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79화 (79/201)

잠실의 주인 (1)

송석현이 벤치 한편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윤로미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송석현 선수.”

“예? 아, 안녕하세요.”

송석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인터뷰 가능할까요?”

“인터뷰요? 아…… 네.”

어느샌가 카메라가 송석현 주위로 우르르 몰렸다.

“반가워요, 송석현 선수. 혹시 제가 누군지 아시나요?”

“예, 윤로미 아나운서님이시죠.”

“어머, 아시는구나? 다행이네요.”

“예, 예.”

윤로미가 송석현 옆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고트의 4번 타자 송석현. 시즌 전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죠. 그쵸?”

“예,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듣기로는 신고 고졸 포수라고 했는데 스무 살 맞나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잘하나요? 어떤 비결이라도 있을까요?”

“아…… 딱히 비결은…….”

“홈런을 칠 때마다 비거리가 어마어마하시잖아요. 송석현 선수가 몸이 탄탄해 보이긴 하지만 몸이 엄청 크진 않은데 어떻게 그런 큰 홈런을 치실 수 있는 거죠?”

송석현의 키는 183cm에 몸무게는 80kg 전후.

몸에 지방도 별로 없어 70kg로 보일 만큼 날씬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포수의 이미지와는 달리 발 빠른 리드오프로 보였다.

“그건…… 음…… 일단은요, 저는 제가 원하는 공을 기다리는 타입입니다. 그만큼 제가 원하는 공이 왔을 때는 언제나 전력으로 휘두릅니다. 거기서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배트를 힘껏 휘두른다. 정말 그게 단가요?”

“다른 게 있다면 제 배트가 남들보다 조금 더 길고 무겁다는 거예요. 지금 배트가 1kg 나가거든요. 길이도 36인치보다 조금 짧거나 비슷하거나 할 겁니다.”

“1kg 배트요? 제가 알기론 경수인 선수도 920g 배트를 쓴다고 들었는데 너무 무거운 거 아닌가요?”

“보통 940g 정도, 정말 무거워야 980g 쓰는 추셉니다. 배트는 34인치가 표준이고요.”

“그런데 그렇게 무겁고 긴 배트를 써도 되나요? 규정에는 괜찮죠?”

“예, 규정에는 문제없습니다.”

“그럼 특별한 배트를 쓰시는 거네요. 왜 이런 배트를 쓰게 되신 거죠? 남들보다 배트가 더 길고 무거우면 컨트롤이 어려울 거 같은데요.”

“미세한 배트 컨트롤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윙을 자주 하지 않고 원하는 공을 기다렸다가 칩니다. 남들보다 배트를 다루기 어려운 만큼이나 힘을 싣기도 좋아서 정타만 맞으면 장타가 나올 수 있습니다.”

윤로미가 송석현의 배트를 한번 들었다.

“정말 무겁네요. 쇳덩이를 드는 거 같은데요?”

윤로미는 카메라를 향해 송석현의 배트를 이리저리 돌려 보였다.

“송석현 선수의 비결이 바로 이 야구 배트에 있었군요. 남들은 다루지 못하는 배트를 다루는 사나이, 정말 멋진데요? 꼭 적토마를 다룬 관우 같아요.”

“그냥 저는 이게 편해서 그런 거라…….”

윤로미가 배트를 내려놨다.

“최근 가장 핫한 스타가 되셨는데 가족들의 반응이나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다들 축하해 주고 열심히 하라고는 하는데 특별히 바뀐 건 없습니다.”

“팬들의 사랑이 어마어마하실 텐데요. 특히 고트 팬들의 사랑은 뜨겁기로 유명하잖아요. 고트엔 미녀 팬도 많은데 미녀들의 대시도 있지 않았나요?”

윤로미의 짓궂은 질문에 송석현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미녀들의 사랑을 받을 만큼 외모가 출중하지도 않고요, 또 잠깐 잘하는 건데 스타라고 부르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개인 시간이 별로 없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빠듯합니다.”

“어머, 한창 좋을 나이 아니에요? 여자 친구는 없나요?”

“예, 없습니다.”

“송석현 선수의 지금 대답에 기뻐할 고트 팬들이 많을 거 같네요, 하하.”

피디가 다음 인터뷰를 진행하자고 손짓했다.

윤로미는 눈짓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 그럼 고트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안녕하십니까? 신인 선수 송석현이라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윤로미는 송석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송석현은 영문을 모르고 손을 잡았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송석현 선수. 다음에 만날 땐 말 놔도 되죠?”

“아…… 편하게 하세요. 네.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실 텐데.”

윤로미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어머, 너무한다. 나 나이 어려요. 아직 스물넷이라고요.”

“아아, 죄송합니다. 실수했습니다.”

윤로미가 꺄르르 웃었다.

“그럼 다음엔 인터뷰 더 잘해 줘요. 오늘처럼 너무 딱딱하게 하지 말고.”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다음에 봐요. 안뇽~.”

윤로미가 떠나자 이번엔 오늘 경기 해설 위원이 다가왔다.

송석현에겐 까마득한 선배.

해설 위원이 웃으면서 송석현 옆에 앉았다.

“음, 송석현. 잠깐 얘기할 수 있지?”

“예예, 선배님.”

* * *

송석현을 살릴 건 작전 미팅이었다.

투-포수조, 야수조가 나눠서 미팅에 들어갔다.

“우와, 죽는 줄 알았어요.”

송석현은 김정률을 보자 고개를 내저었다.

김정률은 키득거렸다.

“그것도 다 좋은 때다. 나중에는 인터뷰하자고 해도 안 해 줘, 인마.”

“오늘 하루만 몇 개야……. 벌써 다섯 군데는 한 거 같아요.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쉴 시간이 없어요.”

“그래도 넌 좋지, 인마. 윤로미랑 인터뷰했잖아. 윤로미 걔가 얼마나 인터뷰하기 힘든데.”

“그래요?”

“하도 선수들이 찝쩍대니까 방송국에서 걔는 인터뷰 열외하거든. 뭐, 넌 아직 신인이고 요새 핫하니까 윤로미가 온 거겠지만.”

“아…….”

“아까 인환이 표정을 네가 봤어야 돼. 윤로미가 인환이는 취재 안 하고 갔잖아. 아까 너 취재할 때 부러워 죽으려고 하더라.”

“역시 인환이 형은 아나운서가 취향인가?”

“인환이한테 윤로미는 언감생심이지. 요새 윤로미가 톱 아니냐, 톱.”

“그런 거까진 잘 몰랐어요. 다음에 인터뷰할 기회 있으면 인환이 형한테 몰아줘야겠다.”

“인환이가 또 여려서 그렇게 티 내면서 밀어주면 오히려 쑥스러워서 못한다니까. 스윽 밀어줘야지, 스윽.”

탕탕.

투수코치가 막대기로 책상을 두 번 두드렸다.

집중하라는 신호였다.

“자, 오늘 울브스 3연전이니만큼 더 집중해서 봐야 돼. 울브스전에서 밀리면 우린 다시 5위로 내려가는 거야. 전반기에 4위로 올라가느냐 5위로 내려가느냐도 커. 울브스랑 웨일스전에서 최소한 3승 3패는 해야 폭스전에서 한두 게임이라도 가져올 수 있어.”

투수코치가 스크린에 화면을 띄웠다.

“감독님이 특명이다. 이번 3연전의 목표는 불펜 피로도를 최소화하는 하는 거다. 피닉스전에서 우리가 불펜을 많이 아낀 건 알 거야. 하지만 우리 팀의 불펜 피로도는 이미 만성화돼 있다. 며칠 쉰다고 될 일이 아니야. 짧아도 2주에서 한 달 정도는 관리해야 피로도가 정상 범위로 내려온다. 울브스 3연전 동안 불펜을 안 쓸 수는 없어. 하지만 불펜 투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긴 이닝을 맡아야 할 거다. 김정률, 정천운, 이백찬, 홍대성.”

“네.”

“네.”

“네.”

“네?”

졸다가 이름이 불린 홍대성이 두 눈을 부릅떴다.

“너희 넷이 이닝을 먹어 줘야 돼.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3실점을 내주거나 빅이닝 상황만 아니라면 너희를 내리지 않고 계속 끌고 갈 거라고 하셨다. 무슨 말인지 알지? 길게 가져가야 한다는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이번 울브스전 어떻게든 위닝으로 가져가 보자. 남들은 우리 팀보고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고 하지만, 바닥을 찍고 올라가 보자.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고트는 울브스전을 맞이해 파격전인 타선 조정에 들어갔다.

1번 타자로 설진일을 내세우고 2번 김인환, 3번 송석현을 내세웠다.

기존 타순보다 한 타순 앞당긴 타순이었다.

“우리는 불펜을 아끼고 싶다고 마음껏 아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야. 그래도 꼼수를 발휘하자면 최대한 초반에 점수를 내서 분위기를 빨리 가져와야 해. 설진일, 김인환, 송석현. 이번 3연전은 계속 이 타순으로 갈 거야. 너희 세 사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해. 너희에겐 어떤 작전도 없어. 강공. 강공으로 가.”

함성훈의 한 수는 강한 1~3번 타자였다.

설진일은 피닉스 3연전 동안 3할 타율, 5할 출루율, 5할 장타율을 보여 주며 늦깎이 신인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잘 치고, 잘 보고, 잘 잡고, 잘 던지고, 잘 뛰는 소위 5툴 플레이어.

피닉스와의 짧은 3연전에서 거둔 경기지만 함성훈은 설진일의 가능성을 보고 1번 타자로 낙점했다.

“예쓰!”

설진일은 타선을 보자 혼자 춤을 추며 다녔다.

송석현은 김정률에게 다가가 물었다.

“원래 저 선배님은 저래요?”

“쟤가 살짝 똘끼가 있어. 나쁜 놈은 아닌데, 관종끼도 있고 그래.”

“아아, 가까이하지 말아야지.”

“야, 너는 무슨 선배를 사나운 개 취급하냐?”

“저는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가장 무서워서요.”

홈팀이 미팅을 끝내고 나오자 원정팀이자 같은 잠실을 홈으로 쓰는 울브스도 막 훈련을 끝내고 나오는 중이었다.

송석현은 저 멀리 외따로이 서 있는 장대희를 보곤 고개를 돌려 버렸다.

“징글징글하네.”

경기 시작이 다가오자 잠실의 1, 3루석엔 팬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잠실 라이벌이자 지금은 2위와 공동 4위의 경쟁 팀.

해설자들은 외야까지 들어차는 팬들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잠실 경기가 빠르게 매진될 거로 보입니다. 벌써 내야는 꽉 찼어요.”

“특히 오늘 고트 팬들이 많이 보이네요. 오늘 경기 중요하죠. 단독 4위가 될 수 있는 기횝니다.”

“고트가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로 주춤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과연 그런 사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수습하고 다시 가을야구를 넘보고 있습니다. 최대규, 강문규, 이낙균 클린업트리오가 이탈했을 땐 고트가 꼴지 경쟁을 하는 거 아니냐, 말이 많았는데 말이죠.”

“저는 고트가 이 상황을 수습한 이유를 세 가지로 봅니다. 첫째, 함성훈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은 게 컸다. 원래 수석 코치가 감독 대행을 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함성훈 수석 코치의 수습이 좋았습니다. 과감하게 1군 선수들 여덟 명을 내리고 2군 선수들을 올렸거든요? 팀이 어려울 때 오히려 1군 선수들을 이렇게 많이 내린다? 보통 사람이라면 성적을 내기 위해서라도 더 무리를 했을 거다, 생각합니다. 과감한 쇄신으로 2군 선수들에겐 자극을, 1군 선수들에겐 휴식을 준 게 주효했습니다.”

“나머지 두 개는 뭔가요?”

“역시 KS포죠. 사실 이게 가장 큽니다. 함성훈 감독 대행이 두 선수가 무조건 잘할 거라고 믿고 올리진 않았겠죠. 하지만 두 선수의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어마 무시한 타선이 됐다, 이렇게 봅니다. 김인환 선수야 안 터져서 문제였지 터지기만 하면 리그 최고의 거포가 될 거라는 말이 많았거든요? 아직 백 프로라고 보긴 힘들지만 제 몫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신인 송석현 선수가 치기만 하면 장외로 가 버리는 홈런으로 상대 투수들을 공포로 밀어 넣고 있죠. 나머지 하나는 고트의 잠재력이라고 봅니다. 클린업이 빠졌다지만 고트의 투수진, 고트의 2군 유망주가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여기서 버텨 줬기 때문에 KS포의 활약도 빛났다고 봅니다.”

국민의례가 시작됐다.

양 팀의 선수, 양 팀의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민의례가 끝나자 이례적으로 고트의 응원석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가지 못할 곳은 없지. 모두가 어렵다고 해도 우린 밟고 또 밟고 올라가지. 너희는 그저 우리를 우러러볼 뿐. 정상에 서는 건 결국 우리라네!”

“가을의 주인! 아! 잠실의 주인! 아! 고트! 고트라네!”

“고트! 고트! 무적 고트!”

잠실을 가득 메우는 응원가.

뜻밖의 일격에 울브스 팬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홈팀 고트는 1회 초 수비인데도 먼저 앰프를 크게 켜고 응원가를 불렀다.

“대단하네요. 고트 팬들의 함성이 대단합니다. 한국시리즈인 줄 알았어요.”

“그동안 고트가 상대 전적에서 울브스에 꾸준히 밀려 왔거든요. 잠실 라이벌이라곤 했지만 울브스보다 좋은 성적을 거둔 해가 손꼽힐 겁니다. 최소한 10년 이상 말이죠. 90년 우승이 고트 최고 성적입니다. 그게 벌써 13년 전이에요. 고트가 그동안 많은 돈을 쓰고 투자도 많이 했지만 울브스에 항상 못 미쳤는데 오늘은 다르다 이거죠. 피닉스전 스윕을 했고 무엇보다 KS포, 김인환, 송석현이라는 토종 거포를 2군에서 배출해 냈습니다. 맨날 FA를 사 오던 팀이, 단 한 번도 30홈런 선수를 가지지 못한 팀이 달콤한 꿈을 꾸게 됐다 이겁니다. 왜 안 기쁘겠습니까? 오늘 경기는 상당히 재밌을 거 같네요. 과연 팬들의 염원을 KS포가 이뤄 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플레이볼!

경기 시작과 함께 고트 마운드에는 용병 제임스가 올라왔다.

할리우드 배우를 해도 남을 만큼 빼어난 금발 벽안 미남.

제임스와 짝을 맞출 포수는…… 서일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