼의 구위가 상당히 좋습니다. WBC에서 메이저리거들도 장계성 선수의 공에 고전했습니다. 그만큼 장계성 선수는 까다로운 선숩니다.”

“이거 이러면 천적 관계가 되는 건가요? 첫 타석부터 홈런을 때려 버리는 타자. 그런데 그 타자가 고트의 4번 타잡니다. 호사가들이 굉장히 좋아할 만한 내용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겠네요.”

뒤이어 좌익수 오진영이 나왔다.

오진영은 통산 OPS가 0.8에 좀 못 미치는 리그 평균 수준의 좌익수였다.

일발 장타가 있는 타자였지만 독이 오른 장계성의 공에 배트가 밀렸다.

“여기서 파울이 나옵니다.”

“타이밍도 안 맞고 힘에서도 밀려요.”

장계성은 1루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송석현과 눈이 마주쳤다.

좌투수와 1루 주자의 눈싸움.

장계성은 송석현의 눈을 피하면서 바깥쪽에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던졌다.

오진영은 서투른 스윙으로 공을 건드렸다.

“2루수가 잡고 유격수에게 토스! 유격수가 1루로! 아웃! 아웃입니다! 4-6-3 병살! 여기서 병살이 나오네요.”

“장계성 선수가 깔끔하게 6회를 마무리합니다.”

“역시 장계성 선수답습니다. 국가 대표 선발투수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주네요.”

장계성의 오늘 성적은 6이닝 3실점.

삼진 여섯 개에 볼넷 네 개, 안타는 다섯 개가 전부였다.

퀄리티 스타트에다 세부 지표까지 좋았으나 홈런 두 개가 장계성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표정 풀어. 오늘 공 좋았어.”

포수 신민호가 어린 투수의 뿔난 심정을 다독였다.

장계성은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차라리 오늘 계속 얻어터졌으면 컨디션이라도 나빴다고 자위할 건데, 쟤한테만 맞으니까 더 빡치네요.”

“쟤 잘 치긴 잘 치더라. 빠따가 제법이야.”

“기분이 뭔가 찝찝한데. 오늘 저 쳐 맞은 거 그냥 우연이겠죠? 호구 잡힌 건 아니겠죠?”

“쟤도 오늘 운이 좋았던 거야. 오늘 네 공 진짜 좋았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하.”

양 팀 선발투수 모두 6회까지 막고 내려갔다.

장계성과 제임스 맥킨지는 각 팀의 핵심 선발답게 상대 타선을 꽁꽁 묶어 놨다.

7회부터는 불펜 싸움이었다.

7회 마운드에는 신인 투수 홍대성이 올라왔다.

고트의 2013년 드래프트 1라운더이자 좌완 파이어볼러.

울브스의 하위 타선은 최고 구속 150km/h에 던지는 좌투수의 공을 공략하지 못했다.

미완의 대기라도 좌완 파이어볼러는 타자의 천적과도 같았다.

홍대성이 1라운더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동안 고트의 하위 타선도 똑같이 죽을 썼다.

3-2의 점수가 깨진 건 8회 말이었다.

“좌측 담장! 좌측 담장! 넘어갑니다! 설진일! 솔로 홈런! 8회 말, 고트가 다시 달아납니다!”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하는 울브습니다. 1번 타자에게 홈런을 맞을 줄 누가 알았습니까?”

“설진일 선수, 잠실에서 홈런을 칠 만큼 장타력이 좋은 타자였나요? 물론 투수가 쉽게 승부하려고 들어가다 맞은 거지만 설진일 선수의 예상하지 못한 홈런에 양 팀 벤치 모두 놀란 모양입니다.”

“오늘 고트는 클린업트리오가 빠진 상황에서 홈런으로만 득점을 합니다. 이것도 진기록이에요. 이제 고트가 틀어막기만 하면 이깁니다. 문제는 9회예요. 마무리 박만성 선수가 2군에서 컨디션을 끌어 올리고 있거든요? 그렇다는 말은 현재 고트의 마무리가 없다는 얘깁니다. 피닉스전에서는 전부 다 대승을 거둬서 불펜 역할이 작았지만 오늘처럼 타이트한 경기에선 불펜이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합니다. 틀어막을 투수가 있나요? 승리조 불펜 다수가 현재 부상이거나 휴식 차원에서 2군에 있거든요.”

설진일 다음 타자는 김인환이었다.

김인환은 이번에도 범타로 물러나면서 오늘 경기 4타수 무안타로 끝났다.

김인환은 풀 죽은 얼굴로 송석현과 타석을 교대했다.

울브스는 송석현을 거른 뒤 두 타자 연속 범타로 8회 말을 끝냈다.

그리고 9회 초.

불펜에서 투수 하나가 마운드를 향해 뛰어갔다.

고트 팬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김! 정! 률!”

“김! 정! 률!”

“김! 정! 률!”

해설자가 웃었다.

“오늘은 선발이 아니라 김정률 선수가 마무리로 올라옵니다.”

“이런 타이트한 상황에서 김정률 선수가 올라올 줄은 몰랐는데요. 김정률 선수는 작년까지 그리 성적이 좋지 못했습니다. 올해 언더핸드 투수로 변신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보여 준 것도 없고요.”

“과연 오늘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겠습니다.”

송석현은 김정률의 등판에 숨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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