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전 (1)
송석현은 대전구장으로 들어가면서 주변을 살폈다.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거닐던 추억을 더듬어 보고 싶었지만, 오래전 일이라 어디가 어디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빛이 쨍 하고 내리는 그라운드에 발이 닿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까 타격코치가 말한 비밀 병기라는 단어가 귀에 맴돌았다.
“자, 자. 뭐 해, 다들? 멍 때리지 말고 빨리 움직이자고.”
코치들이 나서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주전 선수들의 대거 이탈.
곧 뉴스를 도배할 사건, 사고.
나날이 떨어지는 순위.
선수들은 억지로 파이팅을 외치며 서로를, 자신을 독려했다.
“자. 하나둘, 셋, 넷. 허리 펴고. 다리 쭉쭉.”
1군 훈련이라고 2군과 다를 건 없었다.
1군 훈련이 2군 훈련보다 더 간단하고 단순했다.
훈련이라기보단 컨디션 점검이라고 하는 게 옳았다.
단체 훈련이 끝나면 포지션별로 따로 모여 훈련했다.
송석현도 박신언, 서일혁과 함께 모여 훈련했다.
박신언, 서일혁은 수비로 정평이 난 포수답게 군더더기 없이 동작이 깔끔했다.
훈련이지만 송석현도 두 사람의 훈련 페이스에 뒤처지지 않았다.
“어디 우리 석현이 어깨 좀 개시할까?”
2군 배터리코치에서 1군 배터리코치로 올라온 김태우가 송석현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야수와 합을 맞추는 송구 훈련.
박신언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팡!
박신언의 송구는 정확했다.
마운드를 이등분 하라는 기본에 충실한 송구였다.
팡!
뒤이은 서일혁의 송구도 나무랄 데 없었다.
공은 빠르지 않았지만 공을 빼는 속도, 송구 자세, 정확도는 완벽에 가까웠다.
“자, 자! 석현아! 하나 보여 주자!”
김태우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송석현의 이름을 불렀다.
첫 1군 데뷔.
팀의 막내.
선수들에게 실력을 한번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흡!”
송석현은 숨을 들이켜며 공을 뿌렸다.
팡!
송석현의 송구를 본 박신언과 서일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송석현의 평균 팝 타입 1.88초.
어깨가 좋다는 걸 감안해도 공을 빼는 동작부터 송구 동작까지 쓸데없는 잔동작이 없어야 가능한 시간.
송석현의 두 번째 송구에 박신언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투수 출신이라더니 다르긴 다르네.”
미소를 보이는 박신언과 달리 서일혁은 무표정으로 송석현을 바라봤다.
송석현의 송구를 본 내야수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빠르다.
2루수 정동규가 유격수 정영수를 보며 말했다.
“어깨 죽이는데?”
“저 정도는 내가 여태 한 번도 못 본 거 같다.”
“어깨가 저 정도면 메이저급 아니야?”
“정률이 형 말이 구라가 아니었네?”
송석현의 송구를 지켜본 감독이 배터리코치 곁으로 왔다.
“팝 타임 얼마 나오나요?”
“지금요?”
“지금이랑 평소랑 다요.”
“평소에도 1.88초 정도 나옵니다.”
“1.88초요?”
“네, 지금은 1.84? 손으로 재는 건 정확하지 않아서 쓸모없는 수칩니다.”
“평균 1.88초면 메이저리그에서 톱클래슨데요.”
“최소한 어깨만큼은 석현이가 대한민국 포수 역사상 최고일 겁니다.”
“투수 출신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깨만 좋다고 팝 타임이 빠른 건 아닐 텐데…….”
배터리코치가 뒷짐을 지었다.
“재능이죠. 석현이 동작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투박해 보여도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석현이 성격이랑 똑같죠. 석현이는 특히 축발 움직임이 아주 좋습니다. 투수 출신이라 그런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공 포심으로 던지는 건 기가 막히고요.”
“송구를 점수로 따지자면 몇 점 주십니까?”
“음…… 100점 만점에 80점입니다.”
감독이 턱을 괴었다.
“80점요? 너무 짜신데요?”
“송구라는 게 단순히 2루에 던지는 게 아니니까요. 1, 3루 상황에서 던질 거냐, 말거냐. 번트가 나왔을 때 2루로 던질 거냐, 1루로 던질 거냐. 이런 걸 결정하는 것도 송구 능력의 중요한 부분 아니겠습니까? 석현이가 프로 경험만 적은 게 아니라 포수 경험 자체가 적어서 피지컬을 뺀 부분은 물음푭니다. 최대한 많이 쳐줘서 80점이라는 거죠.”
“그럼 반대로 생각해도 되겠네요. 상황 판단이 안 좋아도 어깨 하나만으로 리그 A급 포수라는 거죠?”
“저 어깨면 송구할 필요도 없죠. 저 어깨야말로 강력한 도루 저지 부적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흠.”
감독은 서일혁과 송석현을 번갈아 봤다.
배터리코치는 감독의 눈빛을 알아차리곤 헛기침했다.
“설마 트레이드를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아쉽게도 저한테 그런 권한까진 없습니다.”
“감독님이 강력하게 원하면 트레이드 안 될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일혁이만 한 백업 없습니다. 백업으로만 보자면 리그 최고 백업 아닙니까?”
“트레이드 권한은 없지만 트레이드한다면 지금이 적기죠. 일혁이야 내년이 FA인데 다른 팀에선 주전도 맡을 수 있는 포숩니다. 신언이 올해 서른하나고, 나이를 생각하면 앞으로 3~4년은 성적이 어느 정도 나올 겁니다. 3~4년이면 송석현이 크기에 충분한 시간이고요.”
“신중해야 됩니다. 포수는 쉽게 내주는 거 아니니까요.”
“우린 정지환도 있잖습니까? 정지환도 서일혁과 비교하면 타격 지표만 조금 부족할 뿐이지 수비력은 1군에서도 충분히 먹힐 텐데요.”
“지환이도 좋은 포수죠. 그래도 일혁이랑 비교하면 확실히 조금 떨어집니다.”
“일혁이를 내보는 것도 본인에게 좋은 일일 수 있어요. FA 일수를 아직도 못 채웠는데 다른 팀에 가서 주전을 하면 수월하게 채울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감독님, 정말 트레이드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까 보니까 송석현 수비도 괜찮던데 타격까지 잘 나온다면 트레이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죠.”
“그래도 신중하셔야 합니다.”
“트레이드 마감까지 한 달 좀 더 남았습니다. 확신이 서면 그때 코치님과 상의하겠습니다.”
훈련의 마지막은 프리 배팅이었다.
김인환은 예의 홈런 쇼를 선보이며 건재함을 알렸다.
송석현이 타석에 들어서자 선수들이 입을 다물었다.
송구 하나만으로 인상적이었지만 김정률의 말도 뇌리에 깊이 남아 있었다.
김인환을 제외하곤 고트에선 넘버 1일 거라는 호언장담.
긴가민가하면서도 송석현의 어깨를 본 터라 깊게 관심을 가졌다.
탕!
탕!
송석현은 타격코치의 말을 잊지 않았다.
리듬을 타고 결대로 외야에 밀어내는 것으로 만족했다.
선수들은 금세 흥미를 잃고 제 할 일을 찾았다.
서일혁은 송석현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오늘 왜 이렇게 사려?”
김인환은 타석에서 내려온 송석현에게 물었다.
“뭐, 그냥요.”
송석현은 타격코치의 말을 전하지 않았다.
‘비밀’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라인업 나왔다. 확인해.”
선수들이 벤치로 하나둘 걸어왔다.
가장 먼저 간 이들이 라인업을 술술 읽었다.
“지명…… 4번 타자 송석현?”
라인업 발표에 선수들이 술렁였다.
오늘 처음 올라온 신인이 바로 라인업에 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하물며 김인환이 있는데 지명타자에 나선다.
김인환이 건재한데 4번 타자로 나서는 건 선수들 모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4번요?”
송석현은 라인업을 확인하곤 눈을 비볐다.
지명타자라는 것도 믿기 어려운데 4번 타자다.
선수들은 라인업을 한번 보고 송석현을 봤다.
“그 정돈가, 쟤가?”
“2군에서 좀 쳤다지만 바로 4번에 꽂는 건 너무한데.”
“감독님이 감을 잃으신 거 아냐?”
술렁이는 선수들 사이로 서일혁의 표정이 굳었다.
박신언은 말없이 서일혁의 등을 두드렸다.
서일혁이 숨을 크게 들이쉬곤 천천히 내뱉었다.
“아…….”
송석현은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지명타자, 4번 타자.
하나도 어려운 일인데 둘 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다.
“과감하네요, 감독님이.”
“그러게 말이야.”
김정률과 김인환이 조용히 얘기를 주고받았다.
“네가 4번 싫다고 했다고 석현이를 4번 박을 줄은 몰랐네.”
“그러게 말이에요, 대타로 나올 줄 알았는데.”
“수코 할 땐 조용하더니만 감독 하니까 의외네.”
“그런데 형.”
“어?”
“아까 석현이가 절대 4번 할 일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보통은 그게 정상이지.”
“석현이가 부담이 크겠네요. 4번 중압감이 장난 아닌데.”
“그럼 네가 더 잘 치든가.”
“그게 제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게요.”
KPBL의 라인업 발표는 경기 시작 1시간 30분 전이었다.
감독은 취재진을 만나 라인업을 발표하고 경기에 관한 인터뷰를 하는 게 KPBL의 관습이었다.
이번만큼은 고트도 감독이 직접 기자와 만나지 않았다.
현재 고트는 얽힌 사건이 많았다.
폭풍 전야.
기자들은 고트 구단의 부탁으로 발표를 미루고 있지만 최대규의 음주 운전은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터진다.
그뿐만 아니라 강문규와 이낙균의 클럽 성희롱, 성추행 건도 피해자가 고소에 나서면서 더는 물밑에 감추기 힘든 상황이었다.
엠바고가 걸려 있어 감독에게 묻지도 못하고 감독도 대답하지 않을 테지만 누가 먼저 기사를 쓰느냐로 긴장감이 팽팽했다.
때마침 라인업이 발표됐다.
“4번 타자 송석현?”
“송석현이 누구야?”
“김인환이 4번 아니야?”
“송석현이라는 애가 있었어?”
“누군데 김인환을 밀어내고 4번 타자야?”
큰 사건, 사고에 비하면 소소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은 라인업 발표였지만 한 남자가 여기에 불을 지폈다.
“하이고, 다들 이렇게 느려서야. 요새 2군에서 가장 핫한 송석현을 몰라?”
남자의 이름표엔 석수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석 기자, 송석현을 알아?”
“알지. 내가 이미 취재까지 다~ 해 놨는데 기사를 못 올렸으니 더 잘 알지.”
“기사를 왜 못 올렸어?”
“지금 고트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인터뷰 요청을 받아 주겠어?”
“아, 하기야.”
“송석현, 내가 상무랑 하는 거 직접 취재했거든. 어우, 대단했어. 김영곤을 두드려 패더라. 아주 홈런을 뻥뻥 때리는데 무섭더라고. 파워가 김인환보다 나은 거 같던데.”
“그 정도야? 김인환보다 더 센 놈이 있을 수가 있나?”
“단순 힘이야 김인환이 세겠지. 그런데 배트를 돌리는 건 쟤가 더 셀지도 몰라. 이유가 있더라고.”
“무슨 이윤데?”
“그거는 내가 써먹어야 하니까 말 못 하고.”
“에이, 진짜.”
“아무튼. 나도 언젠가 송석현을 1군에서 보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그것도 4번 타자로 볼 줄은 몰랐네.”
“송석현이라고?”
기자들은 저마다 수첩을 꺼내 적어 내려갔다.
인터넷으로 송석현을 검색해 읽어 나가는 이도 있었다.
* * *
그 시각.
송석현이 넋이 나가 배트를 품에 안고 있었다.
4번 타자.
첫 데뷔.
꿈인가 싶었다.
머리가 온통 하얗게 변했다. 들려오는 소리도 이명 같았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시간은 휙휙 지나갔다.
어느덧 경기 시작을 알리는 국민의례.
송석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제 경기가 시작되면 타석에 들어서게 된다.
4번 타자로 1군에 첫 데뷔 한다.
송석현은 국민의례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플레이볼!
경기는 시작됐다.
송석현이 배트를 손에 꽉 쥐었다.