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74화 (74/201)

라이징 스타 (1)

앤써니 쉐인의 구질은 세 가지.

패스트볼, 커브, 스플리터.

피닉스의 포수 김창현은 송석현의 타격 폼을 보곤 초구로 커브를 선택했다.

통상 스트라이드가 넓을수록 낮은 공에 강하고 어퍼 스윙이 많다.

송석현의 타격 폼은 스트라이드가 다른 타자에 비해 한 족자는 좁다.

그 말은 낮은 공에 약하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 있다.

팟!

앤써니 쉐인의 손이 앞으로 넘어왔다.

공이 살짝 위로 떠올랐다.

12-6 커브를 던질 때 흔히 보이는 현상.

송석현이 배트를 휘둘렀다.

쾅!

“좌측 담장! 좌측 담장! 좌측 담장! 넘어갔습니다! 장외를 넘기는 2점 홈런! 송석현 선수! 어제의 장외 파울 홈런을 오늘은 장외 홈런으로 바꿔 버립니다!”

“방금은 맞자마자 홈런이었습니다. 비거리가 어마어마한데요? 아무리 적게 쳐줘도 135m는 나오겠어요.”

“앤써니 쉐인의 커브를 완벽한 타이밍에 받아 치는 송석현 선수! 방금은 정말 완벽하게 노린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직구를 머릿속에 그리다 커브를 친 그런 타이밍이 아니었습니다. 초구부터 커브를 확실하게 노린 게 분명합니다.”

“어수선한 고트의 분위기를 한 번에 쇄신하는 송석현 선수! 헤라클레스 김인환 선수를 밀어내고 4번 타자를 낚아챈 게 결코 운이나 요행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합니다.”

“고트 팬들도 지금만큼은 환호하네요. 아, 기분 좋겠어요. 시원시원한 홈런입니다.”

“달려라! 고트! 달려라! 고트! 워워워워워!”

“우리가 가지 못할 곳은 없지. 모두가 어렵다고 해도 우린 밟고 또 밟고 올라가지. 너희는 그저 우리를 우러러볼 뿐. 정상에 서는 건 결국 우리라네.”

좌월 장외 홈런.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현수막을 들고 욕하던 팬들과 소수의 열성 팬들이 단숨에 모여 한목소리로 응원가를 불렀다.

“가을의 주인, 잠실의 주인, 고트, 고트라네!”

“송석현! 송석현! 송석현! 송석현!”

뿌뿌뿌뿌~!

“4번 타자 송석현! 4번 타자 송석현!”

앤써니 쉐인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송석현은 2루 베이스를 밟고 3루로 뛰었다.

3루 응원석의 팬들은 송석현을 보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홈런 타자 송석현!”

“우윳빛깔 송석현!”

송석현은 그제야 응원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처음 들린 소리가 우윳빛깔이라 웃음이 터졌다.

“축하해. 오늘은 첫 홈런볼을 수확해야겠네?”

김인환이 홈에서 손을 들고 기다렸다.

송석현이 김인환과 하이 파이브 했다.

“형 덕분이에요.”

“내가 조상님이야? 네가 잘 쳤지, 내가 뭘 했다고.”

“형한테 한 번도 커브를 안 던져서 나한테 무조건 커브를 던질 거라고 봤거든요.”

“그랬어?”

“앞선 두 타자한테는 커브를 던졌는데 형한테 안 던졌으면 그건 아껴 둔 거잖아요.”

김인환은 앞서가는 송석현을 보며 허허 웃었다.

“넌 그런 것도 생각하고 사냐?”

벤치에선 송석현의 첫 홈런을 축하하며 박수를 보냈다.

함성훈 감독이 가장 먼저 송석현과 주먹을 맞댔다.

“좋았다.”

“감사합니다.”

선수들은 첫 홈런을 축하하며 헬멧을 쓴 송석현의 머리를 마구 두드렸다.

“아파요! 아파! 아프다고요!”

* * *

앤써니 쉐인이 1회부터 2점을 내줬지만, 바로 다음 타자를 범타로 잡아내며 이닝을 끝냈다.

고트의 선발투수는 전상흠, 고트의 5선발투수 중 하나였다. 고트가 일찌감치 선발로 찍어 군 문제까지 해결한 후 올해 복귀시켰다.

용병 투수와 5선발 후보의 대결.

선발의 무게감은 1회부터 차이가 났다.

“아, 전상흠 선수. 또 볼넷입니다.”

“첫 타자 범타 이후로 연속 볼넷입니다. 이러면 무사 주자 1, 2루에 경수인 선수가 나오거든요.”

“전상흠 선수, 선발 자리는 항상 보장되는 게 아닙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돼요. 이러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타석에는 경수인이 들어섰다.

스트라이드를 넓게 벌리고 노 스텝으로 치는 타자.

선구안과 컨택만큼은 여덟 개 구단을 통틀어도 경수인을 앞설 이가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투수는 벌써 식은땀을 흘렸다.

포수 박신언이 타임을 외치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송석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전상흠을 쳐다봤다.

“박신언 선수와 짧게 얘기한 거 같은데 무슨 얘기를 했을까요?”

“글쎄요. 보통은 이럴 땐 자신 있게 던지라고 말하는데 하필 타자가 경수인 선숩니다. 자신 있게 던지고 싶어도 그게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전상흠 선수 표정이 심각합니다. 너무 긴장한 거 같은데요?”

김태우 배터리코치가 송석현 옆으로 다가오더니 작게 말했다.

“너라면 저 위에 올라가서 뭐라고 말할래?”

“저요?”

“그래, 너라면 말이야.”

송석현은 아직도 얼어 있는 정삼흠을 봤다.

“몸 쪽 하이볼 패스트볼 던지라고 할 거 같습니다.”

“응?”

배터리코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볼 배합 말고. 투수를 어떻게 달랠 거냐고.”

“달랜다고 달래질 거 같진 않습니다. 차라리 다음 공을 어떻게 던질지 미리 귀띔해 주는 게 나을 같아서요.”

“정말 그렇게 할 거야?”

“저라면…… 네. 저도 투수였지만 어차피 포수랑 얘기해 봐야 숨 돌릴 시간을 버는 거 말곤 아무 의미 없습니다. 지금은 투수가 생각이 너무 많은 게 탈이라 딱 하나만 머릿속에 남기는 게 차라리 나을 거 같습니다.”

배터리코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데 왜 몸 쪽 하이볼인데?”

“밸런스도 안 잡힌 상황이라 커브나 체인지업은 폭투나 실투가 되기 딱 좋고, 그렇다고 존에 직구를 밀어 넣자니 타자는 당연히 직구를 기다릴 타이밍이고. 제일 좋은 건 바깥쪽 낮은 공 직구지만 지금은 제구가 안 되니 차라리 몸 쪽 직구가 낫습니다.”

“그러다 사구가 나오면 만룬데?”

“그 정도 제구력이면 어딜 던져도 위험합니다. 차라리 몸 쪽 하이볼은 비슷하게만 가도 타자가 안 치거나 못 칩니다. 최악의 경우 사구를 맞아도 1루 주자가 경수인 선배님이면 발이 느려서 병살 노리기도 더 수월하고요.”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그사이 전상흠은 바깥쪽에 연달아 직구 두 개를 던지면서 볼 두 개를 내줬다.

3구는 몸 쪽 낮은 직구.

2B-1S였다.

“여전히 타자에게 유리한 상황입니다. 경수인 선수는 지금 큰 욕심 없이 우익수 방면으로 밀어 칠 거거든요. 투수는 바깥쪽 떨어지는 공이나 몸 쪽 빠른 공으로 병살을 유도하는 게 최선입니다.”

제4구도 몸 쪽 낮은 직구였다.

가운데로 조금 몰린 공이었지만 경수인은 그대로 지켜봤다.

“경수인 선수, 침착합니다. 병살이 될 수 있는 공은 일단 지켜봅니다.”

“카운트가 몰리기 전에는 나쁜 공을 치지 않겠다는 심산이죠. 노련한 선수입니다, 정말.”

송석현은 경수인을 보며 제5구를 뭐로 요구하는 게 좋을지 떠올렸다.

공 네 개 모두 직구다.

타이밍으로 보면 느린 공 하나가 나와야 한다.

속아 주면 좋고, 설령 안 치더라도 풀카운트라 한 번 더 승부가 가능하다.

송석현 본인이라면 여기서 하이 패스트볼로 타자의 의표를 찌를 거다.

공 네 개 모두 낮은 직구였으니 나쁜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보통 다른 포수라면 당연히 변화구를 하나 가져갈 거다.

베테랑 포수라는 박신언이라면 더더욱.

-스트라이크! 아웃!

“경수인 선수! 스탠딩 삼진입니다!”

“방금 코스는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경수인 선수가 허를 찔렸어요!”

“147km/h의 빠른 공으로 위기를 넘기는 전상흠 선수. 가장 어려운 경수인 선수를 삼진으로 잡으면서 숨을 돌립니다.”

박신언의 선택은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벤치도 술렁였고, 송석현도 놀랐다.

국가 대표 4번 타자를 상대로 제구 안 되는 신인 투수의 하이 패스트볼.

박신언의 성향을 알고 있는 경수인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타석에서 나갔다.

“선배님이…… 쓰읍.”

묘수 세 번이면 필패라고 했던가.

경수인이라는 큰 산을 넘겼지만 제구가 안 되는 투수는 결국 볼을 남발하다 존에 밀어 넣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전상흠은 1회에만 4점을 내줬다.

송석현의 2점 홈런이 빛바래졌다.

“피닉스가 오늘은 칼을 갈고 나왔네요. 1회부터 맹공을 퍼붓습니다.”

“신인 송석현 선수가 2점을 내주면서 쉬운 경기를 하나 싶었는데 오히려 2점 뒤처진 채 게임을 시작하네요. 이런 거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어떤 게 안타까우시죠?”

“고트의 선발투수들을 보십쇼. 용병 투수 둘을 제외하면 이창훈, 한민석 선수가 3, 4선발을 맡고 있는데 두 선수 모두 FA 투숩니다. 고트가 키워 낸 선발투수가 4선발 내엔 없다는 얘깁니다. 전상흠 선수는 아직 어리지만 다른 5선발 후보를 보면 조재진, 조석주 선수가 있는데 조재진 선수는 벌써 스물일곱이고 조석주 선수는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숩니다.”

“선발투수가 중요한데 고트에선 전혀 키워 내질 못하고 있단 말씀이시군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나요? 좋은 투수를 드래프트로 못 뽑았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분명 좋은 투수를 뽑았어요. 그런데 조급증이 문젭니다. 조금만 잘하면 불펜으로 돌리다 보니 선발투수가 항상 부족합니다. 선발투수는 적어도 3년, 길면 5년까지 두고 키워야 로테이션을 돌 수 있습니다.”

“3년, 5년은 너무 길지 않나요?”

“거기서 군 생활 2년을 빼야죠. 그러면 구단에서 신경 써서 키울 시간이 1~3년밖에 안 됩니다. 최소한 이 시간만큼은 2군에서 선발 수업을 하고 1군에서도 롱릴리프나 5선발을 뛰면서 경험치를 쌓아야 합니다. 결국 야구는 선발 싸움이에요. 선발 야구가 약하면 아무리 불펜이 강해도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고트도 불펜이 강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선발이 약하니까 불펜이 과부하 됐고 지금은 그 불펜마저 약해지지 않았습니까?”

“악순환이네요.”

“결국은 타선입니다. 고트는 타선에서 마운드의 부족함을 벌충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대규, 강문규, 이낙균 세 선수가 빠지면서 타선의 힘도 약화돼 있는 실정입니다.”

“힘들겠지만 김인환 선수와 송석현 선수가 힘을 보태야 합니다. 두 선수가 기존 선수들 생산력보다 더 좋긴 힘들겠지만 여기서 벌충하지 못하면 고트가 치고 올라가긴 힘듭니다.”

-아웃!

-아웃!

앤써니 쉐인은 강속구는 없었지만 제구와 변화구가 뛰어났다.

고트의 하위 타선은 앤써니의 투구에 말려 범타로 물러났다.

유격수 정영수는 아웃을 당하자 벤치로 돌아오며 고개를 저었다.

“말렸어. 공이 지저분한데?”

“그러니까 배트 짧게 쥐고 툭툭 밀라니까.”

“여기서 얼마나 더 짧게 쥐어?”

“그럼 나한테 유격수 자리를 넘기든가. 저런 똥볼을 못 치냐.”

“형이 나보다 수비를 잘하든가.”

정영수와 정백선이 서로 투닥거렸다.

함성훈 감독은 타격코치를 불렀다.

“아무래도 오늘은 공을 많이 보는 게 좋은 거 같습니다. 잔루를 남겨도 좋으니 중심 타선 앞에 기회를 몰아주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마운드가 약하면 타선이라도 강해야 하는데 지금 고트는 방망이까지 시들하다.

함성훈은 김인환을 힐끗 봤다.

기대보다 일찍 송석현이 4번 타자로 자리 잡았지만 김인환은 아직 소식이 없다.

신인 타자가 4번에 있으니 당연히 상대 팀은 김인환을 거르고 송석현을 상대로 병살을 가져가려 했다.

결과는 송석현의 대활약.

송석현에게 안타와 홈런을 맞으며 송석현이 만만찮은 타자임을 확인했다.

늦든 이르든 상대 배터리는 이제 김인환을 피하지 않고 승부를 걸 거다.

김인환이 걸어온 승부에서 이겨 낼 수 있을까?

김인환이 제 몫을 해 주지 못한다면 송석현이 아무리 날고뛴다 한들 소용이 없다.

국가 대표 4번 타자 경수인이 있는 피닉스 타선도 빈공에 허덕이는데 하물며…….

공수 교대.

고트의 수비 차례가 다가왔다.

전상흠은 1점 홈런을 내줬지만 추가 점수는 내주지 않았다.

5-2.

3회 초에 접어들자 고트의 공격은 9번 타자 박신언부터 시작했다.

앤써니는 9번 타자를 상대로 초구부터 직구를 꽂아 넣었다.

탁!

박신언은 가볍게 당겨 치면서 삼유간을 뚫고 1루로 안착했다.

다음 타자는 1번 타자 정병선.

중견수 수비로는 리그 톱클래스지만 방망이는 이에 못 미쳤다. 다만 선구안이 좋아 타율 대비 출루율이 높은 타자였다.

“이렇게 되면 무사 1, 2루가 됩니다. 2번 타자 설진일 선수를 잡아내지 못하면 3, 4번 클린업에 연결됩니다.”

“여기선 무조건 설진일 선수와 승부해야 합니다. 주자를 쌓아 두고 클린업을 상대하는 건 최악의 선택이에요.”

해설자들의 말처럼 피닉스의 배터리도 똑같이 생각했다.

승부해야 한다.

3번 타자 김인환은 대기 타석에서 몸을 풀었고 송석현도 배트를 쥐고 숨을 골랐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벤치에선 탄식이 터졌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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