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71화 (71/201)

피닉스전 (5)

점수 차는 13-2까지 벌어진 8회 말.

송석현은 포수 마스크를 끼고 홈 플레이트로 걸어갔다.

니쿠션이 엉덩이에 딱 붙자 잡음이 사라지고 숨이 돌아왔다.

팡팡!

송석현은 미트를 주먹으로 때렸다.

이거다.

이 느낌.

드넓은 경기장을 관조하는 포지션, 포수.

포수의 시각으로 야구장을 보자 떨렸던 가슴이 진정됐다.

“피닉스가 추가점을 냈지만 11점 차입니다. 경기의 추는 이미 많이 기울었죠?”

“조금 더 일찍 점수를 냈다면 점수 차이를 줄여 가면서 계속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하지만 피닉스 팬들은 오늘도 열띤 응원을 보내 주고 있습니다.”

“아마 전 구단을 통틀어 피닉스 팬들이야말로 가장 가슴 뜨거운 팬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꼴찌를 할 때도 우승을 할 때도 한결같이 응원하는 팀이거든요.”

“저런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면 선수로서도 행복한 일일 텐데, 성적이 안 나와서 아쉽네요.”

“하지만 이번 이닝은 기대할 만합니다. 2번 타자부터 시작이거든요.”

“그 말씀은 4번 타자 경수인 선수가 나온다는 뜻도 되겠네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작년 피닉스에서 투타의 핵심이 김영훈 선수와 경수인 선수였습니다. 김영훈 선수는 현재 재활 중이고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는 만큼 경수인 선수가 짊어져야 할 몫이 커졌습니다.”

“8회. 과연 피닉스가 반격을 시작할 수 있을지. 끝까지 관심을 두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고트의 투수는 정천운.

송석현과 2군에서 호흡을 맞춘 사이드암 투수였다.

공은 빠르지 않지만 공격적인 피칭과 지저분한 볼 끝으로 2군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둔 투수였다.

“피닉스의 첫 타자는 김진필 선숩니다.”

“아까 4회에 만세 수비를 하면서 대량 실점의 빌미를 내줬습니다. 수비가 약한 만큼 타격에서 벌충하는 타잔데 오늘은 이렇다 할 활약이 없네요.”

송석현은 김진필을 살폈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몸을 좌우로 많이 흔든다.

스탠스는 넓지만 히팅 포지션은 높게 가져가지 않는다.

노 스텝에 가까운 타격 폼.

정확도는 높지만 하체의 무게 이동이 적은 만큼 힘을 많이 실을 수 없다.

불리한 조건에도 김진필은 장타를 많이 치는 타자다.

허리와 어깨의 회전력으로 모자란 힘을 벌충하는 타입.

타자로서 특별히 약점이 없는 선수다.

‘슬라이더, 바깥쪽.’

송석현은 초구를 하나 빼면서 타자의 반응을 살폈다.

-스트라이크!

김진필은 바깥쪽 바지는 공에 헛스윙을 하면서 탄식을 내뱉었다.

“김진필 선수의 헛스윙.”

“정천운 선수는 아직 어린 22세의 투순데요. 2군에서 막 올라왔는데 공이 상당히 괜찮아 보이네요.”

“하지만 김진필 선수는 또 베테랑 아닙니까?”

“그렇죠. 김진필 선수는 분명 좋은 타잡니다. 만만한 타자가 아니에요.”

“엇! 바로 공을 던집니다. 스트라이크가 나오네요.”

“템포가 굉장히 빠른데요? 거의 포수 공을 받자마자 던졌습니다.”

“김진필 선수, 바로 2스트라이크로 몰립니다.”

송석현은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스트라이크를 얻어 냈다.

존에 들어오는 체인지업은 타자에겐 맛 좋은 먹잇감이지만 김진필은 배트를 내지 못했다.

투수의 투구 템포는 빨랐지만 공은 느렸다.

타격 리듬이 깨지면서 배트를 낼 타이밍을 놓쳤다.

“어린애들이 쉽게 쉽게 가려고 그러네.”

경수인이 배트를 쥐고 흔들었다.

그사이 투수는 제3구를 던졌다.

탁.

-파울.

“김진필 선수가 가까스로 파울을 만들었습니다.”

“사이드암 선수가 던지는 몸 쪽 공은 더 매섭습니다. 공이 우타자 몸 쪽으로 더 꺾이거든요.”

“송석현 선수, 오늘 첫 데뷔전인데 볼 배합이 상당히 공격적입니다. 2스트라이크를 잡은 다음에 바로 승부를 보네요.”

“젊은 선수라 그런가요? 하하.”

김진필은 식은땀이 흘렀다.

말렸다.

배터리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투수는 포수에게 공을 받자마자 던질 채비를 한다.

직구? 변화구?

김진필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 투수가 공을 던졌다.

탁!

“안타! 김진필 선수 여기서 안타를 칩니다.”

“정말 잘 밀어 친 공이었습니다. 2루 베이스 위를 지나치는 안타. 약간 먹힌 공이었는데 코스가 좋았습니다. 조금만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갔으면 잡혔을 공이었는데 운도 따랐습니다.”

김진필은 1루에 도착하자 한숨을 돌렸다.

바깥쪽 직구였다.

바깥쪽으로 오기에 체인지업이나 슬라이더를 생각했는데 직구였다.

배트 타이밍이 늦었지만 억지로 밀어 쳤다.

안타는 쳤지만 타자의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스무 살 어린 포수에게 농락당한 기분이다.

“쩝.”

송석현은 안타가 나오자 입맛을 다셨다.

방금 전 정천운의 직구는 138km/h. 140km/h만 됐어도 아웃이 나왔을 터다.

사이드암이라지만 구속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석현은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포수가 투수에 맞춰야지 투수가 포수에 맞출 순 없는 노릇이다.

“타석에는 3번 타자 홍찬열 선수가 나옵니다.”

“홍찬열 선수도 잘 치는 타잡니다. 특히 노림수가 좋은 타자예요. 장타력도 좋습니다.”

송석현은 홍찬열의 폼을 살폈다.

오픈스탠스, 낮은 자세, 많이 감긴 어깨, 높은 히팅 포지션.

전형적인 거포의 자세다.

하나만 걸리면 넘겨 버리겠다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송석현은 초구로 바깥쪽 커브를 요구했다.

아직 한 번도 안 던진 공.

정천운은 눈으로 주자를 한번 견제한 뒤 공을 던졌다.

툭.

홍찬열의 무릎이 무너지면서 공을 건드렸다.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온 커브에 직구 타이밍을 노리던 타자의 인내심이 무너졌다.

타이밍은 늦었지만 그 덕에 공도 느렸다.

홍찬열에 맞춰 외야로 두세 발 물러났던 내야수들 덕에 무사 1, 2루가 만들어졌다.

“피닉스 안타! 또 안타를 쳐 냈습니다!”

“이러면 경기가 조금 재밌어집니다. 다음 타자는 경수인 선수거든요. 경수인 선수가 점수를 내주면 여기서 또 빅이닝이 나올 수 있습니다.”

“8회가 또 역전이 많이 나오는 이닝 아닙니까?”

“큰 점수 차긴 하지만 고트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야구는 아웃 카운트를 잡기 전까진 끝나지 않는 게임이에요.”

경수인이 타석으로 걸어왔다.

송석현은 경수인을 보자 두근거렸다.

어릴 때 피닉스를 보면서 경수인의 팬이 됐었다.

경수인은 스무 살 때부터 스타였다. 당시만 해도 피닉스는 강팀이었고 전설적인 선수들도 많았다.

전설 사이에서도 약관의 나이에 주전을 꿰찬 신인.

국가 대표 4번 타자.

약점이 없는 타자.

누구보다 경수인에 대해선 빠삭한 게 송석현이기도 했다.

“천천히 해, 천천히. 숨 넘어가것어.”

경수인이 타석에 들어서면서 송석현에게 말을 걸었다.

송석현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예, 알겠습니다.”

송석현이 말을 마치자마자 투수가 공을 던졌다.

바깥쪽 슬라이더.

이번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이었다.

-스트라이크!

“뭐가 그리 급해서 서둘러?”

경수인은 스트라이크 하나를 뺏겼지만 여유로웠다.

송석현도 스트라이크 하나를 뺏었다고 좋아하지 않았다.

경수인은 초구 하나를 지켜보는 버릇이 있다.

때론 이를 역으로 노려 초구를 노려서 치는 경우도 있지만 열에 아홉은 초구를 지켜본다.

송석현도 이를 알고 초구를 요구한 거다.

스트라이크 하나를 준 이후부터가 본격 승부다.

“…….”

송석현은 경수인의 자세를 보면서 고민했다.

노 스텝, 스퀘어 스트라이드.

김진필보다 더 극단적인 노 스텝.

변화구엔 강할지 몰라도 공에 힘을 싣기 어렵고 강속구 공략도 쉽지 않은 폼이다.

단점이 명확해 대부분 쓰지 않는 타격 폼이지만 경수인은 달랐다.

타고난 유연성과 허리 힘으로 강한 회전력을 만들어 내 장타를 만든다.

4번 타자임에도 홈런 수는 적지만 해마다 타율 3할, 출루율 4할, 장타율 5할을 놓친 적이 없는 타자다.

‘직구, 몸 쪽.’

송석현의 선택은 과감했다.

약점이 없는 타자는 없다.

더 강하고 더 약한 부분이 있을 뿐이다.

강한 허리 힘으로 안타를 치는 타자라면 배트가 나오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배트가 나오는 시간이 길다면 몸 쪽 공을 치기가 쉽진 않다.

‘오케이.’

투수는 한 번도 포수의 사인을 거절한 적이 없다.

자기 공에 강한 믿음이 있는 투수였다.

정천운은 4번 타자 경수인을 상대로 몸 쪽 직구를 던졌다.

“후!”

경수인이 기합을 내면서 배트를 돌렸다.

탁!

“파울! 파울입니다!”

“폴대를 많이 벗어나네요.”

“송석현 선수처럼 장외를 넘기진 못했지만 담장을 넘어가는 파울입니다.”

“방금 공은 위험했습니다. 굳이 경수인 선수를 상대로 몸 쪽 공 승부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경수인은 입맛을 다시면서 타석에 돌아왔다.

타이밍이 먹힌 공이다.

몸 쪽 직구는 생각지도 못했고, 투수의 공도 지저분했다.

“급하다, 급해.”

경수인의 농담에도 송석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국대 4번 타자 경수인.

포수로서 꼭 잡아내고 말겠다는 호승심에 불타올랐다.

‘커브, 바깥쪽.’

송석현은 공 하나를 빼면서 경수인의 대처를 살폈다.

-볼, 아웃사이드.

경수인은 빠지는 공엔 반응하지 않았다.

선구안이 좋다.

다음 공은 아래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파울.

경수인은 공을 걷어 내면서 파울을 만들었다.

2스트라이크 이후로도 좀체 삼진을 안 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구안도 좋은데 컨택도 좋다.

타자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송석현에겐 가장 까다로운 타자.

고트의 배터리코치는 자신이 사인을 내는 게 어떠냐고 감독에게 넌지시 얘기했다.

“이럴 때 자기가 사인을 내 봐야죠. 선수는 자기가 책임을 져 봐야 실력이 느는 겁니다.”

박신언은 수건을 목에 걸친 채 중얼거렸다.

“걸러, 그냥. 뭐 하러 머리 아프게 가냐?”

2-2.

경수인을 상대로 풀카운트까지 가서 좋을 게 없다.

경수인은 오히려 풀카운트에 강한 타자다.

송석현은 결정구를 요구했다.

“투수 던집니다. 안타! 안타가 나옵니다! 경수인 선수 우익수 방면 안타! 1점을 따라가는 피닉스. 이렇게 되면 무사 1, 3루 찬스가 이어지네요.”

“방금 몸 쪽 직구는 좀 아쉬웠습니다. 과감했지만 굳이 던질 필요가 있었나 싶네요.”

안타를 맞은 후 송석현이 투수에게 미안하다고 사인을 보냈다.

투수는 괜찮다고 손을 흔들었다.

몸 쪽의 공이 가운데로 몰렸다.

장타가 안 나온 게 다행인 상황이다.

송석현은 1루에 나간 경수인을 보곤 제 머리를 두드렸다.

“그냥 거르면 될걸. 어휴, 답답아.”

맞고 나서야 보인다.

욕심이었다.

4번 타자를 상대로 굳이 승부할 필요는 없었다.

경수인은 발이 느리다.

1점을 주더라도 만루를 채우고 병살을 노리는 게 맞다.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선 추가 점수를 야금야금 내주더라도 아웃 카운트 하나 챙기는 게 더 중요하다.

큰 점수 차를 이용해 경기를 빨리 끝내야 상대에게 역전의 기회가 없다.

큰 점수 차로 이기는 쪽은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쫓아가는 쪽은 점점 더 집중하게 된다.

점수 차가 줄어들면 균열이 생기고 균열에서 또 다른 빅이닝이 나올 수 있다.

송석현은 제 뺨을 툭툭 치고 홈 플레이트를 바라봤다.

포수는 야전 사령관이다.

감정에 휘둘려서 안 된다.

포수가 생각할 건 오로지 하나.

팀의 승리.

송석현은 타석에 들어오는 오성득을 보며 미트를 내밀었다.

‘직구, 몸 쪽.’

경수인에게 안타를 내줬지만 송석현은 볼 배합을 바꾸지 않았다.

타자가 강하면 타자의 약점을 노려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투수의 강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정천운은 볼 끝이 지저분한 사이드암 투수다.

병살을 노려야 한다면 몸 쪽으로 파고드는 사이드암의 패스트볼이야말로 제격이다.

탁!

“오성득 선수, 쳤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유격수가 잡고 2루로! 2루에서 아웃! 1루에서도 아웃! 병살! 병살입니다!”

“피닉스가 추가 점수를 따 냈지만 주자가 모두 아웃이 됐습니다. 이렇게 되면 추격의 고삐가 헐거워지네요.”

“오늘 송석현 선수의 볼 배합, 정말 공격적입니다. 경수인 선수에게 안타를 맞았는데도 초구에 몸 쪽 직구를 요구했어요.”

“재밌는 선수가 나타난 거 같습니다. 타석에서는 조심스러운데 오히려 포수로 앉았을 땐 공격적입니다, 하하. 보통은 반대 아닌가요?”

“그렇죠. 포수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데 송석현 선수는 반대네요.”

“재밌네요, 오늘 경기. 점수 차는 크지만 정말 재밌는 경기 같습니다.”

경기는 14-5로 고트의 승리로 끝났다.

피닉스에게 추가 점수를 내줬지만 단발로 끝났다.

경기 MVP는 선발투수 한민석이었다.

평소라면 야구 사이트, 고트 팬 페이지가 난리 날 일이었다.

대승도 대승이지만 부진했던 한민석이 부활의 기미를 보였고, 신인 포수가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해냈다.

송석현에 관한 기사도 쏟아질 만하건만 송석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최대규의 음주 운전, 이낙균과 강문규의 클럽 성희롱 사건이 동시에 터졌다.

검색어에 최대규, 이낙균, 강문규의 이름이 올라왔고 고트 공식 홈페이지는 마비됐다. 팬 페이지에는 선수들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폭탄이 떨어졌지만 송석현은 그저 첫 안타 공을 손에 쥔 채 싱글벙글했다.

차를 타고 복귀하는 길.

선수들은 뒤늦게 기사를 읽고 한숨을 토했다.

송석현도 뒤늦게 핸드폰을 꺼내다 기함했다.

부재중 전화 48통.

정미남과 김나영, 김영석은 물론 엄마와 동생, 고등학교 야구부 동기들까지 전화를 했었다.

“아…… 애들한테 얘기를 못 했네.”

김나영의 부재중 전화 12통을 보니 왠지 등골이 오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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