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73화 (73/201)

포수란?

“석현이를요?”

김태우 코치가 되물었다.

“벌써 경기를 맡기는 건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함성훈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르죠. 2군에서도 경기 몇 번 안 치렀는데 한 경기를 온전히 맡기는 건 이릅니다. 그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재고해 주십쇼. 무엇보다 일혁이가 여태 우리 팀에 공헌한 것도 있는데 석현이를 세컨 포수로 올리는 건 이릅니다.”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석현이가 다른 팀 포수에 비해서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감독님.”

“상황을 고려하지 말아 주세요. 그건 제 책임이고 제가 할 일입니다. 코치님이 보시기엔 석현이가 세컨 포수를 하기에 실력이 많이 부족합니까?”

김태우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함성훈은 김태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제가 보는 포수의 기본기는 크게 세 가집니다. 캐칭, 블로킹, 도루 저지. 볼 배합이나 작전은 벤치에서 할 수 있지만 이 세 가지는 포수만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석현이를 평가하려면 세 가지 능력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일단 도루 저지는 사실상 A일 테니 넘어가죠. 캐칭과 블로킹은 어떻습니까?”

“캐칭은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만…… 외곽으로 빠지는 공을 존에 밀어 넣는 스킬은 50점도 주기 힘듭니다.”

박신언이 말했다.

“그렇다고 석현이가 스트라이크 될 공도 덮어 버리는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솔직히 무난합니다.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수준이라고 봅니다.”

함성훈이 손가락으로 소파를 툭툭 쳤다.

“프레이밍은 무난하다 정도로 정리하면 될까요?”

박신언이 말했다.

“미트질은 할수록 늘게 돼 있습니다. 석현이가 경험치에 비해선 꽤 잘한다고 봅니다.”

“코치님 생각도 비슷합니까?”

“……경력에 비해선 괜찮다고 봅니다.”

“코치님이 블로킹 연습도 시켰을 테니 석현이 블로킹에 대해선 잘 아실 텐데……. 블로킹은 어떻습니까?”

김태우는 뜸을 들였다.

“능수능란하진 않지만 반응 속도가 워낙 좋아서 막기는 잘 막습니다. 석현이가 포수치곤 몸집이 날렵한 편이라 정면으로 오는 공은 잘 막습니다. 사이드로 오는 공을 각 만들어 잡는 건 아직 미숙합니다. 1군 투수 변화구 각은 2군이랑은 또 다르잖습니까? 각이 좋은 공을 1루나 3루 쪽으로 떨어뜨려 송구하는 거까진 바라기 힘듭니다.”

“하지만 석현이는 어깨가 좋잖습니까? 각을 예쁘게 안 만들어도 승부할 타이밍은 나오지 않을까요?”

“각을 만들고 안 만들고는 큰 차입니다. 석현이 어깨가 좋다고 해도 남들보다 공이 두 배는 더 빠른 게 아닙니다.”

박신언이 말했다.

“코치님 말씀이 맞습니다만, 공만 앞에 잘 떨어뜨린다면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각을 예쁘게 만들어서 다음 동작까지 만드는 건 어디까지나 플러스알팝니다. 그 정도 포수는 리그에서도 많아야 다섯 손가락 안입니다.”

소파를 두드리던 함성훈의 손이 멈췄다.

“블로킹이나 프레이밍이나 큰 문제는 없고, 도루 저지는 최상급 포수. 백업 포수로 이 정도면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은데요. 안 그런가요?”

함성훈이 박신언과 김태우를 번갈아 봤다.

김태우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박신언에게 눈짓했다.

“저는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박신언은 감독실에서 나갔다.

김태우는 박신언이 나간 후에야 입을 열었다.

“감독님, 우리 팀이 어떤 상황인지는 수석으로 계셨던 감독님이 가장 잘 알잖습니까? 겨우 잠잠해진 상황인데 일혁이 여기서 팽하시면 분위기가 흐려질 겁니다.”

몇 년 전부터 고트는 FA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이와 함께 FA 선수들과 기존 고트 선수 간의 갈등이 심화됐다.

FA가 오면 기존 선수들은 주전에 밀리는 건 물론이거니와 친하게 지내던 동료까지 보상 선수로 다른 팀으로 떠나보낸다.

FA 선수가 많다고 무조건 분란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강문규, 이낙균처럼 사생활 논란이 많은 선수까지 영입되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강문규, 이낙균은 고트의 어린 선수들을 꾀어 일탈을 즐겼기에 고트 중고참 선수들은 크게 반발했다.

이때 가장 먼저 총대를 메고 나선 게 서일혁이었다.

서일혁은 강문규와 주먹다짐까지 했다고 구단에서 징계도 줬었다.

구단에 미운 털이 박힌 서일혁은 출장 기회까지 줄어 FA도 2년째 미뤄졌다.

박신언이 오기 전 서일혁은 고트의 주전 포수였고, 리그 전체를 따져도 열 손가락 안에는 넉넉하게 드는 실력자였다.

“그나마 팀 분위기가 엉망이었던 거 수습하는 데 일혁이 역할이 컸습니다. 일혁이도 이제 서른입니다. 올해 FA를 하느냐, 내년에 FA를 하느냐는 몸값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석현이 때문에 일혁이를 팽하면 오히려 석현이 입지까지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이제 겨우 수습된 분위기가 더 엉망이 될 수 있습니다.”

“코치님의 우려는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함성훈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하지만 어제 구단에서 안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안 좋은 소식이라니요?”

“문규랑 낙균이한테 성희롱당한 피해자 측 변호사가 구단과 접촉했답니다. 단순 성희롱이 아니라 성폭행이랑 몰카 촬영으로 고소한다고 했답니다.”

“성폭행요? 강간이라는 말입니까?”

“저도 진실은 모릅니다. 하지만 문규랑 낙균이 말고 동석한 모든 사람들을 고소한다고 하는데, 거기에 우리 팀 다른 선수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허, 두 놈이 심하게 노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 짧은 추측이지만 기존 사례를 볼 때 피해자 측 변호사는 일을 더 키울 겁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일이 커질수록 문규랑 낙균이를 1군에 올리는 건 어렵습니다. 최악의 경우 2군 선수까지 포함하더라도 네댓 명은 더 엮일 수 있습니다. 뎁스가 확 얇아지는 거죠.”

“아이고, 감독님. 감독님은 괜찮으십니까?”

함성훈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이 좋을 리는 없죠. 그래도 감독이니 어쩌겠습니까? 팀을 꾸려 가야죠.”

“구단에선 설마 이거 다 알고도 모른 체하고 감독님을 모신 거 아닙니까?”

“그것도 전 모릅니다. 알고 한 건지, 모르고 한 건지. 어쨌든 제가 수락했으니 책임도 제가 져야죠.”

“허어, 이거 참.”

“지금은 팀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일혁이가 좋은 선수라는 거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석현이를 키워야 합니다.”

김태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뎁스가 얇아졌으면 석현이 지타에 박고 일혁이가 백업하고, 그러면서 천천히 석현이가 포수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 아닙니까?”

“아뇨. 우리 팀 타선은 지금 물음푭니다. 최대규, 강문규, 이낙균 클린업이 송석현, 김인환으로 바뀌었습니다. 둘이 터진다고 해도 A급 타자 셋의 공백을 단숨에 메우길 바라는 건 욕심이죠. 결국 우리는 타선의 힘이 아니라 마운드의 힘으로 가야 합니다.”

“아, 그러면 혹시……?”

“네, 구단에서도 저한테 무거운 짐을 맡겼으니 저도 트레이드를 요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구단과 일혁이도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데다, 일혁이 본인에게도 고트랑 FA 계약을 하면 좋은 계약 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팀에서 영입하자니 백업 포수를 20인 외 선수까지 얹어서 데려오기 부담스러울 테고요. 일혁이가 지금 포수가 급한 팀에 간다면 올해 FA 일수를 채우는 것도 쉬울 테고 계약 자체도 고트에 있을 때보단 후하게 받을 겁니다. 일혁이도 팀도 구단도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선택이죠.”

김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팀을 가장 사랑하는 게 일혁인데 일혁이가 팀을 떠나야 윈윈이라니…… 서글프네요.”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마음대로 풀리나요?”

“이제는 대충 알겠습니다. 올스타 전에는 트레이드해야 하니 석현이를 빨리 백업 포수로 만들어야겠네요.”

“예,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일혁이 몸값이 가장 비쌀 땝니다. 지금이 아니면 시즌 중에 좋은 투수 수급은 어려울 겁니다. 언제나 투수가 가장 귀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이해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석현이가 빨리 경기에 나갈 수 있게 조치하겠습니다.”

“일혁이랑은 개인적으로 친분 있으시죠?”

“조금 있습니다.”

“잘 귀띔해 주세요. 본인에게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김태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런데 신언이까지 왜 부르신 겁니까?”

“코치와 현역 포수의 시각에서 얘기를 들을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현장 노하우는 선배 포수가 가장 잘 알지 않을까요?”

“아, 예…….”

“신언이는 파벌로 따지자면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선수니까 석현이한테 선입견 없이 잘 코칭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입도 무겁고 신중하고. 믿을 만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가까이서 지켜본 감독님이 더 잘 아시겠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김태우가 자리에서 나가자 함성훈이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피로가 발끝부터 얼굴까지 번지는 기분이다.

똑똑.

“네.”

문이 열리면서 박신언이 고개를 내밀었다.

함성훈은 침침한 눈으로 박신언을 바라봤다.

“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잠깐 괜찮으시죠?”

“그래, 들어와.”

박신언이 감독실의 문을 닫았다.

* * *

“……그래서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박신언이 고개를 숙였다.

함성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서로 부탁하는 사이가 돼 버렸네.”

“죄송합니다, 감독님. 곤란한 일을 만들어서.”

“아냐. 어차피 시즌이 끝나면 잘릴 사람인데 나한테도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 내가 잘 얘기해 볼게.”

“……죄송합니다.”

“대신 석현이 꼭 잘 티칭해 줘. 석현이가 빨리 자리 잡지 않으면 우리 힘들어.”

“예, 석현이한테는 제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달할 겁니다. 이미 예전부터 정리해 둔 책도 있습니다.”

“책? 이미 준비해 뒀던 건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 알았어. 너도 내 부탁 들어주고 나도 네 부탁 들어주고. 서로 쌤쌤이잖아. 그럼 됐지. 후.”

박신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돼서.”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후, 그래. 알았어. 나가 봐.”

“그럼 이만…….”

박신언이 감독실을 떠났다.

함성훈은 마른세수를 했다.

“어렵네, 감독이라는 자리.”

* * *

피닉스와의 2차전.

경기 시작 전 고트 선수들은 관중석을 보며 혀를 찼다.

“팬이 반은 준 거 같네.”

“이번에는 타격이 오~래가겠다.”

“아까 보니까 현수막까지 들고 팀 접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우리 팀 이미지가 왜 이렇게 똥망이 됐냐?”

“하여튼 돈만 많이 받으면 땡큐라고 생각하니까 사고를 치지. 생각이 없어요, 생각이. 팀 스피릿은 아니더라도 똥칠은 하지 말아야 할 거 아냐.”

어수선한 분위기 속.

송석현은 자신의 배트를 어루만졌다.

오늘도 지명타자 겸 4번 타자.

신인, 그것도 신고 고졸 포수가 4번 타자를 맡는다는 건 평소엔 큰 뉴스거리가 되겠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팀이 엉망이라는 증거로 보일 뿐이다.

얼마 전까지 선풍기 노릇을 하던 김인환이 3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신인이 4번.

고트의 팬들은 경기 시작에 맞춰 현수막을 높이 들었다.

[선수 관리도 못하는 고트는 해체하라!]

[응원의 대가가 고작 이거냐!]

[야구를 못할 거면 제대로라도 살아라!]

[망해라, 고트!]

구장 관리인들이 현수막을 내리라고 팬들과 옥신각신하는 사이 경기는 시작됐다.

경기 시작과 함께 현수막을 흔들던 팬들도 자리에 앉았다.

고트의 공격 순서였다.

“고트! 날려 버려!”

“달려라! 고트! 달려라! 고트!”

응원단장과 치어리더가 일부러 목소리를 키워 가며 응원가를 불렀다.

평소와 달리 응원석의 호응은 없었다.

단발적으로 응원을 따라 하는 사람 몇몇이 끝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1번 타자 정병선이 삼진으로 물러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팬들이 소리쳤다.

“야, 이 등신아! 한복판도 못 치냐!”

“야구 못하면 기술이라도 배워라!”

“고트는 해체하라! 해체하라!”

험한 응원 소리가 벤치까지 울려 퍼졌다.

선수들은 벤치에서 농담 한 번 못 하고 숨을 죽였다.

2번 타자 설진일이 초구 플라이로 아웃되자 비난과 조롱 소리가 더 커졌다.

“해체해! 해체해! 해체해! 해체해!”

선수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욕할 거면 왜 온 거야?”

“소리는 또 왜 저렇게 크냐? 귓구멍 뚫어지것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저러는 거야?”

선수들의 투덜거림 속에 송석현은 배트를 쥐고 대기 타석에 나섰다.

피닉스의 투수는 용병 앤써니 쉐인.

송석현의 귀에는 팬들의 비난과 비아냥이 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송석현은 투수의 리듬에 자신의 몸을 맡기며 배트를 내밀었다.

“어휴, 팬질을 접든가 해야지. 저런 듣보를 4번 타자로 쓰는 게 말이 돼?”

“얼마나 선수가 없으면 신고 고졸 포수를 4번으로 쓰냐?”

“선수가 없으니 만날 FA 델꼬 오는 거지. 이 팀은 답이 없어. 노답이야. 어떻게 제대로 키워 쓰는 애가 하나 없냐?”

“김인환 봐라, 김인환. 쟤는 쫄아서 배트도 못 내네.”

“김인환은 선풍기 돌리는 거 아니면 허수아비라니까. 쟤는 선구안이 없어. 치거나 안 치거나야. 하! 속 터져. 아우! 속 터져!”

김인환이 볼넷을 얻어 1루로 걸어갔다.

송석현은 예의 남들보다 1인치는 더 긴 배트를 휘두르며 타석에 들어섰다.

송석현이 타석에 들어서며 되뇌었다.

투수 앤써니 쉐인.

직구 142km/h의 피네스 피처.

커브와 스플리터가 좋은 선발투수.

포수 김창현.

공격적으로 변칙적인 볼 배합 좋아하는 포수.

배터리는 어떤 초구를 선택할 건가.

고민하던 송석현이 숨을 들이마셨다.

쉬익.

투수가 공을 던졌다.

송석현은 배트를 장전하면서 투수의 릴리스 포인트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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